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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만남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2013.12)

주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모이는 곳에 반드시 함께해 주시고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시작은 참으로 미약하고 부끄럽지만, 주님께서 함께하시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것들이 가능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안양 백영고등학교 이남선 선생님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

 

 

 

 

 

 

·김기웅

 

 

 

 

 

지난 1025일 백영고등학교에서는 고3 학생들을 위한 깜짝 게릴라 콘서트가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의 삶이 변하고, 학교와 제자들을 바라보는 사랑이 커지면서 학생들을 위한 특별한 깜짝 이벤트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업무로 분주한 선생님들이었지만 30여 명의 선생님들이 시간을 쪼개 연습과 리허설도 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온 고3 학생들을 위한 깜짝 공연은 축복의 이벤트였습니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찾아간 저녁에도 깜짝 공연을 위한 막바지 준비를 위해 다시 학교로 들어가는 백영고 선생님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오늘 인터뷰를 위해 만날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반갑게 맞이하며 따뜻하게 웃어 주시는 그분의 명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교단에 선 교사 이남선. (교단에 선 선교사라는 의미)

 

4대째 예수 믿는 가정의 기도하는 어머니와 할머니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두 누나와 형 아래에서 4남매의 막내로 성장하였습니다. 저희 가정은 4대째 기독교 신앙을 지켜가는 가정입니다. 외증조모 때부터 저의 할머니, 저의 어머니에서 저까지 이어진 기독교적 가풍의 영향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고 기도하기를 힘쓰는 가정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제가 어디를 가든 저를 위해 변함없이 기도해 주시는 저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들입니다. 모태신앙의 익숙함으로 잠시 주님 품을 떠나 철없이 방황하던 10대 시절도 있었지만, 청소년기의 방황과 고민들은 주님을 더욱 제 안에 인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주님 앞에 헌신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믿음을 가르쳐 준 친구

저의 신앙은 믿음의 가정에서 물려받았지만 제가 스스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은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였던 황윤호라는 친구입니다. 청소년기에 부모님의 연이은 사업 실패와 가정환경의 어려움으로 잠시 학교 밖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학생답지 않은 삶을 살아갈 즈음, 같은 반 친구였던 윤호와의 만남은 제 인생에 중요한 기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많은 분들이 은혜를 받았던 두란노 경배와 찬양 집회에 저를 데리고 가, 제가 다시 한 번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친구를 통해 크리스천의 삶, 그리고 예수님이 제 인생에서 어떠한 분인지를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저는 철없던 십대의 삶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주변 정리를 시작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기로 제 삶을 결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결단은 20대의 저를 헌신으로 이끌었습니다.

 

바다 위, 복음의 전령사로

십대의 회심은 20대의 저를 구체적인 헌신의 삶으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대학 시절 과 선배의 권유로 낙도 선교회에서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낙도 선교회를 통해 대학 생활 동안 신안 해안 지역의 미 자립 섬 교회를 방문하여 교회 사역을 돕고 지역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훈련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선교사의 삶을 살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대학 졸업 후, 영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오엠선교회’ (전 세계 110여 개국에서 온 5,400여 명이 선교사들이 활동하는 국제 선교단체. 당시 총재: 조지 버워, 한국 이사장: 옥한흠 목사)에 지원하였습니다. 낙도 선교회를 섬기던 대학생에서 이제 한국인 선교사가 되어,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온 선교사들과 함께 한 공동체가 되어 다국적 팀과 함께 선교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저는 오엠선교회 소속 둘로스(Doulos)라는 선교선에 승선하게 되었습니다. 사역하는 2~3년의 기간 중 절반 이상을 배에서 생활하는 불편함도 있었지만, 해안 지역에 밀집한 미전도 종족 지역에 전략적으로 접근해 방문한 항구의 학교, 고아원, 교도소, 병원, 장애인 시설 등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강력하게 전하는 복음의 전령사로 사는 것은 정말 보람 있었습니다.

 

닻을 내린 학교에서 애통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며

그러다 2008년 오엠선교회에서의 사역이 종료되고 2009년 백영고에서 종교 교사로 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캄보디아에서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던 저의 발걸음을 이곳 평촌에 묶어 두셨습니다. 처음 경험한 교직 사회는 이전에 제가 경험했던 선교사 공동체와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학교 분위기는 미션 스쿨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학교 내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들로 가득했습니다. 한 일간신문의 백영고 강제 종교 수업이라는 편향적인 학교 관련 보도는 우리 학교를 일반 공립학교보다도 종교 활동이 더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미션 스쿨인 학교는 점점 미션을 선포하는 주체가 아닌 미션의 대상인 선교지의 안타까운 모습으로 변해갔고,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종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저는 무엇이 우리 학교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뜻인지 구하면서 매일매일 애통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2010 기독교사대회 이후 새롭게 뿌려진 기도의 씨앗

그러한 가운데 저는 같은 학교 김태현 선생님의 소개로 2010 기독교사대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서 저는 이 땅에 저와 같은 고민을 가진 교사가 저뿐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전국에서 모인 선생님들의 주집회장에 가득 채우는 간절한 기도와 찬양 소리를 들으며 큰 위로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 정말 행복한 34일의 시간이었습니다. 강사님으로 오신 화종부 목사님은 메시지를 통해 그간 영적으로 피폐해 있던 저를 매 시간 따뜻하게 먹이셨고, 룸메이트로 만난 CCC 출신의 한 선생님은 3일 내내 친절한 권면과 중보기도로 제 안에 잊고 있던 선교사의 야성(野性)을 흔들어 깨워 주셨습니다.

우리가 일하면 우리의 일만 가능하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라는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기도! 기도! 기도! 그것이 백영고와 저에게 던져 주신 하나님의 생명줄이었습니다.

 

When we Pray, God Works!

2010년 이후 3년 동안 백영고에서는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습니다. 그간 흩어져 있던 기독교사 선생님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기 시작했고, 무슨 일이든 시작과 끝은 기도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하자 하나님은 참 놀랍게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기도 모임의 시작으로 그간 학교에 팽배했던 불신과 반() 기독교 정서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고, 무엇보다도 절대로 바뀔 수 없을 것 같았던 학교의 어려운 일들이 해결되면서 학교의 방향성이 급변하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이전까지는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주변의 동료 교사 선생님들이 하나둘씩 기도 모임에 참석하면서 이제는 신실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되돌아보면 학교 내의 이러한 변화는 정확히 2010 기독교사대회 이후에 시작된 기도 모임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을 보면서 기도 모임으로 함께 모이는 선생님 모두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가 아닌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고, 더욱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강 시간이나 자투리 시간에도 릴레이 기도를 하며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매월 기도 편지를 만들어 믿음의 선생님들과 함께 공유하며 때를 따라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여름, 겨울방학 기간에는 자체적으로 기독교사 수련회를 열어 방학기간 동안 흐트러지기 쉬운 선생님들의 영성을 다시 부여잡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서 412절의 말씀처럼 백영고의 기도 공동체가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견고해지는 놀라운 순간이었습니다.

 

 

신실한 믿음의 동역자, 나의 기도 친구!

이런 뜨거운 교사 모임이 학교에 존재하냐고요? 그 대답으로 신우회 모임에 참여하는 한 선생님의 글을 옮겨 봅니다. (참고로, 이 분은 논리성과 합리성이 부족하면 잘 믿지 않는 성향의 수학 선생님입니다.)

 

교직에 들어서면서 줄곧 '나는 교회 생활 잘 하고 있는데, 학교에서 굳이 그 정체성을 드러내야 하는가?','평일에는 수업에 충실하고, 주말에 교회 열심히 섬기고 있는데, 굳이?'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해 왔는데, 이 모임은 이제 나의 생각을 이렇게 지배하고 있다.

'직장에서도 기도할 수 있구나!','이곳이 나의 선교지이며, 교육이 나에게 주신 사명이구나!','복음의 아름다운 진리를 어떻게 수업에 잘 녹여 풀어낼 수 있을까','학생들을 어떻게 더욱 사랑할 수 있을까 ','학생들의 필요나 고민거리를 기도 제목 삼아 기도할 수 있을까','내가 누리는 이 기쁨을 어떻게 소개하고 함께 경험하게 할 수 있을까 '

전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던 기독교사의 사명을 실제적으로 발견해 가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지혜안에서 진화하고 있습니다. 기도 모임 하다가 작년부터는 말씀을 더욱 상고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어 신우회 안에서 성경 통독 운동도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바쁜 중에 과연 가능할까 '하면서 시작한 통독 운동은 놀랍게도 하루에 20장씩, 3개월 만에 1독을 하게 되었고, 올해도 어김없이 통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 제가 기도 모임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이 모임을 처음 시작한 이남선 선생님의 '물량 공세'였습니다. 아기 옷을 선물하시며 제 자녀의 탄생을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셨던 선생님은 제가 기도 모임에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기도와 권면을 쉬지 않으셨고, 결국 미안한 마음에 참석한 기도 모임이 제 교사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었습니다!

 

 

교단에 선 교사

백영고에 첫걸음을 디딘 그 때는 선교사도 아니고, 교회의 목회자도 아니고, 교사도 아닌 저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누구일까? 백영고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종종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제 생각을 뛰어넘으셔서 선교사이면서 목회자이면서 교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저를 통해 백영고에서 마음껏 일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당장은 나의 가는 길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단련하심과 일하심 뒤에 보게 된 열매들은 참으로 값진 것이었습니다. 나를 내어 놓고 순종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더 크게 일하실 수 있다는 교훈을 백영고에서 함께한 5년간의 시간을 통해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제 앞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다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사역을 또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순종하면서 교단에 선 교사로 나아갑니다.

 

이 시대 기독교사들을 응원합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태복음 18:20)라는 말씀이 현실이 되어 이제 많은 지체들이 주님의 동행하심을 철저히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기도 모임 자체를 꺼리고 피하던 교사들이 바쁘고 핍박받고 힘들어서 오히려 더 모이는 믿음의 지체들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전국 각처에서 어렵게 기도 모임을 고민하고 개척하고 꿈꾸시는 선생님들! 주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모이는 곳에 반드시 함께 해 주시고 역사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의 시작은 참으로 미약하고 부끄러운 것이지만,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축복하시는 가운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것들이 가능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선생님들, 오늘도 힘내시고 그 믿음의 길로 순종하고 나아가시길 간절히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