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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만남

성숙한 기독교사 공동체, 우리 함께 세워 가요(2018.9)

 

 

 

성숙한 기독교사 공동체,

우리 함께 세워 가요

 

 

 

추성현(제천 홍광초등학교)

 

 

 

 

 

인터뷰·사진 한성준

 

물 먹은 별을 보며

저는 송탄에서 태어나 초, , 고 시절을 보내며 집, 학교,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부모님은 두 분 모두 학교를 나오지 못하셔서 글을 모르셨고 아버지는 평생 환경미화원으로 일하셨기 때문에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머니께서 믿음의 뿌리가 되셨고 저는 모태신앙으로 자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저에게 교회는 집처럼 친숙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습니다. 그 전에도 교회를 열심히 다녔고 말씀도 잘 들었지만 복음을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친구들로부터 잘난 척이라는 별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당시 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저에게 잘난 척이라는 별명은 제가 교만하다는 의미였기 때문에 죄책감과 열등감에 쌓여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6학년 때는 더욱 위축되어 자살 충동을 많이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6학년 아이가 느꼈던 죄책감의 상처가 참 컸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러던 중 겨울방학 때 교회에서 부흥 집회가 열렸는데 강사님께서 집회 마지막 날에 4영리 전도 책자처럼 복음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이전에도 예수님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이고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날 강사님께서 우리 모두는 죄인이라고 말씀하실 때 저는 그 말이 마음 깊이 동의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저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대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며 대신 벌을 받으셨다는 말씀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셔서 구속하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죄를 용서받으며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이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영접 기도를 따라할 때 제가 죄인임을 고백하였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런 후 저에게는 죄를 용서받았다는 기쁨과 평안이 넘치게 되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 밤에 집에 돌아오면서 감격과 감사의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처음으로 물 먹은 별을 보며 집으로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내게 찾아온 놀라운 변화들

그렇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저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주일날 말씀이 마음에 다가오고 깨달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찬양을 부를 때마다 감격과 기쁨이 넘쳤습니다. 때때로 찬양의 가사가 마음에 울림이 되어 눈물을 흘리며 찬양을 드릴 때가 많았습니다. 또한 기도 응답을 경험하며 간증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십대선교회, 생명의말씀사, 어린이전도협회, 기독학생회 모임 등에서 큐티와 성경 공부를 하고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때 미션스쿨을 다니면서 남성 중창단 활동을 했습니다. 고등학교도 같은 미션스쿨을 다니면서 기독학생회 회장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평택기독학생연합모임에도 참여하게 되었고 방학을 이용하여 전도 집회나 찬양 집회를 갖기도 하였습니다. 연합으로 찬양 집회를 준비하면서 평택시를 마음에 품고 노방전도와 기도회를 갖기도 하였습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 준 CCC

대학 시절은 저에게 인생의 전환기와 같았습니다. 처음으로 고향과 부모님 곁을 떠나서 자취를 하며 독립적으로 지낸 시기였고 CCC에서 훈련받으며 신앙이 성숙하고 민족과 세계를 품는 믿음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학년 때는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가 교회를 섬기면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꿈꾸고 기도했던 평택시의 복음화에 기여하겠다는 생각이 제 삶의 목표와 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CCC에서 훈련받으며 캠퍼스 복음화와 민족 복음화가 제 마음에 다가왔고 단기 선교를 통하여 세계 복음화에도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결정적으로는 졸업을 앞두고 2004년에 CCCTIM 교사 수련회에 참여하면서 기독교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고 기독교사를 세우는 사역에 헌신하고 싶은 열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졸업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충북에 남게 되었습니다.

임용 시험을 보고 9월 발령을 받았었기 때문에 발령 전 6개월은 CCC 협동간사로 살면서 캠퍼스 사역을 도왔습니다. 기독교사를 세우는 사역에 비전이 있었기 때문에 현장 교사가 된 이후에도 캠퍼스를 찾아가며 후배들을 도왔습니다. 첫 발령지는 충주였기 때문에 청주로 전근 가기 전까지는 충주에서 청주를 오가며 캠퍼스 사역을 도왔습니다.

 

지역모임을 섬기는 축복

또한 CCCTIM 청주모임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2년 반 동안 충주에서 생활하다가 청주로 갔고 2009년부터 CCCTIM 청주모임 대표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6년간 청주에 있으면서 캠퍼스 사역을 돕고 지역모임에서 선생님들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내를 만났습니다. 2009CCCTIM 청주모임에 선생님들이 나오지 않아서 혼자 모임을 지키며 기도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어린이집 교사였던 아내가 청주에 기독교사 유치원 교사 모임이 없었기 때문에 저에게 연락을 주어 함께 모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다른 선생님들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둘이 모임을 하게 되었고 삶을 나누고 기도하면서 자연스럽게 가깝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교제를 하면서 서로의 꿈과 비전을 나눌 때 저는 기독교사를 세우는 사역에 비전이 있었고 아내는 해외 선교와 MK 사역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캠퍼스 시절 CCC 여름수련회 때 북한선교에 앞장설 통일봉사단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북한이 열리면 최소 2~3년은 북한에 들어가서 기독교사로서 복음을 전하며 헌신하겠다는 꿈도 나누게 되었습니다. 아내도 학창 시절 CCC에서 훈련받은 같은 지구 순장이었기 때문에 서로 영적인 교감이 잘 되었고 마음이 잘 맞았습니다. 그렇게 행복한 교제를 시작하고 약 13개월이 지난 201010월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하면서 아내에게 먼저 나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함께 도와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캠퍼스 사역이 부흥을 하고 후배들이 잘 연결되어 지역모임도 활성화 되면 아내의 꿈과 비전을 위해서 함께 MK 사역을 돕고 해외 선교에 힘쓰겠다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내와 함께 청주교육대학교 후배들을 돕고 섬겼으며 지역모임도 활성화 되었습니다.

 

아내와 함께하는 동역의 기쁨

그렇게 시간이 흘러 CCCTIM 청주모임 대표를 손현탁 선생님께 위임하고 2014년에 아내의 비전을 따라 MK 사역에 힘을 기울이기 위해 제천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제천에 왔는데 후배들 중에 제천으로 발령을 받는 후배들이 생겼고 충주에 있는 선생님들도 연결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CCCTIM 충주제천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천에 오면서 약 2년에 걸쳐 이루어지는 Koki Academy for Caregivers(KAC) 4기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CCCTIM 송홍경 선생님과 이승헌 선생님께서 MK들을 효과적으로 돕기 위해 교사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해 오던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CCCTIM 정찬규 선생님께서 약 6년간의 교사선교사 사역을 마치고 돌아오셔서 소개해 준 Koki Minischool(미니학교) 사역에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해외에 있는 선교사님 자녀들을 일주일에 한두 번씩 Skype(스카이프)를 이용하여 원격으로 한국어 수업을 해 주는 사역이었습니다. 또한 방학을 이용하여 현지를 찾아가서 가정방문이나 순회 교육을 하는 해외 사역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내와 함께 서로의 비전을 나누고 섬기며 지금까지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아내가 제 후배들을 사랑으로 섬기면서 평생 함께하는 동역자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훈련을 받으며 MK 사역과 미니학교 사역에 열정과 비전이 생겼습니다. 언젠가 북한이 열린다면 캠퍼스 시절 서원했던 통일봉사단의 비전도 성취될 날이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또한, 퇴직 이후에도 스카이프 수업을 하면서 MK들을 돕고 아내와 함께 기독교사들을 섬기는 삶을 꿈꾸고 있어서 행복합니다.

 

성숙한 기독교사로 살아간다는 것

요즘 감사한 것은 CCCTIM 윤조열 선생님께서 섬겨 주시는 상담활동을 아내와 함께 오랫동안 받아 오면서 서로를 알아 가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어 균형 잡힌 삶을 추구하게 된 점입니다. 일 중심적인 저는 가족을 생각하지 않거나 건강을 생각하지 않고 일이나 사역에만 몰두할 때가 많았는데 가족과 아내를 돌아보고 건강과 적절한 쉼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집에서 가까운 의림지나 솔밭공원에 아내와 함께 자주 가서 캠핑을 했고 틈이 날 때 동해 바다를 보고 오거나 맛집이나 커피숍에서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한 저의 모습으로 인하여 아내에게 상처를 줄 때가 많았고 충분한 대화와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할 때가 있어서 기도가 필요합니다. 가정예배가 잘 이루어지고 큐티와 기도생활이 꾸준히 이루어져서 가정에서도 성숙한 영적 리더로 서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저와 아내는 MK들을 돕기 위해 스카이프 수업과 미니학교 사역을 함께할 생각이며 성숙한 기독교사를 세우기 위해 선생님들을 돕는 일에 힘쓸 것입니다. 교사로서는 학생들을 사랑하고 공감과 소통과 지지를 해 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학생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지 않고 기회가 될 때마다 복음을 전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내가 먼저 성숙한 기독교사로 살아가기 위해 지속적으로 훈련을 받으며 균형 잡힌 삶을 살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민족 복음화, 교육 복음화! 그 얼마나 위대한 말인가! 그러나 그 위대함을 내 삶에서 하루하루 꾸준하게 실천해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위대한 말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소명을 따라 꾸준하게 오늘을 사는 그 삶이 위대한 것이 아닐까? 자신의 소명을 따라 한결같이 기독교사의 길을 가는 추성현 선생님. 그 쉼 없는 발걸음에 하나님께서 함께 걸어 주실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