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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오 칼럼

나는 왜 이 자리에서 이 일을 하고 있는가?(2018.10)

정병오 칼럼

나는 왜 이 자리에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대학 시절을 돌아보면 복음의 관점에서 세상을 설명해 주고 그 세상 가운데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해 줄 사람이나 자료에 목말라 했던 것 같다. 예수를 믿음으로 내 속에 주어진 구원에 대한 감격과 영생에 대한 소망은 분명한데, 그것으로 그 무자비한 군부독재가 지배하는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통치가 어떻게 임하고 있고 또 임해야 하는지가 설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음이 온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진리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렇다면 이 죄악된 세상 가운데 어떤 역할을 하고 있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 설명할 수 없어서 답답했었다.

 

신칼빈주의자들의 수고에 기대어

이러한 답답함 가운데 한 줄기 빛을 비추어 주었던 것은 아브라함 카이퍼로 대표되는 네델란드 신칼빈주의 신학자들과 그 실천 경험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종교적인 영역뿐 아니라 세상과 삶의 모든 영역의 주인 되신다는 믿음 위에 각 영역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창조 법칙을 발견하여 실제로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을 받은 유럽과 북미의 신칼빈주의자들의 수고와 고민의 결과로 사회의 각 영역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연구물들과 그것을 실제 적용했던 실천 경험들이 축적되기 시작했다. 이 책들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우리 시대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바꿀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던 사람들에게 단비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 시절 이러한 책을 통해 기독교 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고 깊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자료들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기독교 국가 혹은 기독교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유럽과 북미 맥락에서 쓰이고 실천되었던 관점과 자료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곧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 성경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 관점에 기반해서 한국 사회를 분석하고 한국 사회를 성경의 원리 위에 세우는 실천을 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벽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이라는 사회는 급격한 경제 발전을 이룩했지만 압축된 성장으로 인한 중첩된 모순을 경험하고 있고, 여기에 분단으로 인한 갈등과 급격한 양극화로 인한 새로운 모순들을 맞고 있었다. 여기다가 한국은 다종교 사회이기 때문에 종교에 기반한 통일된 정신적 기반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어떻게 보아야 하며, 또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부분은 신칼빈주의 전통이나 서구 기독교의 경험을 참고로 하되, 이들과는 다른 새로운 이론적, 신학적 기반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실천적 경험을 쌓아야 되는 일들이었다.

 

지난 30, 한국 기독교 내의 분투들

감사한 것은 지난 30년여 동안 한국 기독교 내부에서는 이 부분과 관련된 많은 수고가 있었고, 상당한 성과를 이루었다. 우선 학문 분야에 있어서 1980년대 초반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와 기독교학문연구회가 기독교적 학문 연구 분야를 개척하다가 기독교세계관대학원대학교(VIEW)를 태동시켰고,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기독경영연구원이 경영학과 기업 경영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며 성경적 기업 경영의 영역을 꾸준히 감당해 오고 있고,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가 한국 근대사와 한국 교회사를 잇는 학문적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 참여 분야에서는 1980년대 후반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창립되어 기독시민운동을 이끌어 왔고, 성경적토지정의모임도 토지정의연구소와 희년함께 라는 이름으로 토지 문제 관련 독보적인 활동을 해 오고 있다. 직능 분야에서는 좋은교사운동이 1990년대 후반부터 교육 운동을 해 오면서 한국 교육의 모순에 대한 실천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단체로 신뢰를 받고 있다. 이어 기독변호사들의 모임인 기독법률가회가 법률 영역과 사회 정의 문제들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외에 기독교 생태계 내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면서 대중 교육을 함께 하는 단체로 청어람, 새물결플러스 등의 단체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문서 출판 운동이다. IVP를 비롯한 여러 출판사들, 그리고 복음과상황을 비롯한 매체들의 역할도 빠뜨릴 수가 없다.

이러한 단체들의 활동과 수고 덕분에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서구의 이론들을 직수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교회와 사회의 맥락에 맞는 실천적 수고들을 해 왔고 이 가운데 일부는 상당한 정도의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에 비해 이를 신학적,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연구 성과는 별로 없다는 것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또한 이러한 각 분야의 운동들이 다음 세대로 계승 발전되지 못하고 있고 한국 교회의 전반적인 쇠락과 더불어 정체 및 쇠퇴의 위기에 있는 상황도 냉정한 현실이기도 하다.

 

나는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대학 시절 기독교학문연구회의 영향을 받았었고, 교직 초기부터 기독교윤실천운동교사모임에 몸담으면서 이 운동이 여러 다른 기독교사단체들과 연합함으로 태동된 좋은교사운동에 속하여 20년여 이상 활동해 왔다. 무엇보다 좋은교사운동의 중심에서 일을 하면서 한국 사회의 모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의 문제들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어떻게 보아야 하고, 동시에 이 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을 어떻게 일반화된 언어와 운동으로 펼치고 기여할 수 있는지를 경험했던 것은 내 인생 최대의 복이었다. 이 경험이 있었기에 오랜 시간 성과가 잘 보이지 않는 운동을 하면서도 낙망하지 않고 복음이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희망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다양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이라는 것이 나의 좁은 시각으로 다 설명하기는 너무 복잡하고 또 그 변화를 예측하거나 변수를 파악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특히 한국 사회는 워낙 역동적이기에 어떤 한 문제에 대해 기독교적 관점과 대안을 찾았다 싶으면 10가지 새로운 상황이 생겨나는 상황에 부딪히다 보면 역부족을 많이 느낀다. 그리고 한국 교회의 전반적인 쇠퇴의 영향이 기독교 운동 전반을 약화시키고 있는 걸 피부로 느낄 때면, 이러한 기독교 운동들을 활성화시켜서 한국 교회의 쇠퇴 흐름을 막고 한국 교회의 체질을 변화시켜 건강한 성장을 견인하겠다는 결심이 흔들리기도 한다.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이럴 때마다 나는 역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생각한다. 수천 수만 년 인류 역사를 통해 누적된 수많은 문제들과 모순들, 그 가운데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눈물, 탐욕과 갈등, 수많은 사람들의 부르짖는 기도와 절규들. 우리는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의 수많은 고통과 모순들을 보면서 하나님은 뭐하고 계시냐?’고 항변하지만, 하나님은 이 모든 문제 가운데서 얼마나 힘이 드실까? 그가 독재자고, 그의 통치가 도깨비 방망이처럼 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을 인격적으로 다루시고, 궁극적인 선과 의가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도 그 역할을 든든하게 감당하고 계시기에, 그 안에서 부족하지만 나도 존재할 수 있고 내 수고도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하는 일들이 힘겹고 그 열매가 잘 보이지 않으며 그 일을 감당하기에 나의 능력과 지혜가 역부족임을 잘 알지만, 내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그 일을 일부 분담해서 하는 것이니 그 뒤처리는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기쁘게 한 걸음씩 내디딜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