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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책갈피

글러먹은 아이를 좋아하는 바보 같은 선생님이 있었어요.

눈이 펑펑 오는 날, 5살 난 아이가 벌거벗은 채 대문 밖에 쪼그리고 앉아 추위와 부끄러움으로 벌벌 떨고 있었어요. 가게에서 과자를 훔쳤거든요. 예수 믿는 집 아이가 도둑질을 해서 동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던 벌이었지요. 평소 술꾼이라 손가락질 받던 옆집 아줌마가 지나가다가 그걸 보고는 외투를 들고 나와 벌거벗은 아이를 덮어 주었어요. 한참 후 옆집 아줌마의 도움으로 아이는 집에 들어갔고, 밤늦도록 말없이 울기만 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참 글러먹은 아이로구나' 생각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아이가 남들 다 가진 샤프펜슬을 사 달라고 아버지를 졸랐더니, 주일학교에서 받은 연필을 다 써야 사 주신대요. 눈치 없는 주일학교는 연필을 자꾸 줬어요. 어느 날 앞자리 친구가 샤프펜슬을 떨어뜨렸고, 아이는 그걸 밟고 있다가 감추었지요. 집으로 돌아와 숙제를 하다가 아버지에게 샤프펜슬을 들켜 두들겨 맞았어요. 아버지는 담임 선생님께 편지를 써 아이 손에 쥐여 학교로 보내셨지요. "제 여식이 도둑질을 했으니 혼내 주시고 주인에게 물건을 돌려 주십시오"라고 적힌 편지를 선생님께 드리고는, '나는 주웠는데 아버지는 자꾸 훔쳤다고 한다'며 뻔뻔하게 굴었지요. 선생님은 "이렇게 훌륭한 아버지를 두었으니 너는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 하시는데, 아이는 속으로 '아니에요, 난 글러먹은 아이에요'라며 선생님이 참 바보 같다 생각했어요.

몇 달 후 운동회 날, 아이는 계주 선수로 나갔는데, 샤프펜슬 사건 때문에라도 정말 잘 뛰고 싶었어요. 하지만 2등으로 받은 바통을 꼴찌로 넘겨줬네요. 구석에서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는데, 선생님이 환하게 웃으며 "두 갈래로 머리 묶고 뛰니까 토끼처럼 귀엽더라" 하셨어요. 아이는 '바보 같은 선생님이 날 진짜로 좋아하는구나' 느꼈어요.

아이는 자라 선생이 되었는데, 죄 짓고도 뻔뻔한, 자기가 글러먹은 줄 아는 아이가 많다는 걸 알았어요. 아이는 또 잡지의 기자가 되어 선생님들의 설문 응답을 정리하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처럼 글러먹은 아이를 좋아해 주는 바보 같은 선생님들이 많다는 걸 알았어요.

[ 2009년 8월호 책갈피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