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만남

하나님의 온유함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기독교사(2017.09)

 

하나님의 온유함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기독교사

 

 

이해광

(양양여자고등학교)

 

 

인터뷰·사진 조창완

 

 

강원도 터줏대감

저는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났습니다. 4살 때 춘천으로 이사하여 초, , , 대학까지 춘천에서 생활하였습니다. 군대도 철원에서 근무하였고 교직 생활도 강원도 내에서 근무하였으며 현재 속초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대학원(ACTS)을 다니느라 양평으로 통학한 것을 제외하곤 강원도를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강원도의 영서와 영동 모두를 삶에서 즐긴 셈이죠.

 

교회 공동체 안에 뿌리 내리다

불신앙 가정에서 자라 교회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할머니께서 신앙생활을 하셨지만 아버지가 완강히 반대하셔서 가족 중에 교회 다니는 사람은 없었어요. 3 때 반 친구가 중고등부 주말 수련회를 같이 가자고 하여 따라 간 것이 교회생활의 시작이었습니다. 교회는 저에게 또 다른 세계였어요. 친구들과 모여 함께 찬양하고 말씀 듣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중등부 체육부장도 맡게 되고 고2 때는 고등부 회장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일을 찾아 해외로 나가 계셔서 교회 다니는 것을 크게 반대하는 가족은 없었어요. 아버지는 해외에서 고생하셨지만 교회 다니며 신앙생활하기엔 좋았습니다. 어찌 보면 이 또한 하나님의 섭리인거 같아요.

2 때 교회의 장로님들이 목사님을 몰아내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고등부 회장이었던 저는 친구들과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쫓겨나셨고 중고등부 80여 명은 목사님을 따라 지하 개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지하 예배실에서 무릎 꿇고 기도했던 것이 신앙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어요. 대학에 가서도 대학부 회장, 중고등부 교사, 성가대로 봉사했고 군대에서도 성가대로 봉사하며 새벽기도를 거르지 않았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생까지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하나님께서 제가 교회에서 보낸 시간을 기억하셔서 많은 은혜를 베푸시는 거 같습니다.

 

기독교사의 삶으로 들어가다

1997년 제 삶의 근본을 흔드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제가 가르쳤던 학생이 대학교 입학 후 선교단체에서 간 수련회에서 귀신이 들린 거예요. 기도원에 가서 학생을 데려왔는데 뱃가죽이 등에 붙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귀신들린 모습을 목도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고 한 달 동안 교회에서 학생을 살려달라고 눈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학생은 농약을 먹고 자살을 했어요. 학생의 장례식에서 심령 깊숙이 통곡하며 기독교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절대로 학생들을 먼저 판단하지 않게 되었고 그들의 영혼을 들여다보고 긍휼히 여길 수 있는 아비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어떻게 기독교사로 살아가야 할지 고민할 때 이상기 선생님(예닮글로벌 아카데미 교장)을 만나게 되었고 그와의 만남이 기독교사로서의 제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당시 이상기 선생님은 기독교사들을 모아서 방학 때마다 여름 전도학교, 겨울 전도학교등 교사 신앙 프로그램을 개설하였습니다. 이때 만난 고성, 속초, 양양 지역의 선생님들이 좋은교사 영북모임을 만들어 기독교사 모임을 시작하였고, 강원기독교사모임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매주 월요일마다 모여서 뜨겁게 중보기도하고 각 학교마다 기독학생반을 만들어 매일 QT모임을 하였으며 기독교사 신우회를 만들어 말씀을 나누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여름에는 속초지역 고등학교의 기독동아리 연합 발표회를 열었고 겨울에는 신앙 사경회로 학생모임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속초 기독동아리 연합집회는 1997년부터 속초고, 속초여고, 설악고 기독동아리 학생들의 연합모임에서 준비합니다. 지금은 100명 정도가 모이지만 그 당시엔 550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여 속초지역의 기독교 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어요. 1학기에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모여 준비모임을 갖고 여름방학 때 연습을 한 후, 2학기에 발표회를 진행합니다. 찬양, 워십, 드라마, 콩트, 무언극, 중창 등 다양하게 준비하고 이 과정을 통해서 선생님도 아이들도 하나의 공동체를 경험합니다.

2002년 속초여고로 옮겨 점심시간에 QT모임을 하려고 하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3개월 동안 딱 한 명만 나오는 겁니다. 기독교사로서 뜨겁게 살고 있을 때인데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때 나온 학생의 이름이 홍대실인데 큰 대(), 열매 실() 이었어요. 큰 열매를 맺을 거라는 이름의 뜻이 앞날을 예언하는 듯해서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3개월 지날 무렵 10여 명의 학생들이 QT모임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학년별로 5명씩 조를 나눠 점심시간에 15분씩 QT모임을 진행하였습니다. 매일 QT모임이 진행되는 것이 기적이고 은혜이지요. 올해 양양여고로 왔는데 기도하며 QT모임과 기독동아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속초여고 축제 때 많은 여학생들이 선정적인 춤을 추고 세속적인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때 축복의 샘이란 기독학생반 학생들이 교복을 단정히 입고 하얀 장갑을 끼고 수화찬양을 했는데 그 모습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성령이 학교에 임한 뜨거운 감동의 시간이었어요. 기독학생반은 수능 때 고사지내는 것을 없애달라며 금식기도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해 수능 고사가 없어진 겁니다. 조용히 금식하며 기도하였는데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고3 부장선생님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학교에 건의하고 학교가 이를 받아들여 수능 고사를 없앤 겁니다. 바닷가 지역이라 미신이 많아 더욱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기독학생반 아이들은 뛸 듯이 기뻐하였고 학창시절 이런 승리의 경험들이 바탕이 되어 지금까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공립학교에서 공개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불러가며 직접 기도해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것이죠. 고심 끝에 학생의 생일에 정성껏 카드를 쓰고 선물과 함께 예쁜 봉투에 넣어서 주었습니다. 그때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진심으로 축복기도를 해주면 아이들도 다 함께 아멘하고 외칩니다. 많은 아이들이 졸업한 후에도 이때의 감동을 말해주곤 합니다.

 

목사샘

2007년에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대학원을 야간으로 입학하여 2011년 독립교회 선교단체연합회(KAICAM) 23회로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현재 속초만천교회 청년부 담당 목사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제가 신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중3 때 김천 목사님과의 운명적인 만남입니다. 목사님은 저에게 아버지 같은 분입니다. 그분과의 만남 속에서 주의 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4학년 때 목사님께 신학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목회보다 신학교수의 꿈을 심어주시면서 헬라어, 히브리어 기초 공부를 시켜주셨는데 그것이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군에서도 독학으로 헬라어를 공부하여 전역할 무렵에는 신학대학원에서 배우는 수준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하였던 저의 마음을 지켜보던 아내가 더 늦기 전에 해보라고 격려해 준 것입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대학원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에 근무하던 중이었는데 야간 자율학습에 보충 수업까지 있어 야간 대학원을 다니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속초에 있는 중학교로 내신을 내고 대학원 입학시험을 치렀습니다. 중학교 내신과 입학시험이 모두 충족되어야만 대학원에 갈 수 있는 상황이었던 거죠. 정말 감사하게 속초중으로 발령이 났고 대학원도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ACTS에서의 6학기는 흥분과 감격의 연속이었습니다. 다음 해 이상기 선생님도 대학원에 입학하여 함께 다니며 더욱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세 번째 계기는 기독교사의 삶을 시작할 무렵, 하나님께서 학교 안에 교회를 세우라는 감동을 주셨고 그것이 제 삶의 표어가 된 것입니다. 목사 안수를 받고 난 후에 목사샘이 되어 더욱 책임감 있게 QT모임과 기독학생반, 신우회, 좋은교사모임 활동을 하며 자연스레 제 삶의 신조였던 학교 안에 교회를 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뒤돌아본 삶

햇수로 26, 기독교사로 살아온 시간이 매우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걸어갈 겁니다. 하나님께서 제 성향에 잘 맞는 미션을 주셨고, 학교와 동역자 선생님들을 주셔서 함께 울고 웃으면서 행복하고 기쁘게 잘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변함없는 동역자인 이상기, 정미경, 이미경, 양해영, 김정남, 이미라, 김은주, 이승희, 이슬희. 이 모든 선생님들에게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왜 바울이 로마서 16장에 그렇게 길게 이름을 나열했는지 이해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