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 분석 : 수석 교사제, 역사와 전망
수석 교사제, 역사와 전망
홍 인 기(정책 위원장)
수석 교사제는 1981년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원인사행정제도의 개선 방향 탐색’ 세미나에서 처음 제안되었다. 그러니까 이 기준을 본다면 교과부나 교총이 말한 ‘30년’ 역사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후 이 제도는 교육계 중요 이슈가 되지는 못했다.
수석 교사제가 가진 딜레마
수석 교사제가 교총의 중요 정책 대안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1990년대 들어 전교조가 교장 승진 제도로 인해 학교가 교육청의 관료적 지배에서 숨을 쉬지 못하는 상황을 개혁하자는 제안을 하면서부터다. 전교조는 현재 교장 승진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으로서 교장 선출 보직제를 주장하기 시작했고, 교총은 이에 대한 대응 논리로 수석 교사제를 적극 주장하기 시작했다. 교총이 수석 교사제를 적극 주장한 것은 교총도 현재 교장 승진 제도가 안고 있는 모순을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교총 입장에서는 현재 교장 승진 제도의 근간을 흔들지 않고, 또 다른 승진 제도라는 길을 하나 틔워 줌으로 교장 승진 제도 관련 개혁 요구들을 무마시키려고 했다. 행정과 수업의 분리라는 구호나 1정 연수 이후 선임 교사와 수석 교사라는 자격 체제를 더 두는 방안도 비교적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로 수석 교사제를 도입한다고 할 때 수석 교사의 권한과 직무를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 교총이 자체 모순에 빠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현재 교장에게 주어진 수업과 장학에 대한 권한을 모두 수석 교사에게 줄 경우 교총의 주장대로 행정과 수업의 이원화 혹은 승진 제도의 이원화라는 명분에는 맞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라는 기관에서 수업과 장학에 대한 권한을 빼 버린 교장은 그야말로 종이호랑이가 되어 버리고 만다. 물론 현재 많은 교장들이 실제 수업과 장학은 거의 간여하지 않고 행정에만 치중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교장의 권한에서 빼 버릴 경우 자칫 수석 교사가 내용적인 교장이 될 우려가 있다. 그렇다고 수석 교사에게 이 권한을 주지 않고, 교장과 교감의 통제 하에서 수업과 장학에 관한 업무를 맡는 수준이라면 수석 교사제가 주장했던 모든 명분들은 날아가 버리고 아무 것도 아닌 제도가 되어 버린다.
정치권은 왜 수석 교사제에 매달리는가?
수석 교사제가 가진 이러한 모순으로 인해 교총은 교장 승진 제도의 개혁이 논의될 때마다 반대 논리로 수석 교사제를 주장하긴 했지만, 그 구체적인 권한과 역할에 대해서는 늘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들을 하지는 않았다. 교총이 정말 이 제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이 제도 도입에 결코 30년이라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수석 교사제가 가진 구호나 명분이 매력적이고, 특별히 교장 승진 관련 현 교육계의 기득권을 건드리지 않는 가운데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 가능한 현실적인 이점으로 인해 정치권에서는 매력적으로 수용이 되었다. 그래서 수석 교사제는 여야를 막론하고 여러 국회 의원들에 의해 입법이 시도되었는데, 특별히 18대 국회에서는 여야 4명의 의원들이 수석 교사 관련 법안을 제출할 정도였다. 물론 입법화 단계에서는 수석 교사제 설치 근거만 제시하고 교장 승진 제도나 교장의 권한 부분은 건드리지 않는 형태였기 때문에, 교장의 통제 하에서 수업과 장학의 업무만 담당하는 형태로 고착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법 취지에서는 행정과 수업의 분리라는 승진 제도 이원화를 통한 현 교장 승진 제도의 문제점 해소를 명분으로 걸었다. 국회 의원들조차도 이 제도의 그럴싸한 명분만 보았지 실제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 없이 교육계와 국민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교과부는 2008년부터 수석 교사제 시범 실시를 시작했다. 그래서 2008년에는 171명이, 2009년에는 295명, 2010년에는 333명, 2011년에는 765명으로 확대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수석 교사제에 대한 현장의 반응과 관련해서 교과부는 교장․교감의 71.6%, 교사들의 64.1%가 ‘수석 교사제가 효과가 있다’고 반응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학교 현장의 반응을 보면 수석 교사 개개인의 역량에 따라 그 역할과 효과의 편차가 크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즉, 개인이 가진 수업 전문성과 다른 교사에 대한 수업 코칭 능력이 탁월하면서 교육에 대한 순수한 의지와 열정을 가진 교사들의 경우 동료 교사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지만 이러한 교사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능력이나 순수한 교육적 열정을 갖추지 못한 더 많은 교사들은 일반 교사들에게 결재 라인을 하나 더 만들거나 일거리만 하나 더 얹어 주는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응은 단지 수석 교사제를 도입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어떻게 방향을 잡느냐에 따라 그 효과 면에서 큰 차이가 있을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수석 교사, 무엇을 해야 하는가?
수석 교사제와 관련해 이제 남은 중요한 절차는 수석 교사의 구체적인 역할과 자격 등을 명시한 시행령의 제정이다. 교과부가 이 시행령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하지만 2010년 수석 교사제 관련 교과부의 공청회 자료는 수석 교사 관련 교과부의 의중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이 공청회 자료에서 드러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수석 교사의 역할과 관련된 부분이다.
○ 수석 교사의 역할
- (지역교육청 수준) 지역 내 교원의 수업 전문성 관련 컨설팅 담당
․지역청 내 해당 교과 연구 수업 등 참관 및 조언
․현장 연구 및 수업연구대회 등 컨설팅/장학 활동
․지역청 단위의 교육과정・교수학습・평가방법 연구・개발
․지역청 내 교과연구회 등 교과 관련 모임 활동
․지구별 장학, 시・도 교과연구회, 교육연수원, 교육과학연구원과의 연계 활동
․수석 교사 선발에서의 수업 전문성 심사 위원 활동
☞ 장학사와의 역할 분담 사례(지역청 공개 수업의 경우)
수석 교사 |
장학사(장학 담당) |
-당해 교사의 학습지도안 작성 지도・조언, 사후 상담 및 조언 -수업에 필요한 학습 자료 개발 지원 -교장의 지시에 따라 공개 수업 교사에 대한 참관록 작성 보고 |
-공개 수업 계획 수립・공문 시달 -공개 수업 참관 및 조언 -공개 수업 결과에 대한 평가・보고 |
- (단위 학교 수준) 수업 컨설팅 담당
․일반 교사에 비해 수업 시수 약 50% 경감
․본인 수업 상시 공개
․신임 교사・수업 전문성 부족 교사, 수업을 더 잘하려는 교사 및 기간제 교사・교육 실습생에 대한 수업 컨설팅(코칭, 컨설팅, 장학 등)
․평가 문항 개발․분석 지원, 현장 연구 등 연구・개발 활동
․교원능력개발평가 학습 지도 영역에 대한 평가 전문가로 활동
․학습지도 관련 학교 내 의사결정 과정에서 전문가로서 조언
- (국가 수준) 필요 시 국가 교육 정책적 필요에 의한 역할 부여
․EBS강사, 수능・학업성취도 출제 및 검토 위원, 교과서 집필 및 검정・인증 위원, 입학사정위원, 교육 과정 심의 위원 등 교과 전문성 발휘 활동
․학습 지도 관련 현장 연구・정책 연구 실행 및 심사 위원
․교원 양성․연수 기관에서 강의 활동
이 표에 따르면 수석 교사는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각종 수업 관련 행사와 업무의 실무 보조 역할을 하기 위해 불려 다니느라 시간을 다 뺏길 수도 있다. 학교 내에서도 수업이나 연구 관련 업무에 시달릴 우려가 많다. 이렇게 할 경우 수석 교사가 무언가 부지런히 움직이지만 실제 동료 교사들의 수업 개선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거나, 아니면 이들이 만들어 낸 수업 관련 업무로 인해 학교에 또 다른 업무가 부과될 우려가 커 보인다.
혹은 반대로 수석 교사 제도가 교감 승진을 하지 못한 경력 교사들에게 하나의 명예와 수당, 수업 시수 경감이라는 혜택을 주는 것으로 전락할 우려 역시 상존해 있다. 그렇게 되면 지금의 원로 교사 제도와 전혀 다를 바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교과부는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수석 교사가 교육청의 또 다른 업무 보조나 혹은 수업 관련 또 다른 행정 업무를 생산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하면서, 동시에 원로 교사 배려 차원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교과부가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수석 교사에 정말 준비되고 순수한 교육적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지원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만들고, 또 그들이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함을 통해 힘들더라도 교육적 명예를 얻고 후배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철저하게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