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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오 칼럼

총회 결정, 그 가벼움과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에 대해(2018.11)

정병오 칼럼

총회 결정,

그 가벼움과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에 대해

 

 

인생을 돌아보면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었던 많은 분들이 생각이 난다. 그 중에 한 분이 한국 성서유니온선교회(SU)의 초대 총무였던 윤종하 장로님이다. 이분은 한국 교회에 말씀 묵상을 대중화시켰을 뿐 아니라 탁월한 성경 교사로 많은 사람들에게 성경을 보는 눈을 뜨게 해 준 분이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 1학년 때였다. 그는 내가 속한 선교 단체의 겨울수련회 기간 동안 매일 아침 오셔서 말씀 묵상 훈련을 시켜 주셨다. 이후 그는 내가 속한 선교 단체에도 여러 차례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인도등과 관련한 강의와 성경 권별로 말씀을 풀어 설명하는 강의를 해 주셨다. 그 외에도 나는 그가 인도하는 정기적인 성경 강해 모임에도 나가고 그의 성경 강해 테이프들을 다 구입해서 몇 번씩 듣곤 했다. 지금의 내가 성경의 전체적인 맥을 꿰면서 말씀을 보고 가르치기도 할 수 있게 된 것의 50% 이상은 그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이단이 된 이유

그런데 내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내가 속한 교단에서 그와 그가 속한 성서유니온선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유는 그가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부정했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가 당시 교회들이 중요하게 붙들고 있던 전통과는 약간 다른 주장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주일 성수와 십일조에 대한 성경적이며 신학적인 원리를 제대로 설명하여 그 의미를 더 분명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시도였지 이를 부정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주일 성수와 십일조에 대해 그가 설명한 핵심은 다음과 같다. 구약 시대의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누리게 될 안식을 보여 주는 하나의 표식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주실 영원한 안식을 사모하면서 지금 이 안식을 제대로 누려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별히 신약에서는 7일 모든 날이 다 주의 날이기 때문에 매일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누리며 주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신약 시대의 주일에도 안식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지만 이것을 구약 시대 안식일처럼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십일조의 경우도 기본 정신은 내게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신앙 고백의 표시이며, 1/10을 교회에 드리는 것 못지않게 9/10를 포함한 내 모든 소유와 시간과 정성을 주를 위해 바치고 사용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약 시대의 십일조는 정확하게는 1/10이 아니라 2/10 혹은 3/10을 드린 것이기에, 지금도 1/10이라는 숫자에 얽매이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를 위해서는 최대한 검소하게 살고 최대한 교회와 이웃의 필요를 따라 최대한 많이 베풀면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게 과연 이단의 사유인가?

그때 내가 가졌던 문제의식은 이러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에 대한 해석의 옳고 그름을 떠나 과연 이 문제가 이단으로 정죄할 만큼 심각한 문제인가 하는 것이었다. 어떤 한 사람이나 단체가 이단이라고 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구원에서 탈락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적그리스도라는 의미가 아닌가? 그렇다면 이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나 인성을 부정함으로 그의 구원 사역을 부정하거나 특정 인간을 하나님이나 그리스도로 칭하거나 혹은 성경을 제외한 다른 문서를 성경과 동일시하는 개인이나 집단에 붙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윤종하 장로님 문제 같이 주일 성수나 십일조에 대한 해석의 문제는 이단으로 정죄를 할 것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논쟁을 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그리고 혹 어떤 성경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교단에서 판단했을 그 부분을 잘 밝혀서 교회에 안내해 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후 알고 보니 주일 성수와 십일조에 대한 윤종하 장로님의 성경 해석은 대부분의 건강한 복음주의 신학계 내에서 이미 정리가 된 부분이었다. 다만 당시 한국 교회가 구약의 안식일과 십일조 규정을 그 본래적 의미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부분을 정확히 규명하지 않고 신약의 주일과 십일조 헌금에 그대로 적용하여 지켜 오던 관행을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자발적으로 자신의 모든 시간과 물질을 주를 위해 사용하는 원리를 가르칠 경우 성도들이 주일을 잘 지키지 않거나 십일조 헌금을 잘 드리지 않는 결과를 가져 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했던 것 같다.

 

총회 결정의 가벼움과 그 영향력의 미미함

그런데 이후 내가 더 놀랐던 부분은 교단의 이단 정죄가 한국 교회 내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영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일로 인해 윤종하 장로님은 자신으로 인해 성서유니온이 더 이상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성서유니온 총무 직을 사임하고 이후 평신도 성경 교사로 순회 사역자로 남은 삶을 사셨다. 하지만 많은 교회들이 매일 성경QT 교재로 계속 사용을 했고, 여러 교회들에서 윤종하 장로님을 계속 강사로 모시는 것이었다.

한 교단 총회의 결정이, 그것도 다른 결정이 아닌 이단이라는 무시무시한 정죄를 하는 결정을 이렇게 쉽게 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 결정이 교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이렇게 약하다는 것도 한국 교회의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단 총회가 일반 교회나 교인들의 상식에 반하는 결정을 남발함으로 스스로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그 결과 교회가 교단의 결정을 우습게 여기는 악순환이 거듭되면서 교회의 공교회성은 무너지고 개교회주의가 더 기승을 부리는 것은 한국 교회의 심각한 문제로 자리를 잡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교단 총회가 완전히 잘못된 결정만 하거나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부족하지만 교단 정치가 있기 때문에 큰 흐름에서 신학적 건강성을 지켜 가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교단 정치의 구성이 일부 목회자와 장로들의 폐쇄적인 틀을 형성하고 있고, 일반 교인들의 감시와 견제가 쉽지 않은 구조를 갖고 있어서 앞으로도 여러 잘못된 결정들이 나오는 것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교회의 건강성을 지키기 위해 교단 정치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교단 정치로 인해 교회가 손상을 입는 모순된 상황이 더 많이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좋은교사운동은 왜? 무엇을?

지난 9월 어느 교단 총회에서 좋은교사운동을 비롯해 교회개혁실천연대, 복음과상황, 청어람, 뉴스앤조이, 성서한국 6개 기독 단체들의 신학 사상과 교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하기로 결정을 했다고 한다. 물론 이단성 연구는 아니기는 하지만 이 단체들이 교회의 부정적인 면을 들추어내어 비판함으로 교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부분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이 교단이 연구하겠다는 6개 단체에 좋은교사운동이 포함된 것에 대해 다들 의아해 하고 있다. 누가 봐도 좋은교사운동은 나머지 5개 단체와 결이 다른 단체이기 때문이다.(이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고, 그 교단 총회가 지금까지 해 왔던 행태에 비추어 볼 때 정말 얼토당토않은 황당한 이유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왜 좋은교사운동이 이 목록에 포함되는 것을 허용하셨을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한국 교회의 여러 아픔에 대해 좋은교사운동도 책임감을 가지고 더 기도하라고 하는 것 같다. 더 아파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더 많은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 같다. 때로 황당하고 때로 화가 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고 그분의 뜻을 분별하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