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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만남

은혜로 서는 삶(2017.12)

 

 

 

 

은혜로 서는 삶

 

 

 

 

이규대

(흥덕고등학교)

 

 

 

 

인터뷰·사진 김만호

 

 

가정의 위기 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저는 전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입학 전 홍성으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초, , 고 시절을 보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아이스크림을 준다기에 누나와 함께 찾아갔던 여름성경학교를 시작으로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불교에 심취해 계셨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자주 절에 갔던 기억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어머니께서 집 주인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셨습니다. 문제는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한국 전쟁 이후 가족들과 헤어지시고 홀로 외롭게 자라시면서 어려서부터 교회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바로 여호와의 증인 교회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위기를 허락하셨고 극적인 일을 통해 아버지를 온전한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일은 어머니가 막내 동생을 출산하던 중 과다 출혈로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는 수혈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여호와의 증인에서 신앙생활해 온 아버지는 수혈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생사가 달린 문제였기에 결국 아버지는 고민 끝에 수혈에 동의하셨고, 여호와의 증인에서도 돌아서는 결단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학창 시절 신앙생활은 고지식한 바리새인과 같은 교만한 모습이었습니다. 신앙대로 바르게 살지 못하는 친구들을 정죄하고 판단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또 한 번의 위기를 허락하셨고 이는 저의 강퍅하고 교만한 신앙관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고3 첫 모의고사 치른 날, 갑작스런 이사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경영하시던 사진관과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식당이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빚을 갚지 못해 부도가 난 것입니다. 가족은 흩어지게 되었고, 저는 혼자 홍성에 남아 하숙 생활을 하며 외로운 고3 시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었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무시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상당히 혼란스럽고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가정의 위기는 제게 큰 은혜였습니다.

 

영어교사를 꿈꾸며 성장하다

영어를 좋아했던 저는 막연하게 외교관이나 영어교사의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영어 문법을 논리적으로 분석해서 쉬운 말로 풀어 친구들이나 교회 후배들에게 가르친 일이 있습니다. 먹지를 이용해 손 글씨로 만든 자료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가르쳐 본 경험은 교사가 되고 싶은 소망을 자라게 했습니다. 그리고 고3 때 급격하게 안 좋아진 가정 형편은 저의 진로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담임선생님의 권유와 추천으로 한국교원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한 저는 CCC에서 제자 훈련을 받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개인적 회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저의 진정한 믿음은 비로소 대학교 때 형성된 것입니다. 대학 때 저는 개인적 회심뿐 아니라, 사회 참여에 대한 고민도 시작하였습니다. 그 당시 학교에 임용 시험 관련 투쟁이 있었는데, 저는 교원대 한울타리 활동(90학번 동기모임)을 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에 어떻게 참여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교원대에서 영어교사로 준비되게 하신 것뿐 아니라, 신앙과 세계관도 함께 자라게 하셨습니다.

 

교사로서의 위기 속에 다가온 버팀목

충남에서 치른 첫 임용 시험에 실패하고 곧바로 군에 입대하였습니다. 제대 후 추천 가산점은 없지만 상대적으로 많은 인원을 선발하는 경기도에 지원하였고 합격하여 안양고등학교에서 교사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학교는 경쟁 선발을 통해 입학한 우수한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여서 제가 굳이 열심히 가르치지 않아도 대부분의 학생이 공부를 잘하였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재미없고 따분한 강의식 수업을 하곤 했습니다. 저는 제가 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수업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들을 잘 지도하고 싶었는데 별 수 없는 제 모습을 보면서 자괴감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교사로서 어떻게 살 것인지 교사의 정체성을 의심하면서 고민에 빠지게 되었고 하루하루가 괴로웠습니다.

그때 김현섭 선생님의 전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김현섭 선생님은 협동학습연구회를 만들어 협동학습 보급에 온 열정을 쏟고 있었습니다. 관악구 보건소 옆 허름한 건물의 한 사무실에서 격주로 모이던 서울 모임에 참여하면서 수업에 대한 고민이 해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길고 길 것만 같았던 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고민의 터널에 빛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2003년 장슬기 선생님을 포함한 몇몇 선생님과 함께 안산 모임을 개척하였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수업에서 협동학습을 실천하였습니다. 안산 모임과 협동학습연구회 활동을 통해 제가 확신한 것은 교사의 성장은 교사 개인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돌봄과 관심, 격려 속에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좋은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협동학습 공동체에서 일원들의 조언과 세심한 돌봄으로 교사로서의 삶을 바르게 세워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국협동학습연구회는 제 교직 생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교사 전문성의 전환점 한국협동학습연구회

교사로서의 삶을 돌아보니 협동학습연구회를 빼놓고는 저를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학습을 위한 협동을 위해 협동학습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협동을 위한 학습과 학교 문화를 고민합니다. 현재 많은 선생님이 수업 혁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 교실, 내 수업이라는 미시적 차원으로 한정하면 50분 동안 행복한 수업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한 학기, 아니 한 주가 행복한 수업을 만들어 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1년 내내 행복한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란 개념을 수업 혁신에 붙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수업이 바뀔 때 학교가 바뀐다.’라는 명제로 고민을 시작하였습니다. 동시에 거시적으로는 학교 문화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저는 협동이라는 가치가 우리 삶의 전반에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과 함께 우리 사회 전반을 개혁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좋은교사운동이 지향하는 복음의 능력으로 회복되는 교육이 절실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교사로서 전문성을 갖추게 해 주고 저의 삶을 지탱해 준 협동학습연구회에도 갈등과 위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단체나 태동기를 거쳐 본격적인 성장기를 지나게 되면 성장통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 연구회가 어떻게 성장하고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내부의 고민에서 시작한 작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갈등을 우리 안에 체화된 공동체성과 민주성으로 극복해 본 경험이 없는 데서 오는 긴장감을 어떻게 잠재우고 해소하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현재 협동학습연구회 대표로서 조직을 안정화시키고 정비하여 연구회에 던져진 시대적 소명에 응답할 수 있는 기본기를 다지는 과정을 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임무는 내년 기독교사대회 이후 조기 선출되는 차기 대표단이 역사적인 부르심에 더 적극적으로 응답해 나갈 수 있도록 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한국협동학습연구회가 더 크게 성장하고 견고하게 서기 위해 소망하는 것은 사단 법인화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연구회 초창기의 열정이 되살아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영리 법인 <교육숲()>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한국협동학습센터도 힘차게 비상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교육숲이라는 비전처럼 우리나라 교육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교육 콘텐츠를 많이 만들어 내기를 기대해 봅니다. 함께 기도해 주시고, 많이 응원해 주세요.

 

교사 정체성의 전환점 흥덕고등학교

한국협동학습연구회가 교사로서의 전문성에 전환점이었다면, 현재 근무하는 흥덕고등학교는 교사로서의 정체성의 전환점을 제공한 학교입니다. 안양고를 거쳐 수원외고에서 개척멤버로 열심히 일한 후 마지막 해에 김성천 선생님의 권유로 흥덕고등학교에 초빙교사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내신서를 제출하고 저는 흥덕고등학교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EBS <학교란 무엇인가>라는 다큐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다큐를 보고 나서 흥덕고에 대한 이해를 통해 제 마음이 편해지기보다는, 괜히 지원한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선발집단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근무해 온 저에게 흥덕고등학교는 커다란 산 같았고 높은 절벽과 같았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려고 하지만 방법을 잘 모르는 학생들, 마음 둘 곳이 없어 방황하며 어른들에게 반항하는 학생들, 야생마처럼 길들여지지 않아 통제 불능인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이곳에서 그들과 함께 아파하며 성장케 하셨습니다. 교사로서 갖추어야 할 인성과 자질을 갖게 하셨고 교육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갖게 하셨습니다. 저는 제 교실을 넘어 우리 학교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되었고, 동시에 아이들의 작은 숨소리도 예사로 듣지 않는 귀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의 많은 눈물과 한숨은 저를 단단케 만들었습니다. 다른 학교에서는 아무런 고민 없이 관성적으로 하던 일도 이곳에서는 한 번 더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프로그램으로 학업중단 위기 학생 지원을 위한 새움세움이나 학습 지원을 위한 자기주도학습 원정대가 있습니다. 아픔과 고민 속에 탄생한 좋은 프로그램들이 앞으로도 지속되어 흥덕고등학교의 좋은 문화로 정착되길 소망해 봅니다.

늘 긴장해야 하는 힘들고 고된 혁신학교의 삶, 주름살이 하나 둘 늘어가는 것 같아 힘들었지만 돌아보니 오히려 교사로서의 성장 나이테가 선명하게 새겨진 것 같아 감사한 마음입니다. 올해 학교 만기여서 내년에는 다른 학교로 옮기게 됩니다. 그러나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저를 다듬고 훈련시키며 성장시키기 위해 최적의 장소로 옮기셨던 것처럼 내년에도 그렇게 인도해 주실 것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인터뷰에서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은혜이다. 모든 상황과 모든 일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는 그는 오늘도 삶을 통해 많은 은혜를 학생들과 선생님들께 흘려 보내고 있을 것을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