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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만남

교실을 바꿀 수 있으면 사회도 바꿀 수 있다(2017.5)





교실을 바꿀 수 있으면 


사회도 바꿀 수 있다







차지훈 선생님 (군산미장초등학교)






인터뷰,사진 _ 김만호

먼 곳의 하나님이 아닌 내 옆에 계신 하나님

아들부잣집 막내인 저는 드센 형님들 밑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중학교 시절까지 꿈도 없고 자신감도 부족한 내성적인 아이였죠. 이런 제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지랄 총량의 법칙의 지랄을 거의 다 사용한 것 같아요. 그러느라 공부에 소홀히 해서 수능도 세 번씩이나 봐야했고, 전주교대는 세 번째 대학교가 되었습니다. 대학 1학년 때는 합격의 기쁨과 수험생에서 벗어났다는 기쁨으로 최선을 다해서 세상 속에서 지냈죠.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CCC 기도회에 따라나선 일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다니고는 있었기에 기도회 가면 기도를 열심히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이어지는 기도회에서 단 한마디 기도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25살이었는데 나라와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하는 20, 21살 동생들을 보면서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때부터 뭔가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CCC 금식수련회에 참석하면서, 하나님은 먼 곳에 계시면서 내가 뭘 잘못했는지 감시하고 잘못할 때마다 혼내시는 분이 아니라 늘 내 옆에 계셔서 내게 말씀하시고 언제나 나를 기다리시는 분이란 것을 알게 됐습니다.

 

교사의 모델, 영적아버지 서관석 교수님을 만나다

그렇게 뭔가 바뀌어야한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면서도 여전히 그대로인 삶을 살고 있던 제게 CCC의 홍경이라는 친구가 GVF 재학생 집행부에 들어가서 총무를 맡으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승낙했습니다. 그렇게 GVF 집행부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공동체 안에서 성장하는 기쁨, 동역자를 만나 교제하는 기쁨, 하나님을 더 알아가며 하나님과 더 친밀해지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처음부터 열심히 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곳에서 서관석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지극히 낮은 자의 마음으로 공동체와 학생들을 섬겨주셨습니다. 그분의 헌신과 기도, 동역자들의 격려와 기다림 덕분에 어느덧 매주 화요일에 있는 집행부 모임이 기다려졌고, 모임이 끝날 때마다 늘 행복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고 시절 내내 선생님 눈에 띄지 않는 학생, 불성실하고 공부도 못하는 학생으로 보내서인지 그때까지 저는 존경하는 선생님이나 교사 롤모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GVF에서 서관석 교수님을 만나면서 교수님은 저의 존경하는 선생님이요 교사 롤모델이 되셨어요. 교수님의 모습을 보며 나도 교사가 되어 만나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잘 섬기고 싶다고 생각했죠.

 

기독교사들의 생명줄, 지역모임

교사로 처음 발령 받고 기대와 소망도 컸지만, 아이들 앞에서 하루하루 잘 살아가는 일은 무척 어려웠습니다. 매일 수업을 준비하는 것, 아이들이 다툴 때 어떻게 지도해야하는지, 학부모와의 관계가 어려울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정말 모르는 것 투성이었습니다. 많은 선생님이 ‘3월 한 달 웃지도 말고 엄하게 아이들을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저는 그런 교사로 아이들 앞에 서고 싶지 않았습니다. 웃는 얼굴로 아이들을 대하며 늘 옆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교사, 아이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라보며 사랑으로 기다려주는 교사가 되고 싶었어요.

이런 교사로 설 수 있었던 것은 기독교사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GVF 군산모임 선생님들과 함께 교직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군산모임 선생님들의 생생한 조언과 나눔이 없었다면 기독교사의 삶은 생각도 못했을 것입니다. 주변 분들이 남자 교사는 얼른 승진을 준비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저의 진로와 정체성을 뒤흔들 때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때 제 삶의 중심은 승진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우리 아이들에 있다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승진은 달란트에 맞게 가야하는 길인데, 나의 달란트는 그것이 아니라는 고백입니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리에 있는 것이 제 삶의 비전이 된 것은 바로 앞서 그런 삶을 살아가는 군산모임 선후배, 동료 선생님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사로서 삶의 전환점, 북유럽교육탐방

교사가 되고 협동학습모임, 미술치료모임, 혁신학교준비모임, 행복한수업만들기, 수업코칭참 열심히 따라다녔습니다. 열심히 배우고 익히면 언젠가는 좋은 교사가 되어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식이 늘어났다고 곧 좋은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동료 교사를 비롯한 수많은 관계, 특히 비인격적인 관리자와 겪는 어려움, 교사인지 행정직원인지 알 수 없는 업무의 과중함. 좋은 교사가 되고 싶기는 한데 너무나 다양한 요구를 받으며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꿈과 소망은 점점 빛을 잃어갔습니다.

결혼 후 처음 맞는 겨울방학, 유럽에 가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로 북유럽교육탐방에 참여했습니다. 바로 그 북유럽교육탐방이 교사로서의 제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교육이 과연 실현 가능할까?’라고 생각했던 모습을 이미 현실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경쟁과 긴장 없이 자유롭고 편안한 상태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 수업에 집중하며 적극적으로 발표하는 고등학생, 늘 여유로워 보이는 아이들, 내가 소중하기에 다른 사람도 소중하다 생각하며 실제로 서로를 존중하는 아이들, 죽기 살기로 경쟁하지 않아도 뭔가를 성취해 나가는 사람들, 서로를 믿고 인정하는 신뢰 사회, 경쟁에서 낙오해도 다시 꿈꿀 수 있는 사회, 교육의 다양한 실험을 인정해주고 지원해주는 국가 시스템.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학교, 우리 아이들이 다녔으면 하는 학교와 살아가게 하고 싶은 사회를 먼저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과 사람들을 직접 만났습니다. 한국의 교육과 사회를 향한 우리의 꿈이 결코 헛되지 않고 언젠가 이루어질 실재라는 것을 확인하며 하루하루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여 우리 사회와 우리 교실을 만날 생각을 하니 다시 우울해졌습니다. 승자독식, 성공지상주의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처럼 보였고 혁신학교라는 순수한 교육적 실험과 도전에 색깔을 붙이는(이때 한참 혁신학교를 전교조학교, 빨갱이학교라고 부르던 시기였습니다) 사회가 내가 발을 딛고 살아야할 사회라는 생각에 또다시 나의 꿈은 허물어지고 있었습니다.

덴마크를 떠나기 전 마지막 밤, “당신들이 사회를 바꾸지는 못해도 적어도 당신들 교실은 바꿀 수 있지 않느냐?”는 자유교원대학교 총장님의 이 한마디는 제가 다시 용기를 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렇구나, 변화는 사회 전체 큰 곳에서가 아니라 바로 작은 내 교실부터였구나라는 생각. 저부터 아이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작은 신뢰 사회를 만들어갈 때, 비로소 사회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을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북유럽교육탐방을 통해 교육에 대한 소신을 더욱 명확히 갖게 되었고 교사됨의 기쁨을 다시 회복하게 되었죠.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나를 쓰심

교사로서 제 삶에 있어 GVF를 빼놓고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공동체 GVF를 통해 먹고 마시며 자랐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언젠가 GVF가 저에게 헌신을 요구한다면 언제든 기쁨으로 감당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가 저의 부족함을 너무 잘 알기에 아마도 제게 헌신을 요구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그런 날은 아마도 먼 미래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때는 저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더 성장하고 준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때에 GVF 공동대표를 맡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중에 거기에서순종하겠다는 마음을 바꾸어 지금 여기에서’(Here&Now)라는 순종의 마음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부족한 저를 이미 준비시키고 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2015~16년 연구부장과 참학력 업무를 담당하면서 선생님들을 섬기고 학교의 문화를 바꾸어가는 일을 경험했습니다. 최근 2년 동안 하나님은 제가 GVF를 섬길 수 있도록 준비시키셨고 훈련시키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베드로전서 315절을 좋아합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라는 말씀처럼 제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도록 두렵고 떨림으로 늘 준비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공동체를 지키는 못난 나무로 살아가리라

송인수 선생님의 무모한 교사들에 나온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킨다.”라는 말을 정말 좋아합니다. 제가 능력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서 GVF에 늘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고, GVF에 붙어있었기 때문에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나이가 먹어 머리가 희끗해져도 사랑하는 공동체에 붙어있으면서 선생님들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선생님들을 조금이라도 돕고 위로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누리고 싶습니다.

제 경우 좋은교사운동이 가지고 있는 전문성과 콘텐츠를 학교 현장에 적용하면서 변화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좋은교사운동을 통해 배운 것을 학교에서 실천하고 선생님들과 함께 나눌 때 제가 있는 학교의 문화가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학교 문화와 교사의 마음가짐이 바뀌면 아이들의 삶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우리 선생님들이 그렇게 하실 수 있도록 격려하며 돕고 싶습니다. 능력 많고 멋진 나무는 아니지만, 못난 나무로 오랫동안 공동체와 함께 하면서 GVF라는 산을 지키고 때로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쉴만한 그늘이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리고 온유하며 두려운 마음으로 이 일을 감당하면 좋겠습니다.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을 좋아하는 차지훈 선생님. 그는 한 그루의 못난 나무로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GVF 공동체가 잘 성장해 가도록 겸손하게 잘 섬기고 싶은 소망이 있다. 그리고 지금 만나는 아이들을 매일같이 품어주고 사랑하면서 학급을 변화시킬 수 있기를 기도하는 차지훈 선생님. 오늘도 선생님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