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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조금 더 나는 세상으로 가는 방정식

이병주의 문화 산책

조금 더 나는 세상으로 가는 방정식

영화〈In A Better World〉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원고를 써야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참회의 시간이다. 정신없이 돌리던 삶의 쳇바퀴에서 잠시 빠져나와 내가 정신없이 굴리고 있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래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성찰한다는 것이다. 쉽지 않은 시간이다. 더군다나 일상의 작은 묵상과 기도의 시간들이 무너져 있는 상태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마치 밀린 일기를 한꺼번에 써야만 하는 숙제를 떠안은 학생의 마음처럼 무겁기만 하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곤혹스러운 시간들이 무너져 가던 것들을 세우고, 망가져 가던 사람을 다시 바로잡아 주기도 한다. 하여 언제나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다시 변증법적으로 내게 주어진 축복의 시간이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영화 또한 아주 우연히 만나게 된 축복과도 같은 영화다.

 

쿨한 보복

<In A Better World> 이 영화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내 맘대로 요약하자면 그 폭력에 맞서는 두 인물의 상반된 대응에 대한 이야기다. 안톤(Anton)은 고국인 덴마크와 아프리카의 난민 캠프를 오가며 의료 봉사를 하는 의사다. 그의 환자들 중 다수는 아프리카의 무장 세력 혹은 반군들이 저지르는 악랄하고 참혹한 폭력의 희생자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치료하는 그의 환자들만이 폭력의 희생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아들인 엘리아스 또한 학교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하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나라와 민족과 환경이 달라도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이나 집단 괴롭힘의 현장은 어쩜 그렇게도 생생하게 닮아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폭력에 대처하는 학교의 모습 또한 참으로 무기력하거나 심지어는 비겁하기까지 하다. (학교라는 공간이 영화 속에서 매우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것을 보면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그나마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평가받는 북유럽의 학교들 또한 정작 그 사회로부터는 냉담한 시선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나만의 의심을 품어 본다.)

 

이런 엘리아스를 왕따와 학교 폭력의 수렁으로부터 구해 주는 한 명의 영웅이 등장하는데 그는 런던에서 새로 전학을 온 크리스티앙이다. 크리스티앙은 폭력에 대해 같은 폭력으로 맞서지 않는 안톤과는 달리 가해자에 대한 더 크고 강력한 보복으로 자신을 보호해 왔다. 그리고 그의 보복에 대한 이 절대적인 믿음은 그가 전학을 가는 모든 학교에서 언제나 변함없는 정답이었다. 고백하건대 크리스티앙이 엘리아스를 괴롭히던 못된 녀석을 확실하게 손봐 줄(?) 때 나 또한 얼마나 속이 후련하고 통쾌했던가! 그래 정의란 이런 것이지!

이 영화의 1라운드는 크리스티앙의 확실한 승리다. 세상을 향해 내뿜는 분노와 깊은 우수에 젖은 크리스티앙의 눈빛은 쉽게 잊히지 않으며 사람을 끌어들이는 카리스마로 넘쳐 난다. 크리스티앙의 방식이야말로 얼마나 쿨하고 매력적인가 !

 

바보같은 비폭력

이에 반해 정작 학교 폭력의 가련한 희생자 엘리아스의 아버지인 안톤의 방식은 정말 답답하고 이해되지 않으며 바보스럽다. 그가 아프리카의 난민 캠프에서 구호 의사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폭력이 이 세상에 초래하는 그 끔찍한 고통의 문제 앞에서 결코 응징과 맞대응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그것을 실천해 내는 진정 위대한 영웅이라는 것쯤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도저히 그럴 만한 가치가 없어 보이는 얼간이 같은 인간에게 두 번씩이나 따귀를 (그것도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맞아 가면서까지 대응하지 않는 장면은 우리의 몸 속에 흐르는 아드레날린을 요동치게 하며 머리로는 수긍할지라도 도저히 가슴으로는 수긍할 수 없는 지점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우리의 작은 영웅이며 아바타와도 같은 크리스티앙은 당연히 안톤의 방식에 만족할 수 없으며 그 얼간이에 대한 보복을 계획하고 여기에 엘리아스를 끌어들이면서 영화는 예측하기 힘든 파국을 향해 내달린다.

 

많은 영화들이 폭력과 전쟁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 애를 썼지만 이 영화가 단연 돋보이는 데에는 바로 아프리카와 덴마크라는 두 공간을 넘나드는 안톤이라는 캐릭터의 창출이 기여한 바가 크다. 폭력은 저 머나먼 혼란의 땅 아프리카에만 구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현 지구상에서 가장 선진화되고 인권이 잘 보장된 북유럽이라는 나라에서도 가정에서 또 학교에서 삶의 작은 폭력들은 넘실댄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또 국가 사이에서 넘실대는 폭력의 문제 앞에서 과연 나는 크리스티앙과 안톤의 방식 중 누구를 더 닮아 있는가 !

 

이 영화는 ‘폭력은 무능한 자(얼간이)들의 최후의 도피처’라는 말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도저히 버릴 수 없는 나의 자존심, 그리고 용서라는 뇌관을 건드림으로써 폭력의 메커니즘을 밝혀낸 수작이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단순한 우리 내면의 방정식을 한번 같이 풀어 보자고 먼 북유럽으로부터 우리에게 날아온 고마운 영화임에 틀림없다.

 

근래에 각 학교들마다 창체 및 자율적인 교육 과정이 늘어나면서 학교가 자체적으로 평화, 비폭력, 인권 감수성 등의 주제에 대해 많은 시간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런 특별한 교육 과정의 날이나 혹은 그냥 자투리 시간들을 모아 아이들과 함께 이 영화를 감상하고 활용해 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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