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를 맞는 자세(2013.11)
정병오 칼럼
50대를 맞는 자세
“병오야, 우리 졸업 여행 가려는데 너도 같이 가지 않으련?”
40대 후반에 들어선 요즘 부쩍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들의 연락을 많이 받는다. 그리고 이런 연락을 받을 때 내 마음도 이전과는 달리 괜히 설레고 보고 싶은 마음들이 생긴다.
“졸업 여행이라니?”
“어휴 눈치 없기는…. 올해 우리 나이가 마흔아홉이지 않니?(사실 나는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을 해서 친구들보다는 한 살 적다) 이제 몇 달만 지내면 50대로 들어서기 때문에 40대가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여행을 다들 많이 간단다.”
나이 서른에 우리는
매해 연말과 연초를 맞이할 때는 마음이 뒤숭숭해지고 약간 감상적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지만 특히 10년 단위의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10년을 맞이할 때는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과 또 앞으로 살아갈 시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20대를 보내고 30대를 맞을 때 내 삶의 정체성에 대해 제일 많은 고민을 했고 심리적으로 복잡한 감정들 속에 머물렀던 것 같다. 아마도 20대 초중반에 고민하고 꿈꾸었던 삶에 대한 비전과 이상이 20대 후반의 결혼과 육아, 취업과 운동이라는 새로운 상황에 부딪히면서,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와 그 상황을 어떻게 맞이하고 대응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느라 심하게 흔들리는 가운데서 맞이한 새로운 10년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에 비해 30대를 보내고 40대를 맞을 때는 큰 심리적인 흔들림 없이 맞았던 것 같다. 이는 20대를 보내고 30대를 맞을 때는 단절과 변화라는 위기감이 컸던 반면에 30대를 보내고 40대를 맞는 시점은 30대를 보내면서 삶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기에 이 기반 위에서 40대를 연속과 성숙이라는 관점에서 맞이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돌아보면 단절과 변화라는 위기감 속에서 맞은 30대는 정신없이 바쁘긴 했지만 삶의 경륜이 축적되면서 진정한 내 인생의 기반을 만들어 가는 시기였다. 그리고 이 시기는 무언가 정해지지 않음으로 인해 불안했던 10대와 20대 때의 위기를 극복하고 나름의 안정을 만들어 가는 시기였다. 물론 이러한 안정은 생에서 처음 맞이하는 새로운 환경들에 내 모든 에너지를 쏟고 또 쏟아도 부족하고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나 이에 대응하느라 기력을 소진함으로 얻어진 결과였기에, 이러한 소진과 소모는 40대가 감당해야 할 새로운 위기의 씨앗으로 작용하긴 했다.
40대여, 숲으로 가자
이런 의미에서 보통의 40대는 한편으로는 30대가 남겨준 안정과 성취라는 기반 위에서 인생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시기이다. 우선 가정적으로 자녀들의 뒤치다꺼리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다. 나만 해도 30대 때는 두 살 터울의 4명의 아이들 뒤치다꺼리 하느라 밤에 한 번이라도 깨지 않고 잠을 푹 잔 날이 없었는데 40대가 되니 최소한 육체적으로는 아이들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고 그것만 해도 ‘살 만 하다’는 느낌이 확 밀려왔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30대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물오른 역량을 발휘하게 되는데, 나의 경우 우리 학교와 교육이 가진 문제와 가야 할 방향에 대한 안목이 확 열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대부분의 가정은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안정을 누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30대에 주어진 과제를 성취하면서 소진된 에너지와 앞을 보며 달려오느라 놓친 옆의 문제들로 인한 도전에 직면해야 하는 위기의 시기이기도 하다. 40대에 들어서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 나의 경우도 40대 중반을 넘기면서 숨길 수 없는 뱃살과 원형탈모를 닮아가는 머리숱, 이제는 글자를 멀리 해야 겨우 파악이 되는 노안 등 늙어감의 증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절감하고 있다. 또한 40대는 그동안 주어진 최소한의 일을 감당하기에도 벅찼기에 제쳐두었던 관계들이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오는 시기이기도 하다. 우선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도 40대라는 서로의 변화에 적응하고 성숙을 위한 노력이 요구되고,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단순한 육체적 돌봄을 넘어선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관계 설정이 요구된다. 사춘기와 청년기에 접어든 힘든 씨름을 하는 아이들을 한편으로는 한 발 떨어져서 바라봐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더 많은 신경을 쓸 것을 요구받는 것이다. 그리고 양가 집안에서도 새로운 책임을 요청받고 더 세밀한 역할을 해야 하는 시기이다.
그러기에 40대는 한편으로는 인생의 전성기이지만 동시에 인생의 매우 심각한 위기의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40대는 10대가 겪는 사춘기보다 더 위험한, 진정한 사춘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젊음을 잃지 않기 위한 몸부림은 외도를 포함한 다양한 탈선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10대의 위기가 정신과 육체 그리고 사회적 성장의 불균형 속에서 겪는 정체성의 위기라면, 40대는 젊음을 잃어가고 쇠락해 가는 것에 대한 위기와 변화하는 관계와 책임에 적응해야 하는 상실과 적응의 위기를 겪어야 한다.
이제는 내려가야 할 때
이제 40대를 보내고 50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이제는 등산 모드가 아닌 하산 모드로 전환을 해야 함을 많이 느낀다. 이는 지금까지 내가 있던 활동을 중단하거나 열정을 줄여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사회가 공인하는 활동 시기도 10년 이상 남았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의 경험을 살려 기여해야 할 부분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게 주어진 경험과 경륜이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고 공적인 것이라면, 나이에 관계없이 직위에 관계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하고 더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다만 일에 임하는 자세는 지금까지와는 많이 달라야 할 것이다. 마치 산을 오를 때와 내려올 때 같은 길을 오가지만 자세가 달라야 하듯이 말이다. 산을 오를 때는 목표가 분명하고 한 걸음 한 걸음이 숨차기 때문에 자연을 감상할 겨를이 별로 없다. 그리고 중간에 쉬다 보면 다시 시작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최소한으로 쉬면서 자신을 몰아쳐야 한다. 모든 걸음이 처음 발을 딛는 걸음인지라 긴장을 놓을 수가 없고 그래서 힘들기는 하지만 사고는 잘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산을 내려올 때는 이미 왔던 길을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훨씬 덜 긴장된다. 그리고 내리막길이기 때문에 힘이 훨씬 덜 든다. 자연을 충분히 감상할 여지가 많고 필요하면 언제든 쉬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산을 내려오는 과정은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관절에 많은 무리가 간다. 그리고 넘어지기가 쉽고 많은 사고가 발생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훨씬 위험한 과정이기도 하다. 그럼으로 산을 내려올 때는 오를 때와는 다른 자세와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이다.
50대에 접어들고 인생의 내리막길에 들어서게 되면 멀쩡하던 사람도 변하기 쉽다.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물질적 소유에 집착하며 지위를 탐하고 대접받기를 원하는 마음을 갖기 쉽다. 그 동안 자신이 모든 것을 바쳐 수고하고 성취했던 그 성취의 패러다임에 갇혀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불필요한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많이 나타난다. 이러한 하산의 시기에 나타나는 특징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등산 모드를 유지할 경우 사랑하는 가족들과 후배들에게 많은 피해를 줄 수 있고, 자신이 그 동안 산을 오르면서 쌓았던 성취들을 다 허물어 버릴 수도 있다.
더 많이 사랑하고 싶다
이제 하산의 시기를 맞으면서 하나님 앞에 더 철저히 더 벌거벗은 모습으로 서기에 힘써야 함을 많이 느낀다.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일뿐 아니라 지나온 시간들의 의미를 되새기며 지난 잘못들을 반성하고 더욱 새로워지기 위해 몸부림쳐야 할 것이다. 이제는 내 앞에 있는 목표뿐 아니라 나와 함께해 온 가까운 사람 한 명 한 명을 좀 더 소중히 여기고 챙기고 책임을 지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더 많이 감사하고 더 많이 사랑하기에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