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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 세계를 품다

우간다 에피소드 #13. 우간다의 중등교육

월간<좋은교사> 5월호, 기독교사 세계를 품다 13

우간다 에피소드 #13 우간다의 중등교육

홍세기 선교사

 

 

“비가 온 날이면 나는 학교 가는 친구들을 보며 울었다. 아침 밭일을 하며 나는 공부를 언제 멈추어야 할지 생각했고, 아버지는 아들 공부를 위해 마지막 남은 이 땅을 언제 팔아야 할지 고민하셨다. 학교에 가는 날에도 교복도, 책도, 공책도 없어서 교실 한쪽 구석에 앉았다가 되돌아오는 날이 많았다. 등록금을 낼 수 없는 학기에는 아버지 농사일을 도왔다.

그런데 나는 지금 기적같이 대학교 교실에 학생으로 앉아 있다. 이 공부만 끝나면 중고등학교 교사가 될 수 있다. 돈도 벌 수 있고, 나처럼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격려할 수도 있다. 인생은 언제나 비(raining)과 햇볕(sun shining)을 오간다.”

_Martin


밭일하며 울던 아이, 마틴

우리 학교의 마틴이라는 사범대 학생이 쓴 자신의 인생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는 여기서 보통의 이야기다.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써 보라고 하면 학생들 대다수가 공부는 하고 싶었는데, 학비가 없어 어려움을 겪은 이야기를 쓴다. 형제들은 많고 농사만으로는 학비를 마련할 수 없어서 힘들었던 이야기다. 이런 이유로 고비마다 1~2년 학교를 쉬게 된다.

 

지금 내가 들어가는 교실의 최고령 학생은 마흔한 살이고, 두 번째는 서른다섯, 다른 학생들도 대부분 이십 대 중후반의 나이다. 제 나이에 대학교에 들어온 학생이 너무 어려 보일 정도다. 대부분은 가족 중 유일하게 대학 공부를 하고 있고, 마을을 통틀어 유일한 대학생인 경우가 많다.



교육이라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우간다에서 대학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전체 인구 중 불과 3%가 안 된다. 초등학교 재학 중 절반의 학생들이 학업을 포기하고, 중학교에 온 학생 중 절반 이상이 학업을 포기한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치르는 국가시험(Ordinary Level Exam)을 거쳐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또 절반 이상이 포기한다. 고등학생이 되어도 시험(Advanced Level)과 학비 문제로 절대다수가 또 진학을 포기한다.

 

우간다에서 인성교육이니 전인교육 같은 말은 사치에 가깝다. 영어, 수학, 지리, 역사, 과학 등 주요 과목을 공부하고 국가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어 통과하는 것이 공부의 최종 목표이다. 모든 국가시험은 주관식 상대평가로 치러지고, 본인이 몇 퍼센트에 속했는지 결과로 받는다.

 

주관식 시험지를 평가하느라 엄청난 인력이 투입되고, 평가 결과는 시험 후 석 달이나 지나 나온다. 공부의 목적은 직업을 얻어 적어도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고, 자녀들까지 제대로 교육하는 삶이다. 이 교육의 정글에서 살아남는 사람이 사회적 지위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교육 시스템에 대해 비판은 하지 않는다. 자신이 상위 몇 퍼센트의 사람이 아닌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학력에 따른 임금

학생들이 초, 중고등학교를 통틀어 학업을 중도 포기하는 첫 번째 이유는 경제적인 어려움이다. 공립학교는 정부의 지원으로 교육비가 적게 들지만, 잘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학업 지속과 진학률이 현저히 떨어진다. 교육비가 제법 드는 사립학교는 형편상 보내기 어렵다. 어떻게 하든 중학교를 졸업하면 직업교육을 받을 자격이 부여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초등학교 교사, 간호사, 건축, 배관, 봉제, 요리, 자동차 수리 등을 배우기 위해서 직업교육기관으로 흩어진다.

 

문제는 이렇게 배운 기능을 가지고 직업을 구했다 하더라도 임금은 교육받은 학력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점이다. 임금이 능력이나 경력에 따라 정해지지 않고, 학력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직업을 얻어 생활하면서도 끊임없이 더 공부할 기회를 찾는다.

 

직업교육 후 전문대 과정(diploma)을 더 밟을 수 있고, 이후 학사(bachelor)과정도 밟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이 경우에도 문제는 학비 부족이다. 만약 우간다 사람들에게 누구나 공부할 수 있는 경제력만 주어진다면 이 교육열로 국민의 90% 이상은 박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학업을 포기한 사람들의 인생

중학교 이전에 학업을 포기한 사람들은 사실상 인생에 희망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냥 집에 있거나 일찌감치 직업 전선으로 뛰어든다. 기능이 없는 남자 직업이라야 고작 오토바이 운전이나 농사, 건축 공사장에서 다른 사람의 허드렛일을 도와주는 것이다. 여자들의 경우 일찍 결혼하거나 아기를 낳아 키우면서 남자들에 기대어 살아간다. 학교 이외에 학력을 보충할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다시 학력을 갖추려면 반드시 학교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 옆집에 사는 25세의 레오날드는 뒤늦게라도 공부할 기회가 되어 올해 고등학교 2학년으로 학교에 다시 다니기로 했다. 신학과에 가고 싶어 하는데 중단한 학력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20세가 넘어서도 중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자랑스럽게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우간다 학교의 교실 분위기

학생들 대부분은 공부할 기회가 생기면 열심히 공부한다. 우리 학교 사범대생들이 교육실습을 하는 학교에 방문해 보면 학생들의 수업 태도는 매우 좋았다. 손님이 와서 열심히 공부하는 체하는 것이 아니었다. 평소 수업 분위기와 다르지 않다고 했다. 공부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교실에 있고, 선생님의 가르침이 유일한 지식 전달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집에 가져가서 공부할 책은 물론, 참고 자료도 없다. 집에 가면 공부하기 위해 켤 전등도 없기 때문에 공부할 기회가 있을 때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선생님의 말을 빠짐없이 필기해 두어야 한다. 언제 다시 학교 책상에 앉아 공부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다. 그러니 이들의 학업 태도는 절박하다. 공부에 흥미가 있는지 없는지, 학업 능력이 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시험 점수를 잘 받아 상위학교에 진학하려면 무조건 열심히 해야 한다.

 

이런 교실 분위기는 학력이 생존 수단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태생적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은 지식을 좋아한다. 기회만 되면 더 알고 싶어 하고, 듣거나 본 것은 가능하면 머릿속에 외워 둔다. 이런 성향이 학력을 흠모하게 만드는 문화적 바탕이 되기도 한다.

 

먹지 않아도 공부는 한다

우간다 학생들은 일어나자마자 동이 트기도 전에 학교에 간다. 초등학교에 비해 드물게 산재해 있는 중고등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두 시간 넘게 걸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일출을 보며 학교에 가고, 저녁 5시가 넘도록 학교에 있다가 집에 온다. 머리카락은 짧고 옷은 늘 입는 교복 하나이니 굳이 꽃단장 하느라 시간을 보낼 필요도 없다.


학생들은 아침밥도 거른 채로 학교에 온다
. 학생들뿐 아니라 직장인들도 일어나면 바로 출근하고, 간단한 아침 식사는 직장에서 해결한다. 학생들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점심시간까지 버틴다.

 

사립학교는 학생들이 급식비를 내서 점심 급식을 운영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공립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간다. 수업 시간 확보와 영양 보충을 위해 학교 급식이 필요하나 급식비를 낼 수 있는 학생이 많지 않다. 중고등학교의 경우 보통 한 학교에 몇천 명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급식을 제공하기도 어렵다.

 

 

우간다의 교육과 한국의 교육

간혹 강의 중에 한국 교사들과 학생들은 생활이 어떠냐고 묻는 학생들이 있다. 교사들이 받는 월급의 규모를 이야기하면 입을 벌린다. 초등학교 교사와 중고등학교 교사의 월급 차이가 없다는 말에도 놀란다. 학교 시설과 학교에서 지원해 주는 자료, 다양한 교육 기회를 조금 더 말해주면 더 크게 놀란다. 학교 급식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까지 이야기하면 한국은 파라다이스라고 생각한다.

 

우간다만큼이나 경쟁을 해야 하므로 한국 교육이 좋은 교육이 아니라고 말하면 이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최근 들어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학생들도 많고,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서 교사들이 존중받지 못하고 입지를 지키기 어렵다는 말도 이해하지 못한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숙명처럼 생각하는 이들에게, 그렇게 좋은 교육 기회가 있는데 모두가 힘들어하는 한국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기회만 된다면 열심히 공부하여 가족과 이웃을 돕고 싶어 하는 우간다 사람들에게 우리의 상황이 이해될 리 없다.

 

아버지가 밭에 나가라고 할까 봐 일어나자마자 세수도 안 하고 학교로 나서는 아이들. 학교에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해서 학교를 잘 떠나지 않으려는 아이들. 선생님의 가르침을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공부 시간 내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배운 것을 열심히 머릿속에 저장하려는 아이들. 집안이 어려울 때마다 한두 해 공부를 쉬는 것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원망하지 않는 아이들.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틈틈이 일하면서 삶을 이어가는 아이들.

 

불평등한 사회 구조와 교육 제도를 언급하기도 어려운 아이들. 누구에 게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한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는 아이들. 그럼에도 자기 삶에 대해 늘 희망적이며 원망할 대상이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이곳 우간다 학생들이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이런 우간다의 교육 상황을 상상하지도 못하고, 거의 모든 것을 갖춘 교육 환경 속에서 불행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역설의 하나님이 도우시기를

인구가 절벽이라고 아우성치는 한국에 비해 우간다는 국민 평균 연령이 10대이고, 25세 이하의 인구가 50%가 넘는다. 지금도 한 명의 여성이 출산하는 아이의 숫자가 5명 이상이다. 해지는 저녁 구름처럼 떼를 지어 학교를 나서는 중고생들이 도시의 장관을 연출한다. 시골에 있는 우리 대학교도 학생들이 없어서 운영을 못 할 걱정은 하지 않는다.

 

생존권이니 교육권이니 어디 권리라고 주어지는 것이 없음에도 모든 장애를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이 있는 나라,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언제나 일하신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사는 우간다. 언젠가 역사적 질곡을 이겨내고, 경제적인 궁핍도 극복하면서 이들 고유의 인간적인 내면의 빛이 발할 날을 나는 기대한다.

 

경쟁 교육이라는 교육의 역기능, 그것도 출발점이 다른 불공정 경쟁이라는 모순 속에서도, 낙오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역설을 이끌어내는 하나님의 역사를 나는 여전히 믿는다. 열심히 배우고 익히고 역경을 극복해 가는 우간다 아이들이 언젠가 어깨를 펴고 세계 곳곳에서 자신들의 삶이 바로 하나님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는 그날을, 나는 기대한다.

 

 

홍세기 선교사

 

우간다 쿠미대학교에서의 사역을 잠시 멈추고 안식년을 준비 중이다. 아내 강학봉은 기초 체력이 부진하여 안식년 기간 동안 요양과 보양 후에야 다시 아프리카로 올 수 있을 것이다.

딸 하늘 가족도 선교지 사역을 준비하고 있고, 아들 이삭이 노래 불러서 받은 상금 일부를 우간다에 보낸다고 하여 지역 어린이 도서관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 ukarump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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