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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

총회 결정, 그 가벼움과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에 대해(2018.11) 정병오 칼럼 총회 결정, 그 가벼움과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에 대해 인생을 돌아보면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었던 많은 분들이 생각이 난다. 그 중에 한 분이 한국 성서유니온선교회(SU)의 초대 총무였던 윤종하 장로님이다. 이분은 한국 교회에 ‘말씀 묵상’을 대중화시켰을 뿐 아니라 탁월한 성경 교사로 많은 사람들에게 성경을 보는 눈을 뜨게 해 준 분이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 1학년 때였다. 그는 내가 속한 선교 단체의 겨울수련회 기간 동안 매일 아침 오셔서 말씀 묵상 훈련을 시켜 주셨다. 이후 그는 내가 속한 선교 단체에도 여러 차례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인도’ 등과 관련한 강의와 성경 권별로 말씀을 풀어 설명하는 강의를 해 주셨다. 그 외에도 나는 그가 인도하는 정기.. 더보기
삶의 전환을 이루어 내는 삶의 교육을 해야 합니다(안해용 경기도교육청 학생위기지원단 단장_2018.11) 삶의 전환을 이루어 내는 삶의 교육을 해야 합니다 안해용(경기도교육청 학생위기지원단 단장) 안해용 단장은 17개 시도교육청 중에 경기도교육청에만 유일하게 있는 학생위기지원단의 단장으로 일하고 있다. 학생위기지원단을 통해 위기 학생의 개념과 범주를 정의해서 이들을 체계적이고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일과 현장의 필요를 채워 주는 다양한 활동으로 위기 학생들을 실제적으로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인터뷰·사진 _ 한병선 김영식, 최경희, 한성준 “내 팔을 보고서 날 위해 약값을 줘 봐.” 랩 경연 TV 프로그램인 에 출연한 한 출연자가 했던 랩의 한 구절이다. 자해를 미화했다고 해서 한동안 인터넷이 떠들썩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 현장에서 자해가 마치 놀이처럼 번지고 있고 학생들이 많이 사용하는 인스타그램에서 ‘자.. 더보기
지금부터, 여기서부터, 나로부터(2018.11) 지금부터, 여기서부터, 나로부터 이정우(대전 봉명중학교) 인터뷰·사진 한성준 크고 작은 직분이 저를 살렸어요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어머니가 많이 아프셨던 것과 교회에 재밌게 다녔던 것이 생각나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사이에 어머니께서 많이 아프셨어요. 심장병으로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번갈아 가며 투병 생활을 2년 정도하셨어요. 심장 안에 피의 역류를 막아 주는 판막이 있는데 인공 판막으로 수술을 하셨어요. 그때는 정말 안 좋은 일이 있을 뻔도 했지만 다행히 어머니는 지금까지 건강하세요. 어릴 때를 생각하면 이 일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나요. 어린 마음에 아픈 엄마의 모습이 각인된 것 같아요. 지금은 건강하시니 정말 감사한 일이죠. 저는 시골 마을에서 자랐어요. 마을 앞에 논이 있고 천.. 더보기
나는 왜 이 자리에서 이 일을 하고 있는가?(2018.10) 정병오 칼럼 나는 왜 이 자리에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대학 시절을 돌아보면 복음의 관점에서 세상을 설명해 주고 그 세상 가운데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해 줄 사람이나 자료에 목말라 했던 것 같다. 예수를 믿음으로 내 속에 주어진 구원에 대한 감격과 영생에 대한 소망은 분명한데, 그것으로 그 무자비한 군부독재가 지배하는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통치가 어떻게 임하고 있고 또 임해야 하는지가 설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음이 온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진리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렇다면 이 죄악된 세상 가운데 어떤 역할을 하고 있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 설명할 수 없어서 답답했었다. 신칼빈주의자들의 수고에 기대어 이러한 답답함 가운데 한 줄기 빛을 비추어 주었던 것은 아브라함 카이퍼로.. 더보기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향성의 길을 걷는 변호사들입니다(전재중 기독법률가회 상임이사_2018.10)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향성의 길을 걷는 변호사들입니다 전재중(기독법률가회 상임이사) 전재중 변호사는 1983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지금까지 30년 차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1999년 1월 기독법률가회(CLF) 창립 후 CLF 운동을 후원하기 위한 기독로펌으로써 법무법인 ‘소명’을 설립해 현재까지 대표 변호사를 맡고 있다. IVF 학사회 사역(1994~2001 학사회장)과 기윤실 사역(전 공동대표, 현 이사)도 함께해 온 바 있다. 인터뷰_ 박승호, 한성준 사진_ 한병선 살면서 내 곁에 잘 아는 변호사 한 명, 의사 한 명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살면서 변호사 만날 일이 없는 인생이 순탄한 인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학교가 우릴 순탄하게 내버려 두질 않으니 요즘.. 더보기
‘화난’ 샘에서 ‘환한’ 샘으로(2018.10) ‘화난’ 샘에서 ‘환한’ 샘으로 이재경(안동 풍천중학교) 인터뷰·사진 김정태 너는 넙덕풀쎄기(여자)야! 위로는 학자 타입의 오빠, 아래로는 밝고 귀여운 여동생을 둔 다섯 가족의 장녀입니다. 보수적인 지역 정서 탓에 오빠, 여동생에 비해 할머니의 사랑을 ‘덜’ 받고 자랐어요. 두 살 차이 나는 오빠는 만 원, 세 살 차이 나는 여동생과 저는 오천 원씩 용돈을 받고 나서 항의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할머니의 답변이 ‘너는 넙덕풀쎄기(여자)이기 때문에’였지요. 한번은 할머니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할머니 부채에 할머니 성함을 조사해서 적어 드렸다가 아끼는 부채에 낙서했다고 크게 혼나고 집에서 쫓겨났어요. 하루 종일 대문을 서성이며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 후천적 요인이 아닌 어떤 것으로 인해 받는 불.. 더보기
평신도의 영광과 사명(2018.9) 정병오 칼럼 평신도의 영광과 사명 평신도가 아닌 세상 사역자 “평신도, 복음, 개혁”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10회 ‘기독법률가대회’ 주제토론 패널 중의 한 명으로 초대를 받아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덕분에 ‘평신도’로 살아온 지난 삶을 돌아보고 정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와 관련해서 내가 했던 고민들을 나누고자 한다. 사실, 목회자와 평신도의 구분은 중세적인 개념이고, 종교개혁으로 인해 이미 극복된 개념이다. 굳이 나누자면 ‘교회 사역자’와 ‘세상 사역자’로 나누는 것이 더 정확한 개념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자신들을 역할의 구분 차원을 넘어 종교적으로 더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여기기도 하고, 성도들 가운데도 그렇게 인식하는 경우도 많이 남아 있다. 반대로 일반 성도들은 이러한 목회자.. 더보기
교사학습공동체, 협력하고 실천하는 교사들의 결속체입니다(서경혜 이화여대 사범대 교육학과 교수_2018.9) 교사학습공동체, 협력하고 실천하는 교사들의 결속체입니다 서경혜(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서경혜 교수는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밀워키캠퍼스(University of Wisconsin –Milwaukee) 교육대학에서 조교수로 근무하다 2003년, 10년여의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이화여자대학교에 와서 올해로 15년째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교육과정 전공이고 교사교육과 질적연구방법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한국에 돌아와서 교사학습공동체에 대한 연구를 오랫동안 해 왔고 2015년에 《교사학습공동체》 저서를 출간한 바 있다. 인터뷰·사진 김영식, 송하영, 한성준 학교, 어디까지 바꿀 수 있을까? 학교에 대한 우리들의 상상력은 어느 만큼일까? 학교가 교육이 아닌 행정을 하는 곳으로 전락한 지 이미.. 더보기
성숙한 기독교사 공동체, 우리 함께 세워 가요(2018.9) 성숙한 기독교사 공동체, 우리 함께 세워 가요 추성현(제천 홍광초등학교) 인터뷰·사진 한성준 물 먹은 별을 보며 저는 송탄에서 태어나 초, 중, 고 시절을 보내며 집, 학교,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부모님은 두 분 모두 학교를 나오지 못하셔서 글을 모르셨고 아버지는 평생 환경미화원으로 일하셨기 때문에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머니께서 믿음의 뿌리가 되셨고 저는 모태신앙으로 자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저에게 교회는 집처럼 친숙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습니다. 그 전에도 교회를 열심히 다녔고 말씀도 잘 들었지만 복음을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친구들로부터 ‘잘난 척’이라는 별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더보기
분별과 지혜(2018.8) 정병오 칼럼 분별과 지혜 내가 뭘 안다고? “병오야, 이번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남북통일 관련해서 선언을 발표했다는 소식 들었지? 그게 기독교계는 물론이고 사회 전반적으로 논란이 많이 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을 복음주의 입장에서 어떻게 봐야 하는지 글을 하나 써 주면 좋겠다. 그 글을 우리 단체가 발행하는 QT 잡지 권두언으로 싣고 싶다.” “제가요? 제가 뭘 안다고?” “야! 그래도 4년 동안 선교단체 훈련 충실히 받고 복음의 기반 위에 충실히 서 있으면서 복음주의 입장에서 사회 참여 문제도 고민해 온 네가 안 쓰면 누가 쓰겠냐?” “예. 그럼 한번 써 보죠.” 그 때가 1988년 3월쯤이었고, 나는 그 해 2월에 대학 졸업을 하고 중학교 초임 교사로 갓 발령을 받아 적응 중이었다. 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