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종료/교단 일기

사람들이 무서운 말없음표 공주님#1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6. 28. 14:36


<나는 교사다> 교단 일기 최우수
사람들이 무서운 말없음표 공주님#1

장 종 심 (모화초등학교)

말없음표 공주님

 출석 점검을 하는데 오늘도 말없음표 공주님 차례에서 걸렸다.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계속 기다리다가 급한 마음에 슬며시 짜증이 났다.

 “나와서 좀 서 있어야겠다.”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버틴다.

 “어른이 나오라고 하면 얼른 나오는 것이 예의인데, 끝까지 고집을 부려야겠니?”

 그제야 슬그머니 나오는데 눈에 가득 눈물을 머금고 있다가 끝내 눈물을 줄줄 흘리고 서 있다.

 “화장실 가서 얼굴 씻고 오렴.”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꼼짝도 안 하고 마냥 서 있는 아이를 모른 체하고 내버려둔 채로 출석 호명을 마치고 1교시 수업을 그대로 진행했다. 쉬는 시간에 다시 달래어 제자리로 돌려보내긴 했는데, 수업 시간 중에는 내 눈치를 살피며 입 밖으로 소리를 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방과 후에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교실에 그냥 남아 있었다.

 “이리 가까이 와 봐.”

 조용히 소리도 없이 내 앞에 서기에 아무 말 않고 꼭 껴안아 주니 온몸을 떨며 눈물을 줄줄 흘린다.

 “선생님은 널 아주 많이 예뻐하는데, 너는 왜 선생님이 앞으로 나오라는데도 꼼짝을 않고 앉아 있을 수가 있니? 선생님이 싫어서 그런 거야?”

 “아니에요.”

또박또박 말을 하기 시작한다. 말문이 트이면 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녀석이…. 닫힌 마음이 활짝 열리려면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선생님이 부르면 바로 대답을 할 수 있겠니? 어떻게 하면 대답을 할 수가 있을까? 연습을 해 보면 되겠니?”

 “네.”

 “네 소개도 해야 하는데 연습을 하면 내일은 할 수 있겠니?”

 “네.”

 “그래, 그럼 오늘 배운 읽기책부터 읽어 보자.”

 읽기책도 큰 소리로 또박또박 잘 읽어 낸다.

 “선생님이 앞에 앉아 있을 테니까 너는 네 자리에 앉아서 대답을 해 봐.”

 먼 거리에서 불러도 큰 소리로 대답을 한다. 자기 소개문도 스스로 작성하고 제 자리에서 일어서서 큰 소리로 읽어 낸다.

 “내일 친구들 앞에서도 할 수 있겠니?”

 “네.”


 내일이 기대되지만,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아마도 광장 공포증을 수반한 공황 장애인 듯한데, 힘들어 하는 녀석보다 그런 녀석을 지켜보는 내가 더 불안초조하다.

 녀석도 나도 스스로 자신을 이겨 내는 방법을 터득하며 살아야 할 뿐이니.퇴근할 무렵 작년 담임 선생님을 만나 말없음표 공주님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한 아이로 인해 작년 한 해가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오늘은?

 말없음표 공주님이 말문을 열었다. 아이들은 웅성웅성.

 “영희가 지금 대답한 거 맞아?”

 “정말 대답을 한 거야?”

 씨름을 시작한지 닷새 만이다. 작년 한 해 학교에서 한마디도 말을 입 밖에 내어서 해 본 적이 없었다고 하기에 아무래도 시일이 엄청 걸리겠거니 하고 기대를 하지 않았던 터라 나도 깜짝 놀랐다.

 하지만 마음을 놓기에는 아직은 시기상조. 자리를 바꾸는데 또 멀뚱멀뚱 쳐다보고 앉아서는 꼼짝을 않는다. 수업을 다 마치고 아이들과 몸풀기 댄스를 하는 시간에도 얼음처럼 제 자리에 꼿꼿이 서서 가끔 반 아이들을 휙 둘러본다. 그 모습이 애처롭다.


 아이들이 다 돌아가고 난 다음.

 “아침에 자리를 바꾸는데 왜 꼼짝도 않고 자리에 앉아 있었니? 바꾸기가 싫었어?”

 “네.”

 “그럼 그때는 ‘선생님, 여기 그냥 있고 싶어요’ 하고 큰 소리로 말을 하는 거야. 한번 해 봐.”

 잠시 머뭇거리더니.

 “선생님, 저 여기 그냥 있을래요.”

 또박또박 말을 한다.

 “그래, 다음부터는 가만히 있지 말고 항상 자기 마음을 말로 알려 줘야 해. 말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알 수가 없거든.”

 “네.”

 “아까 친구들이 춤을 출 때 혼자 꼼짝도 않고 있던데, 그러고 서 있으면 더 부끄럽지 않니?”

 고개를 떨어뜨린다.

 “같이 춤을 추는 게 낫겠니? 혼자 가만히 서 있는 게 낫겠니?”

 “같이 춤추는 게 나아요.”

 “혼자 서 있으면 더 힘이 드는 거야. 선생님이랑 함께 춤추는 연습을 해 보자. 춤을 추면 기분도 좋아지고 몸도 건강해지거든.”

 “네.”

 공주님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양 볼도 사알살 만지다가 콱 꼬집어 주고, 두 팔도 크게 흔들어 주고, 머리에 꿀밤도 한 대 주고. 음악에 맞추어서 먼저 펄쩍펄쩍 뛰고 있으니 흘깃흘깃 쳐다보더니 쭈뼛쭈뼛. 그러다가는 이내 따라 하기 시작했다.

 여하튼 특이한 녀석 덕택에 이 바쁜 춘삼월에 모든 업무를 제쳐 놓고는 춤을 춘다.


 “내일부터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겠니?”

 “네, 할 수 있어요.”


 내일이 기대된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우리의 말없음표 공주님은 1학년에 입학하면서 학교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 때문에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말문을 닫은 채로 친구도 없이 1년을  지내다가 2학년으로 올라온 아이였습니다.

 모화초등학교에 근무하시는 장종심 선생님은 2009년에 말없음표 공주님을 담임하셨고, 그때의 이야기를 <나는 교사다> 원고 공모전에 글로 보내 주셔서 이번 호부터 2회에 걸쳐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