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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5 제안2 : 수석 교사제 하에서의 수업 운동,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14. 11:36

수석 교사제 하에서의 수업 운동,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




김 태 현(행복한수업만들기 부위원장)

수석 교사제의 호불호를 떠나서 일단 제도로 안착되게 되었을 때, 좋은교사 회원들은 이 제도의 강점을 잘 살려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수석 교사 제도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좋은교사 회원 선생님들이 가능한 많은 분이 수석 교사가 되어서 새로운 형태의 수석 교사의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그렇다고 교감, 교장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상상을 해 보자! 수석 교사에 대해 아무 철학이 없는 사람이 이 감투를 가졌을 때, 어떤 현상이 벌어지겠는가? 크게 두 가지다. 한 부류는 수석 교사지만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극도의 무기력한 상태의 수석 교사가 그 하나고 또 다른 한 부류는 수석 교사직이 자신의 권력인 양, 동료 교사의 수업을 봐 준다고 해 놓고 온갖 독설과 고압적인 말투로 교사들의 마음을 어렵게 하는 부류다. 사실 수석 교사 제도를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이런 상황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물론 개중에는 인격적인 태도로 수석 교사 본래의 취지에 맞는 역할을 감당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럼에도 수석 교사 제도 폐지 운동보다 선용(善用)하자는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수석 교사 제도를 잘 활용하기만 하면 상처받고 쓸쓸하게 서 있는 동료 교사들의 마음을 수석 교사들이 어루만져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좋은교사 회원 선생님들이 수석 교사가 되었을 때, 어떤 역할을 감당해 주면 좋겠는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성찰’의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교사들은 역설적인 상황에 놓일 때가 많다. 학생들에게 온갖 교훈적인 말을 늘어놓지만, 정작 자신은 그 말대로 살 때가 많지 않다. “꿈을 가지라”고 학생들에게 말하면서 본인은 꿈이 없고, “도전하라”고 말하면서 교사 자신은 도전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할 때가 많다. 이것은 교사가 ‘가르침’과 ‘배움’이 분리된 삶을 살기 때문에 그렇다. 이것은 교사 스스로 자신의 교육 행위를 성찰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많은 교사들은 막연히 ‘그래도 나는 최선은 아니지만 최악도 아니잖아. 이정도면 잘하고 있는 거야’라는 말로 자위하며 자신의 교육적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막상 교사들의 행위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게 되면, 교사가 의도한 배움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이런 태도가 지속적으로 일관되면 교사들은 시대에 맞게 변화하지 못하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교육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변화하는 것조차도 두렵고, 자신의 성 속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이에 좋은교사 회원들이 수석 교사가 된다면 훈계조로 동료 교사들을 가르치기보다는 성찰적 질문을 통해서 동료 교사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이키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성찰을 통해서 동료 교사들이 자신의 수업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수업을 변화시킬 전환점을 만들어 줘야 한다.

예를 들어 수업을 관찰했는데 수업이 너무 소란스러웠다면 일반 수석 교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수업하시느라고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수업이 굉장히 소란스럽던데 선생님의 수업 장악력이 조금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얕보지 않도록 카리스마를 조금 더 길러야 할 것 같습니다.”

위와 같이 많은 수석 교사들은 교사의 교육적 행위를 지적하려 들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지적질’이 교사에게는 심리적 부담감만 가져다주지, 개선의 효과는 절대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 교사의 전문성은 정확하고 날카로운 ‘지적질’보다는 ‘성찰적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직시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대화가 필요할 것이다.

수석 교사 : 수업하시느라고 고생이 많았습니다. 중학교 2학년같이 날뛰는 애들을 데리고 수업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수업하시는데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인가요?

평교사 : 글쎄요. 늘 힘들어서 특정 부분을 꼭 집어 이야기하기가 힘드네요.

수석 교사 : 제가 볼 때, 선생님께서 수업 첫 5분에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는 데 상당히 많은 에너지가 투입되는 것 같은데, 아이들을 진정시키는 데 힘들지 않으신가요?

평교사 : 맞아요. 날뛰는 애들을 진정시키다 보면 너무 힘이 들어서 수업하기가 힘들어요. 저를 얕잡아 봐서 그런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힘이 들어요.

수석 교사 : 그렇죠. 중학교 2학년, 특히 남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우리 모든 교사들의 숙제죠. 자! 그런데 선생님이 지금 중요한 말씀을 하셨어요. 아이들이 선생님을 얕잡아 본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해서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죠?

평교사 : 그것은…. 사실 제 스스로도 제가 교사다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서요. 남들과 같은 카리스마도 없는 거 같고, 말빨도 많이 부족한 것 같고….

 

앞 대화와 뒷 대화의 차이는 무엇인가? 앞 대화에서는 교사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한 바를 그대로 평교사에게 주입하려 들었다. 그러나 뒷 대화에서는 가능하면 교사의 이야기를 들으려 했고, 그 아픔을 같이 나누려고 했다. 이런 활동이 별거 아닌 거 같지만, 교사는 이런 대화를 통해서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고, 예전보다 나은 수업으로의 도전을 감행한다. 이렇게 수석 교사는 ‘지적질’을 통해 권위를 자랑하는 자가 아니라, ‘성찰’을 통해 교사의 아픔을 들어주는 자다.

이런 역할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수업을 바탕으로 교사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마치 우리가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을 성찰하듯이, 잘 준비된 수석 교사는 수업을 통해 교사의 내면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대개 교사들의 수업이 무너지는 이유는 수업 기술(skill)의 문제이기보다는 내면(mind)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이런 내면을 수석 교사가 잘 들어주기만 해도, 교사는 수석 교사의 환대를 통해 다시금 새롭게 수업에 설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또 한편으로 좋은교사 회원들이 수석 교사가 되었을 때, 해 주어야 하는 일은 ‘지지’다. 많은 교사들은 심리적인 외로움을 느낀다. 제 얼굴에 침 뱉기지만 교무실만큼 경직된 곳도 없다. 교무실 안에서는 조용히 ‘행정 업무’와 시끄럽게 ‘학생 지도’ 하는 소리가 들릴 뿐, 동료 교사 간에 깊이 있는 대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식사 시간에도 피상적인 대화만 오고갈 뿐 교사의 내면을 말하고, 수업의 구체적인 맥락을 이야기하는 시간은 거의 없다. 교과 협의회 시간에서도 수업을 통해 교사의 아픔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시험 문제를 잘 내기 위한 형식적인 토의만 진행될 뿐이다. 그렇다! 교사는 어느 누구로부터 자신의 수업에 대해 격려받지 못한 채 혼자 노를 저어 험난한 여행을 시작하고 있다. 이런 교사들에게 마음의 지지를 해 줄 자가 바로 수석 교사다.

모든 수업 속에서는 교육적 기제가 들어가 있다. 학생들을 조용히 시키기 위함이든 학생들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함이든 교사는 수업 속에서 수많은 교육적 기제를 활용하여 수업을 진행시키고 있다. 수석 교사는 그런 맥락을 잘 보고 교사의 열정과 노력에 대해 ‘지지’해 주어야 한다. “정말 잘하고 있고, 수고하고 있다”고 마음의 격려를 보내야 한다. 실제로 많은 교사들은 자신의 수업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 교사로서 수업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석 교사가 구체적인 정황을 바탕으로 수업에 대해서 지지하게 되면, 교사는 자존감을 회복하고, 수업을 더 잘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아래와 같은 대화를 시도하며 선생님 스스로 자신의 수업을 존귀하다고 여기게 해야 한다.

 

“아까 선생님이 졸고 있는 학생을 찾아가서 따뜻한 위로를 보냈는데 선생님이 학생들을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대개는 태도 점수 깎고 뒤에 서 있으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런 환대를 보낼 수 있었던 거죠?”

“선생님이 수업 첫 부분에서 〈최고의 사랑〉 독고진 흉내를 내었는데, 수업 속에서 학생과 소통하려는 열정을 보게 되었어요. 그런 선생님의 열정 때문에 아이들도 수업 초반부터 수업에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창피할 만도 한데, 선생님 어떻게 이런 도전을 감행하게 되신 거죠?”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에 소란스러워졌을 때, 큰소리 지르지 않고 조용히 침묵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대개는 소리 지르고, 아이들을 위압적으로 대하기 쉬운데, 선생님의 침묵하시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이런 방법은 언제부터 사용하신 건가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구체적인 맥락을 통해서 교사의 의도를 물어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통해 교사는 자신의 교육적 의도를 말하게 되고, 이런 대화를 통해서 스스로 ‘내가 그래도 교사다’라는 정체성을 갖게 된다.

그런데 많은 교사들이 막상 수업을 보게 되면 자꾸만 ‘지적질’을 하려고 하지 ‘지지’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것은 수업을 보는 우리의 동기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수석 교사라 할지라도 평교사의 수업을 보면서 ‘배움’의 차원에서 접근해야지 ‘가르침’의 차원에서 접근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남의 수업을 가지고 분석만 하려고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권위를 앞세운 ‘지적질’은 교사 수업 개선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여태껏 우리가 받아온 연구 수업, 수업 장학, 수업 컨설팅이 얼마나 공허했는가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가슴으로 우러나오는 격려와 지지를 통해 교사는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이런 성찰과 지지의 관계를 수석 교사가 만들게 되면, 상담을 받게 되는 교사는 수석 교사를 신뢰하지 않을 수 없다. 외롭고 쓸쓸한 교사의 내면을 들추어내니 교사는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좋은교사 수석 교사는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좋은교사운동으로 그 교사를 초대할 수 있다. 그렇다! 수석 교사는 손쉽게 전도도 할 수 있는 초청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각 지역 단체에서는 수석 교사 제도를 활용한 모임 활성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주기별로 수업 초청 토론회를 준비하면 좋을 것이다. 수석 교사직을 맡고 있는 좋은교사 회원은 수업 속에서 더 깊은 나눔을 갖자고 동료 교사들을 초대할 수 있다.

이에 좋은교사에서는 이런 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수업 토크(talk)’라는 새로운 개념의 수업 대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 ‘수업 토크’는 수업을 통해서 교사의 내면을 살펴보면서, 성찰과 지지의 분위기를 만들고, 이를 통해 수업하는 교사의 내면을 회복하는 신개념의 수업 운동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지역 단체에서 과감하게 활용하여 교사들을 초대하게 되면, 이 자리를 통해서 많은 교사들이 낙담되었던 마음이 회복되고, 지역 단체 회원으로 등록하게 될 것이다.

기독인의 힘은 본질을 바로 보고 그것을 통해 시대를 변혁시키는 데에 있다. 수석 교사 제도가 활용도에 많은 한계점을 노출하고 있지만, 좋은교사 회원 선생님들이 가능한 많이 수석 교사가 되어, 지금 이 순간에도 무너진 내면으로 수업하고 있는 많은 교사들의 아픔을 치유해 주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ps) 10월 22일 “나는 교사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행복수업축제(festival)를 가지려고 합니다. 이 축제를 통해 많은 교사들이 수업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