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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25 미국교육 탐방 보고서 ① 당신은 나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좋은교사 2025. 4. 23. 10:18

[특집] 2025 미국교육 탐방 보고서 ①

기고 1. 당신은 나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소외된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학교

 

임정연(다율중학교)

 

 

 

당신은 나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내가 당신을 다치게 하면, 나 자신을 다치게 하는 셈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존중한다면, 그것은  나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학교 교훈


 

애리조나 주립대학에 계신 안준길 교수님의 소개로 우리 팀은 미국 내에서도 특별한 학교들을 방문하게 되었다. 전교생 중에 히스패닉 학생이 60% 이상을 차지하고, 아프리카계, 아시아계, 아메리카 백인계가 섞여 있는 학교로 다양한 나라에서 이민해 온 다문화 아이들, 가난한 아이들이 대다수를 이루는 학교들이었다. 이러한 학생 구성의 특징을 반영하여 7개의 학교가 가난한 이민 가정 학생들의 성장과 발전을 돕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다문화 학생에 대한 환대로 가득한 Davis Bilingual Elementary Magnet School

데이비드는 영어와 스페인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이중언어(dual language) 학교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중언어의 사용 목적이 수월성 교육이 아닌 학교 구성원의 대다수(70%에 가까움)를 차지하는 히스패닉 출신의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입학 당시는 스페인어를 90퍼센트 사용하다가 고학년이 되면 영어와 스페인어를 50퍼센트씩 사용하는 식으로 영어의 비중을 점진적으로 늘려가며 배우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은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히스패닉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세워주고 학교의 모든 학생에게 사회 문화적 교류에 대한 글로벌 인식과 다양한 문화 배경의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경험을 얻게 하는 좋은 교육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미국의 학교가 영어가 아닌 이민 학생들의 언어로 교육하는 것을 금지하게 해달라는 소송을 내는 등 트럼프 정부의 이민 반대 정책과 함께 이중언어 학교들이 거센 압박을 받는 안타까운 현실도 들려주었다. 교장 선생님의 말씀에 이어 투산시 장학관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멕시코계 여성과 결혼하였는데, 자기 자녀들이 학교에 와서 자신들의 언어는 물론 가정에서 즐기는 음악과 춤, 예술과 문학을 다른 친구들과 함께 배운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큰 안정감, 자신감, 건강한 자기 정체성 등 많은 것들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민 학생들을 위해 두 가지 언어로 교육하고 그들의 문화를 수업의 소재로 가져오는 데이비드의 이중언어 교육과 다문화 교육이 얼마나 아름답고 또 훌륭한 것인지를, 강한 저항에 굴하지 않고 소수민족 아이들을 위해 교육하는 용기가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를 감사와 함께 표현했다.

학교 소개가 끝나고 멕시코 전통의상을 입은 저학년 학생들의 마리아치(멕시코 전통음악) 공연이 시작되었을 때, 데이비드의 선생님들도 장학관도, 교육 탐방으로 방문한 우리 선생님들도 모두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다른 나라에 이방인으로 찾아와 낯설고 두렵고, 그래서 움츠러들었을 아이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안아주었을 학교와 선생님들의 따뜻함을.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고 당당하고 편안하게 미국 사회에 적응했을 아이들의 모습을.

 

 

 

 

최소한의 수준을 맞춰주는 DeGrazia Elementary School

교문까지 우리를 마중 나온 밝고 에너지 넘치는 교장 선생님을 따라 수업 중인 여러 교실을 방문했다. 방과후 교실에 방문했을 때 교실에는 벽면 가득 알파벳 대문자와 소문자가 고딕체와 그림으로 전시돼 있었고 선생님들 책상에는 채점할 시험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1월에 학교 지원과 함께 신입생들이 치른 영어시험 결과지였다. 손으로 삐뚤빼뚤 적은 킨더 가든 입학생들의 글씨들을 두 명의 선생님이 일일이 채점하면서 파닉스 수업이 필요한 학생을 가려내어 방과후 반 편성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방과후 영어교실은 4주 동안 진행하는데, 대부분의 학생은 4주 과정을 마치면 영어를 읽을 수있게 되고 엄청난 자신감을 얻게 된다고 했다. 한편, 학교의 군데군데 펼쳐진 잔디에 학생 한 명과 선생님 한 명이 대화하는 모습을 자주 발견했는데 문제 행동을 한 학생을 분리하여 전문 상담교사가 만나주는 모습이었다. 수업을 못 따라갈 학생이 있는지 입학 시부터 파악하여 빨리 기준선을 맞춰주는 학교,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바로 도와 줄 수 있는 보조 선생님들이 대기하는 학교, 정서적으로 힘들면, 언제든 전문 상담 선생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학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 더욱 친절한 학교가 교장 선생님의 미소처럼 따뜻하게 다가왔다.

 

 

 

학생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Utterback Middle School

유터백중학교는 학교 전체가 에비드 프로그램으로 수업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에비드 프로그램은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자기 주도 학습력을 키우고 학습 습관과 학습 방법 안내, 토론 논술 교육 강화, 진로 탐색 교육 등을 통해 학생의 주도성과 자기관리 방법을 직접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과목별로 학교의 모든 교사가 자신의 교과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탐구하고 학습할 수 있는 프레임워크를 만들고 이를 책자 형태로 묶어서 한 학기 또는 1년간 사용한다고 한다.

탐방을 마친 후 두 시간이 넘게 이어진 유터백 학교 선생님들과의 대화시간을 통해 선생님들의 열정을 만나볼 수 있었다. 에비드 프로그램이 좋지만 프레임워크를 만들기 위한 교사들의 노고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는 말에 선생님들은 놀라운 말을 들려주었다. 드라마 선생님은 솔직히 업무가 많아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드라마 대본 쓰기부터 공연까지 한 학기 수업을 마치고 나면 자기표현을 자신 있게 해내는 학생들의 모습에 언제나 감동한다고 했다. 수학 선생님은 첫 수업에서 또래보다 무려 3년이나 뒤처진 학생들이 있었는데 에비드 프로그램을 적용하여 함께 수업하는 동안 아이들이 잘 따라와서 결국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문제를 풀어내는 수준에 이르는 것을 경험한 후에 힘들지만 에비드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가난한 학생들이 상위학교 진학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게 하려고 선생님들은 학년별로, 교과별로 모여서 학생들을 분석하고, 함께 프레임워크를 만들었다. 그리고 함께 학생의 변화를 관찰하고 피드백하며 수업을 계속 발전시켜 가고 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의 성장을 보면 수업에 대한 고민과 노력을 포기할 수 없다는 선생님들의 고백을 들으며, 교사의 마음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같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도전과 격려로 가득한 Cholla High School

쵸야고등학교는 투산 지역 유일의 IB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보통의 IB 학교들과는 매우 달랐다. 세계의 많은 IB 학교는 학교에 들어섬과 동시에 10가지 인재상 등 IB 학교임을 알 수밖에 없는 게시물이 로비와 복도, 교실 등에 도배가 되어 있는데, 쵸야에서는 그런 포스터를 볼 수가 없었다. 또 하나는 IB의 꽃은 디플로마(졸업 소논문)인데 디플로마를 보는 학생이 어느 정도 되느냐는 질문에 코디네이터는 30% 정도라고 했다. 질문에 대한 답이 되었음에도 코디네이터는 각 교실을 방문할 때마다 디플로마를 보는 학생들을 일으켜 세워 박수를 받게 했는데, 그 이유는 나중에 알 수 있었다. 쵸야고등학교가 위치한 지역은 투산 안에서도 더욱 열악한 지역으로 대부분의 학생이 입학할 때 자신이 좋은 대학에 갈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IB 교육을 하면서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결과물을 만들어 전시하며, 캠페인을 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효능감을 경험하게 하고 있었다. 실제로 IB 교육을 받는 소감을 묻자, 11학년의 한 학생은 과제가 너무 많고, 너무 높은 수준을 요구하며, 제출 기한의 압박으로 스트레스 지수가 매우 높다고 답했다. 하지만 IB 과정을 마치면, 대학 진학을 위해 고교 점수를 입력하는 미국의 생활기록부 시스템에서 다른 학교 아이들보다 높은 점수를 인정받아 좋은 대학에 원서를 넣을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대학에서 학점으로 인정해 주는 수업들이 많아 2년 치 학점을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채우고 대학 3학년 과정으로 입학할 수 있으니 경제적이라고 답했다. 학교 투어를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에 코디네이터 선생님께 30년 교직 생활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일화를 물었다. 선생님은 한 학생과의 면담을 들려주었다. 너무 가난해서 대학 진학을 생각하지 못한 학생이 있었는데, 할 수 있다고 독려하며 갈 수 있는 대학과 학과를 함께 찾아보고, 그 학교에서 학점으로 인정해 주는 수업을 안내해서 듣게 했다고 한다. 학생은 마침내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후 선생님을 찾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제 인생에 앞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저는 이제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제가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 말이 선생님에게는 너무나 감동이 되었다고 말씀하시며 울컥하시는 모습을 보였다.

 

 

 

많은 질문과 생각을 준 미국교육 탐방

미국교육 탐방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과 질문을 가져다주었다. 비슷하게 생긴 아이들이 비슷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한국의 교실에 다양한 이유로 외국 학생들이 오고 있다. 그리고 그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여기는 우리나라이고 그들은 소수니까 그들이 알아듣든 말든, 소외감을 느끼든 말든, 그래서 문제를 일으키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것, 그들을 투명 인간처럼 여기고 예전부터 해오던 우리에게 익숙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우리에게만 익숙한 수업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까? 외국에서 온 학생이기 때문에, 가난하기 때문에 학력이 뒤처지고 그래서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없다면, 그것은 당연한 것일까? 이런 사회는 건강한 사회일까?

그들의 공정에 대한 고민과 연구, 정부의 정책에 맞서 학생을 보호하자는 교육청과 단위 학교의 강력한 협력과 결연한 의지는 한국 사회에서 소외된 학생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라는 과제를 주었다. 한 가지 희망은 이미 우리 좋은교사 선생님 중에는, 소외된 학생에게 손 내밀고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힘에 부치도록 지원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제는 우리도 교사 한 명의 분투가 아니라 학교와 교육청이 함께 연합하여 뒤처진 아이들, 소외된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데 힘을 쏟아보면 어떨까 하는 소망을 품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