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 학교가 직면한 현실은? ② 고교학점제가 교육 혁신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특집]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 학교가 직면한 현실은? ②
기고2. 고교학점제, 교육 혁신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구다슬 (대경생활과학고)
직업계고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었다. 교육의 패러다임이 학생 중심으로 전환되고 다양한 진로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교육계의 큰 변화임은 분명하다. 특히 우리 학교는 그간 직업계 고교학점제 선도학교를 운영해 왔기에 전면 도입에 따른 운영상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그러나 제도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가장 필요한 재정적 지원이 오히려 축소되었다는 점은 깊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직업계 고교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 영역은 바로 전공 및 전문 교과이다. 우리 학교는 그 안에서 세부 전공, 복수 전공, 학교 밖 교육 등 학생의 진로에 부합하는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해 왔다.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조기에 실현하고자 했던 선도학교로서의 자부심도 컸다.
그러나 전면 도입과 함께 선도학교의 예산 지원이 종료되었고, 전체 지원 예산 자체도 대폭 삭감되었다. 서울시교육청 기준으로만 보아도 2024년 본예산의 직업계고 고교학점제 운영 지원금은 34.7억 원이었으나, 2025년에는 14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절반 이하로 감소한 것이다. 고교학점제가 실질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오히려 더 많은 예산이 투입되어야 할 텐데, 이러한 예산 축소는 학교 현장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선도학교는 이미 교육 환경개선을 위한 지원을 이미 받았기에 추가 예산이 덜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고교학점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선 여전히 학생들의 교육실습에 투여될 재료비와 교구비, 강사 지원에 대한 예산이 지속되어야 한다.
나이스 시스템 혼란의 교훈
나이스 시스템의 변경과 개선 과정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고1 담임 교사와 교무부장, 교과 담당 교사들은 새로운 출결 관리 시스템과 업무 처리 방식의 변화로 인해 과도한 행정 부담을 호소하였고, 기존과 달리 출결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클릭 수가 증가하여 사용자들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
다행히 KERIS와 교육부는 현장의 문제 제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어, 시간이 지나면 시스템이 점차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코로나19의 위기를 극복하고, 4세대 나이스 도입 당시의 혼란을 견뎌낸 경험을 되짚어보면, 이번 변화 역시 교육 현장이 충분히 감당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아쉬운 점은 앞으로 반복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교육 시스템을 학교 현장에 구축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사전 검토 없이 현장에 적용될 경우, 교사들은 불필요한 업무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따라서 향후 시스템 변경 시에는 반드시 충분한 베타 테스트와 사용자 의견 수렴, 안정적인 시범 운영 기간 확보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또한, 사기업의 그룹웨어 사례도 적극 참고하여 더욱 효율적인 시스템 구축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최소 성취 수준 미도달 학생 대상 보충지도
‘기초학력보장법’과 고교학점제의 ‘최소 성취 수준 보장 지도’와의 괴리가 매우 안타깝다. 기초학력보장법은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앞으로 성과가 기대되는 법이다. 제대로 정착되려면 고교학점제와 최소 성취 수준 보장 지도가 자연스레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 기초학력보장법과 관련된 내용이 학교 현장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반면, 고교학점제의 최소 성취 수준 보장 지도는 또 다른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앞으로 일치시키기까지 현장에서 많은 혼란과 어려움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교사에 대한 보상이나 체계적인 지원이 부족한 것도 시급히 해결할 문제다.
또한, 유급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유럽의 학교들에서는 졸업하지 않은 상태로 학생 신분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유급은 상상할 수 없는 무서운 일로 여겨진다. 이는 문화적 차이에서 기인한 것으로, 최소 성취 수준 보장을 목표로 하면서도 학생들을 유급시키지 않고 진급시키려는 잘못된 방침이 만들어지게 된다. 사실, 유급은 존중받아야 한다. 학생들이 학교를 좋아하고, 학교에 계속 다닐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평생 교육으로 이어지면 더욱 좋을 것이다.
많은 선도학교가 고교학점제를 도입했으나, 유급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학점 이수를 하지 못한다고 졸업하지 못한 사례도 없다. 이는 모두 최소 성취 수준 보장 지도를 통해 다음 학기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 학생들이 정말로 성취 수준에 도달했는지는 의문이다. 성취 수준에 미치지 못한 학생은 다시 교육받을 권리가 있으며, 그 권리는 유급을 통해서도 충족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와 학교는 이러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유급 사례가 증가할 수 있다는 상황에 대한 준비도 부족하고, 제도나 정책적으로도 너무 먼 이야기일 뿐이다. 물론 문화적으로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과거에는 초등학교 졸업 시험에 실패해 유급을 경험한 어르신들이 있었다. 이들은 그 경험을 아픔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에서 유급이나 최소 성취 미달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를 계기로 ‘내가 교육적으로 더 배워야 한다.’라는 문화를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려운 길이다. 그러나 학교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빠른 학생만이 아니라, 느린 학습자까지 모두 포용하며 가르치는 데 있다고 믿는다.
대학교에서는 졸업을 유예하거나 수료만 하고 졸업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은가? 고등학교도 궁극적으로는 고교학점제를 통해 유급과 졸업 요건에 대한 현실적인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고교학점제가 나아갈 방향
여러 어려움이 있음에도 고교학점제가 추구하는 교육적 가치는 여전하다. 언제까지 대학 입시 중심의 정책이 교육 현장을 흔들도록 둘 것인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구조를 벗어나야 한다.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을 통해 학생의 진로 설계 중요성이 입증된 만큼, 진로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이 고등학교 교육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 담임 교사의 역할과 업무에 대해서도 성찰할 시점이다. 초등학교에서는 담임 교사의 역할이 교육 활동 전반을 좌우하지만, 중학교를 거치고 고등학교로 올라가면 담임 교사의 비중과 영향력이 비교적 줄어든다. 학생 발달과 성장 측면에서도 학생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구조를 형성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와 같이 소수의 담임 교사에게 학생의 모든 면을 세심하게 챙기도록 하는 체계는 극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고교학점제가 이제 막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만큼, 초기 혼란을 이유로 제도 자체를 성급히 부정하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자리 잡고 대학 입시의 영향력이 점차 줄어든다면, 상위권 중심의 경쟁 또한 완화될 것이고 고등학교 교육과 대학 간의 신뢰도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이제는 고교학점제가 학생 개개인의 진로를 존중하고, 기초 학력이 부족한 학생에 대한 지원도 자연스럽게 아우르는 포용적 제도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제도 정착의 열쇠는 방향이 아니라 실행에 있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실질적인 재정 및 제도적 뒷받침이 함께할 때 고교학점제는 비로소 교육 혁신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