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종료/교단 일기

교실연가 2 : 선생님의 전성기는 언제입니까?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5. 3. 17:44

교실 연가 2
선생님의 전성기는 언제입니까?

박 종 태


지금이 제 전성기입니다

만화 〈슬램덩크〉를 보면 농구 풋내기 강백호가 속한 북산고가 전국 대회 예선전에서 고교 농구의 제왕인 산왕공고와 대결을 펼치는데, 치열한 경기 중에 강백호는 등에 부상을 당합니다. 잠시 벤치로 나와 있던 강백호는 경기에 다시 들어가길 바라지만, 그의 미래를 걱정한 감독은 그것을 거절합니다. 그때 강백호는 감독에게 질문합니다.

“감독님의 전성기는 언제였나요? 저는 지금이 제 전성기입니다.”

비록 기량이 부족하고 부상마저 입은 상황이지만, 가장 뜨겁게 자신의 열정을 불태우는 지금 이 시간이 자신에겐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강백호의 결심을 안 감독은 결국 그를 기용하고, 이 경기는 강백호의 결승골로 북산의 기적 같은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갈렙의 진짜 전성기

여호수아와의 정탐 이후 45년이 지난 시기에 갈렙은 다시 성경에 등장합니다. (여호수아 14:6~14) 80세가 훨씬 넘었을 노구를 이끌고 기업을 얻기 위해 여호수아의 허락을 얻고자 하고 있는 갈렙. 45년 전에는 뜻을 함께했던 영적 동지였던, 그러나 이제는 그때의 모습이 사라지고,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자신 앞에 서 있는 갈렙을 여호수아는 어떤 마음으로 바라봤을지….

여호수아는 백발이 성성했을 옛 동지를 말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를 축복합니다. 가서 기업을 취하라고 말합니다. 여호수아는 이제부터가 갈렙의 진짜 전성기가 시작될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 삶의 밀도

제가 처음 발령받은 학교는 안산과 시흥의 경계선에 있는 역사가 오래된, 그래서 좀 많이 낡은, 주변에 논과 밭이 있는 변두리 지역의 학교였습니다. 낙후된 지역성과 불편한 교통 탓에 일반 교사들이 굉장히 기피하는 지역이었습니다. 제가 발령받을 때 이 학교에 22명이 전입했는데, 20명이 신규였습니다.

교육청에 들러 처음 이곳에 오던 날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오후 늦게 도착해서 교장 선생님께 인사하고 나왔더니 주변이 어스름해졌는데, 그 모습은 영락없는 촌 동네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제가 어릴 적 자랐던 동네의 모습과도 많이 비슷했기에 저는 이곳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생활은 벌써 13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근무지는 네 번째지만 한 번 빼고는 항상 동네와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첫 정을 준 곳이라서, 아니 신규의 열정을 다했던 곳이라서인지 마음속에서는 항상 이곳을 품고 있게 됩니다. 이런 곳에 있다 보면 시간과 변화를 잊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떠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은 제가 이곳에 계속 남아 있는 것임을 알았기에 그냥 그대로 있었습니다.

마음속에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것처럼 열정을 발휘하던 과거의 모습들을 추억하면서 지금은 쪼그라들어 있는 것 같은 내 모습에, 과거의 열매를 그리워하며 과거와 같은 열매를 다시 얻으려고 바라고만 있는 모습에, 눈에 보이는 열매 없이 시간만 축내고 있는 모습에, 이렇게 나이만 먹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알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는 사역의 규모만큼이나 사역자의 집중력, 사역자의 꺾이지 않는 열정과 온전한 헌신 같은 사역의 밀도를 아주 중요하게 보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그동안의 시간들이 제 삶의 밀도를 점점 단단히 하는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나의 전성기를 향하여

요즘 하나님께서는 제가 교실의 아이들뿐 아니라 교사, 학부모, 학교, 학교가 있는 지역을 제 사역지로 삼길 바라시고 있음을 알려 주십니다. 그렇게 너의 기업을 얻으라고, 너의 지경을 넓혀 나가라고 저를 격려하십니다.

그래서 요즘엔 학급 제자 양육뿐만 아니라, 신우회를 세우기 위해, 동 학년 선생님 두 명을 양육하기 위해, 더 나아가 가능하다면 학부모를 양육할 수 있기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발령 후 처음으로 오늘 학교에서 한 분과 크게 싸울 뻔 했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저의 연약함과 부족함이었습니다. 오랫동안 학교에서 받아 온 스트레스가 엉뚱하게 터졌거든요. 그분께는 죄송하다고 사과했습니다. 하루 종일 덕스럽지 못한 모습을, 저의 부족함을 반성했습니다. 내일은 가서 작은 뇌물(?)과 함께 그분의 마음을 좀 더 풀어 드리려고 합니다.

이제 불혹의 나이가 되었지만, 주님을 영접하고 거듭난 지는 22년째입니다. 아직도 참으로 많이 부족함을 느끼지만, 그런 마음보다는 22세 청년의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제 전성기를 만들어 가는 시기라는 마음으로 살고자 합니다. 아마도 갈렙은 85세의 나이로 자신의 기업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40세 장년의 나이로 그 기업을 바라보고 있었을 듯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삶도 갈렙과 같이 더욱 푸르고 멋지게 만들어 가실 거라 믿습니다.

“나이가 드는 것이 아니라 멋이 드는 것이다.” 이 광고의 카피처럼, 저도 하나님 앞에서 점점 멋있게 숙성되어 가고 싶습니다.







박 종 태

안산 신길초.

주안에서 거듭난 22년 청년의 열정에

삶의 원숙함을 더해 최고의 전성기를 만들고 있는

올해 나이 사십의 청년(?) 기독 교사.

교사 선교회에서 초임 때의 열정을 잃지 않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