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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오 칼럼

탄핵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2017.4)

정병오 칼럼


탄핵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책소추안을 인용하여 박 대통령은 대통령 지위를 잃고 자연인의 신분이 되었다. 우리 역사상 대통령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그만 둔 경우는 이승만, 박정희, 최규하 이렇게 3명이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의 하야를 주장하는 시위대에게 총격을 가해 수백 명의 희생자를 낸 이후에 물러났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심복에게 총에 맞아 죽음으로 물러났다. 최규하 대통령은 전두환 쿠데타 세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물러났다. 즉 모두가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거나 당함으로 물러난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어떠한 물리적 폭력 없이 물러났다. 본의 아니게 한국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주역이 된 것이다.

 

종교개혁의 후예들이 발전시킨 법에 의한 지배

최고의 권력자라 할지라도 법을 위반했을 경우 헌법기관의 판결에 의해 물러나야 하는 사회를 우리는 법치국가라 부른다. 즉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함께 지켜야 할 법을 만들고, 그 법에 근거해 그 법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선출하고, 모두가 그 법의 통제 하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 누구도 예외가 없는 사회를 말한다.

서구에서 이러한 법치국가의 이념은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수고에 의해 형성되었는데, 이 가운데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은 스위스의 종교개혁자 칼빈과 그의 신학을 따르는 칼빈주의자들이었다. 칼빈에게 있어서 신앙은 교황의 통제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양심에 근거해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신자가 양심의 자유와 종교행위의 자유를 누려야 하며, 종교단체(교회)는 예배의 자유와 자율통치의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주장은 당시 그 시대를 지배하던 카톨릭 체제에 대한 위협이 되었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신봉자들은 종교적 정치적 핍박을 많이 받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신앙과 교회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한 양심의 자유를 종교적 차원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하나님이 모든 인간에게 허락하신 인권 차원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천부인권 사상은 국민주권론으로 이어졌고 이를 담아내기 위한 틀로서 법에 의한 지배라는 정치 사상들을 발전시켜나갔다. 이러한 사상들은 1568년 제네바의 시민칙령, 1579년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동맹, 1589년 프랑스의 낭트칙령, 1643년 스코틀랜드의 엄숙동맹, 1628년 영국의 권리청원과 1689년 영국의 권리장전과 관용령, 1780년 미국의 매사추세츠 헌법에 이르기까지 근대 민주주의 토대가 되는 선언문과 헌법들이 나오게 되었다.

 

한국 교회는 민주주의 발전에 어느 정도 기여했나?

이렇게 볼 때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고, 또 우리 사회와 국가를 건강하게 지켜갈 수 있는 중심이자 푯대가 되는 국민주권론법에 의한 지배는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의 후예들에게 크게 빚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한국의 개신교는 믿음의 선배들이 하나님 앞과 성경의 조망 하에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이 땅 가운데 보다 근접하게 실현시키기 위해 발전시켜왔던 민주주의의 원리들을 실현하고 발전시키는데 기여한 바가 많지 않다. 아니 오히려 걸림돌이 된 경우가 더 많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기여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암울했던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 모두가 숨죽이고 있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용기를 가지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앞장섰던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정치적 투쟁은 아니라 해도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위해 헌신한 사람이 많았고, 자신이 속한 영역 가운데서 정직과 투명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 기독교는 이승만 독재 정권을 옹호하며 그 가운데 이익을 누렸고, 군부독재 시절에는 침묵으로 동조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오히려 기득권 보수 세력에 동원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번 탄핵 정국에서도 많은 수의 기독교인들이 탄핵 반대 그룹의 중심에 서 있었다.

 

탄핵 이후 한국 교회가 붙들어야 할 과제

이번 대통령 탄핵 정국을 거치며 한국의 민주주의는 한 단계 진보했고, 국민들의 민주의식도 많이 성장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민 사이의 대립과 갈등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앞으로 한국 사회가 이러한 갈등을 잘 해소해가지 않으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큰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보이지 않고, 또 이 문제를 풀어나갈 역량을 갖춘 주체도 잘 보이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한국 사회의 이러한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한국 기독교가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이러한 갈등과 분열의 핵심 당사자인 한국 교회가 갈등 해소를 위해 나선다고 하면 모두가 비웃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한국 교회 내부에서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는 일에 어느 정도 성공을 한다면 이는 곧바로 한국 사회 갈등의 해소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또 한국 교회가 지금이라도 이 갈등의 문제 해결을 통해 한국 사회의 통합에 기여해야만 향후 한국 사회 내에서 버림 받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국민 통합과 안전을 위한 교회의 노력

유럽 국가 가운데 핀란드는 국가 독립 이후에 좌파와 우파가 나뉘어져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고 당시 300만 인구 중 4만 명이 사망하는 아픔을 겪은 바 있다. 이 때 핀란드 교회는 우파의 편에 섰지만, 전쟁 이후에는 좌파 희생자들에 대해서도 교회가 장례를 치러주고 그 유가족들을 다 포용했다. 핀란드 국민은 아직도 전쟁 당시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교회는 국민 통합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911 사태가 발생했을 때 부시 대통령은 아프카니스탄을 폭격하고 이슬람에 대한 적대적인 정책을 쏟아냈지만 테러는 늘어나기만 했다. 이 때 미국의 퀘이커교도들은 자신들의 매주 모임 때마다 이슬람 청년들을 초청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1년 여 이상 이렇게 듣는 과정을 통해 이슬람교도들이 미국과 기독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분노의 실체를 이해하면서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실천들을 해 나갔다고 한다.

 

갈등 해소를 위한 출발진심으로 듣기

일반적으로 교회 내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금기시되고 있다. 서로의 차이만 발견하고 다툼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교회 내에서 혹은 기독교인 모임 가운데 자신들과 다른 생각이나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초청해서 그 이야기를 듣는 모임을 많이 가져야 할 것이다. 단 듣되 논박하지 않고, 그 사람이 가진 생각과 감정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질문 정도만 하면서 충분히 들을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듣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이해하기 힘든 생각과 행동의 깊은 곳에 있는 두려움의 실체에 접하면서 상대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은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충분히 들어주는 것으로 인해 감정적인 해소가 많이 될 것이다.

개인적이고 작은 그룹 단위의 만남과 경청, 대화가 거대한 갈등과 대립의 구도를 해소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하심과 복음의 능력을 믿고 지금 나와 내가 속한 그룹이 할 수 있는 실천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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