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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만남

밥을 함께함은 생명을 함께함입니다 (2018.5)

 

 

 

 

밥을 함께함은

생명을 함께함입니다

 

   

임성현(대의초등학교)

 

 

 

인터뷰·사진 김정태

 

겁 많고 소심한 아이의 커밍아웃

저는 진주에서 나고 자란 진주 토박이입니다. 성실하지만 엄하신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 활동적인 남동생 이렇게 네 식구가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특히, 어머님 쪽으로 형제자매가 많으셨어요. 27녀 중 제 어머니는 둘째이십니다. 많은 이모들이 우리 집에서 자주 모이셨어요. 그런데 이모들 중에 두 분이 교회에 다니셨고 나중에 제가 집안의 반대 속에서 교회에 출석할 때 그 분들이 저의 신앙생활을 지지해 주셨습니다.

어릴 적부터 저랑 친하게 지내던 앞집 형이 중3 때 예수님을 전하며 제가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때 마음이 움직여 그 형과 같이 교회를 다녔습니다. 물론, 아버지 몰래 학교에 공부하러 간다고 하고 교회에 다녔지요. 고등학교 때까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 공부방에 성경책이 있는 것을 발견한 아버지께서 불같이 화를 내셨고 그 날 집에서 쫓겨났지요. 저는 아버지가 무서워 말대답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안 믿겠다고, 교회 안 다니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쫓겨났던 것이죠. 다행히 집 근처에 막내 이모님이 사셨고 그 이모님 댁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이모님은 제게 성경을 사 준 적도 있으셨지요. 그 후에도 몰래 교회를 다녔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제사 문제가 제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제사와 관련된 부분이 제 양심을 자꾸만 건드렸습니다. 그러다 고3을 마친 설날 아침, 도저히 제사를 드릴 수가 없어서 말없이 집을 나와 교회 교육관에서 숨어 있었습니다. 집에서는 저를 찾느라 난리가 났고 결국에는 제사 때문에 그런 것임을 알게 된 부모님은 그 후로 제사에서 저를 제외시켜 주었습니다. 소심하고 겁 많은 저는 그렇게 제 신앙을 커밍아웃 하면서 점점 하나님만을 찾는 사람으로 자라갔습니다.

 

초등학교 교사를 꿈꾸다

고등학생 시절 우리 학교에만 기독학생회가 없는 것을 알고 친구들과 함께 점심시간 큐티모임을 시작했습니다. 교실은 모임 장소로 적절치 않아 집사님이신 음악 선생님께 부탁을 드려 음악실을 빌렸습니다. 거기서 기독학생회를 시작했고 여러 명의 친구들과 함께 찬양하고 말씀을 나누며 풍성한 시간을 누렸지요.

그 시절 제 진로에 대해 생각하면 그저 막연히 과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고등학생 때 작문 선생님을 만나면서 초등학교 교사가 제 진로가 되었습니다. 그 분은 자기가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면 초등교사가 되고 싶다고 하셨지요.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함께 지내며 삶을 나누고 같이 놀면서 그들을 바르게 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은 초등학교 선생님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저에게 다가왔고 제 진로는 교대 진학이 되었습니다.

 

밥과 함께 임하는 평화, GT는 밥이다!

대학 입학 후 같은 과 친구(김병훈)를 따라 GT의 전신인 후세대 선교회 회관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그 때 회관에 있는 글이 제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교사로 부르셨습니다.” ‘그래! 내가 교대에 온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야.’

그렇게 후세대 선교회에 밥으로 시작된 인연은 정임준 간사님께 양육을 받기에 이르렀고 교사 선교사로서의 꿈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양육을 받을 때 정 간사님은 삶으로 교사 선교사의 모습을 보여주셨지요. 밤에 장거리 운전을 마다하지 않고 양육으로, 말씀으로 섬겨 주셨습니다.

같이 양육을 받은 김병훈, 이송철, 임성현은 사이가 좋을 때도 있었지만 가끔씩 서로의 성격 차이로 얼굴을 보지 않을 거라고 다짐할 만큼 싸운 적도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간사님이 기도와 이야기로 풀어 주셨는데 그 마무리는 항상 밥이었습니다. 희한한 것이 밥을 먹을 때마다 완고한 마음이 녹아내리더군요. 그런 경험을 하며 양육 안에서 하나될 수 있었습니다. GT는 지금도 밥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심지어 “GT는 밥이다.” 라는 표어까지 있습니다. 밥을 함께한다는 것은 생명을 함께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GT 총무간사 이임식 세리머니는 밥주걱을 넘겨주는 것입니다.

 

1회 기독교사대회의 감격

교직 첫 해인 1998년 여름, 1회 기독교사대회가 열렸지요. 학교로 날아온 기독신문을 보고 또 선교회 선배들의 기도를 들으며 첫 기독교사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제 기억에 98 기독교사대회를 앞두고 큰 태풍이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태풍이 지나가고 강원대학교 강당에 들어서서 기도하는 순간, 감격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 전투 이후에 이 세상에 자기만 남았다고 생각했을 때 하나님이 신실한 사람들을 통해 남은 자들을 보호하셨던 것처럼 우리나라 곳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분투하는 남은 자들을 모으셨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고 감사였습니다. 기독교사대회를 통해 경남에 후세대 선교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기독교사들이 있었고 그 때 만난 거제기독교사 모임 선생님들과 후세대선교회가 합쳐지면서 지금의 GT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초등 중심의 후세대 선교회가 중등과 특수를 포함한 GT로 거듭나게 되었지요.

 

거절을 보류로 해석하여 부부로 맺어지다

아내는 대학교 1학년 때 같은 과에서 만났습니다. 1992년도 진주교대에 영어과가 처음 만들어졌는데 영어에 대한 관심도 있었지만 사실 술을 많이 마시는 대학 문화를 바꾸고 싶어서 선배가 없는 과를 선택했습니다. 영어과 안의 인권복지부로 활동하는 아내와 같은 부원으로도 지냈지요.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영어과가 1년 만에 없어져 전과를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헤어진 아내를 다시 만난 건 3학년 때 후세대 선교회에 아내가 가입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전에는 그냥 좋은 친구가 왔다고 생각했는데 후배들을 섬기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점점 이성으로 다가왔습니다. 공식적으로 4학년 1학기까지는 이성교제가 금지되어 있는 선교단체에서 소심한 저는 말로는 표현 못하고 계속 아내의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이런 저를 눈치 채고 지금은 때가 아니다.” 라는 완곡한 말로 거절을 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지금은 아니니까 다음엔 되겠구나로 해석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물러났지요. 결혼 후에 아내가 그 때 내가 거절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나를 기다렸어?” 라고 물었을 때 저는 거절인 줄 몰랐고 당분간 보류로 해석했다.”고 답합니다. 하나님 은혜이지요. 아내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양육모임, 학급 아이들 초대, 지역모임을 할 때도 언제나 아내가 세심하게 챙겨 줍니다.

 

글을 못 읽던 아이들이 유창하게 읽는 기적을 만나다

20년 교사생활을 하면서 전문성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가르침과 생활지도에 관한 갈증이 컸습니다. 작년에 교사선교회 김중훈 선생님이 중심이 된 배움찬찬이 모임은 저의 교사 전문성에 대한 자존감을 높여 주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모임을 한 뒤 실제로 아이들을 만나서 지도를 했고 다음 모임에서 사례 발표와 조언을 들었습니다. 시골학교의 결손 가정이나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한글을 몰라 학습부진으로 빠지는 것을 진단하고 그 아이에게 적합한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음과 모음만 겨우 알아 책을 읽을 수 없었던 아이들이 2학기에는 유창하게 글을 읽는 것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2018 기독교사대회를 앞두고

2006 기독교사대회를 준비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GT라는 작은 단체가 큰 대회를 준비한다는 것이 설레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함께 고생하면서 많은 은혜를 누렸습니다. GT 공동체의 어떤 분은 주차 안내하다가 화상을 입었고, 어떤 분은 결혼도 대회 이후로 미뤘으며, 어떤 분은 1정 연수를 미뤘고, 어떤 의사 부부는 자신들의 귀한 휴가를 사용하여 의료 사역을 해 주셨습니다. 2018년 대회를 준비하면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 교육계가 변화될 수 없음을 압니다. 그래서 기독교사대회가 참 중요합니다.

지난 2016 기독교사대회에서는 지금까지의 기독교사운동을 돌아보고 앞으로 갈 길을 제시했습니다. 그 후 처음 시작하는 이번 대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누리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교육계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 그 능력을 힘입은 기독교사들입니다. 이 일을 우리가 섬길 수 있어서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정말 감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요즘 선배보다 후배가 많은 나이가 되니 장차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이 있습니다. ‘내가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기독교사로서의 꿈을 꾸며 달려왔는데 후배들에게는 어떤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아직 구체적인 것은 보이지 않지만 나를 키워 주고 자라게 한 공동체를 잘 붙들어야겠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근무하는 학교는 경남의 작은 시골 마을에 자리 잡은 소규모 학교였습니다. 면 소재에 여러 학교들이 폐교되고 딱 하나 남은 학교인데도 6학년 학생이 없어 인터뷰가 있었던 다음날부터는 순회교사로 여러 학교를 다녀야 한다 하셨습니다. 20명이 채 되지 않는 학생들 대부분이 다문화 가정이나 조손 가정 아이들이라 학습과 관련한 필요가 많다고 합니다. 임 선생님! 순회교사로 다니실 때 안전 운전하시고 오는 여름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기독교사대회를 섬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