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워킹맘인 저에게 대학 시절부터 배우고 가르쳐 왔던 ‘양육’은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 식지 않는 은혜를 지속적으로 경험케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전주 서신초등학교 원영신 선생님
양육하라! 그리하면 살리라!
글 / 사진·김기웅
든든한 영적 백그라운드
저는 참으로 축복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가족사를 살펴보니, 외증조부께서는 구한말 개화의 흐름 속에서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장로님으로 섬기셨던 분이시고, 이후로 저까지 4대째 모태 신앙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장로님 아버지와 권사님 어머니가 세우신 믿음의 가정 아래에 2남 1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제게 주신 음악의 은사를 하나님께 드리도록 훈계하시고 초등학교 때부터 교회 반주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에 대한 평판이나 나쁜 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퇴직하시기까지 회사에서 업무용으로 제공한 휴대전화 등 그 어떤 물품도 개인 용도로 사용치 않으시고, 매우 아끼면서 공적인 일에만 사용하셨습니다. 어머니께는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 밥 지어 주며 잘 대접하는 섬김을 배웠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해야 함을 삶으로 보여 주셨고 지금도 저는 흔들리지 않는 삶의 지침으로 본받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다
모태 신앙이었던 저는 인천교육대학교에 입학해 1학년 때 참여한 교사선교회 수련회에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 삶을 달라지게 만든 경험이었습니다. 예배의 감동이 무엇인지를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경험하면서 지금까지 듣고 알기만 했던 성경 말씀이 새로운 말씀의 세계로 다가왔고, 은혜로 인한 열정이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시절에 초등 음악 교육을 전공하면서 <월간 음악>이라는 잡지 1995년 7월호에 사진이 실렸었어요. 인천교대 음악교육과 현악분과 졸업생들이 함께했던 아마추어 앙상블이었죠. 1년에 두 번 정기 연주회를 가졌었고 매주 토요일 음악당에 모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습했었죠. 그러나 이것도 교사선교회를 위해 미련 없이 내려놓았어요. 이런 열정도 ‘양육’이 없었다면, 곧 식어버렸을 거예요. 제 인생 전반에 걸쳐서, 양육은 식지 않는 은혜를 지속적으로 경험케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결혼 이후의 도전과 공동체
대학을 졸업하고 신규 교사였던 그때는 PC통신 시대였어요. 당시 유니텔에는 ‘마하나임’이라는 기독교인 채팅방이 있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실명을 사용했고, 건전한 분위기에서 만남이 가능했지요. 나중에 들은 남편 고백에 의하면, 저를 처음 만나던 날 제게서 빛나는 아우라가 느껴졌다고 합니다. 해질 무렵이라 그랬던 것인데, 콩깍지가 씌었던 상태인지라 지는 해도 저를 빛나게 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저희의 채팅은 결혼까지 이어지는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저는 공부하는 남자, 믿는 가정의 사람, 키가 178cm인 사람을 이상형으로 기도했었는데, 이러한 배우자 기도 제목을 하나님이 다 이루어 주셨어요. 후배 미혼 기독교사들도 세밀하게 기도하세요. 세밀하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랍니다.^^
대덕연구단지에서 잘 나가는 연구원이었던 남편은 20대가 가기 전에 한의사에 도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험에 통과시켜 주셔서, 남편은 다시 학생 신분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자녀 둘을 낳고 제 육아휴직 기간까지 맞물리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도 거치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가난한 가정들의 삶을 볼 수 있었어요. 이 일은 복직해서도 가난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가정과 제자들을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남편의 학교를 따라 전북이라는 낯선 땅에서 살게 된 것은 또 다른 축복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교사선교회의 한 가정(현재 전북 교사선교회 책임간사이신 방호동, 김은경 선생님)이 지역 교사모임 개척을 위해 전북으로 내려오신 것이었어요. 그렇게 전북 교사선교회 모임의 창립 멤버가 되었습니다. 창립 예배를 드리면서, 감사와 감격의 눈물이 그치지 않았어요. 대학 시절에 꿈꾸게 하신 기독교사의 소명을 이곳에서 펼칠 기회를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복직이 임박했을 때에 허락하신 공동체는 제겐 하나님의 섭리요, 손길이었습니다. 복직 후의 교사의 삶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공동체 덕에 작은 시골학교까지 자녀를 데리고 먼 거리를 출퇴근 해 연구부장으로 일하면서도 곤고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양육하라 그리하면 살리라!
남편 세워주랴, 자녀 뒷바라지 하랴, 학교에서는 부장급 중책을 맡으랴, 교회에서는 맡은 직분을 섬기느라 고달픈 이 시대의 워킹맘의 생존 전략을 묻는다면, 그것은 대학 시절부터 배우고 가르쳐 왔던 ‘양육’이었습니다. 정기적인 양육 모임, 양육 리더와의 깊은 관계는 기독교사의 사명을 늘 일깨워 주었습니다. 지금도 전주에서 여러 선생님들과 ‘전주비빔밥 교사 양육팀’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교사선교회에서 제자 양육의 대가로 통하는 서정자 선생님께 제자 양육의 비밀을 전수 받아 오면서, 이제는 공급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순종하면서 영적인 성장을 경험하는 양육의 맛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충분히 훈련 받고 결혼한 것이 제 생존 비결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시댁에서는 주부로 남편을 잘 돕기를 원하셨고, 6년간의 휴직 끝에 복직한 후 열심히 사역하는 ‘교사’ 원영신을 남편이 언짢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사의 사명이 아니라면 난 교사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한편으로는 남편이 하나님이 주신 직업의 영적 공동체에 속해 하나님께 그 삶을 올려드릴 수 있기를 기도했지요. 그러던 중에 남편의 직업이 연구원에서 한의사로 바뀌면서 공동체 ‘누가선교회’에 함께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직업 영역에서 일하는 선교사의 삶이 얼마나 귀한지를 남편이 깨닫게 되면서 ‘교사선교사 원영신’을 격려해 주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남의 자식 잘 가르치고, 내 자식 잘 못 가르치면 피눈물 난다
‘가정’은 저의 최우선입니다. 단언컨대 열혈 아줌마 기독교사는 다른 사람 몇 배의 삶을 사는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지금도 늘 남편 밥 차려 주고, 교사모임으로 출발합니다. 특히 저는 제자 양육모임에 자녀를 늘 데리고 다녔습니다. 내 자녀들에게도 영향력 있는 영적 리더가 반드시 필요하고, 부모들이 영적 리더십을 가진 자로 자녀를 길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이자 리더로서도 자녀에게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죠. 열심히 사역하시는 크리스천 가정들을 살펴볼 때에, 부모가 훌륭하다고 자식까지 훌륭한 것은 아님을 종종 보곤 합니다. 부모가 열심히 사역하는 동안에 자녀들이 외롭게 훌쩍 커 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 가정도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꿈꾸는 소망 한 가지가 있습니다. 좀 더 늙으면 며느리와 사위까지 양육을 할 작정입니다. 내 자녀에게 영적 리더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고 싶습니다.
본이 되는 리더의 삶
제가 생각하는 ‘양육’을 정의해 본다면, 부모가 자녀를 키우는 이치와 비슷해서 육신 성장뿐만 아니라 말씀 안에서 전인격적으로 예수를 닮고 성장할 수 있도록 부모의 마음으로 돕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리더는 부모처럼 시간, 물질, 기도의 헌신을 기꺼이 감당하며, 대가가 없고 눈에 보이는 결실이 없더라도 인내하면서 섬기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로 가르치는 것보다는 ‘본’이 되는 리더의 삶이 더 중요해 보입니다. 멤버는 리더를 닮아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리더가 말씀 암송을 대충 하면, 멤버들도 이 영역은 약해집니다. 리더가 방학 때 안 모이니까, 멤버 선생님들이 나중에 리더가 되어서도 방학 때는 잘 모이지 않게 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리더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서신초의 자랑거리, 비전 온 모임
지금 근무하는 서신초는 제가 기도하면서 오게 된 곳입니다. 벌써 4년차가 되었는데, 몇몇 동료 교사와 작은 큐티 모임을 시작해 깊은 교제를 나누어 오다가, 올해는 전북 GVF 선생님들이 오시면서, 여러 기독교사들이 연합하는 모임이 되었습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학급에서 어려운 점도 나누고 기도 제목을 나누면서, 서로의 삶과 사역을 더 잘 알게 되고 격려와 지지의 분위기 속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유독 연합하기 어렵다고들 하지만, 서로를 좀 더 세워준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연합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알게 한 모임입니다. 교무 부장님을 비롯해서 다수의 GVF 선생님들, 단체에 소속이 없으신 선생님들이 모두 함께하고 있습니다. 제자들과 동료 교사들, 전북 교육을 위해서 더욱 충성하라고 우리들을 조합해 주셨다고 믿습니다.
리더십이 바뀌면 달라진다
최근 전북 교육감이 바뀌면서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교육청과 일선 교사들이 직접 잘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교육감님의 학교 방문 시에 교장, 교감보다는 교사들과 대화하고 공감하는데 힘쓰시는 파격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몇몇 교사들의 순수한 사명감과 희생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기관과 기관이 소통하고, 교사와 교사가 소통하면서, 의미 있는 교육 활동과 의사 결정이 가능케 되니 학교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비본질적이고 형식적인 제도나 업무들이 과감하게 축소되거나 사라지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들을 자발적으로 열의를 다해서 감당해 가는 학교의 모습으로요. 월요일이 기다려지고, 개학이 기다려질 수 있음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리더십이 바뀌면 이렇게까지 바뀔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일하고 있는 이곳, 전주 서신초등학교가 바로 혁신학교의 좋은 사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소통하는 교사로
혁신학교에서 승진의 길도 잘 열리고 있던 시점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승진보다는 제자들 곁에서 동고동락하는 교실이 제 자리임을 감사하고 즐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저희 반 애칭은 ‘명품 6학년 1반’입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아름다운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가 우리 반에 정착되면서 아침 자습부터 학생들 스스로 시작합니다. 학교생활 전체에 재미, 열정, 준비된 가르침과 배움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는 징계나 훈계와 관련해서 절대로 혈기를 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해 왔습니다. ‘선생님이 화낸다’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구나’를 느끼도록 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가르치려 하고 있습니다.
초등 담임교사로서 노하우를 나누자면, 먼저는 학급의 질서 세우기가 제일 중요합니다. 규칙이 관계가 배제된 가운데에서 나오면 고리타분해집니다. 순종은 신뢰로부터 나오고, 아이가 날 정말 사랑한다는 믿음을 갖게 될 때에야 참다운 질서가 세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충돌과 다툼 속에서도 물론 자라지만, 교사로서는 교실 현장에서 재판장으로 일해야 할 때가 참 많습니다. 성령의 지혜를 구하며 신뢰의 관계 안에서 경책할 때에 하나님은 그 말이 학생들에게 권위 있게 다가가도록 해주셨습니다. 아이들의 공감 속에서 동의를 얻으면서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도 가난한 학생들을 많이 가르치면서, 극빈층의 사람들이 정직한 사람들의 섬김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사회복지 분야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고 은퇴한 후에는 실질적인 교육 지원이나 장학 사업 등을 힘과 능력이 닿는 대로 해 볼 생각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대사(大使)이기 때문에 두렵고 떨림으로 교단에 선다는 원영신 선생님. 선교사로서의 삶을 인정해주고 지지해 주는 남편과 엄마 같은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는 두 자녀의 고백에 큰 기쁨을 느낀다고 합니다. 내가 작은 것으로 순종하였을 때 하나님은 큰 기쁨의 열매를 누리게 하셨다는 겸손한 고백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이 고백이 인터뷰 마치고 돌아오는 제게 그랬듯이 다른 기독교사들에게도 큰 격려와 힘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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