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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타이밍의 예술이다(현병호 민들레출판사 발행인_2015.3)

좋은교사 2015. 4. 8. 11:51

교육은 타이밍의 예술이다

 

 

현병호 발행인 (대안교육연대, 민들레출판사)

80년대 후반부터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해오고 있고 대안교육운동 초기부터 대안교육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현재 대안교육연대대표를 맡고 있다. 출판을 통한 교육운동을 하고자 민들레출판사를 설립해 교육 관련 책을 펴내고 있고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기치로 1999년에 창간된 격월간 잡지 <민들레> 발행인을 맡고 있다. 또 탈학교 청소년들의 학습공동체 공간 민들레를 열어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저서로 <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가 있다.

 

 

인터뷰_ 임종화 / , 사진_ 임종화

 

몇 년 동안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대안교육 법제화 논의가 최근 교육부의 백지화 방침으로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학교교육의 위기와 탈학교 학생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제도교육의 대안으로 시작된 대안교육운동은 20여 년 동안 우리나라 교육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제는 잠시 멈춰서 대안교육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성찰하고 현재 교육 문제와 대안교육운동을 포함한 교육운동의 나아갈 방향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대안교육운동 초기부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격월간 교육잡지 <민들레> 현병호 발행인을 만나기 위해 <민들레> 사무실을 찾았다.

 

격월간 잡지 <민들레>와 출판사, 그리고 공간 민들레등을 통해 대안교육운동 초기부터 활동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교육운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처음 교육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20대 후반입니다. 당시 다른 분들도 그렇겠지만 20대를 많이 방황하며 보냈는데, 방황하며 곰곰이 제 성장과정을 복기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이런 인간이 되었는지 기억을 더듬으며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렇게 나에 대해 정리하다보니 모범생으로 길러진 내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니 세 가지로 정리가 되더군요.

그 첫 번째가 아이들과 노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아이들과 노는 것을 좋아해서 학교 마치면 한 집에 살던 젊은 부부의 아기를 보러 집으로 갔었어요. 지금도 같이 놀았던 그 아이 이름이 생각납니다. 이십대에도 주변에 항상 동네 아이들이 있었죠. 두 번째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그림은 소질은 있는데 열정이 없는 것 같아서 취미로 하기로 했어요. 지금도 가끔씩 민들레 책 표지나 삽화를 그리기도 하죠. 마지막으로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 좋아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과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어떻게 조화시킬까 생각 끝에 교육운동에 내 인생을 걸어볼 만하겠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그 고민의 결과로 대안교육운동을 시작하시게 된 건가요?

처음에는 아이들을 좋아하니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교사가 되려면 다시 교대를 가야하고 수능을 봐야 하는데 다시 그 과정을 거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그 때 대안학교가 있었으면 교사가 되었을 수도 있겠죠.

그래도 아이들을 좋아하니 어린이집 교사를 하면 좋겠다 싶어 당시 빈민탁아 운동하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탁아소 자원봉사 활동을 했어요. 저는 농촌에서 살고 싶어서 홍성, 순천에 있는 어린이집에서 자원활동을 하기도 했죠. 그러면서 책이나 잡지에 나오는 교육운동가들을 만나러 다녔습니다. 당시 대구교대의 김희동 선생 같이 새로운 학교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생겨나고 있었어요. 새로운 교육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임 같은 걸 시작해보자고 뜻을 모아 1995년에 대전 유성에서 첫 모임을 갖기도 했죠. 돌아보면 그 모임이 대안교육운동의 시발점 같은 것이었죠. 그 전에 또하나의 문화동인지를 보고 조한혜정 선생님도 찾아뵈었는데, 또문 캠프가 한동안 중단이 되었는데 다시 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소개해주셔서 같이 캠프를 하게 됐어요. 그 때 마침 공동육아 어린이집 1호인 신촌 우리어린이집 교사들이 연수차 온 것이 인연이 되어 어린이집에 자원활동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공동육아연구원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군요. 윤구병 선생님과 보리 출판사에도 함께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민들레출판사를 만들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윤구병 선생님이 보리출판사를 막 만들어서 자리를 잡아갈 때였는데, 선생님이 월간 <우리교육>에 실험학교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었어요. 그 글을 읽고 그런 학교를 같이 만들고 싶은 마음에 윤구병 선생님을 찾아갔었어요. 근데 아직은 준비가 안 되었으니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같이 준비하자고 제안하셔서 출판일을 하게 됐죠. 제가 <우리교육>에 기고한 글을 보고 판단하셨던 것 같아요. 변산을 오가면서 농사일도 같이 하면서 학교 만드는 일을 준비했는데, 제 스타일이 빡빡한 공동체 생활과는 안 맞는 것 같아서 변산으로 들어가는 건 포기를 했죠. 같이 밭일을 하다가도 노을이 지면 그걸 봐야 하는데 혼자 멍하니 노을을 보고 있을 수는 없는 거죠. 그래서 친구랑 같이 충북 괴산으로 귀농을 준비했었어요.

민들레출판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이한의 <학교를 넘어서>라는 책 출판 때문이었습니다. 보리출판사에 있을 때 그 원고를 받았는데, 당시 원제는 <학교를 해체하라>였어요. A4 200장 정도 되는 분량이었는데 내용을 읽고 깜짝 놀랐죠. 대학 1학년생이 근대학교 시스템에 대한 분석과 대안까지 제시하는데 읽으면서 가슴이 뛰었더랬어요. 하지만 책으로 내기에는 너무 거칠어서 보완작업을 하게 했는데, 제가 나온 뒤에 보리에서는 출판이 힘들겠다고 했다는 거예요. 다른 출판사들도 몇 군데 알아봤지만 마찬가지였어요. 교사들에 대한 비판이 너무 적나라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제가 직접 출판을 하겠다고 했죠. 우리 사회에 탈학교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었어요. 19985월에 민들레출판사를 열고 <학교를 넘어서>를 그해 11월에 출판했죠. 그리고 이듬해 1월에 격월간 잡지 <민들레>도 창간했구요. 처음에는 2,000부를 찍어서 아는 단체에 막 뿌렸는데 예상보다 반응이 폭발적이었고 정기구독 신청이 날마다 열 명 넘게 이어졌어요. 타이밍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민들레는 잡지, 출판사와 함께 탈학교 학생의 모임인 공간 민들레로도 알려져 있는데 공간 민들레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만들었다기보다 그냥 만들어졌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겁니다. 어느 날 청소년 한 명이 <학교를 넘어서>를 읽고 저자를 만나고 싶다고 출판사에 찾아왔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를 하고 서점에서 이 책을 보게 된 거죠. 그렇게 아름아름 청소년들이 찾아와 출판사 한 쪽에 있는 소파에 죽치고 앉아 노닥거리면서 출판사가 자연스럽게 청소년 사랑방 같은 공간이 된 거죠. 어른들이 찾아오면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하면서 아주 이상적인 배움터 같은 분위기가 형성됐죠. 초기에는 거의 출판일을 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그러다가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따로 공간을 분리시켰다가 다시 합치면서 민들레사랑방에서 공간 민들레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죠. 처음에 민들레를 찾아 온 친구들은 학교와 싸우면서 또 부모와도 싸우면서 학교를 제 발로 뛰쳐나온 친구들이어서 에너지도 넘치고 자율적으로 다양한 소모임을 만들어서 활동을 했어요. 그런데 점점 상처 입은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사랑방 기능만으로는 어렵고 안방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1년 과정의 공간 민들레를 열게 되었습니다.

 

민들레는 초기에 대안학교보다 탈학교, 홈스쿨을 더 강조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도화에 대한 거부감이 느껴졌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교육운동 초기에 근대학교 시스템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다보니 탈학교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워낙 학교에 상처받는 아이들이 많았고,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학교를 뛰쳐나올 때였죠. 부모들도 제도교육에 질릴 만큼 질려서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 상황에서 학교 밖에도 길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그런 느낌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교육이 곧 교육은 아니다, 삶이 곧 교육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초기에는 전략적으로 홈스쿨링을 상당히 비중 있게 다뤘었는데, 2000년대 들어서면서 비인가 대안학교들이 늘어나면서 대안학교 쪽으로 비중이 옮겨졌죠.

 

대안교육운동 초기부터 지금까지 20여 년 정도 이 운동을 해 오셨는데 대안교육운동을 돌아보실 때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쉽고 반성하게 되는 점은 대안교육을 하는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대안교육의 울타리에 갇혀 있지 않나 하는 점입니다. 학교를 운영하기에도 벅차다 보니 그렇게 되는 측면도 있지만 대안교육 하는 사람들끼리만 교류하다 보니 전체 교육을 보지 못하고 우물 안에 머물게 된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대안교육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 패착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자기 정체성을 너무 안이하게 잡은 거죠. 교육운동 차원에서 근대교육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생각을 깊이 하고 치열하게 토론하면서 방향성을 잡았더라면 이런 이름을 안 썼을 것 같아요. 논리도 치밀하지 못하고 낭만적이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첫 단추를 그렇게 꿰면서 운동이 그 틀에 갇혀버린 느낌이 듭니다.

진짜 대안적인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은 공교육 안에 있거나 학교 바깥에 있습니다. 물론 도시형 대안학교 가운데는 그런 아이들을 보듬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교육운동 차원에서 볼 때 너무 부족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또 대안학교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면서 기숙형 학교들의 경우 신입생들이 줄어들고 있어요. 조심스럽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대안교육운동이 미국이나 서구처럼 빠르게 쇠퇴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계속적으로 근대교육의 문제를 말씀하셨는데, 근대교육의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가요?

근대교육은 시작부터 부국강병을 위한 수단이었죠.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교육을 했던 거죠. 근대국가 태동기에는 무력전쟁이었다면 20세기 들어서는 무역전쟁으로 바뀌면서 자본의 힘이 점점 커지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철저히 인적자원으로 취급되었죠. 우리 사회도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잘 살아 보자라는 논리로 교육을 바라봤죠. 김대중 정부 때 교육부 명칭이 교육인적자원부로 바뀐 것이 단적인 모습이라고 봐요. 국가가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 자본가,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정치 시스템, 그리고 거기서 교육도 벗어날 수 없는 한계, 그 현실에서 교육운동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생겨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국가주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안교육운동을 시작하면서 국가의 공적 기능까지도 부정하게 된 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공성을 지키는 역할은 강화해야 되는 측면이죠. 자본의 힘에 저항할 수 있는 공공 영역은 지금보다 더 키워가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근대교육의 문제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대안교육운동의 한계도 말씀해 주셨는데 그럼 지금 어떤 대안교육의 모델이 필요할까요?

예를 들면 미국의 알바니 프리스쿨모델[각주:1]이 있습니다. 이 학교는 미국 중소도시 변두리에 있는 마을학교인데, 지역에서 오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다 받습니다. 그래서 중산층, 빈곤층, 흑인, 히스패닉 등 학생들의 계층과 인종이 다양합니다. 초창기 멤버가 학교의 방향을 잘 잡은 거죠. 재정 자립을 위해 변두리 건물을 매입해서 교사들이 직접 건물을 수리해서 임대도 하면서 학교를 꾸리고 있죠. 마을공동체학교의 정체성을 40년 동안 잃지 않고 이어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교육의 다양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작 대안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다양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기숙학교 같은 경우 대체로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비슷비슷한 환경의 아이들이 다니고 있죠. 아이들이 친구네 집에 가서 놀라는 게,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이 다 비슷하다는 거예요. 교육생태계가 다양하지 못한 거죠. 학교의 구성원들이 너무 동질적인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최근 교육부에서 대안교육의 법제화를 추진하다가 대안교육운동 진영의 반발로 인해 포기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안교육 법제화에 대한 의견이 궁금합니다.

큰 그림에서 볼 때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민간이 아무리 공공성을 지향한다 해도 언제든지 부패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규제할 수 있는 공공 영역이 활성화되어 일정 정도 공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도 대안학교라는 이름으로 입시 명문학교 비슷하게 운영되는 곳이 적지 않습니다. 국가의 규제가 아니라 공공의 규제가 필요한 거죠. 이를테면 법제화되더라도 대안학교협의회같은 공적인 기구를 통해 공공의 규제가 가능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법제화 때문에 약간의 자율성이 침해를 받더라도 그 정도는 감수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대안교육이 법제화되더라도 혁신학교보다는 자율성이 더 있을 겁니다.

 

최근 서울시 교육청이 덴마크의 애프터스쿨과 아일랜드의 전환학기제를 모델로 추진하는 인생학교준비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인생학교를 어떻게 보시나요.

저는 인생학교가 고등과정의 자유학기제를 학교 밖에서 만드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고. 학교 살리기, 공교육 정상화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의 전환점이 필요한 아이들이 자기 길을 찾을 수 있게 돕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성장기 청소년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시간이라고 봅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인생을 길게 내다볼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죠. 그런 청소년들에게 시간과 친구를 돌려주자는 측면에서 인생학교는 매우 의미가 있는 시도라고 봅니다. 아마 인생학교를 거친 십대들은 이십대를 훨씬 덜 헤매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민들레>와 선생님의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19991월에 시작한 잡지 <민들레>는 올해 7,8월호가 100호가 됩니다. 100호 이후에 약간 변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민들레는 유아부터 초등, 중등, 거기에 부모와 교사들이 있어서 독자 폭이 상당히 넓은데, 주된 독자층은 젊은 엄마들입니다. 교육운동 차원에서 지금까지 소홀했던 어린 아이와 그 부모들에게 조금 더 비중을 실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아 시기 아이들의 성장, 유아교육, 보육 등이 교육의 변화에 중요하기 때문에 더 신경을 쓰려고 합니다. 그리고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와 교육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변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좋은교사운동 선생님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신앙이나 교육 모두 내가 나 되는 것, 자기가 자기다워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결국 아이들이 타고난 가능성의 씨앗이 꽃을 피우도록 돕는 일이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근대교육은 아이들을 표준화, 서열화시키면서 그걸 오히려 억눌러왔죠. 어렸을 때 우리나라 참고서 시장을 주름잡았던 <표준전과>, <필승> 참고서, 그 이름이 근대교육의 패러다임을 극명하게 담고 있었다고 봐요.

어떻게 보면 교육은 쉬운 일 같기도 합니다. 가르치는 교과들의 근본을 들여다보면 국어, 영어는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 사회 교과 자연 교과는 세상을 알자는 것, 도덕 교과 등은 자기를 알자는 것이잖아요. 자기를 알고 세상을 알고 세상과 소통할 줄 아는 힘을 기르면 잘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힘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이겠구요.

현재는 가르치는 교과가 그런 힘을 길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인데, 사실 그런 교육은 교과를 통하지 않고 놀면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성장에는 수업 시간보다 노는 시간이 더 중요할지 모릅니다. 어렸을 때는 노는 시간을 더 많이 주고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지를 교사들이 잘 관찰하고 적절히 교육적인 요소를 가미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교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관찰력과 통찰력입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꿰뚫어보고, 교사가 개입해야 될 때와 물러날 때를 알아야죠.

그런 의미에서 교육은 타이밍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단순히 직업인으로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같이 공부하고 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주변 상황이 아무리 나쁘다 해도 좋은 교육이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감옥에서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학교가 망가지고 힘들다고 해도 한 선생님 때문에 아이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든 열려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사라는 직업은 참 해볼 만한 직업, 인생을 걸 만한 직업입니다. 세상에서 가슴 뛰게 하는 일이 많지 않은데 교사는 가슴 뛰게 하는 일입니다.

 

자신이 속해 있는 대안교육운동에 대한 성찰과 비판을 들으며, 변하지 않는 교육의 본질을 위해 교육운동은 끊임없이 현실 문제를 직시하고 변해야 한다는 것, 이상만을 붙잡고 현실을 외면하며 안주할 때 그 운동의 생명력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이러한 성찰은 좋은교사운동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현장에서 교사를 통해 한 아이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교사가 가슴을 뛰게 하고 인생을 걸 만한 직업이라는 말씀이 한편에 따뜻하게 남는다. 선생님들에게 묻고 싶다. 오늘 학교와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는지.

 

  1. ‘알바니 프리스쿨’에 대해서는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가 쓴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민들레, 2005)을 참고.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