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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만남

지금부터, 여기서부터, 나로부터(2018.11) 지금부터, 여기서부터, 나로부터 이정우(대전 봉명중학교) 인터뷰·사진 한성준 크고 작은 직분이 저를 살렸어요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어머니가 많이 아프셨던 것과 교회에 재밌게 다녔던 것이 생각나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사이에 어머니께서 많이 아프셨어요. 심장병으로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번갈아 가며 투병 생활을 2년 정도하셨어요. 심장 안에 피의 역류를 막아 주는 판막이 있는데 인공 판막으로 수술을 하셨어요. 그때는 정말 안 좋은 일이 있을 뻔도 했지만 다행히 어머니는 지금까지 건강하세요. 어릴 때를 생각하면 이 일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나요. 어린 마음에 아픈 엄마의 모습이 각인된 것 같아요. 지금은 건강하시니 정말 감사한 일이죠. 저는 시골 마을에서 자랐어요. 마을 앞에 논이 있고 천.. 더보기
‘화난’ 샘에서 ‘환한’ 샘으로(2018.10) ‘화난’ 샘에서 ‘환한’ 샘으로 이재경(안동 풍천중학교) 인터뷰·사진 김정태 너는 넙덕풀쎄기(여자)야! 위로는 학자 타입의 오빠, 아래로는 밝고 귀여운 여동생을 둔 다섯 가족의 장녀입니다. 보수적인 지역 정서 탓에 오빠, 여동생에 비해 할머니의 사랑을 ‘덜’ 받고 자랐어요. 두 살 차이 나는 오빠는 만 원, 세 살 차이 나는 여동생과 저는 오천 원씩 용돈을 받고 나서 항의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할머니의 답변이 ‘너는 넙덕풀쎄기(여자)이기 때문에’였지요. 한번은 할머니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할머니 부채에 할머니 성함을 조사해서 적어 드렸다가 아끼는 부채에 낙서했다고 크게 혼나고 집에서 쫓겨났어요. 하루 종일 대문을 서성이며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 후천적 요인이 아닌 어떤 것으로 인해 받는 불.. 더보기
성숙한 기독교사 공동체, 우리 함께 세워 가요(2018.9) 성숙한 기독교사 공동체, 우리 함께 세워 가요 추성현(제천 홍광초등학교) 인터뷰·사진 한성준 물 먹은 별을 보며 저는 송탄에서 태어나 초, 중, 고 시절을 보내며 집, 학교,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부모님은 두 분 모두 학교를 나오지 못하셔서 글을 모르셨고 아버지는 평생 환경미화원으로 일하셨기 때문에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머니께서 믿음의 뿌리가 되셨고 저는 모태신앙으로 자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저에게 교회는 집처럼 친숙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습니다. 그 전에도 교회를 열심히 다녔고 말씀도 잘 들었지만 복음을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친구들로부터 ‘잘난 척’이라는 별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더보기
질그릇에 담긴 사랑을 노래해요(2018.8) 질그릇에 담긴 사랑을 노래해요 김현승(청주 서원중학교) 인터뷰·사진 한성준 나는 사랑 받지 못하는 사람이야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서 교원대에 오기 전까지 그러니까 19살까지 전주에 살았어요. 친가도, 외가도 증조할머니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고, 교회는 저에게 가장 친숙한 공간이고 놀이터였어요. 저를 키워 주신 할머니께서 성경을 필사하시거나 읽으시는 것, 그리고 항상 새벽 기도회에 가시던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라고 생각하며 자랐고, 매일 드리던 가정 예배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해 더 알아 갔어요. 중학생이던 저는 염세주의자였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집에서 50분 공부하고 10분 쉬는 생활을 할 정도로 공부를 강조하는 가정이어서 잘.. 더보기
성서 위에 교육을, 성서 위에 공동체를(2018.7) 성서 위에 교육을, 성서 위에 공동체를 김대현(광주동초등학교) 인터뷰·사진 한성준 엄마의 소원이라면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의 인도로 교회에 처음 나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교회가 집에서 멀리 있었고 친구들도 없어서 다니기가 싫었어요. 그래서 어머니께 교회 나가기 싫다고 했어요. 평소에 많이 이해해 주시는 어머니셨지만 교회 가기 싫다는 아들에게는 야단을 치셨고 저는 어머니께 대들고 반항했어요. 하지만 며칠 후 어머니께 대든 것이 맘에 걸려서 결국 어머님께 용서를 빌었어요. 하지만 친구가 없어서 어머니께서 다니시는 교회로 나가기에는 힘들다고 말씀을 드렸고, 친구를 찾아 교회에 다니겠다고 했어요.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느라 교회를 다니게 돼서 뜻하지 않게 우리 반에 누가 교회를 다니는지 물어보고 다녔어요. 그 .. 더보기
삶으로 가르치는 가르침, 삶으로 가르치는 가르침, (2018.6) 삶으로 가르치는 가르침, 삶으로 살아내는 영성 김소은(덕송초등학교병설유치원) 인터뷰·사진 한성준 수줍음 많던 어린 시절 MBTI의 ENFP 스파크형, 에니어그램의 낙천가형, 예술가형, B형, 자매 중 첫째. 저를 표현하는 말들이에요. 어렸을 때 엄마는 저에게 별나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욕심도 많아서 좋아하는 일에 흠뻑 빠지면 잠도 안 자고 이불 속에서 스탠드를 켜고서라도 하고 싶은 것들을 다해야 잠드는, 잠드는 순간에도 내일 아침에 또 해야지 설레며 잠드는 열정 있고, 개구지고, 개성 있고, 그러면서도 튀는 것은 원치 않는 수줍음이 많았던 아이였어요. 그리고 개성 만점인 저를 너무나 사랑해 주시고 품어 주시는 대가족 속에서 사랑을 많이 받으며 정서적인 풍요로움 속에 따뜻하게 .. 더보기
밥을 함께함은 생명을 함께함입니다 (2018.5) 밥을 함께함은 생명을 함께함입니다 임성현(대의초등학교) 인터뷰·사진 김정태 겁 많고 소심한 아이의 커밍아웃 저는 진주에서 나고 자란 진주 토박이입니다. 성실하지만 엄하신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 활동적인 남동생 이렇게 네 식구가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특히, 어머님 쪽으로 형제자매가 많으셨어요. 2남 7녀 중 제 어머니는 둘째이십니다. 많은 이모들이 우리 집에서 자주 모이셨어요. 그런데 이모들 중에 두 분이 교회에 다니셨고 나중에 제가 집안의 반대 속에서 교회에 출석할 때 그 분들이 저의 신앙생활을 지지해 주셨습니다. 어릴 적부터 저랑 친하게 지내던 앞집 형이 중3 때 예수님을 전하며 제가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때 마음이 움직여 그 형과 같이 교회를 다녔습니다. 물론, 아버지 .. 더보기
포도나무의 줄기 같은 교사가 되고 싶어요 (2018.4) 포도나무의 줄기 같은 교사가 되고 싶어요 윤영진(라온초등학교) 인터뷰·사진 한성준 예수님의 족보 외우기가 가장 좋았어요 어린 시절 하늘빛이 붉은 색인 줄 알았어요. 항상 오후가 되면 학교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동네 골목골목 구석구석을 싸돌아다니는 게 하루 일과였기 때문이죠. 유독 주일이면 주일학교 친구 중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아침에 교회에 나가 저녁에 해가 진 후 집에 들어오는 게 일과였을 정도였으니까요. 하도 늦게까지 싸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어느 날 어머니께서 저에게 집을 나가라고 하셨어요. 너무 화가 나서 하시는 어머님의 말씀이 진심인 줄 알았던 저는 그날 하루 집을 나가기도 했었지요. 뭐 결국 그 날 밤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만요. 외갓집이 목사님 집안인지라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신앙생활을 .. 더보기
한 아이의 마음친구가 되고 싶어요(2018.3) 한 아이의 마음친구가 되고 싶어요 최경희(광명서면초등학교) 인터뷰·사진 조창완 하나님과의 첫사랑 저는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늘 친구들과 바닷가에 나가 놀던 것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모태신앙이라 어려서부터 교회를 동네 놀이터처럼 다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캔디 만화 시간과 예배 시간이 겹쳐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고 혼났던 기억도 나네요. 교회는 저의 피난처이기도 했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할머니와 어머니의 갈등이 심했어요. 건축업을 하셨던 아버지의 사업도 잘 안되면서 어머니는 많이 아파 늘 누워 계셨습니다. 그런 집안 분위기가 너무 싫어서 교회를 더 찾게 되었죠. 교회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저를 항상 따뜻하게 맞아 주었고 함께 찬양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정말 좋았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깊지 .. 더보기
좁은 길을 찾아 걷는 교사 (2018.2) 좁은 길을 찾아 걷는 교사 김홍임(대화고등학교) 인터뷰·사진 김만호 불교재단 학교에서 만난 예수님 저는 충청북도 보은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3살 때 우리 가족은 제주도로 이사를 갔고 저는 제주도에서 초, 중, 고 시절을 보냈습니다. 가난한 형편에 단칸방에서 여러 식구가 부대끼는 것이 싫었던 저는 1년 365일 중 하루 이틀 빼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지냈습니다. 고등학교 교악대(밴드부)였던 저에게는 색소폰을 불 수 있는 음악실과 늦게까지 공부할 수 있는 도서관이 피신처였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별다른 꿈이 없었습니다. 제가 교사가 된 것은 저의 성적에 맞춰 원서를 써 주신 담임선생님 덕분입니다. 저는 교사로서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교사가 된 것이 아니라, 단지 수학이 좋아서 사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