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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수업 만들기

2월, 배움의 빛깔을 정해 보세요

김태현의 수업 이야기 8

2월, 배움의 빛깔을 정해 보세요

 

 

 

 

 

 

2월이 왔다. 종업식, 졸업식으로 마음이 바쁘겠지만,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3월 새 학기를 준비해야 할 때다. 하지만 막상 새 학기 수업 준비를 하려고 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이를 위해 착실하게 수업 준비를 하고 있는 정병옥 선생님을 가상으로 만나 봤다.

 

2월에 꼭 해야 할 일

사회자 : 안녕하세요. 선생님! 학기말 업무는 잘 끝나셨나요?

정병옥 : 아, 네. 이제 거의 끝나 갑니다. 네이스 ‘행동 및 발달 상황’을 쓰는 건 여전히 어렵군요. 한 사람 한 사람 일일이 특성에 맞는 글을 쓰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네요.

사 : 네이스 책자에 나온 예시대로 쓰지 않고, 선생님이 경험했던 학생들의 모습을 일일이 적으시는군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에너지를 쏟고 나면 새 학기 수업을 준비하실 여력도 없으시겠어요.

병 : 그렇죠. 하지만 새 학기 수업 준비라고 해서 거창하게 특별히 무엇을 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내가 하고 싶은 수업을 글로 정리하는 거라서 크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다만 마음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죠.

사 : 새 학기 준비를 위해서 마음을 정리한다? 보통 교사들은 새 학기 준비를 위해 교수 방법을 알려 주는 연수를 듣는다거나, 수업 자료를 확보하는 데 열을 올리는데, 선생님께서는 마음을 정리한다는 것이 약간 생뚱맞게 들려요. 이것이 왜 중요한 거죠?

병 : 사실 교수 기술을 연마한다거나 교수 자료를 얻는 것은, 교사가 시간만 내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굳이 2월이 아니더라도 다른 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2월에만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 학기 수업을 마음으로 그려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2월에 하지 않고 3월부터 수업에 들어가면서 하게 되면, 우리 수업은 또다시 갈팡질팡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헤매게 됩니다. 사실 선생님들이 수업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수업 진행 능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수업을 하는 교사 본인의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년 동안 이룰 수업의 방향을 제대로 세우지 못해서, 교과서의 내용과 개념들을 기계적으로 전달하는 데 급급합니다. 학생들과 소통하며 새로운 배움을 주어야 하는데, 예전에 했던 그대로 수업을 하게 됩니다.

 

수업의 목적을 정해 보세요

사 : 그렇다면 어떻게 마음을 정리해야 할까요?

병 : 먼저는 내가 일 년 동안 이룰 배움의 빛깔을 정해야 합니다. 일 년 동안 내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어떤 배움을 줄 것인지를 미리 생각하는 것입니다. 학교 수업의 문제점은 교사 스스로가 수업을 통해 이룰 교육적 목적을 상실했다는 데 있습니다. 진도 나가는 것은 수업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수업에서는 학생들을 의미 있는 배움으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사 : 그렇다면 교사 개인이 어떻게 자신의 수업 목적을 정할 수 있는 거죠? 쉬운 듯하면서도 막상하려면 어려울 것 같은데요.

병 : 맞습니다. 내가 이루고 싶은 배움의 빛깔을 정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교사 스스로 끊임없이 자기 성찰을 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2011년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이루었던 수업을 살피면서, 내 수업 속에서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지점에서 학생들이 내 수업을 힘들어 했는지 혹은 좋아했는지를 떠올리면서, 올 한 해 내가 이루어야 할 배움의 방향을 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작년 수업의 반성만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평상시 내가 가지고 있는 교육적 신념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가 정신없이 학교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우리는 일관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독 교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독 교사로 결단한 우리는, 실체는 모호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교사로 교단에 서려고 합니다. 이때 우리는 조금 힘들지만,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 내가 올 한 해 어떤 배움을 일궈 내면 좋을까요?’, ‘하나님께서 내 수업 속에서 원하는 배움은 무엇인가요?’를 조용히 물으며 말씀을 묵상하고 그 내용들을 글로 적어야 합니다.

이렇게 수업의 목적은 교사 개인이 가지고 있는 교육적 성찰, 신념, 꿈 등이 결합되어 발현이 됩니다. 이것을 잘 설정해야지만, 교사 스스로 수업을 일관되게 가져갈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학생들과 씨름하며 의미 있는 수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 : 어찌 보면 선생님께서는 좋은 수업은 치열하게 자기와의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병 : 맞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교육학자 파커 팔머도 자기와 대화하지 않는 교사는 영혼이 없는 교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교사가 끊임없이 산책하고, 자연을 벗 삼으면서 영혼을 풍요롭게 살찌울 것을 교사들에게 주문했습니다.

사 : 그렇군요. 그럼 선생님, 배움의 빛깔을 정한 실제적인 예를 하나 말씀해 주세요.

병 : 언젠가 한 중국어 선생님은 한 학기 수업의 전체적인 목적을 ‘포용’으로 잡으시더라고요. 왜 ‘포용’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냐고 물었더니 그 선생님은 학생들이 막연하게 중국을 비하하고 무시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을 자신의 수업을 통해서 바꾸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선생님은 ‘포용’이라는 목표 아래에 수업 시간에 중국어 문법을 가르치기보다는 중국 문화를 가르치기로 했지요. 중국 여행 사진, 중국 영화, 중국 노래 등을 적절하게 수업 내용에 넣어서 학생들과 중국을 더 가깝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수학 선생님은 ‘수학과 삶이 만나다’라는 목표를 잡으셨어요. 그 선생님 말에 의하면 수학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의 삶을 나타내고 추상화시키는 것인데, 삶과 분리된 수학 수업이 학생들에게 수학 수업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은 수학 역사를 살피면서 수학적 원리를 설명하고, 다시 그것을 삶의 실제적인 맥락에서 살피기로 했다는 거예요. 단순히 문제를 풀기보다는 삶 속에 있는 수학 원리를 찾아서 알려주기로 한 거죠.

사 : 결국 그렇게 배움의 빛깔을 정하니까 학생들에게 어떤 배움을 줄 것인지가 명확해지는군요.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되고요.

병 : 맞습니다. 수업이 바뀌는 것은 수업의 ‘겉’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습니다. 수업을 하는 교사의 ‘속’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서 2월에는 지난 2011년 수업을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2012년 내가 이룰 수업의 모습을 가만히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수업 속 경계를 고민해 보세요

사 : 배움의 빛깔을 정하는 것 말고, 또 무엇을 고민해야 하나요?

병 : 지면 관계상 다 말씀 드릴 수 없지만, 선생님들은 새 학기 시작하기 전에 수업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일명 수업 속 경계라고 하는데, 수업 속에서 학생들에게 어떤 규칙들을 요구할 것인지, 혹은 규칙을 어긴 학생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도 미리 생각해야 합니다. 이를 미리 준비하지 않고 새 학기를 올라가면, 학생들과 엉뚱한 씨름만 하다가 시간을 허비할 수 있습니다. 주변 동료 선생님들과 잘 상의하면서, 수업 속에서 배움으로 들어오지 않는 아이들, 잘 경청하지 않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다룰 것인지를 미리 생각해야 합니다.

아울러 선생님 스스로 학생들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학생들에게만 규칙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선생님이 학생들을 존중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다거나, 이름을 불러 준다거나, 눈을 마주치는 등 학생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 교사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잘 정하셔야 합니다.

사 : 결국 선생님은 새 학기에는 수업 기술, 수업 내용을 준비하기에 앞서서 수업에서 이룰 배움의 지점을 명확히 하고, 그것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미리 생각하라는 말씀이군요. 특히 학생과 인격적인 관계를 잘 이루기 위한 실제적인 방법들을 고민하시라는 말이군요. 좋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병 : 아닙니다. 우리 선생님들께서 저의 작은 조언으로 2012년 수업이 새로워지기만을 진심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