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만남

거창 샛별초등학교 전기환 선생님




“저는 그다지 큰 꿈을 가지고 있진 못합니다. 다만 한 가지 큰 바람은 행복한 수업을 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수업. 아이들과 소통하며 예수님의 메시지를 행복하게 나누고 실천할 수 있는 수업. 저의 비전을 표현한다면 행복 선생님이 되는 것입니다.”





전기환 (거창 샛별초등학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 하지만, 정작 우린 세상에 대한 걱정거리에 함몰되어 그분의 세밀한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전기환 선생님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에 들리는 하나님의 작은 음성에 삶으로 반응하는 거침없는 용기를 본다. 하나님의 음성엔 민감하고, 삶을 바꾸는 것에는 대담한 그는 진정 행복한 선생님이다.





샛별 초등학교 전기환 선생님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삶을 개혁하는 자

글/사진 : 김태현


 눈치 빠른 독자들은 알아챘겠지만, 두 달 전부터 〈좋은 만남〉의 글 형식이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전에는 한 선생님의 일대기를 장엄한 서사의 구조로 담았다면, 두 달 전부터는 선생님의 삶 전체를 다 말하기보다는, 선생님의 삶 중에서 특별한 지점을 잡아내는 클로즈업(?) 구조를 취했다.

 그래서 6월호에 실린 김애화 선생님과의 만남에서는 ‘40대에 교사가 된 이유’를 찾아보면서, 복지부동하는 우리의 마음을 다시금 성찰하려 했고, 7월호에 실린 김은남 선생님과의 만남에서는 ‘40대에 공교육에서 대안 교육으로 진로를 바꾼 이유’를 들어 보면서, 교사의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려고 했다.

 이번에도 역시, 30대 후반에 색다른 도전을 통해 기독 교사의 삶을 살아가는, 경남 거창의 샛별초등학교 전기환 선생님을 만나 봤다. 전 선생님은 중학교 선생님으로 잘 계시다가 갑자기 교대에 편입해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 특이한 이력을 가지신 분이다. 개인적으로 고등학교에 몸을 담고 있기에, 초등학교 교사로 전환하신 선생님의 삶이 궁금해졌다. 지금이야 모든 것이 성공적으로 일이 잘 풀렸기에, ‘그래 그런가 보다’ 생각할 수 있지만, 30대에 안정적인 직장을 던지고, 교대에 들어간 이유가 도무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경남 거창으로 내려갔다.


건방진 프로필 팍팍 !

이름 전! 기! 환!, 나이 38, 고향은 전라북도 군산, 너무 평범해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건질 수 없는 모범생 전기환, 어린 시절 친구 따라 교회를 갔지만, 그야말로 놀러 가는 수준. 하지만 그의 인생은 대학에 들어가서 급반전하게 된다. 후기 대학으로 들어가서 인생의 쓴맛을 깨닫고 있는 중, 전기환의 운명인, 이선희 자매를 만나게 된다. 이지적 외모에 반한 전 선생님은 특유의 미소를 가지고 이선희 자매에게 접근하고 우연을 가장한 몇 번의 만남을 통해, 드디어 이선희 자매와 러브러브 관계가 만들어진다.

 여기서 전 선생님은 이선희 자매를 통해 신앙인의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신앙은 그저 맹신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선희 자매가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삶의 길을 결정하는 것을 보면서 신앙인의 삶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이런 생각은 전 선생님을 교회로 가게 하고, 이선희 자매는 불쌍한 어린 양 전 선생님을 구원하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구원과 사랑의 기쁨도 잠시! 전 선생님 앞에는 ‘군대’라는 큰 장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선희 자매가 끝까지 기다려 준다고 하여 마음은 안심이 되었지만, ‘이제 막 시작한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전 선생님을 그냥 내버리지 않았다. 훈련소에서 힘든 훈련을 마치고 교회에 갔는데, 여기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주셨다. “예수님이 우리의 포도나무고 나는 그의 가지”라는 말씀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던지, 꺼억꺼억 울면서 “하나님 난 당신의 가지군요”를 고백하게 된다. 이후로 남자가 창피함도 모른 채, 교회만 가면 큰 소리로 울어대니 옆에 있는 사람들이 참 민망하게 쳐다본다. 하지만 이 눈물이 전기환 선생님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늘 울고 있는 전 선생님을 군종 목사님이 보시고 ‘흠, 저 친구가 신앙심이 각별하군!’ 하면서 중대 군종 병사로 임명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전 선생님은 주말마다 교회에 가서 교회 학교 봉사를 하게 되는데, 여기서 전 선생님은 양육의 기쁨을 알게 된다. 시골에 교회가 없어서 아이들이 군대 교회에 오게 되었는데, 이때 양육했던 아이들과의 추억이 아주 애틋해서, 군 선임병의 각종 탄압 속에서도 교회 활동을 꾸준하게 한다.

 이런 은혜 속에서 제대를 한 전기환 선생님은 학교 편입을 준비하고, 끝까지 그를 기다려 준, 이선희 자매는 학교를 그만두고 수능을 새롭게 준비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 선생님은 상명대 국어교육과에 편입을 하게 되고 자매는 중앙대학교 영어영문과를 들어가게 된다. 실로 ‘놀라운 커플’이다. 원래 연애를 하게 되면 둘이 동시에 망하게 되는데(나만 그랬나?), 둘은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게 되어 둘 다 원했던 목표를 이루었으니…. 그리고 둘은 같이 교사 임용 시험을 준비한다. 하지만 임용 시험을 준비하다가 이런 단편적인 공부에 매달리지 말고, 정말 교사가 되는 공부를 하자고 했고, 이 둘은 사립 학교 임용에 지원서를 넣게 된다. 그런데 또다시 ‘놀라운 커플’은 놀라운 일을 만들어 내는데, 2001년 둘은 경남 거창에 있는 샛별중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동시에 임용된다. 전 선생님은 그리고 2002년에 동고동락했던 이선희 자매와 결혼을 하게 된다. 이렇게 2002년에 하나님은 ‘교직’과 ‘결혼’이라는 두 가지 선물에 ‘월드컵 4강’이라는 놀라운 선물을 주셔서, 이 2002년을 ‘전기환의 해’로 만들어 주신다.

 이후에 전 선생님은 정교사로 채용이 되고 사모님은 학교 내부 사정상 임용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2004년도 교직 3년 차에 전 선생님은 아주 이상한 결단을 한다. 그렇다! 바로 그 안정직인 교사를 그만두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교직을 그만두고 교대 편입 시험을 준비한 것이다. 교사가 교사를 그만두고 다시 교대에 들어가다니! 그런데 놀랍게도 그 힘들다는 교대 편입을 또 합격한 것이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전 선생님을 ‘편입 시험의 도사’라며 추켜세웠고, 전 선생님은 3학년부터 교대를 다니게 된다. 그리고 2006년에는 경남에 사립 초등학교가 두 군데가 있는데 그 중 하나인 대우초등학교를, 다시 2010년에는 경남의 또 다른 사립 초등학교인 샛별초등학교에 부임하고 현재 연구부장으로 학교를 섬기고 있다. 


매너리즘에서 벗어나다 !

 버스를 오래 타고 경남 거창에 도착했다. 푸근한 시골 풍경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샛별초등학교를 찾아가는 여정이 샛별처럼 산뜻했다. 샛별초등학교!, 거창고등학교의 설립자이신 전영창 선생님이 초대 교장이시다. 전영창! 그는 대학 부총장이라는 확실한 지위를 내버려 두고, 폐교 직전에 있는 시골 학교를 인수하여 거창고, 샛별중, 샛별초라는 건강한 학교를, 경남 거창에 뿌리 내리게 했다. 그는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라” 등 ‘직업 선택의 10계’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은 분이다. 하지만 그는 1976년 59세의 나이로 학교 일에 매진하다가 패혈증으로 순직한다. 그는 죽었지만 그의 제자들이 이 학교들을 잘 지켜서 지금도 경남의 명문 학교로 튼튼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학교에서 전기환 선생님을 만났다. 만나자마자 본인의 수업을 기꺼이 공개해 주신다.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본인이 직접 구연하여 학생들과 의미 있는 소통을 하고 계셨다. 수업이 끝나도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매달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장난을 친다. 지칠 법도 한데 선생님은 아이들과 같이 있는 것이 좋은지 연방 싱글벙글하신다. 천생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교사 생활을 잘하시는데 굳이 중학교에서 초등학교로 교직 생활을 바꿔야 했던 이유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하하하, 중학교 교직 생활 참 좋았죠. 아내와 함께 샛별 중학교에서 저는 국어, 아내는 영어를 가르쳤죠. 꿈만 같았죠. 지식을 단편적으로 암기하는 임용 고사를 그만두고, 우리가 원하는 학교를 찾자고 했는데, 그곳이 샛별중학교였죠. 아이들을 경쟁으로 줄 세우기하지 않고, 인성을 바탕으로 학생에 맞는 재능을 찾아 주는 곳, 그런 곳이 학교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런 교육을 이곳에서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내와 함께 지원했고, 하나님의 은혜로 이곳에서 우리 부부가 교직 생활 첫발을 내딛게 되었죠. 그만큼 의미 있는 곳이었는데 이곳을 떠난다는 결정은 그리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내 안에서 자꾸 ‘떠나라’는 음성이 들리더군요.”

 “교직 생활 3년이 지나니 교사로서의 온갖 기술들은 금방 익혀지더라고요. 진도를 빨리 빼는 방법, 아이들을 엄격하게 혼내는 방법, 문제아들을 상담하는 기술 등 모든 것이 안정화가 되니, 교사의 초심이 사라지더군요. 무감각하게 아이들을 대하고, 수업을 기계적으로 가르치는 등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직업인으로서 교사가 되더군요. 그렇죠. 매너리즘이었죠. 타성에 젖어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니 견딜 수가 없었어요. ‘내가 교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이곳을 빨리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자꾸만 군대 시절에 초등학교 아이들을 상대로 주일 학교 하던 생각이 나더라고요. 평화롭게 그들에게 말씀을 먹이던 제 모습이 떠올랐어요. ‘중학교가 아닌 초등학교에 가면 내가 원하는 교육을 좀 더 할 수 있겠다’ 생각하고 교대 편입을 준비하게 되었죠.”

 이 이야기를 듣고 전기환 선생님은 영적으로 참 민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대다수는 내면의 양심에서 불편한 소리가 들려도 “괜찮아! 원래 이런 거야”라고 타협하면서 적당 적당히 세상을 즐기는데, 전 선생님은 그런 타협을 거부하고 과감하게 가던 길을 멈추고 새 길을 다시 걷는다. 사실 이런 경우는 ‘교대 편입 사건’만이 아니다. 4년 동안 정들었던 거제 대우초등학교에서 거창 샛별초등학교로 옮기는 데서도 양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전기환 선생님의 삶이 드러난다. 공립 학교 선생님들은 “원래 그런 거 아니야?” 하면서 의구심을 자아내겠지만, 사립 학교에 근무하시는 분들은 이 결정이 정말 힘든 것이라는 걸 많이 공감하실 것이다.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는 사립 학교에서는 웬만해서는 공립 학교 혹은 다른 사립 학교로 자리를 옮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체제에서 적응할 만큼 적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전 선생님은 그 정들었던 곳을 박차고 또 다른 모험을 지금, 샛별초등학교에서 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업을 찾다 !

 “사실 부끄러워요. 남들은 한 곳에서 잘 정착하고 그곳에서도 멋진 교사 생활을 하시는데 나는 또 학교를 옮겨 왔으니 말이에요. 사실 사립 학교라는 곳은 오랜 시간 동안 한 곳에 있기 때문에 정체되기 쉬운 곳이에요. 그러나 한편으론 천천히 자기 연마를 하면서 교육자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기르기도 좋은 환경이에요. 그런데 저는 또다시 떠나온 거죠. 그래서 좀 그래요. ‘내가 왜 떠나 왔을까?’ 하고 지금도 늘 생각하고 있어요.”

 “교대를 어렵게 졸업하고 운 좋게도 바로 거제에 있는 대우초등학교에 왔어요. 그곳은 정말 좋았죠. 특히 동료 선생님들이 아주 좋았어요. 신우회를 같이하면서 신앙적으로 많이 성장했던 곳이 그곳이에요. 김인숙 선생님, 반정옥 선생님께서 기독 교사의 본을 보여 주셔서 정말 힘을 많이 얻었던 곳이에요. 지금도 그때 생각이 많이 나요. 성경 말씀도 보고 존 스토트나 C. S. 루이스의 신앙 서적들을 많이 읽으면서 기독인의 삶, 기독 교사의 삶을 참 치열하게 고민했던 곳이에요. 그런데도 제 내면에 해결되지 않는 갈급함이 있었어요. 그것은 대우초등학교가 기독교 학교가 아니다 보니 제가 원하는 수업을 하기가 힘이 든 거예요. 제 신앙이 점차 성장하다 보니, 아이들에게도 성경적 가치관을 심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아직도 저는 중학교 때처럼 지식을 단편적으로 전달하는 그냥 평범한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원색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싶은 것보다도 제 수업을 통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에 대한 경이로움을 아이들에게 온전히 전하고 싶은데, 이때의 제 수업은 ‘전기환’이라는 교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가르칠 수 있는 수업을 하고 있는 거였어요. 특히 고학년을 가르치면서 이런 고민들은 더욱 심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왕 내가 교사가 된 거, 좀 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수업을 해 보자. 내가 기독교적인 수업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 보자 해서, 다시 기독교 학교인 샛별초등학교에 오게 된 것이죠.”

 결국 기독교적인 수업에 대한 열망 때문에 전기환 선생님은 샛별초등학교로 옮겨 온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행복한수업만들기 초등 모임의 도움을 받아 ‘나니아 나라 이야기’로 학생들과 의미 있는 수업을 하고, 학급 문집도 만들어서 학부모들과 학생들에게 보급했다고 했다. 이 문집을 보면 선생님이 지금 얼마나 기쁘게 수업을 했는지가 문집 서문에 드러난다.


 “나니아 나라 이야기의 두 번째 책인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아이들에게 읽어 주게 된 첫 수업 시간. 저는 마치 10여 년 전의 파릇파릇한 교육 실습생이나 된 것처럼 매우 긴장하였고, 아이들에게서 어떤 반응이 나올까 매우 조마조마한 마음이었습니다.  순간, ‘책 읽어 주기에 참여하시는 학부모님들의 심정도 아마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막 스쳐 지나가기도 했지요. 그리고 드디어 옷장 속에 들어가는 루시의 대사에서부터 저도 내용 속에 빠져 감정을 이입하여 실감나게 읽어 주게 됐는데 이 대목부터는 우리 아이들에게서 꽤 즐거운 반응들이 나왔습니다. ‘까르르’ 웃어대면서도 아이들의 눈망울이 이토록 반짝일 수 있을까 신기했습니다. 다소 과장된 목소리로 구연하듯 읽어 줄 때, 우리 아이들은 꼭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마치 저학년과 같은 순수함으로 잘 들어주었습니다. 하얀 마녀의 등장에서는 아이들의 반응이 제대로 터져 나오고야 말았습니다. 더러는 부담스러워 하기도 하고, 더러는 이미 읽어 봤다고 지루해하기도 하는 아이도 소수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 어찌나 재밌어 하고 집중하는지 저도 참 놀랐습니다. 정말 고맙게도 말이죠. 정말 아이들에게 고마웠습니다. 교과서대로만 나가면 자칫 힘들었을 수업이, 《사자와 마녀와 옷장》으로 교육 과정의 학습 목표에 맞게 수업을 하니 저도 즐겁고 아이들도 즐거웠습니다.”


 이 글을 읽어 보니 전기환 선생님은 여러 도전 끝에 결국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수업을 잘 이루고 계시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도전이 이렇게 값진 열매를 맺어 가고 있으니 옆에 서 있는 나도 덩달아 가슴이 뜨거워진다. 끝으로 그의 비전이 궁금해졌다.

 “저는 그다지 큰 꿈을 가지고 있진 못합니다. 저로 인해서 아이들이 인생의 대단한 변화를 일으키거나, 또는 제가 교사로서 크게 출세하거나 하는 것 등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큰 바람은 행복한 수업을 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수업. 그릇된 정책이나 정형화된 교과서 내용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소통하며 예수님의 메시지를 행복하게 나누고 실천할 수 있는 수업. 굳이 저의 비전을 표현한다면 ‘행복 선생님’이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행복해지고 선생님인 저도 행복한 교실을 꿈꿉니다.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교실 말입니다.”


 전 선생님의 삶을 보면서 문득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되돌아봤다. 지금도 내 안에 있는 수많은 고민들, 수많은 타협들, 나는 어떤 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이켜 보게 된다. 사실 나는 선교 단체 간사 출신이다. 그때 내 월급이 75만 원 정도였다. 이 돈으로 모든 사역비를 충당하고 가족까지 책임져야 했다. 그런데도 참 기뻤다. 왜? 내가 영혼을 살리는 사역을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보다 수배의 돈을 받아 물질적 여유는 생겼지만, 예전만큼 기쁘지 않다. 근심도 오히려 늘었다. 정신적인 여유는 더 사라진 것이다. 전 선생님의 삶을 곰곰이 묵상하면서, ‘이런 내 삶에서 내가 돌이켜야 할 길은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세상과 타협하고 있는 지점이 무엇이 있는지?’를 민감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 지금! 우리는 각자 내면의 소리에 조용히 귀 기울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