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만남

물맷돌 하나로 서는 삶(2017.10)

 

 

 

물맷돌 하나로 서는 삶

 

 

 

 

송원용

(전주홍산초등학교)

 

 

 

인터뷰·사진 김만호

 

 

대학 청년부 형을 따라 교대에 가다

저는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에서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전주에 한 번 나가려면 30분 걸어서 버스를 타고 나가거나, 1시간에 한 대 들어오는 버스를 기다렸다 나가야 하는 불편한 시골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외진 곳에서 초, , 고를 다녔고 친구들 중에 가장 멀리서 학교 다니는 친구로 기억되었습니다.

학창 시절 저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공부한 것도 아니고 특별히 뭐가 되겠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단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훌륭한 사람이 되고 성공할 수 있다는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그냥 공부를 했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엔 방과 후가 되면 들로 산으로 신나게 놀러 다녔습니다. 부모님께서 본인들이 어린 시절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셨기에 저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전혀 하지 않으신 덕분입니다. 전주 시내에 있는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초등학교 때처럼 전혀 공부하지 않고 시험을 봤다가 1학기 중간고사 후 충격적인 통지표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제야 공부를 해야 되는 이유를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 후로는 나름 열심히 공부해서 비교적 상위권을 유지하긴 했지만 그다지 공부를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대학을 놓고 고민할 때 부모님께서는 가정 형편이 어려우니 학비가 들지 않거나 등록금이 싼 대학으로 진학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육군사관학교를 말씀하셨지만, 저는 군인으로 살아가기는 싫어서 국립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문과였던 저는 졸업 후 취직을 보장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전주교대를 다니고 있던 교회 청년부 형을 통해 교대를 알게 되어 전주교대에 원서를 넣게 되었습니다. 형과의 만남은 제가 교사의 길을 가게 된 소중한 만남이었습니다.

 

신앙 생활의 전환점이 된 ESF 생활

과의 만남은 그 형이 활동하던 선교단체 ESF와의 만남으로 이어졌고, 입학하기 전부터 저는 형을 따라 ESF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ESF 활동은 대학 생활 시작과 함께 자연스럽게 시작된 것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신앙은 여전히 어린 아이와 같았습니다. 제가 교회에 다닌 이유는 첫째, 교회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였고 둘째, 죽어서 천국에 가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렇게 대학에 들어온 저는 ESF에서 성경공부를 하게 되면서 비로소 믿음이 성장했습니다. 저는 성경 말씀을 통해 제 삶을 되돌아볼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 신기했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그 기쁨도 잠시, ESF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1학년 1학기가 끝나는 시점에 많은 2~3학년 선배들이 ESF 동아리에서 나갔는데, 그 중에는 저의 일대일 목자(성경을 1:1로 가르쳐 주는 분)도 있었습니다. 저는 졸지에 목자 없는 양이 되었습니다. 저는 ESF에서 일대일 성경공부를 제대로 배울 수 없게 되었고, 공동체 훈련만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ESF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제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을 알게 해 준 곳이기에 떠나지 않고 대학 3학년까지 리더로서 열심히 모임에 참여하였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대학시절에 ESF를 만난 것은 저의 신앙 생활에 있어 가장 큰 전환점이었고 제가 성장할 수 있는 가장 큰 자양분이었습니다.

저는 ESF 활동뿐만 아니라, 과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하였습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ESF 활동을 하면 과 활동에는 소홀하였지만, 저는 열심히 참석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기들로부터 너는 다른 ESF 사람들과는 다르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운동을 좋아해서 과 동기들과 매주 2~3회 축구를 했고 그밖에도 족구, 농구, 배구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며 대학 생활을 보냈습니다. 그 결과 당연히 저의 성적표는 시들시들(C, D, C, D) 또는 비실비실(B, C, B, C) 거렸습니다.

저는 삶에 또 다른 계기가 필요한 것 같아 3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군생활을 마칠 즈음 교사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희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년 휴가 때 곧바로 복학을 해서 2년 만에 군생활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1999년 제대 후 복학하여 1년 동안 공부하며 임용고시를 준비하였고, 졸업 후 곧바로 교사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신병준 선생님과의 만남을 통한 성장

저는 임용을 보고 발령 받기 전, 여자 친구와 헤어져 방황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성서교육회를 알게 되면서 다시 삶을 추스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성서교육회를 먼저 안 것이 아닙니다. ESF 선배님이셨던 신병준 선생님을 알고 교제를 시작하면서 지금 섬기고 있는 성서교육회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신병준 선생님은 참으로 좋은 선배였고 하시는 말씀이 모두 참교사의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선생님은 참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고, 무엇보다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후배를 존중하며 자상하게 챙겨 주시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저의 고민과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선생님은 해결책이나 조언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야기를 경청해 주시고 공감해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통해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은 자신의 힘을 쏟아 부어 그를 대신해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공감하고 격려하여 그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도 선생님께 배운 대로 후배들을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훌륭한 선생님을 자주 만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가시는 모임에 늘 함께 다녔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운전을 못하시는 선생님을 위해서 운전을 해드리는 것이었습니다. 2000년도 초반 좋은교사운동이 단체 연합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는 시절이어서 대표자 모임이 참 많았던 때, 저는 그때마다 선생님의 발이 되었습니다. 오가는 길의 차 안은 좋은 강의실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을 어떻게 인도하고 도와주셨는지, 교사로 살아가는 것이 왜 소명이며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선생님의 삶을 들려주셨습니다. 저는 매월 1회 이상 신병준 선생님과 함께 좋은교사운동 회의나 성서교육회 대표자 회의를 하러 다녔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한 그 시간은 저의 중요한 성장기가 되었습니다.

 

홀로서기 그리고 기다림의 믿음

언제나 저와 함께 하시며 늘 옆에서 위로해 주던 신병준 선생님이 사직을 하시고 대안학교(소명중고등학교)를 하시겠다며 올라가셨습니다. 그러자 함께 하던 성서교육회 동역자들도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저는 혼자 남게 되었고, 어떻게든 지역 모임을 살려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지쳐 가던 저는 이제는 더 이상 모임과 단체를 위해 헌신하지 않고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시작한 것이 야구팀이었습니다. 안 되는 일에 마냥 헌신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즐겁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사회인 야구팀(카이로스) 감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내려놓은 그 때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선생님들이 한 명 두 명 다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왜 성서교육회 모임은 없냐고 말하던 이소현 선생님, 경기도에서 전북으로 내려갈 테니 성서교육회 모임을 같이 하자던 이영훈 선생님. 우리 모임에 선생님들을 보내달라고 하나님께 그렇게 간절히 기도할 때는 아무런 응답이 없으시더니, 이제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두 손을 드니까 선생님들을 보내주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저는 그때야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저는 단지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고 가장 적절한 때에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기다리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믿음과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한 단계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성서교육회 대표를 내려놓고 회계를 맡고 있지만, 이제는 모임을 떠나고 싶어도 기독교사로서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무엇인가를 해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후배들을 볼 때 결코 떠날 수 없습니다. 제가 힘들었던 시기에 그늘이 되어주셨던 신병준 선생님처럼 저도 그들의 그늘이 되고 싶습니다. 그들을 위해 제가 무엇을 해 주는 것이 아닌, 그저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위로해 주고 실수하고 실패해도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 줄 수 있는 선배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제가 큰일을 해서 좋은 교사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가정과 교회와 학교에서 있는 모습 그대로 정직하게, 나답게 사는 것이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물맷돌 하나 들고 서 있는 삶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사무엘상 17:45)”

 

저는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만을 의지하여 골리앗 앞에 당당히 나아간 이 믿음의 선포를 좋아합니다. 저는 다윗이 선포한 믿음의 고백이, 오늘날 커다란 골리앗과 같은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말씀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가진 것, 내세울 것 하나 없습니다. 그렇지만 내게 익숙한 말씀이라는 물맷돌 하나 들고,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있게 하신 이곳에서 담대하게 서 있는 믿음의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