떳떳하게, 의젓하게 손해 보는 삶을 선택하세요

| 손봉호 (좋은교사운동 초대 이사) 서울대학교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신학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자유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한국외대, 서울대, 고신대 등에서 교육과 연구에 전념하는 한편, 시민 운동에도 활발히 참여해 왔다. 1987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 198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1992년 공명선거시민운동협의회 등의 창립에 함께했으며, 밀알학교 설립과 샘물호스피스, 국제기아대책기구 등의 활동을 통해 고통받는 이웃을 돌보는 데 헌신해 왔다. 현재 교육의봄, 푸른아시아 등 여러 단체에서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나는 누구인가》, 《고통받는 인간》, 《약자 중심의 윤리》, 《산을 등에 지고 가려 했네》 등 다수가 있다. |
인터뷰 _ 한성준 이동진
사진 _ 정원
《좋은교사》 300호를 맞아, 좋은교사운동의 초대 이사인 손봉호 교수를 만났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내부에서 작은 갈등(?)이 있었다.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두고서였다. 교수, 장로, 이사장, 철학자, 사회운동가, 작가 등 워낙 다양한 활동을 해왔기에 빚어진 일이었다. 작은 헤프닝이지만, 어쩌면 이것이 그를 설명하는 단적인 예가 될지 모른다. 그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존경받는 어른’으로 오랫동안 자리매김해 온 것이다. 이번 만남을 통해 좋은교사운동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들어본다.
반갑습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손봉호입니다. 30년 간 교수로 일하다가 2003년에 정년 퇴임하고 지금은 백수로 살고 있습니다. (웃음) 교육의봄, 푸른아시아, 장기려기념사업회, PAUA교육협력재단 이사장으로 섬기고 있으며, 설교, 강의, 각종 칼럼 등을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삼일문화재단에서 청소년 윤리 가이드북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철학자이자 사회운동가로 그동안 한국 사회에 많은 역할을 해오셨습니다. 이렇게 학문과 현실을 함께 고민하는 삶을 선택하게 된 특별한 동기나 배경이 있었을까요?
젊었을 때는 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특히 영어에 관심이 있어서 영어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도 진학했죠. 그런데 군 복무를 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군대는 매우 부패했고, 이등병부터 대대장까지 거의 모두 도둑질을 일삼는 현실이었습니다. ‘이 사회에서 내가 영어학을 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학문이 아니라 사회를 계몽하고 교육하는 일이 더 의미가 있겠다고 느꼈고, 기독교인으로서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근본부터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신학을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 편지를 보냈죠. 저는 목회나 신학을 하려는 사람은 아니고, 사회 계몽과 교육에 관심이 있다고 밝혔더니, 시험을 처 보라고 하더군요. 시험에 합격해 입학했고, 그곳에서 3년 동안 공부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학문에 대한 열정이 다시 생기더군요. 여러 분야를 생각해봤지만 다 만족스럽지 않았고, 결국 신학과 가장 가까운 철학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 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자유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귀국해서 철학교수가 되었어요. 교수 생활을 하다 보니 다시 사회문제에 대한 책임이나 역할에 문제의식이 생겼습니다. 군대에서 느꼈던 그 문제의식이 다시 떠오른 것이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시민 운동이나 복지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 윤리의 출발점이라고 여러 저서를 통해 강조하셨습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윤리적 가치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에는 지켜야 할 기본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도 그 면에서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요. 제가 윤리를 강조하는 이유는 사실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조금 긴 설명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고통을 싫어하고, 행복을 추구합니다. 이 두 가지는 조건이 없는 본능적인 감정입니다. 서양 철학자들은 주로 ‘행복’에 집중해 왔습니다. 아리스토텔레
스도 그렇고, 공리주의의 핵심도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행복’보다 ‘고통’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기 이전에, 우선 고통받는 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물론 때로는 더 큰 행복을 위해 작은 고통을 감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단 인간은 본능적으로 고통을 피하려 하며, 특히 오늘날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고통은 타인에 의해 가해진다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C.S. 루이스는 《고통의 문제》라는 책에서 ‘인간이 겪는 고통의 4/5는 다른 사람에 의해 생긴다.’라고 했습니다.
윤리는 결국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가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이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도 모두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 이 원칙을 자발적으로 지키는 것이 윤리고, 강제로 지키게 하는 것이 법입니다. 그래서 법과 윤리는 본질적으로 ‘하지 말라’는 소극적 명령이라는 점에서 같지요.
그리고 일반적으로 고통을 가장 많이 겪는 쪽은 ‘약자’입니다. 강자가 약자에게 고통을 주는 일은 흔하지만, 그 반대는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윤리의 중요한 실천은 약자를 보호하는 데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도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돌보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가 바로 그들이 주로 고통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의 대표적인 사회적 약자들이었지요.
예수님 역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셨는데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핵심은 ‘타인의 고통을 줄이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결국, 우리 모두가 근본적으로 윤리적인 존재가 되어야 하고, 특히 그리스도인은 약자를 돌보는 삶을 통해 윤리적 책임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정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윤리란 별것이 아니라, 약자에게 고통을 가하지 않는 것입니다. 윤리 운동이란 약자를 보호하는 운동이요, 정의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아시아에서 가장 기독교인이 많은 나라인데도 아직 싱가포르, 일본, 대만, 부탄보다 더 부패하고 정의롭지 못합니다. 모든 한국인, 특히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되, 특히 불리한 위치에 있는 장애인, 가난한 사람들, 노인들, 외국 근로자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속이지 말고, 정직하게 납세하고, 부패와 부정을 제거하는 데 앞장서야 하겠지요.

교수님은 기윤실교사모임과 좋은교사운동의 시작에 큰 영향을 주셨습니다. 좋은교사운동의 이사로서도 오래 함께해 주셨는데요, 좋은교사운동을 시작할 때 어떤 기대와 의미를 품고 계셨을지 궁금합니다. 또, 그동안 우리 단체가 한국 교육에 어떤 기여를 해왔다고
보시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때는 사실 동기가 아주 단순했습니다. 당시 교육 현장에서 ‘촌지 문제’가 심각했거든요. 촌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형편이 나은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면 교사가 아무리 공정해지려 해도, 무의식적으로 학생을 차별하게 됩니다. 결국 교육의 신뢰가 무너지고, 사람들 사이엔 냉소가 퍼지게 되었죠. “교육자는 무슨 교육자냐, 다 돈 벌려고 하지.”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나라가 이대로 가면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학생이었던 송인수와 정병오 군을 불러 “이렇게 썩은 교육계를 위해 뭔가 해야 하지 않겠느냐.” 했지요. 그 두 사람의 신앙과 인품을 이미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은 이미 좋은교사운동을 시작할 마음의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더군요.
좋은교사운동은 정말 특별한 단체입니다. 다른 교원단체들은 근본적으로는 교사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일정한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반면 좋은교사운동은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교사가 먼저 잘하자.’라는 자세로 출발했고, 지금도 그 방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직능 중심의 실천 운동이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는 건 참 놀라운 일입니다.
좋은교사운동은 노동조합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순한 시민운동도 아닙니다. 자신들의 임무를 좀 더 책임 있게, 더 바르게 하자는 결심에서 출발한 독특한 단체예요. 그래서 저는 좋은교사운동을 하나의 새로운 ‘종류’라고 표현합니다. 분류할 수 있는 기존 틀에 속하지 않고, 그 자체로 하나의 카테고리가 되는 단체인 셈이죠.
저는 칼빈주의자로서 인간의 전적 부패에 대해 늘 경계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개인이나 단체든 오래 가면 부패하기 마련이고, 인정을 받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속한 단체에 대해 “아직까지는 괜찮습니다. 아직까지는….”이라는 말을 꼭 붙입니다. (웃음) 앞날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죠.
좋은교사운동은 ‘아직까지는’ 30년 동안 한결같이 중심을 지켜왔습니다. 실망스럽지 않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정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좋은교사운동의 초대 이사로서, 앞으로 좋은교사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조언도 듣고 싶습니다.
기독교 운동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동기가 순수하다면, 실패해도 괜찮아요. 좋은교사운동이 지향하는 순수한 목적에 충실하기만 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효과적인 전략을 개발하고 조직을 발전시키는 노력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라는 집착은 버렸으면 좋겠어요. 성공과 실패는 우리 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순수한 마음으로 학생들의 이익을 위해 힘쓰는 것이죠.
진정한 교육을 실천하고, 인성을 키우며, 소외된 학생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원칙에 충실하다면, 그 자체로 큰 가치가 있습니다. 성공보다 과정의 의미에 집중해 주세요.
방금 말씀해 주신 대로 좋은교사운동은 기독교사들의 연합입니다. 따라서 한국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가치와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붙들어야 할 가치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성경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아가페, 즉 ‘의지로 선택하는 이타적 사랑’이죠. 다른 종교나 철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가치예요.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령합니다. 원수에게 감정적 호감을 느끼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라’는 거죠. 하나님 역시 우리를 그런 사랑으로 대하십니다. 제가 기도할 때마다 ‘내가 과연 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깁니다. 하지만 동시에 큰 위로가 되죠. ‘형편없는 나도 하나님은 사랑하시는데, 내가 어떻게 학생들을 조건부로 대할 수 있겠는가?’라고요.
좋은교사운동도 이 원칙에 충실해야 합니다. 학생들을 ‘감정적으로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에요. 때론 훈계해야 할 때도 있고, 엄하게 잡아줄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오직 ‘그 학생을 위한 마음’으로 행동하는 거죠.
우리 사회가 아직 이 사랑의 가치를 다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그 실천 자체가 증거가 됩니다. 장기려 박사님처럼 ‘자기 이익’ 없이 오직 환자를 위해 헌신한 이들의 삶을 누가 존경하지 않겠습니까? 전도도 이런 사랑의 실천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야 합니다.
영국 소설가 조지 엘리엇의 말처럼, ‘타인을 조금이라도 덜 불편하게 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의 본질이고, 그리스도인이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는 길입니다.

교수님의 말씀이 정말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교수님께서 앞으로도 오래오래 한국 사회의 어른으로 함께해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앞으로 계획하고 계시는 일이나 목표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90 가까운 나이에 이제 무슨 큰 계획을 세울 수 있을까요? (웃음) 그저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며 조용히 살다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소원입니다. 특히 오랜 세월 여러 단체와 함께해 온 입장에서, 저의 실수로 인해 그들이 손해 보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해요. 내 명예보다 함께한 이들의 명예와 사업이 훼손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죠.
건강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프면 가족이 고생하고, 보험사도 손해 보니까 (웃음), 갑자기 2~3일 앓고 편히 떠나는 것이 제 바람이에요.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도 비겁하지 않게,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오래 살아야 할 사람들이에요. ‘진정으로 멋지게’ 살아주셨으면 합니다. 인생에는 온갖 유혹이 있습니다. 돈, 명예, 성적 유혹까지…. 우리 모두 약하니까 큰소리칠 순 없지만, 조금씩 이겨내는 연습이 중요해요.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약자를 위한 작은 희생’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갚아주실 거예요. 제 경험상, 손해 본 만큼 더 큰 보상이 돌아옵니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라는 믿음으로 떳떳하게, 의젓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특징이에요.
마지막으로, 오늘도 교실에서 아이들과 씨름하고 있는 선생님들께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아울러 월간 《좋은교사》 300호 축하의 말씀도 부탁드립니다.
우선, 월간 《좋은교사》 300호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25년 동안 초심을 잃지 않고 순수한 열정을 이어온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우리나라에서, 더 나아가 기독교계에서도 이런 일은 흔치 않습니다. ‘작은 충실함’이 모여 역사를 만든다는 걸 보여주셨죠.
교사의 일은 명예롭고 위대합니다.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건 교육 덕분이에요.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것도 결국 교육 아닙니까? ‘나는 지금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책임도 큽니다. 예를 들어, 제가 아는 대학 교수 중에 인터뷰를 절대 안 하는 분들이 있어요. ‘한 번 얼굴을 알리면 자유롭게 살 수 없다.’라는 이유죠. 저도 젊었을 때는 모르고 많이 나섰지만, 후에야 그 무게를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 ‘조심해야 한다는 각성’이 오히려 저를 성장시켰어요.
교사는 학생들에게 온전히 노출된 존재입니다. 작은 말 한마디도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예부터 ‘교사가 존경받는 이유’는 단순히 직업 때문이 아니라, 늘 스스로를 다듬고 조심하기 때문이에요. 야고보가 “선생 되지 마라”고 경고한 것도 이 무게를 알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는 ‘가르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조심하라’는 격려입니다.
이 책임을 ‘짐’이 아니라 ‘기회’로 삼아주세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 자리에 세우시면서 분명한 목적을 두셨을 겁니다. 교실에서의 하루하루가 기적의 씨앗이 됩니다.
300호를 시작으로, 앞으로도 ‘완벽한 성공’보다 ‘순수한 충실함’을 이어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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