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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만남

질그릇에 담긴 사랑을 노래해요(2018.8)

 

 

 

질그릇에 담긴 사랑을 노래해요

 

김현승(청주 서원중학교)

 

 

인터뷰·사진 한성준

 

 

나는 사랑 받지 못하는 사람이야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서 교원대에 오기 전까지 그러니까 19살까지 전주에 살았어요. 친가도, 외가도 증조할머니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고, 교회는 저에게 가장 친숙한 공간이고 놀이터였어요. 저를 키워 주신 할머니께서 성경을 필사하시거나 읽으시는 것, 그리고 항상 새벽 기도회에 가시던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라고 생각하며 자랐고, 매일 드리던 가정 예배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해 더 알아 갔어요.

중학생이던 저는 염세주의자였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집에서 50분 공부하고 10분 쉬는 생활을 할 정도로 공부를 강조하는 가정이어서 잘 놀지 못하고 눌려 있었어요. 기본적으로 자존감이 매우 낮았던 터라 세상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사랑 받지 못한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를 몰라 가끔 세상과 이별을 하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유령이 되어 내 장례식장에 찾아갔을 때 나를 위해 아무도 울고 있지 않는 장면을 목격하게 될까 봐 실행에 옮기지 못할 정도였어요.

그래도 교회에 가는 걸 매우 좋아했어요. 중학생이 되면서 노래를 좀 하는 아이로 인정받았고, 교회에 가면 평소에 잘 못 받는 칭찬을 많이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너무 즐거워서 더 열심히 매달렸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시절도 공부를 빼고는 엄청 즐겁게 보냈어요. 자존감이 낮아서인지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었는데, 여고에 진학하니까 그런 게 많이 없어졌어요. 그리고 이상하게도 주변 친구들이 저를 귀여워해 주고 사랑해 줘서, 성격도 굉장히 밝아지고 애교도 많아지고 온 학교를 누비며 놀았어요. 제가 다닌 학교 합창부가 조금 유명했는데, 합창부원으로 활동하면서 자부심도 넘쳤고요. 교회에서는 찬양 인도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제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알게 되었기에, 더 열심히 찬양을 했어요.

그리고 제 인생에 아주 중요한 선생님을 만납니다. 3이 되고 당시 30대 초반의 젊은 선생님을 담임선생님으로 만나게 되었어요. 그 선생님은 열정과 사랑이 넘치는 분이셨어요. 매일 야자 때마다 함께하며 저희를 격려하려고 애쓰셨어요. 아이들을 편애하거나 차별하지 않으셨고, 36명의 아이들을 하나하나 다 사랑하려고 정말 노력하셨고요. 그 선생님을 보면서 나도 저런 선생님이 되고 싶다. 그래서 저렇게 아이들을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교사로서의 꿈을 확실히 갖게 되었답니다.

 

교원대 땅에 찬양을!

대학을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면서 집을 떠난 저는 난생 처음 자유를 맛보게 되었어요. 새터 때 처음 맛 본 술은 그 자유에 박차를 가했고 그 때부터 약 한 달 간, 선배들과 동기들에게 인정받는 주당으로 살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저녁을 먹은 뒤 학교 바깥쪽으로 산책을 하던 제 귀에 찬양 소리가 아주 크게 들려왔어요. 그 소리의 주인공들을 찾기 위해 저는 빠르게 학교 안으로 돌아왔고, 기숙사 식당 옆에서 찬양을 하고 있는 한 무리를 발견했어요. 교원대 자생 동아리 중 하나인 기독중창동아리 드림이 동아리 홍보를 위해 거리공연을 하는 중이었어요. 저는 그 공연을 보고 저 동아리에 꼭 들어가서 함께 찬양을 해야겠다.’는 소망을 가졌어요. ‘드림이 금주 동아리라는 사실에 잠깐 고민을 하였지만, 그래도 너무너무 들어가고 싶어서 오디션을 보았고, 저는 드리미가 되었어요. 정말 신기한 건, 그렇게나 술을 좋아하던 제가 동아리의 일원이 되자마자 술을 너무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거예요. 물론 먹던 가락이 있고 과 선배들이나 동기들의 눈초리 때문에 마셔야 할 때도 가끔 있었지만, 그렇게 한순간에 술이 싫어졌다는 것이 제게는 하나님의 은혜였어요. 저는 그렇게 9명의 친구들과 함께, 교원대 땅에 찬양을 선포하는 자로서의 생활을 시작했어요.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대학 생활 동안 즐거운 일들이 많았지만, 여전히 저는 뿌리 깊은 열등감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자존감이 너무 낮아서 사람들과 잘 지내다가도 수시로 토라졌고, 갑자기 화를 내거나 우울해지는 등 불안정한 모습들이 많았어요. 어떤 분은 저에게 외계인같다고 하실 정도였죠. 사람들의 작은 행동에도 크게 반응하고, 그런 모습을 보이는 나 스스로를 비난하고, 사랑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감정의 무저갱으로 파고 들어가는 그런 모습을 반복하곤 했어요. 이 당시 제 옆에 있던 사람들에게 너무나 고마운 점은, 그런 저를 무시하거나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며 기도로 섬겨 주었다는 사실이에요. 그들의 기도와 섬김 덕분에 저는 대학교 3학년이 되기 전 2,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 때는 드림의 다음 학기 사역을 준비하기 위한 합숙 기간이었어요. 저는 그 때 매우 불안한 상태였어요. 갑자기 드림의 지휘자로, 교회의 찬양단 리더, 학과의 과대표등 다양한 영역의리더로 서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감사한 자리였지만, 나는 너무 못난 사람이고 부족한 사람이었기에, 그 자리들에 서는 것이 너무 두려워서 도망가고 싶었어요. 그 불안과 두려움을 감추고 찬양을 연습하고 있었죠. 그러다 저녁 집회 시간이 왔어요. 친구의 초청으로 오신 형제님이 기도회를 인도하시면서 탕자의 비유로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셨어요. 그 말씀을 듣는 내내 이상하게 눈물이 계속 흘렀어요. 그리고 기도회가 깊어지던 어느 순간, 그 형제님께서 지금 이 자리에 사랑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면서, “내가 너를 너무나 사랑한다. 내가 죽기까지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에 정말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어요. 진짜 온 힘을 다해, 온 마음을 다해 폐부 깊은 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울음이었어요. 다른 누구도 아닌,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진실이 저를 사로잡았어요. 불안하게 흔들리던 저의 내면에 기초가 생긴 것 같았어요. 그 때 부른 찬양은 평생토록 잊을 수 없어요. 나를 사로잡고 있던 결박이 풀린 후, 처음으로 부른 자유의 노래였거든요.

 

두 가지 꿈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

저는 두 가지 꿈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독교사, 하나님이 즐거워하시는 찬양 사역자. 이 두 개의 꿈을 두고 오랜 시간 기도했고, 노력했죠. 사실 두 가지 꿈의 접점이 있을 거라고 여기진 않았어요. 그냥 교사 생활하면서 지역 교회 찬양 인도자로 사는 것이 최선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기독교사대회에서 드림이 찬양을 인도하게 된 것은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었어요. 저의 두 가지 꿈이 하나가 되어 실현되었으니까요. 2012 대회 때부터는 대회 마지막 날 찬양 인도를 맡기 시작했고요. 그 자리에 서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제 꿈의 자리였기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겼던 기억이 나요.

2013년에 성대부종진단을 받고 앞으로 말을 하거나, 노래를 하지 말라는 처방을 받았어요. 찬양 사역자는커녕 교사의 길마저 걱정해야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던 중 2014 기독교사대회가 다가왔고, 노래를 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너무나 하고 싶었기에 다시 찬양팀에 지원했어요. 목을 많이 쓰지 않게 파트를 조정해서요. 그런데 당시 대표님이셨던 임종화 선생님께서 주제 강의 전에 찬양이 아닌 일반 노래 한 곡을 불러 줬으면 좋겠다는 뜻밖의 부탁을 하셨어요. 불안한 성대 상태였지만 그 자리에 꼭 서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기도와 고민 끝에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고, 그 때 부른 노래가 제이레빗의 웃으며 넘길래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사역의 첫 걸음이 이때였던 것 같아요.

2016 기독교사대회가 끝난 후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겼어요. 대회 중 문화와의 만남시간에 김태현 선생님의 북콘서트가 있었고, 저는 선생님의 부탁으로 콘서트를 시작할 때 이라는 찬양을 부르게 되었어요. 노래하기에는 너무 열악한 환경이었고, 제 성대는 이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속된 말로 공연을 망쳤어요.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노래를 들으며 김태현 선생님께서는 음악으로 교사들의 마음을 위로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기셨고 대회 후에 김지상 선생님에게 연락을 하셨다고 해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김지상 선생님도 대회 중에, 그리고 대회가 끝난 후에도 김태현 선생님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셨다는 거죠! 그렇게 두 분은 의기투합하여 일반 교사를 대상으로 한 토크 콘서트를 열기로 하셨고, ‘드림내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20169, 감성연수팀 꿈꾸는교사들을 시작하게 돼요.

20161125, 수업코칭연구소와 함께 첫 토크 콘서트를 개최한 저희는 2017년에는 꽤 많은 지역을 다니며 공연을 했어요. 수업코칭연구소, 지역교육청, 교육부와 함께 공연을 하며 다양한 선생님들을 만나 위로를 전해 드렸어요. 찬양이 아닌 가요를 부르지만, 교육과 교사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사랑을 담기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고 노래했지요. 연습과 공연으로 금, 토요일을 사용해야 할 때가 많아서 교사 생활과 이 사역을 같이 감당하면서 많이 지치고 피곤했지만, 우리 노래를 듣고 힘을 얻었다고 하시는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어요.

지금은 잠시 꿈교 사역을 내려놓고 2018 기독교사대회 찬양을 섬기기 위해 집중하고 있어요. 2월에 드림졸업생 및 학부생들에게 공지를 돌렸고, 저를 포함하여 13명의 지체들이 자원하여 준비하고 있어요. 팀원들이 다 다른 지역에 살고 있어서 한 달에 한 번, 천안에 모여 기도와 찬양 연습을 하고, 다른 날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기도하며 사모하고 있지요. 누구보다 저의 부족함을 잘 알기 때문에 이 자리를 섬길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기도 하고, 너무 두렵기도 해요. 부담감에 영이 눌리는 것을 경험하기도 하고, 자꾸만 넌 안 돼. 네가 뭐라고 그 자리에 서?’라는 생각이 찾아와 괴롭기도 해요. 잘하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저를 사로잡을 때도 많아요. 여전히 좋지 않은 저의 성대가 더 나빠지거나 찬양에 방해가 될까 봐 무섭고요.

하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다시 일어서요.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제가 부족하기 때문에, 제가 질그릇이기 때문에 감사해요. 저의 어떠한 모습이 아닌 하나님이 심히 큰 능력이 더 잘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에요.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 받으시는 시간, 그리고 대회에 오신 선생님들께서 하나님을 만나고 회복되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 많은 기도 부탁드려요.

 

 

그녀가 들려주는 찬양을 듣고 있다 보면 세속에 빠져 있던 내가 주님 앞에서 다시 깨끗해지는 것을 느끼곤 했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 한 마디, 한 마디를 위해 그녀가 마음속에서 얼마나 많은 씨름을 하는지 이번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되었다. 넘어져도 다시, 두려워도 다시 주님 앞에 나아가는 그녀의 담백한 용기를 나도 마음속 깊이 응원하고 싶어졌다. 현승 선생님, 목도 마음도 영성도 잘 관리하셔서 이번 기독교사대회 때 건강한 목소리로 함께 찬양해요. 대회를 사모하는 모든 이들이 선생님을 위해 기도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