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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 특집 글

특집 1 문제 제기 이 시대 교육 철학을 묻는 이유

특집 1 문제 제기

 

이 시대 교육 철학을 묻는 이유

  

 

임종화(영신간호비즈니스고등학교)

장면 1

2011년 1월 좋은교사운동 북유럽 탐방단은 ‘북유럽 교육을 보며 한국 교육의 미래를 그린다’는 주제로 핀란드와 덴마크 학교를 탐방하였다. 탐방 기간 동안 학교를 둘러보고 수업을 참관하며 그 나라의 교육 제도와 환경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마냥 부러웠다. 탐방단이 한국에 돌아와서 탐방을 정리하면서 공통적으로 가지게 된 의문, ‘그 나라와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단지 교육 환경의 차이인가? 따지고 보면 IT 활용 기술, 수업 방법론은 우리나라가 더 훌륭하던데.’ 고민 끝에 얻은 결론. 그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교육 철학과 가치가 차이를 만든다. 핀란드의 ‘평등’, 덴마크의 ‘자유’처럼 그 나라들은 구성원들이 오랜 논의를 거쳐 만든 소중한 가치가 있었고, 그것이 교육 과정과 제도 전반에 녹아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교육 철학은 무엇인가?

 

장면 2

새 학년을 앞둔 교무실. “행정 잡무와 학급당 학생 수가 너무 많아.” “학업 성취도 평가와 수능 시험 때문에 자유롭게 가르칠 수가 없어.” “교육 과정이 너무 경직되어 있어서 교과서만 가르치는 것이 문제더니 이제는 EBS가 교과서가 되었어.” “체벌 금지니 뭐니 해서 아이들 생활 지도가 너무 어렵고, 아이들이 학원 선행 학습 때문에 수업도 잘 안 들어. 예전보다 예의도 없고, 의욕도 없고 창의성도 떨어지는 것 같아.” 새 학년을 앞두고 이런 푸념과 걱정 섞인 대화들이 오고 가고 있지는 않는지….

 

교육 철학을 묻는 시대가 오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상상을 해 보자. 3월부터 당장 모든 잡무가 사라지고, 학급당 학생 수가 줄고, 교육 과정 편성의 자율권이 100% 보장되어 교과서가 사라지고, 국가 단위 평가가 폐지되어 교사가 스스로 교육 과정을 재구성하고 수업을 디자인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이러한 꿈같은 상황이 왔을 때, 교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마냥 행복할까? 이러한 시대가 오면 우리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교육 과정을 재구성하고 학습 자료를 선정하여 학생들과 만날 것인가? 교사인 우리는 이 시대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러한 시대 변화와 고민 속에서 ‘우리의 교육 철학을 묻는다’라는 특집을 기획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 교육 철학이 있는가?’라는 시험 문제가 나오면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고 쉽게 답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교육 철학이 우리 교육 현장의 교육 과정에 녹아들어 있는가. 국가에서 정해 준 교육 과정과 교과서, 학년별로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는 성취도 평가와 수능이라는 평가 체제가 우리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하였지만, 한편으로는 교육 철학에 대한 특별한 고민 없이도 수업을 할 수 있는 핑계를 제공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대가 조금씩 변하고 있고 교사인 우리에게 ‘당신의 교육 철학은 무엇인가’를 묻는 시대가 오고 있다. 학생들에게 자기 주도적이고 창의적인 사고가 강조되면서 교사에게도 교과서 선택, 교육 과정 운영과 수업, 평가에서 교사의 자율성이 강조되고 있고, 이를 위한 잡무 경감 방안도 함께 마련되고 있다. 이러한 교사 자율성의 확대는 교사의 책무성과 전문성 요구와 함께 교사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교사가 학생보다 많은 것을 알고 지적인 우위에 서서 계몽적인 가르침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있다. 아마도 그런 역할에서 휴먼로이드 로봇은 인간의 능력을 곧 뛰어넘을지 모른다. 이런 시대에 인간 교사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유일한 인간적인 활동은 배우는 삶이 가치 있고 추구할 만한 것이며, 그러므로 그런 삶을 살도록 학생들의 의지를 각성시키는 것이 아닐까.”(이혁규, ‘교사, 가르치는 존재에 대한 성찰’ 《오늘의 교육》창간 준비호, 160쪽)

 

오늘 나의 수업을 결정하는 나의 교육 철학은 무엇일까?

이에 우리는 대학 교직 필수로 배우며 의미도 잘 모른 채 달달 외웠던 교육 사상가들을 현재에 불러내어 당시 교육에 관한 그들의 고민과 목소리, 삶을 통해 우리 자신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 보기로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들의 이야기를 지나간 퇴물로 취급할지 모르지만, ‘오래된 미래’라는 말이 있듯이 이들의 사상과 삶에서 우리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또는 회복해야 할) 온전한 교사상이 있을지 모른다는 절박함과 기대감으로 공부를 시작하였다.

교사가 되어 책 읽는 습관, 배움의 즐거움을 많이 잊어버려 힘들었지만 2011년 한 해 동안 책을 통해 교육 사상가들의 글을 읽고 토론하며 끊임없이 우리의 교육 철학이 무엇인지 묻고 답하며, 가슴 벅찬 시간들이 지나갔다. 이 시간들을 통해 루터, 루소, 코메니우스, 페스탈로치, 슈타이너, 프레네, 코르착, 부버, 톨스토이, 그룬트비, 콜 등의 교육 사상가들과 대화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내 자신의 교육 철학을 성찰해 보았다.

이번 특집은 우리의 교육 철학에 대한 해답도 아니고 교육 사상가들의 객관적인 사상을 분석, 정리하여 암기하자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도 아님을 먼저 밝힌다. 다음에 나오는 글들과 대담은 교육 사상가와 대화하며 각자 붙들고 있는 교육 현장의 아픔 가운데서 나온 고민과 반응이다. 공부하며 깨달은 것 중 하나가 교육 철학에 대한 탁월한 정답을 외우는 것보다, 각자 자신의 고민과 삶 속에서 적용하고 함께 나눈 것이 실제 우리의 삶과 교실, 수업을 바꾸었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기독교적인 수업과 생활 교육을 고민하는 선생님들에게 이 시대 상황 가운데 기독교적인 교육 철학은 무엇이며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함께 고민할 것을 제안한다. 교육 철학은 더 이상 현실과 동떨어진 형이상학적인 지적 유희가 아니다. 학생을 어떻게 볼 것인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는 교사인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주제다. 학교와 모임에서 교육 철학에 대한 재미있고 다양한 공부와 함께 결과물이 공유되어 논의가 풍성해지길 소망한다.

한 해를 준비하는 2월, 올 한 해가 선생님들 모두 배움의 즐거움과 함께 자신만의 교육 철학, 우리 학교의 교육 철학, 우리 모임의 교육 철학, 나아가 우리 사회가 합의해야 할 교육 철학에 대해 묻고 답하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