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25 미국교육 탐방 보고서 ③ 미국 애리조나 투손의 IB학교를 가다
[특집] 2025 미국교육 탐방 보고서 ③
기고 3. 미국 애리조나 투손의 IB학교를 가다
현승호(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
미국 애리조나 투손의 IB 프로그램 적용 학교
전 세계적으로 IB 교육을 적용한 나라는 매우 많다. 각 나라마다 IB 교육이라는 좋은 도구를 사용하는 방식도 여러 가지다. 예를 들어 중국과 호주의 IB 학교는 대부분 사립학교이고, 엘리트 교육, 명문대 진학을 위해 IB 프로그램이 활용된다. 그러나 한국과 초창기 일본은 공교육 개선 모델로 IB가 들어온 경우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한국은 IBDP 점수를 대학에서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IB 학교가 가장 많은 나라다. 미국에서 IB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는 학교 중 20% 정도는 사립학교이고 80% 이상이 공립학교이다. 공립학교에서 IB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는 미국은 교육격차 해소 모델로서 IB를 사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이 전반적으로 공교육 개선 모델로 IB를 들여왔다고 앞서 언급했지만, 특별히 제주의 경우, 미국처럼 표선 지역이라는 열악한 지역에 교육격차 해소 모델로서 IB를 들여왔다고도 볼 수 있었기에 미국 공립학교의 IB 적용 모습이 궁금했다.
우리가 방문한 학교는 쵸야(CHOLLA)고등학교였다. 이 학교에는 지역 특성상 맥시칸 학생들이 상당히 많았고, ‘타이틀Ⅰ’ 학교 즉, 학군의 소득 수준이 높지 않아서 정부가 특별히 재정을 지원해 주는 학교였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수준의 학생들이 공부하는 전형적인 미국의 공립학교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방문했던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교장 선생님이 직접 우리를 안내했지만, 이 학교에서 우리를 안내한 분은 교장이 아니라 ‘IB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고 계신 Dr. 그린 선생님이셨다. IB 학교에서 코디네이터란, 학교의 관리자급으로 학교의 교육과정을 총괄하는 분이다. 교감이면서, 교육과정 부장이면서 수석교사면서, 진학 상담사 겸, 교사 코치라고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우리나라 경우 이제 처음 IB 인증을 받아야 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IB 코디네이터가 단순히 IB 학교 인증 업무 담당자처럼 되어 있는데, IB가 오래 정착된 학교에서는 이러한 코디네이터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교실을 둘러보며 다소 의아했다. 일전에 방문했던 영국 NLCS 학교의 경우도 그렇고, 내가 근무했던 학교에서도 교실 곳곳에 IB에서 추구하는 학습자상인 LP(Learner Profile)과 ATL(Approach To Learning, 학습접근방법)들이 계시 되어 있기 마련인데, 이 학교에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 학교가 IB 학교가 맞나? 의아하기까지 했다. 수업하는 선생님에게 여쭤보니, 쵸야고등학교의 경우, 학교 전체의 모든 학생이 IB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었다. SAT를 준비하는 학생, GPA(Grade Point Average 학교 내신)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 AP(Advanced Placement)를 준비하는 학생 등 매우 다양한 학생들이 공존하고 있었고, 그 학생들이 시간표에 따라 자신의 교실에 들어오기 때문에 항상 그렇게 교실에 LP나 ATL 등을 게시하기는 어렵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 학교에 다양한 학생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영국 명문 사립학교인 NLCS의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너무나 깔끔하고 잘 정돈된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 모습과 사뭇 대조되어 보였다.
학생들의 성장을 격려하는 교사
교실을 옮겨 다닐 때마다 Dr. 그린은 학교에서 Full Diploma(풀 디플로마)를 이수하는 학생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외국인 교사인 우리 앞에서 그들을 격려하고 박수받도록 했다. IB Full Diploma(이하, 풀디)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IBO에서 요구하는 Diploma 점수를 따기 위한 조건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6개 주요 과목 중 3과목은 H.L(High Level)의 수업을 들어야 하고, 나머지 3과목은 S.L(Standand Level)의 수업을 들어야 한다. 이 6개 과목을 모두 이수하고 과목당 7점 만점의 점수를 얻는다. 이게 교과이고 여기서 끝이 아니다. T.O.K(Theory of Knowledge) 즉 IB의 꽃이라고 볼 수 있는 지식론 수업을 듣고 지식론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E.E(E. Essay)라고 불리는 소논문도 작성하고 평가받아야 한다. 그리고 특별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C.A.S (신체활동, 봉사활동, 창의적 체험활동)도 18개월 동안 8개의 목표를 반드시 스스로 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에 외부 평가 또는 내부 평가가 학교마다 적정한 비율로 평가되어서 최종 점수를 받는다.
단순하게 설명해서 과정이 이렇다 보니, 도중에 포기하는 학생들도 있다. 한국에서는 대학 입시에 IBDP 점수를 전혀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표선고등학교에서도 Full Diploma에 도전하는 학생보다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더 많다.
그래서 Full Diploma에 도전하는 학생들을 격려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게 하는 것은 IB 코디네이터에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Dr. 그린은 IB 수업이 이뤄지는 모든 교실에서 학생들을 일으켜 세우고 그들을 격려했다. 저 멀리에서 온 한국의 교사들 앞에서 말이다. 정부의 특별한 지원이 필요한 ‘타이틀 1’로 지정될 만큼 어려운 지역의 학생들이 어떻게든 디플로마 점수를 얻어서 적은 학비로 또는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라는 그녀의 애정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지역의 상황은 우리나라와는 사뭇 달랐다. 대학에 가려는 학생보다 굳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일부는 자기 부모의 사회 경제적 지위, 인종 등에 매여 더 나아가려고 하지 않는 학생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교사로서 이들을 동기 유발하고, 잠재력을 끌어내고, 더 나는 삶으로 이끄는 것은 이곳 교사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처럼 보였다. 복도나 교실 벽에 붙어 있는 대학의 깃발들 역시 그러한 동기유발을 위한 요소임을 알 수 있었다.
예전에 방문했던 영국 NLCS 학교의 경우, 값비싼 학비를 내는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였다. 학교 전체가 IB 교육을 하고 있었기에 굳이 풀 디플로마를 하는 학생들을 따로 격려하고 응원할 필요가 없었지만, 이 학교에서는 그런 격려가 필요했던 것이다. Full Diploma에 도전하는 한 학생에게 왜 힘들게 Full Diploma를 신청했는지 물었다. 학생은 “저는 신경외과 의사나 심혈관 외과 의사가 되는 것이 제 꿈이었기 때문에, Full Diploma를 완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완료하면 제 인생이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진심으로 그 학생을 응원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후에 펼쳐진 간담회에서 이 학교가 IBDP뿐만 아니라 IBCP(IB의 직업계 고등학교 과정)도 같이 운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약간,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가지고 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Dr. 그린은 4개월 후에 퇴직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세월 IB 프로그램을 하면서 어땠는지 물었고, 그때 그녀는 이렇게 말해 주었다.
“한 학생이 졸업하면서 이렇게 말해 주었어요.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힘든 과정도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앞으로 인생에 또 어려움이 있어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저는 그 순간이 가장 보람된 순간이었습니다.”
그녀에게 IB는 학생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학생들을 현재의 상태에서 더 나아가게 하는 수단임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의 IB에 바란다
한국에서 IB는 무엇인가? IB는 무슨 수단인가? 교육감들이 IB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일단 시작하고 보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그들에게 IB는 학생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현재의 상태에서 더 나아가도록 하는 수단인가? 아니면 그들의 재선을 위한 실적인가? 의심하게 된다.
제주도 표선고등학교는 미국 애리조나로 치면 ‘타이틀 1’이나 다름없는 열악한 학교였다. 나는 그곳에서 작년에 졸업한 학생들 그리고 교사들과 면담을 하면서 Dr. 그린과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학생들이 자신도 몰랐던 자기 잠재력을 발견하고 성장하는 모습. 이것도 해냈다면 다른 것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IB는 늘 수단일 뿐이다. 그 수단을 누가 어떤 목적으로 가지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IB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갖게 된다. 국제 학교에서 만난 IB 교육은 초엘리트 교육이었고, 쵸야에서 만나 IB는 교육격차를 해소하고 아이들의 잠재 능력을 깨우기 위한 수단이었다. 한국은 이 IB라는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 것 인가?
쵸야고등학교를 보면서 다시 한번 제주가 IB 학교 선정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교육청에서도 IB는 애리조나의 쵸야나 제주의 표선처럼 열악한 지역에 선정하기를 바란다. IB가 사립학교가 아니라 적어도 공립학교에 적용될 때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공교육에서만큼은 부디 IB가 누군가의 실적을 위해서나 몇몇 엘리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성장이 필요한 아이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 수단으로 사용되기를 기대한다.
쵸야(Cholla)고등학교 탐방 영상 보기
https://youtu.be/CBJS_8NQRN4?si=irJQOcqNR4cxrA1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