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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 특집 글

특집 2 기고 1 루터를 통해 공교육의 철학을 묻는다


특집 2 기고 1

 

루터를 통해 공교육의 철학을 묻는다

 

 

정병오(좋은교사운동 대표)

잘 알려진 대로 종교 개혁자 루터의 핵심 사상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과 ‘만인제사장설’이다. 물론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흔히 축자영감설로 표현되는 문자주의를 주장하자거나 성경 해석과 관련된 교회의 전통을 무시하자는 의미는 전혀 아니었다. 루터의 ‘오직 성경’은 성경 해석에 대한 교황의 독점권을 해체시키고, 모든 성도에게 성경 해석권을 부여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개신교는 성경 해석의 차이로 인한 분열의 씨앗을 안게 되었지만, 동시에 이로 인해 개신교는 개신교의 생명력의 원천을 얻게 되었다.

‘만인제사장설’은 성경 해석권을 일반 성도에게 주는 것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사상이었다. 농민이든, 대장장이든, 가정주부든 모든 일이 성직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는 사상은 당시 종교 영역뿐 아니라 일반 사회 영역에서도 혁명적인 사상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루터 이후로 성과 속의 구분이 사라졌으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따라 참 자유인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러한 루터의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따라야 할 것이 ‘교육’이었다. 모든 성도가 성경을 해석할 수 있으려면 우선 성경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성경을 보는 기본적인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성경뿐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전 영역에 대해 기본적인 배움의 기회를 가져야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은사와 소명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훈련된 성도들이 삶의 각 영역에서 하나님을 섬기듯 자기 역할을 해 주어야 교회와 사회가 발전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진전될 수 있다.

그런데 루터 당시의 교육은 일부 귀족 교육과 성직자 양성을 위한 수도원 교육만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귀족 교육 시스템은 일반 평민들이 접근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있고, 성직자 양성을 위한 수도원 교육은 삶과 유리된 교육을 한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루터는 모든 아동들을 위한 보편적인 교육을 위해 공립 학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루터는 부모가 교육의 일차적인 주체며, 가정이 교육의 일차적 기관이라는 생각을 분명히 갖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대부분의 가정에서 이것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주목했다. 많은 부모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자녀를 돌볼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고, 또 자질적인 면에서 자녀를 제대로 양육하지 못하는 부모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는 루터가 단지 이론과 원리의 차원에 머문 사람이 아니라 실제 백성들과 교인들의 삶의 현실을 잘 이해하고 있는 목회자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래서 루터가 제시한 것이 공립 학교다. 루터는 1524년 ‘기독교 학교를 세우고 운영할 것을 독일의 모든 시 의원들에게 권고함’이라는 글을 통해 부모가 자녀를 가르칠 수 없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시장과 시 의원들에게 젊은이들을 성경으로 적극적으로 가르치기를 호소하였다. 그리고 부모가 자녀를 가르칠 수 있는 가정의 경우 가정에서 아이를 교육하는 것도 유익하지만, 아이가 전문적인 선생님에게서 배울 경우 부모의 경험을 넘어서는 것을 배우기 때문에 사회에서 맡겨 준 일을 더 잘 감당할 수 있다는 것도 지적하였다. 국가 차원에서는 모든 아이들을 위한 교육은 좋은 시민들을 양육하는 일이며, 훌륭한 지도자를 기르는 길이기 때문에 학교를 세우는 일은 성벽을 세우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일임을 역설했다.

 

이러한 루터의 영향으로 독일에서 모든 아동을 국가가 책임을 지고 교육하는 공교육이 시작되었고, 이후 루터파 교회가 지배한 북유럽 국가들에서 공교육은 꽃을 피우게 된다. 물론 이때 루터가 이야기했던 공교육은 기독교 교육과 공교육이 결합된 형태였다. 즉, 국가에서 모든 아동을 대상으로 모든 비용을 부담한다는 면에서는 공교육이지만, 교육 내용 면에서는 성경과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 세계를 가르친다는 면에서 기독교 교육인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당시 독일을 포함한 유럽 사회가 기독교 국가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 유럽 사회가 세속화되고, 또 공교육이 근대 국가의 국민 교육 개념과 맞물리면서 많은 변화를 겪는다. 우선 성경 과목은 종교 과목으로 바뀌면서 루터파의 기본 교리를 주로 가르치지만 신앙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일반 교과들도 일반 학문의 흐름의 영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아동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고,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와 재능을 개발시켜 주는 것을 교육의 중심에 놓은 부분 등 교육의 구석구석에 기독교적 인간관과 교육관이 깊게 배여 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북유럽 교육을 세계 제일의 교육으로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 교회 내 기독교 학교와 기독교 홈스쿨 열풍이 불고 있다. 공교육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던 상황에서 벗어나 부모가 교육의 주체가 되어 자녀 교육에 대한 기독교적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는 면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획일화된 한국 교육에 다양성을 불어넣는 면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기독교 학교를 세우거나 기독교 홈스쿨을 하는 것을 기독교 교육의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루터의 공교육 사상과 북유럽 교육에서 볼 수 있듯, 공교육을 기독교 교육 위에 세워 가는 방법도 기독교 교육의 매우 중요한 한 축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각각의 교육이 역사적 맥락 가운데서 나왔고, 또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신학적인 맥락과 교회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기독교 학교 운동은 칼빈의 신학을 이어받은 화란 개혁주의 전통과 미국의 복음주의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 홈스쿨 운동은 미국 복음주의 전통과 재침례파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들 운동들은 주로 이들이 그 사회의 소수파인 상황에서 분리 모델을 채택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루터파는 국교 모델을 추구했고, 모든 국민(교인)의 삶을 위해 교회와 교회가 협력하는 모델을 개발시켜 왔다.

 

물론 루터의 공교육 사상을 한국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 다종교 사회인데다가 한국의 공교육은 극단적인 입시 체제와 관료 체제에 짓눌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시 체제와 관료 체제는 단지 공교육의 문제만이 아닌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 문제들로 인해 공교육 가운데 기독교 교육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노력을 놓쳐서는 안 된다.

기독교 학교 설립과 기독교 홈스쿨 운동은 기독교 교육의 중요한 한 자산이고 전통이지만, 공교육을 기독교 교육 위에 세워 가는 것도 기독교 교육의 또 하나의 중요한 전통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공교육의 위기가 극에 치닫고 있는 이 시대 가운데 기독교 교육이 갖고 있는 생명력을 어떻게 공교육을 살리는 에너지로 전환시켜 실질적인 기여를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이 시대 교육에 종사하는 기독교인들이 붙들어야 하는 중요한 사명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다시 루터의 공교육 사상을 더 깊이 연구하고 우리 시대 가운데 적용할 수 있는 방안들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