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종료/정병오 칼럼

그리스도인에게 ‘선거’의 의미는 무엇인가?_2012.04

좋은교사 2014. 6. 3. 09:53

정병오 칼럼

리스도인에게 선거의 의미는 무엇인가?

 

2012.04.

 

 

  세속 정당을 축복해도 되는 거야?

  내가 처음 선거를 경험한 것은 대학교 1학년 겨울 방학이던 19851월 국회의원 총선거였다. 1980년 광주 학살을 통해 정권을 잡은 전두환과 민정당은 주요한 야당 인사들을 정치 금지 대상으로 묶어놓은 상태에서 군사정권에 제대로 날을 세우지 않는 허약한 군소 야당 체제를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4년의 전두환 군사 정권의 치하에서 이 체제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19851월의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표출되었다. 그래서 군사 정권의 갖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선거 직전에 갓 탄생했던 김영삼과 김대중이 중심이 된 신민당이 제1 야당으로 급부상을 했다. 그리고 이 선거 결과에 탄력을 받아 군사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은 더 거세졌고, 결국 19876월 항쟁으로 결실을 맺게 된다.

  이 때 나는 아직 선거권이 없는 상태에서 고향인 창원에 내려가 있었는데, 그 때 선거 운동 기간 동안 표출되던 민심의 거센 물결을 보면서 아 이것이 선거의 힘이구나하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그리고 선거를 통해 군사 정권과 강하게 맞서겠다는 신민당이 제1야당으로 부상하자 내가 활동하던 기독교 동아리 회지에 한 선배가 썼던 하나님이여! 신민당을 축복하소서!”라는 칼럼을 놀라운 눈으로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분명히 당시 교회에서는 철저한 정교 분리를 가르치고 있었고, 신민당이라고 해서 절대 선은 아닐 텐데, 하나의 정파에 불과한 신민당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을 비는 것은 분명히 신앙의 정신과는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당시 그 선배가 어떠한 마음으로 그 글을 썼는지, 그리고 당시 전두환 군사 정부 체제 하에서 그 글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공의로운 통치를 믿는 믿음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라는 공감대가 나를 포함해서 우리 가운데 있었다.

 

민주주의 이름으로 독재에 면죄부를 주다니

  내가 경험한 두 번째 선거는 198712월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였다. 이 대통령 선거는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 유신 체제를 선포하면서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간선제를 도입한 이래 15년 만에 처음 있는 대통령 직선제 선거였다. 19876월 항쟁의 주요구호가 독재 타도’ ‘직선제 쟁취였다는 것을 생각할 때 대통령 직선제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이 얼마나 강렬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열망은 당시 오직 복음 전도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고, 사회참여에 한 발짝도 떼기를 두려워하던 복음주의권의 기독청년들로 하여금 공정선거 감시단활동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도 당시 4학년 2학기 후반부 수업을 거의 전폐를 하고 공정선거 감시단 활동에 뛰어들었다.

물론 결과는 전두환 군부 정권의 동지이자 후예였던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이었다. 군부 정권에게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부여한 이 선거 결과는 김영삼과 김대중의 분열이 가져온 결과였다. 당시로서는 이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1987년 대통령 선거는 선거가 갖는 힘과 동시에 선거가 갖는 한계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소중한 학습의 시간이었다.

 

이 사람들이 과연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이 있나?

  이후 6번의 국회의원 총선거와 5번의 대통령 선거를 거쳤다. 물론 내가 투표한 후보가 당선된 경우는 많지 않다. 그리고 국민들의 판단력이 이렇게까지 흐린 것인가 하는 생각에 슬퍼했던 적도 많다. 이렇게 탐욕과 아집으로 가득찬 무책임한 사람들에게도 공평하게 한 표를 주는 것이 과연 맞는지, 우리 국민들이 과연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이나 있는지 하는 의구심 때문에 괴로워한 적도 많다. 플라톤이 왜 민주주의를 중우정치라고 비판하고 철인정치를 주장했는지 이해가 되는 심정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의 죄성을 생각할 때 위대한 철인이 나타나서 우리를 다스려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전혀 기독교적인 생각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국민에게 한 표씩의 권한만 부여하고, 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자신들의 대표를 선출에 참여하게 하는 이 방법이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허락하신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러한 투표도 죄성에 의해 왜곡되기 때문에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늘 왜곡하지만, 그래도 이 방법은 둘러가고 후퇴와 전진을 반복할지라도 최악을 거르고 차선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게 하는 가장 좋은 도구임을 역사는 증거하고 있다.

 

선거, 남북의 차이를 만든 핵심 고리

  한국 현대사를 공부하면서 남한과 북한의 이러한 큰 차이를 만든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에 대해 궁금했다. 이념적인 문제를 배제하고 본다면 사실 북한은 당시 민족과 시대의 제일 큰 과제였던 친일 잔재 청산토지 개혁을 성공리에 수행하면서 다수 백성들의 지지를 얻으며 출발을 했다. 반면 남한은 친일 잔재 청산에 실패하고 토지 개혁도 어중간한 형태로 진행해 민심의 지지를 제대로 얻지 못했다. 어쩌면 김일성이 한국 전쟁이라는 민족적 죄악을 쉽게 저지를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개혁적 성과에 근거한 민심의 지지에 대한 과신이 한몫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남과 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남한이 붙들었던 것은 자유로운 선거였다. 물론 초기에 이 선거에는 수많은 부정과 미숙함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은 선거를 통해 민의를 반영하고, 권력을 견제하고 심판하는 예측 가능한 시스템을 발전시켜왔다. 그리고 이러한 선거 자체를 막거나 선거의 공정성이 과도하게 침해될 때는 온 국민들이 저항을 통해 이 선거권과 선거의 절차적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북한도 선거를 치러왔고 지금도 치르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선거 방식은 당이 지명하는 혹은 지역에서 제일 신망을 받는 단수 후보에 대한 ×방식의 선거를 치른다. 그래서 당에서 후보로 추대 받으면 나같이 부족한 사람이 어떻게라고 극구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출마를 한다고 한다. 지극히 전통적인 방식이다. 그래서 탈북자들이 남한에 와서 선거 기간 서로 잘 났다며 자신을 찍어달라는 선거 운동 행태를 보고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 있느냐고 기겁을 한다고 한다. 어쨌든 북한은 전통을 활용해 선거를 무력화했고, 결국 자체 견제나 정화 장치를 제거되었고, 결국 이렇게 무능한 독재로, 잔혹한 독재로 후퇴에 후퇴를 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 역동성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

  여러 가지 문제로 중첩된 한국 사회의 문제들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더 악화되는 현상들을 바라보면서도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한국 사회가 가진 역동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이 믿음은 나뿐 아니라 자신이 살아오면서 경험한 한국 현대사의 역동에 대한 약간이라도 성찰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동의 표출은 늘 선거가 중심이 되었다.

  물론 이러한 역동성이 항상 긍정적으로만 작용한 것이 아니고 혹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들도 반드시 반작용과 부작용을 남겼음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시대를 아파하고 시대에 대한 책임감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한편으로 이 사회에 변화의 에너지가 존재하며 이 에너지가 표출될 수 있는 주기적인 계기가 있음에 대해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이 에너지와 역동성의 방향을 어떻게 이끌어가며 그 내용을 어떻게 채워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구체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있는 해다. 그리고 이 총선과 대선을 계기로 한국 사회가 또 한 번의 큰 변화의 물결에 휩싸이고, 강한 성장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기에 더 무거운 책임감으로 주께서 양 선거를 통해 이 민족에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을 내리시고, 이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새로운 빛을 비추시길 기도하게 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정당과 후보에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가 미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정책적 제언을 하고, 또 투표에 임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