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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오 칼럼

위기의 교회, 그 소망의 근거는?(2017.10)

정병오 칼럼

 

위기의 교회, 그 소망의 근거는?

 

 

 

서신서를 읽다 보면 초대 교회의 상황이 그려진다. 그런데 초대 교회의 상황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듯이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서 우리를 당혹케 한다. 그냥 조금 문제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복음의 뿌리부터 흔들리는 위태한 상황에 놓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복음, 다른 교훈

갈라디아서를 보면 갈라디아 교회에 침투하여 다른 복음을 전하던 이들이 할례나 절기 등 율법의 규례를 지킬 것을 주장했고, 다수의 갈라디아 교인들이 여기에 동조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정하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의 지배를 받는 길이 아니며, 결국 육체의 소욕을 따르는 길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복음을 전하거나 따르면 하늘의 천사라 할지라도 저주를 받을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디모데전서를 보면 에베소 교회의 장로 일부가 다른 교훈을 주장했다. 이들은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구원의 복음을 축소하여 혈통을 강조하거나, 율법의 가르침을 지켜 자신을 거룩하게 지키는 대신 율법 규례의 적용 방법, 범위 등과 관련된 허황된 논증으로 부당한 종교적 권위를 차지하려고 했다. 그리고 창조의 선함을 부정하는 금욕을 통해 자신들의 경건을 위장했다. 이들은 바울에게 치리를 당했지만 여전히 교회 안에 영향을 미쳐 젊은 장로인 디모데가 힘겨운 싸움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린도 교회는 또 어떠했는가? 그들은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로 심각하게 분열되었으며, 근친상간 등 음행의 문제로 몸살을 앓았고, 교인들 간의 송사의 문제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외에도 당시 교회 안에 천사숭배, 영지주의, 율법주의 등이 교인들을 혼란스럽게 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아닌 뛰어난 인간으로만 인정하려는 흐름은 초대 교회를 근본부터 위협했다.

 

성경이 없던 시대의 교회

이러한 상황이 당연했던 것은 초대 교회 당시에는 신약성경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신약성경들은 초대 교회 안과 밖에서 교회를 위협하던 잘못된 가르침과 이단에 대응하기 위해 쓰였다. 신약성경 최초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데살로니가전서가 대략 AD 50년 대 초반, 대부분의 서신서와 복음서들이 AD 60년에서 70년 사이에 쓰였다. 예수님 승천 이후 20년 가까이 어떠한 기록된 성경이 없었다. 그리고 성경이 쓰인 이후라 하더라도 손으로 양피지에 옮겨 써야 했던 당시의 형편을 생각하면 전파 속도는 매우 느렸을 것이다.

물론 사도의 가르침이 있었다. 그 내용이 구전으로 공유가 되었을 것이고 또 체계적 기록은 아니어도 파편적인 자료의 형태로 전수되던 기록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의 가르침은 예루살렘 지역에 한정되어 있었고, 바울의 전도 여행과 함께 진행된 가르침도 지리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은 차세대 지도자들이 계속 세워지긴 했지만 이들에 의한 말씀의 전승 못지않게 이단이나 잘못된 가르침들도 다양한 형태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예수님은 왜 기록된 성경을 남기지 않았을까?

예수님은 이러한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그의 승천 이후 재림 때까지 복음의 담지자이자 전파자로서의 교회의 역할과 책임을 생각할 때, 교회를 세워가기 위한 기초를 너무 허술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신약성경이라도 직접 써놓고 가셨으면 좋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왕이면 신약성경을 현재의 복음서나 서신서와 같이 해석이 필요한 형태가 아니라, 인간적 해석이나 주석이 필요 없는 명료한 명제의 형태로, 주제별로 단순하면서도 정확하게 기술해 주었으면 다른 복음이나 다른 교훈에 의해 교회가 뿌리째 흔들리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위험을 뻔히 예측하면서도 예수님은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으시고 훌쩍 하늘로 올라가 버리셨다. 그리고 바울에 의해 데살로니가전서가 쓰이기 전 20년 동안 기록된 성경 없이 쉽게 왜곡될 수 있는 사도들의 기억 위에 교회를 세워가게 하셨다. 그리고 부실한 기초를 제대로 다지기도 전에 성령은 복음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를 넘어 땅 끝까지 확산시키셨다. 이러한 복음의 과속 전파는 온갖 잘못된 가르침과 이단을 낳았고, 거기에 대응하기 위해 바울은 부지런히 편지를 써야 했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간직하고 있던 사도들이 한 명씩 죽기 시작하며 마지막 남은 사도에 의해 그리고 그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자료를 모은 다음 지도자들에 의해 복음서가 쓰였다.

 

인격적 구원, 인격적 교회

예수님은 왜 이렇게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방법으로 당신의 교회를 세워가게 하셨을까? 그리고 이렇게 연약하고 위태한 상황에 있는 교회에 복음을 전승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핵심 역할을 맡기셨을까?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인간을 인격적인 존재로 지으시고 인간과 인격적으로 교제하기를 원하시고 인격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구원해 가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하나님은 인간을 인격적으로 지으셔서 자신을 배반하고 떠날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두셨지만 이 모든 위기를 딛고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을 선택하고 사랑하고 마음을 다해 교제하는 단계로 나아오기를 원하신 것 같다.

예수님도 완벽한 교회의 틀을 다 만들어 놓고 자기 백성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방식으로 교회를 세워가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도들의 가르침과 우리 곁에서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이라는 두 조건만 갖춘 상태에서 구체적인 틀은 자기 백성들이 만들어가게 하셨다. 당연히 유대인의 강력한 율법주의 전통과 그리스의 논리적이고 현란한 철학적 전통의 도전을 넘어야 했다. 사도의 가르침은 당시 사상이나 종교의 흐름과 결합하여 매력적인 형태로 성도들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이 안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복음을 설명하는 노력을 해야 했고 또 복음의 능력을 삶으로 드러냄으로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다. 이 가운데서 필요한 교훈들을 편지로 썼고, 당시 사람들에게 예수의 삶과 가르침의 의미를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그 기록들이 신약성경이 되었다.

 

전투하는 교회, 나는 어떤 전투를 하고 있는가?

초대 교회부터 지금까지 교회는 늘 전투하는 교회였다. 외부의 적들과도 싸워야 했지만 내부의 불완전함과도 싸워야 했다. 교회는 늘 위태했다. 교회의 지도자나 종교적 권위를 가진 회의체가 늘 교회의 정통성을 지켜온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사도의 가르침과 그것을 기록한 성경이 있었다. 성령은 자기 백성들이 성경에 눈을 뜨게 하시고, 그렇게 눈을 뜬 성도들은 말씀에 기반을 두어서 자신이 속한 세상을 해석하고 거기에 대응하여 교회를 새롭게 만들어갔다. 이들의 순종과 수고가 있었기에 교회는 존재 기반이 흔들리는 위기 가운데서도 늘 새로운 모습으로 시대에 도전하며 복음을 지키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 왔다.

오늘날 한국 교회를 생각하며 절망에 한숨을 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긴 교회의 역사에서 볼 때 교회는 모양만 다를 뿐 늘 위기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문제는 이 가운데서 바른 복음을 붙들며 시대에 도전하고 교회를 새롭게 만들어가기 위해 말씀과 성령을 의지하며 씨름하는 수고가 얼마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잘못된 것을 비판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바른 것을 세워가기 위해 애쓰는 수고가 있는가? 이 당연한 물음 앞에 그동안의 모든 수고를 떨치고 다시 일어나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워나가는 일에 매진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