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사다> 교단 일기 우수
먹여서 살리기
김 시 봉 (인덕원중학교)
삼겹살 오 인분
“일단 만나자. 네가 오기 힘들면 선생님이 거기로 갈게.”
“….”
“예지가 너 보고 싶대. 선생님도 그렇고. 예지랑 같이 만날까?”
“….”
“너 밥은 먹고 다니니? 제대로 못 먹지? 지금 제일 먹고 싶은 게 뭐야. 선생님이 사 줄게.”
“… 저…. 고기요.”
“뭐? 고기? 삼겹살 뭐 그런 거?”
“…네.”
뜻밖의 대답이었지만, 그래도 참 반가운 소리였다. 3월. 신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며칠 만에 집을 나간 반달이와 어렵게 전화 연결이 되었지만, 수화기 저 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그저 ‘네, 네’ 귀찮아 하는 듯한 음성뿐이었다.
‘이거 내가 제대로 짚었구나.’
반달이는 정말 배가 고팠던가 보다. 안양 1번가 그 복잡한 곳에서 제일 맛있다는 삼겹살 집을 금방 찾아냈다. 그리고는 내가 몇 점 집어 볼 새도 없이 삼겹살 5인분과 공깃밥, 음료수 한 병까지 뚝딱 해치워 버렸다. 물론 함께 간 예지도 거들긴 했지만, 대충 봐도 예지는 반달이에게 먹는 걸 양보하고 있는 눈치였다. 반달이는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지낸 걸까? 궁금증으로 머리가 복잡했지만, 반달이가 더 이상은 못 먹겠다고 손을 저을 때까지 나는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이혼 후, 반달이는 아버지와 남동생과 함께 살았다. 아버지는 택시 운전을 하시는데, 생활고로 늘 피곤해 하신다고 했다. 남동생은 초등학교에 다닌다. 반달이는 밥이며, 공부며 동생을 항상 챙겨 줘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때론 귀찮기도 했다. 학교는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기에 싫어도 다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나마 그런 친구를 만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반달이는 한때 ‘왕따’였다. 이런 와중에 사건이 터지고 만 것이다.
반달이가 집을 나가기 전날, 반달이의 아버지는 만취 상태로 집에 들어오셨다. 그런데 혼자 오신 것이 아니라, 평소 만나시던 여자 친구와 함께 오셨고, 반달이의 말로는 그분이 그날 밤에 집에서 주무시고 가셨다는 것이다. 나중에 반달이의 아버지께 들은 바로는 만취 상태로 친구의 부축을 받고 집에 오긴 했지만 그 친구가 집에서 자고 가진 않았다고 한다. 누구 말이 진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건 그날의 사건이 반달이를 뛰쳐나가게 한 것은 사실이었다.
“아버지는 절대로 만나지 않을 거예요. 선생님도 아버지께 연락하지 말아 주세요.”
반달이의 의사는 분명했다. 그런 그 아이를 내가 무슨 말로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해서든 이 아이가 떠돌이 생활을 그만 두게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의 반항기를 조금은 부풀려서 그 끝이 어디에 닿았던가를 말해 주기도 하고, 부모 세대의 우울과 방황, 고독, 고통 등을 자식들이 조금은 이해해 줘야 한다고 변론 같이 늘어놓기도 한 것 같다. 너를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은 바로 너 자신이라며, 너는 지금 부모님이 아닌 너 자신을 벌주고 있는 거라고, 제발 이렇게 예쁜 너 자신에게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라고 핏대를 세워 가며 소리도 질렀던 것 같다. 다행히 음식점 안은 여기저기 자기들 얘기로 핏대를 세운 사람들이 넘쳐 나고 있었고, 덕분에 나는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하고 싶은 얘기를 늘어놓을 수 있었다.
반달이와의 약속대로 나는 반달이 아버지께 그날의 만남을 알리지 않았다. 사실 그건 나로선 지키기 어려운 약속이었다. 만약 그 후로 반달이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면 분명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었고, 나로서도 반달이가 돌아올 거라는 확신이 없었기에 갈등과 불안은 컸었다. 하지만 약속을 지켜야만 반달이에게 믿음을 줄 수 있고, 그것이 앞으로 반달이를 계속 볼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반달이는 그 후로 나의 전화를 계속 받았고, 설득 끝에 아버지를 만났다. 반달이 아버지는 반달이의 오해가 풀릴 때까지 반달이를 어머니가 돌보기로 했다고 연락을 주었다.
김치 세 포기
반달이는 크고 작은 말썽을 부리며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 살고 싶지 않다며 쉬는 시간에 무단으로 학교를 나가 동네 빌라 옥상에서 자살 소동을 벌이고도,
“기껏 올라가서 그럼 뭐 하고 온 거냐?”라는 질문에
“과자 먹고 왔어요.”
“뭐? 과자?”
“네. 새우깡이랑, 고구마깡이랑, 감자칩이요.”
라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뻔뻔스럽게 대답하는 우리 반달이.
“이 김치 선생님이 직접 한 건 아니고, 선생님 친정어머니께서 주신 건데, 정말 맛있다. 요새 선생님이 이거에다 밥 먹잖아. 너희 집 김장 안 했지? 이거 삼겹살 싸 먹으면 더 맛있다.”
축 쳐진 반달이를 살리는 데는 먹는 것 만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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