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25 미국교육 탐방 보고서 ④
기고 4. 미국교육에서 찾은 한국교육의 새로운 가능성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
좋은교사운동, 미국에 가다
150여 년 전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상륙해 학교를 세우고 새로운 교육을 열어주었듯이, 이번에는 14명의 좋은교사운동 교사가 한국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미국으로 향했다. 2주 동안 7개의 초ㆍ중ㆍ고등학교를 방문했고, 애리조나주립대 사범대 교수와 연구진들과 두 차례의 학술 교류를 하였다. 미국교육에서 무슨 선한 것이 있을까 의문도 있었지만, 한국교육이 미국교육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 사실이고, 지금의 한국교육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미국은 어떻게 해법을 찾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애리조나주의 투손 지역이었는데, 이 지역은 멕시코 국경과 인접한 지역으로 백인, 흑인보다 히스패닉 사람들이 많은 지역이었다. 방문한 공립학교들은 사회ㆍ경제적으로 높은 지위를 자치하는 곳이 아닌 어려운 지역에서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많은 애를 쓰고 있는 학교들이었다. 2주 동안 7개 학교를 보았지만 그것이 마치 미국교육 전부라 생각하지 않으며, 우리가 본 학교들이 미국교육의 전형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7개 학교들에서 찾았던 공통점들은 한국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무전기, 열쇠 꾸러미, 호루라기
미국에 가기 전부터 미국 학교장 리더십이 궁금했다. 서이초 국면에서 애리조나주립대 안준길 교수님이 이야기했던 무전기 들고 동분서주하는 학교장의 실체를 보고 싶었다. 방문하는 학교마다 교장, 교감 선생님은 무전기와 열쇠 꾸러미를 가지고 있었고 호루라기를 목에 걸고 있는 분도 계셨다. 지도하기 힘든 학생들에 대한 지도와 학부모 소통, 교사 지원, 우리 같은 방문자 안내 등의 역할을 직접하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의 하루 일과를 물었을 때 아침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여러 사정으로 출근하지 못하는 교사들의 연락을 받고, 어플을 이용해 그 교사를 대신할 대체 교사를 찾는 일이라 했다.
미국의 교장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삶과 교사들의 삶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었다. 지도하기 어려운 학생을 지도하고 그들의 학부모와 소통하는 일, 각종 문의에 응대하는 일, 교사들의 지원 요청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일들을 학교장 본연의 업무로 인식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이초 이후 분리 지도 장소와 주체, 민원 처리의 주체를 두고 적잖은 내홍이 있었다. 한국의 학교장 리더십에 있어 이제는 학생들의 삶과 교사들의 생활에 더 깊이 관여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업무를 지시하고 감독하는 역할에서 이제는 생활 속 어려움을 직접 해결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물론 아침맞이부터 민원 해결까지 이미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 한국의 훌륭한 교장 선생님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교사 선발과 채용, 학교장 승진 과정이 우리와 미국은 다르고 이로 인한 학교장 리더십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학생과 교사들의 삶 속으로 적극 개입하는 학교장의 역할은 한국교육에 필요한 새로운 리더십이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탐방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니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나 있었다. 재발 방지를 위한 교육 당국의 대응이 이어지고, 국회의원들은 선두 경쟁하듯이 관련 법안의 개정안을 쏟아내고 있었다. 발 빠르게 대응하는 걸 탓할 수는 없으나 과연 대응 방안이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짚어낸 다음의 해결책이냐는 점이다. 모든 교사를 잠재적 정신질환 환자로 대상화하여 배제하고 낙인찍는 방식이 과연 학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을까? 경찰공무원의 수를 늘리지 않으면서 1학교에 1명의 학교전담경찰관을 배치하는 것은 현실 가능한 안일까?
적어도 우리가 미국에서 방문한 학교들에서는 학교 출입구에서 방문자 신원을 확인하고 방문자 이름표를 제공했다. 한 고등학교에서는 학교전담경찰관 말고도 12명의 안전요원들이 있었다. 이들은 우리 같은 방문자들이 사전에 약속된 방문자인지 확인하고 해당 장소까지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수업 참관 중 조퇴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이들 안전요원이 해당 학생을 교실 밖으로 데리고 가는 것을 볼 수도 있었다. 학교 출입문뿐 아니라 교실 곳곳은 권한이 있는 사람들만 여닫을 수 있었다. 하교하는 학생을 보호자가 차에 태울 수 있는 약속된 장소와 방법이 있었고, 픽업 장소에는 어김없이 담당자가 학생을 인솔해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안전한 학교를 위한 지원 법안도 필요하고, 긴급하게 업무에서 배제해야 할 교사에 대한 분리 절차 또한 필요하다. 다만 어떤 방법과 권한으로, 누가 그 일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 수렴과 합의도 없이 추진되는 방안들이 현장에서 작동될 수 있느냐는 하는 점이다. 적어도 미국의 학교장들은 자신의 목에 무전기와 열쇠 꾸러미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이를 사용할 합당한 권한과 방법, 공유된 절차까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누가 교사인가?
학교 탐방 내내 혼란스러웠던 것은 교실 속 교사들 중에 누가 교사인가 하는 점이었다. 방문하는 교실에는 학생이 15명~25명 내외로 있었고 이는 한국의 교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교실마다 2~3명의 교사들이 있다 보니 누가 교사이고 누가 보조 교사인지 알 수 없었다. 중간에 다른 교사가 학생을 데리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한 교실에 한 명의 교사가 있는 풍경에 익숙한 내게는 꽤 낯선 장면이었다.
질의응답을 통해 확인해 본 바, 미국 교실에는 우리말로 번역하기 어려운 다양한 지원 교사들이 많았다. 우리가 잘 아는 상담교사뿐만 아니라 기초학력 지도를 위한 별도의 교사, 학생 분리를 위한 교사, 보조 교사, 우리네 상담교사와는 다른 싸이컬러지스트(Psychologist)로 불리는 정신분석 지원을 하는 교사, 행동 관찰과 지원을 하는 교사 등 우리말로 번역하기 모호한 교사들이 많았다.
한국에 있는 수석교사, 상담교사, 진로교사, 보건교사, 사서교사, 영양교사 등보다 훨씬 다양한 전문 분야 교사들이 학생들의 배움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우리도 교과 교사나 담임교사가 혼자 모든 분야를 다 가르치다 소진이 오게 하는 것보다 다양한 형태의 전문교사들을 양성하고 이들과 협력 체계를 만든다면 학교가 보다 배움의 본질을 잘 구현해 낼 수 있겠다 싶었다. 특히 학령인구가 급감한다는 이유로 교사 수를 줄이기보다 다양한 전문성을 갖춘 교사를 양성하고 배치하는 것을 한국교육이 꼭 참고했으면 했다.
다양성의 힘
우리가 방문한 학교는 히스패닉 학생들과 교사들이 많은 학교들이었다. 방문 학교들이 멕시코 국경과 멀지 많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양한 이주 배경 학생들이 공존하고 있었고, 학교는 이들 학생들을 위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이중언어 교육을 열심히 하는 학교를 방문했는데 이들 학교는 스페인어와 영어를 동시에 가르치고 있었다. 유치원이나 초등 저학년 단계에서는 스페인어를 90%, 영어를 10%로 가르치다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영어 비율을 늘리는 방식이었다. 교실과 학교 곳곳에는 영어와 스페인어가 공존했고, 초등 저학년 교실에서는 방문한 우리들에게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로 환영 인사를 해 주기도 했다.
참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들 학교들은 학생의 정체성에 대해 자신의 출신에 대해 그대로를 인정하고 상호 존중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영어를 빨리 가르쳐 미국인(?)으로 만들려 하기보다 다양한 인종과 출신 배경을 있는 그대로의 정체성으로 존중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You are the other me. “네가 또 다른 나이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힘주어 말하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에 힘이 느껴졌다. 학교 탐방에 함께한 미국 교육청 장학사도 미국의 힘이 다양성에서 왔다는 것을 지금 미국은 잊어서는 안 된다고 진지하게 말하기도 했다.
한국도 이제 다양한 이주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학교 안에서도 학생뿐 아니라 교사 문화에서도 다양성이 중요한 가치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 서부, 그중에서도 애리조나주의 투손 지역에서 이중언어 교육을 하고 있는 학교들의 노력은 분명 한국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이 되기에 충분했다. 지역 사회의 특성을 학교 교육과정과 운영에 반영해 학생들을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성장하도록 돕는 모습은 앞으로 한국교육이 맞이하게 될 변화에 중요한 기준점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미국 교사의 눈물
IB 고등학교에서 IB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선생님께 교사로서의 보람을 여쭈었다. 그분은 학생들이 어려운 IB 과정을 이수해 내며 학생 자신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대답할 때, 자신의 노력이 학생의 변화와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느껴 보람이 된다고 울컥하시며 눈물을 보였다.
교사로서의 기쁨을, 존재의 이유를 학생의 성장과 변화에서 찾는 미국 교사의 모습에서 좋은교사운동 선생님의 모습이 겹쳐 방문한 우리들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국가와 피부색은 달라도 교사로서의 고민과 보람은 여기가 거기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방문한 지역이 멕시코 국경에 있는 지역에 있다 보니 새로 들어선 트럼프 정부의 불법 이민 추방 정책에 학교들이 긴장하고 있었다. 실제 단속반에 걸려 추방당할까 싶은 두려운 마음에 학생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학부모도 다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불법 이민 학생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안정시킬지 고민하는 미국 교사들의 걱정스러운 표정이 읽히기도 했다.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 변화, 이로 인한 학교 현장의 어려움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도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의 혼선으로 학교가 혼란을 겪곤 했다. 당장 탄핵 국면만 봐도 그렇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백년지대계로서의 교육은 쉽지 않아 보였다. 무엇이 백년의 교육을 이끌고 갈 수 있을까? 1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초석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배움의 기쁨이 그 초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디 배움은 기쁨이다. 배운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현재는 배우는 것이 고통이 되고 있지만 배움은 본질적으로 기쁜 일이다. 이번 미국교육 탐방을 통해 배움의 기쁨을 회복하기 위한 미국 학교들과 교사들이 애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미국교육 탐방을 통한 배움들이 한국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열쇠가 되고, 한국교육 백년지대계의 초석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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