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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만남

좋은 만남, 박소형 선생님


대구 인지초등학교 박소형 선생님

수업을 바꾸는 작은 날갯짓

 

 

 





이 꼭지의 담당 기자로서 늘 가지는 노파심은 좋은교사 선생님들이 〈좋은 만남〉에 소개되는 선생님들을 특별하게 생각할 것 같다는 것이다. 단호하게 말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아니다. 여타 선생님들과 같이 늘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상황 속에서 고민의 끈을 놓지 않고 조금씩 변화를 도모하는, 아주 평범한 선생님들이다. 오늘 소개하는 박소형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박소형 선생님은 12년 차 교사로 수업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 고민을 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 12년 동안의 ‘수업 병’이 낫지 못한 것이다.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눅8:43~44)

그는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이 조용히 예수의 옷자락을 만진 것처럼, 조용히 방송국 문을 두드렸다. 그렇다! 박소형 선생님은 화제의 다큐 <우리 선생님이 달라졌어요> 시즌2에 출연하여 ‘통제적인’ 수업에서 ‘사랑이 넘치는’ 수업으로 대변신을 한 화제의 주인공이다. 영상에서 그가 던진 “가치 있는 것을 잃어 버렸다”는 말은 지금도 많은 교사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이 방송에 출연했고, 방송에 나온 것처럼 진짜 수업이 바뀌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막무가내 기자 김태현은 박소형 선생님을 다짜고짜 인터뷰를 하고 왔다.

건방진 프로필

박소형 37세, 교직 경력 12년! 1975년 대구에서 둘째 딸로 태어남. 말로만 듣던 고집 세고 이겨야 산다는 둘째 딸. 아들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이 ‘형’. 그러나 딸만 넷, 오 마이 갓 !

가난한 집안 형편이었지만, 학교 준비물은 각자 따로 다 가지고 있을 만큼 어머니의 교육열이 대단했음. 성적은 아주 잘한 건 아니지만 늘 상위권.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부담으로 스트레스 받은 적 별로 없었음. 이런 망언을! 망언 때문인지 학창 시절 친구는 소설 속 인물, 빨강머리 앤, 데미안과 싱클레어와 친구였음. 이건 또 무슨 소리! 책이 친구보다 많았다는 망언!

교사 ! 별로 하고 싶지 않았음. 그냥 성적에 맞춰 진학함 ! 1993년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에 입학, 대구교대와 갈등하다가 새로운 환경에 가 보고 싶어서 혼자 결정하고 원서 씀.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본격적으로 시작됨. 1학년 방 친구 3명 중 2명이 골수 CCC. 지금은 간사인 경민이, 사모인 선희, 과 절친 지영이도 CCC.

한 학기 동안 피해 다니다가 여름 방학 때 청주에서 야학한다고 혼자 자취했는데, 엄청 아프던 어느 날, 친구들의 하나님이 생각났고 친구들이 준 성경 책을 읽으면서 2학기에는 순 모임에 따라가기로 결정함. 할렐루야 !

하늘 높았던 1994년 가을날, 선희가 순 모임 가자고 해서 따라 나선 것이 새 인생의 시작이 되었음. 지적 탐욕(?)이 대단하여 CCC 동아리 방에 있던 무수한 책을 읽어 나가고, 모든 훈련 받는 모임에 참석, 남들이 보기엔 비약적인 성장, 3학년 때 총무 순장 임명, 4학년 때 사랑방장. CCC 엘리트 코스를 착착 밟아 감.

하지만 졸업 후 신앙의 바탕이 없는 대구로 내려감. 어디로 가야될지 모른 채 1년을 무기력하게 보냄. 그런데! 유일하게 교회 다니던 동네 친구를 길에서 만남. 그 교회에서 좋은 언니, 좋은 누나로 청년회, 주일 학교를 휩쓸고 다님. 주님의 인도하심이란 !

4학년 때 임고 낙방 ! 하지만 짐작된 결과임. 대학 시절엔 교사에 대한 비전이 없어서 공부를 안 했음. 진로를 고민하다 대구대 특수 교육 대학원 진학. 1년 후 그만둠. 대학원의 문화가 답답해 견딜 수가 없었음.

그런데 또다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함. 정년단축으로 인해, 초등 교사가 갑자기 부족해져서, 임고에 응시. 공부 ‘조금’ 하고 합격! 또다시 이런 망언을!

하지만 1999년 발령받고 인간이 더 괴팍해짐. 신앙과 교사의 삶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 갈등이 계속됨. 아이들에게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는 게 어떤 건지 정말 감이 오지 않음. 성경 말씀대로 삶이 되지 않으니 죽을 것 같았음. 그래서 배움으로 교사의 정체성을 찾음. 온갖 연수로 늘 11시 넘어 귀가, 새벽에 집을 나서는 생활이 계속됨.

그러나 교사 5년 차에 접어들면서 영어 전담을 하게 됨. 담임으로서 부담이 없어지니 아이들이 사랑스러워 보이기 시작함. 교사로서의 재미를 느낌. 이후 수업을 위해 2007년 협동 학습, 2009년 오차원 전면 교육 학습법, TET, 2010년 기독교사대회를 이어 행복한수업만들기 모임을 열면서 ‘수업’과 ‘관계’로 고민의 폭이 좁아짐. 하지만 학생들과의 관계 개선이 안 됨.

결국, 2011 EBS <우리 선생님이 달라졌어요>에 출연을 결심하는 충동적인 짓을 시도함. 정말 왜 이런 무모한 결정을! 출연 후에도 마음이 시원해지지 않으면 교직을 그만두기로 남편과 합의함.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본인이 가진 틀을 제대로 깨고 여러 가지 시도해 봄. 그 결과 수업에 대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남! 수업 극뽀옥~!

온갖 망언을 일삼으면서도 교육의 본질을 고민하며 자기 개혁을 일삼은, 박소형 당신은, 욕심쟁이 우후후훗!

 

직업인 교사에서 소명인 교사로

대학 시절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한 박소형 선생님은, 얼핏 보면 교사로서의 부르심이 굉장히 확고했을 거라 생각했다. 초신자였기에 영혼 구원을 향한 뜨거운 마음이 교직과 그대로 연결되었을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선생님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이상할 만큼 교직에 대한 설렘이 생기지 않아서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정말 이상했어요. 많은 친구들은 교직과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잘 연결했어요. 그래서 그들은 교사가 되면 학생들을 어떻게 양육할 것인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를 늘 고민하며 가슴 설레 했었죠. 하지만 저는 그런 감정이 잘 들지 않는 거예요. 대학 시절엔 처음 접한 기독교와 예수님에 대해 알아 가는 기쁨은 있었지만 ‘내가 교사를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어 심각한 고민에 빠지곤 했어요. 늦게 예수님을 믿었으면 오히려 더 열정적으로 교사를 해서, 학생들을 예수의 제자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마음조차 들지가 않았어요. 당연히 임용 고사 공부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고요. 여러 신앙 서적은 읽어도 교육학에 관계된 책은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첫 번째 임고 시험에 낙방할 수밖에 없었죠. 하나님의 은혜로 교원 부족으로 바로 교사 임용이 되었지만, 늘 내 마음속에는 ‘나의 소명이 교사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당연히 이런 생각은 교직 생활에 대한 회의를 가져오게 했죠. 그래서 교직 초창기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기보다는 내 틀에 억지로 맞추려고 들었죠. 그래서 그때는 학교 오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출근할 때마다 ‘이 짓을 계속 해야 하나?’ 하는 마음이 늘 들었죠. 그리고 이런 허전한 마음을 엉뚱한 곳에 풀었어요. 원래 무엇을 배우는 것을 좋아하기에 교직과 관련이 없는 이런저런 연수를 들었어요. 원예, 도예 등 온갖 것을 배우면서 마음의 허전함을 채우려 했어요.”

“그리고 교직 생활 5년이 지났을 때, 영어 전담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때부터 학생들이 정말 예뻐 보이기 시작했어요. 담임일 때는 온갖 것을 관여하다 보니 학생들이 예쁘다는 생각을 못 했는데, 한 발짝 멀리서 학생들을 바라보니 마음에 부담도 없고, 아이들과 같이 있는 것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맞아요. 이때 아이들이 제 마음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다 보니 학생들 얼굴도 더 자세히 오래 보게 되고,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더군요. 조금씩 교직 생활이 재미있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2년이 지나고 7년 차 때 다시 담임을 하게 되었어요. 정말 부푼 마음으로 다시 교사 생활의 새로운 첫 걸음을 내딛는 것 같았죠.”

 

EBS의 문을 두드리다

‘교사 5년 차에 새로이 눈을 뜨게 되면서 굳이 EBS에 출연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마음으로 열정적으로 교직 생활에 임했을 텐데, 방송에 출연하면서 자신의 수업을 송두리째 만천하에 공개하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교사에게 수업을 공개한다는 것은 자존심과 관계된 일이고,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하는 무모한 도전일 텐데 어떻게 해서 박 선생님은 〈우리 선생님이 달라졌어요〉에 출연하게 되었을까?

“EBS 출연,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죠. 하지만 저는 제가 방송에 나와 부끄러운 것보다 제 수업이 바뀌지 않아, 저 스스로 낙담하는 것이 더 힘들었어요. 그래서 어렵게 어렵게 방송 출연을 결심했죠. 사실 7년 차부터 시작된 새로운 담임 생활에 자신이 있었어요. 그리고 더 열정적으로 수업 변화에 필요한 연수를 들었어요. 협동 학습 연수, 5차원 교육, 교사 역할 훈련 등 또다시 갖은 연수를 들으면서 ‘이제는 정말 교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죠. 그런데 저는 새로운 활력을 갖게 되었는데, 학생들은 바뀌지 않는 것 같았어요. 저는 내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삶이 바뀌고, 새로운 꿈을 꾸게 해 주고 싶었는데, 1년을 돌아보면 그렇게 된 학생은 많이 없었던 거 같았어요. 그래서 또다시 고민했죠.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학생들은 바뀌지 않는가?’ 이 질문에 대한 저의 답은 일단 나에게 문제가 있다.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바뀌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그래서 독한 마음을 품고 방송에 출연하기로 했죠. 그리고 남편에게도 내가 만약에 이번에 어떤 활로를 찾지 못한다면 교직을 그만두겠다고까지 말했어요. 그만큼 저에게 있어서 수업 문제는 절박한 문제였어요. 남편도 저의 고민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하라고 말을 하더군요. 그리고 방송을 출연했죠. 앞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고 그냥 간 거죠. 진짜 무모한 도전인 거죠.”

“그런데 막상 방송을 출연하려고 보니깐, 참 많이 긴장되더라고요. 낯선 방송 환경이 저의 마음을 짓눌러 오더군요. 드디어 첫 스튜디오 촬영! 캄캄한 어둠 속에서 오롯이 제 수업을 직접 보니깐, 마음이 참 그렇더라고요. 예전에는 수업하는 내 모습만 봤었는데, 이번에는 내 수업 속에서 학생들의 모습까지 생생히 찍혀 나오니깐, 내가 어떻게 수업하는지 확실히 알게 되더라고요. 내가 당연히 생각했던 지점들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사실 그래요. 학교에 있다 보면 학생들이 내 말에 착착 움직이고, 따르게 되는 모습을 보며 동료 선생님들이 칭찬을 많이 해요. 애들을 참 잘 길들였다고 말이에요. 저는 그 말에 만족했죠. ‘그래 우리 반은 지금 잘 굴러가고 있구나!’, ‘내가 지금 이렇게 혼내는 것은 아이들의 잘못된 습관을 바꿔 주는 거야’ 등 저 나름대로의 당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내 통제에 따르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니 그것이 아니었어요.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간섭하고 있구나!’, ‘내 틀을 지나치게 많이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몰래 눈물이 나더군요. 사실 저는 눈물을 거의 흘리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방송을 보니 참 부끄러울 정도로 울고 있더라고요. 제가 정말 가치 있는 것을 잃어버린 모습에 학생들에게 미안하고, 내 자신을 자책하는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그 순간에는 너무 부끄러웠지만, 조금씩 제가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념, 틀, 특히 내가 옳았다고 하는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스튜디오 코칭 때, 이상하게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어요. ‘그래 한번 바꿔보 자!’. ‘내가 가지고 있는 틀을 놔 보자!’, ‘좀 더 학생들의 소리를 들어 보자!’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촬영을 마치고 내려가는 기차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할까?’, ‘당장 내일부터 학생들에게 무엇을 시작할까?’ 하는 고민을 했어요. 그리고 학생들을 안아 주기로 결심했어요. 방송에는 누군가 시켜서 한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제가 먼저 한 거였어요. 그냥 학생들을 안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예전부터 이 일을 하고는 싶었는데, 경상도 사람이라 조금 쑥스럽고 그래서 하지 않았어요. 사실 저는 인사도 학생들과 제대로 하지 않았거든요. 아이들을 잘 잡고, 수업을 잘 가르치면 되지,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는 제가 생각한 만큼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거 같았어요. 그래서 아이들과 인사하면서 굳어졌던 마음을 풀어 줘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런데 그랬더니 정말 신기하게 학급이 바뀌는 거예요. 방송에 나온 것처럼 학생들이 저에게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저에게 머뭇거렸던 아이들이 말을 하기 시작했어요. 쉬는 시간에 자신의 고민을 말하기 시작했고,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하기 시작했어요. 저 또한 이렇게 다가오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예전 같았으면 그냥 혼낼 일인데,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혼은 내지만 그들의 마음을 품어 주기 시작했어요. 지각했을 때도 그 아이를 안고 있으면, 콩닥콩닥 가슴 뛰는 소리가 들려요. 저는 생각하죠. ‘얘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구나!’ 그러면 마구 다그치기보다는 인격적인 말로 타이르죠. 물론 이런 저의 변화로 예전보다 학급 규율이 조금은 느슨해졌죠. 하지만 학생들의 마음이 풀리고 학급에 온정이 넘치는 것을 느껴요. 참 신기하죠. 나는 조금 더 아이들에게 다가선 것뿐인데, 그 이상으로 학생들은 저에게 더 많은 것을 줘요. 예전에는 수업이 교수 방법이나 교수 기술을 바꾸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에 변할 것은 제 마음이더군요. 내 마음이 학생에게 향해 있으면 수업과 학급 분위기는 저절로 바뀌게 되는 것 같아요.”

“방송이 끝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물어봐요. 여전히 학급이 방송에 나온 그런 분위기냐고. 저는 웃으면서 말하죠. ‘그럼요!’ 물론 아직도 많이 부족한 점이 있죠. 하지만 예전보다 분명히 저와 학생들, 학생과 학생들의 관계가 정말 좋아졌어요. 서로 비난하고 다그치기보다는 서로 공감하고 들어주는 관계가 되었죠. 아직 학생들에게 피드백을 받지 못했지만 올해에는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말들이 많이 나올 것 같아요. 아이들에 대해서 이런 기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 큰 변화죠.”

 

새로운 꿈을 꾸다

박 선생님 스스로는 알아차리지 못하겠지만, 박소형 선생님은 이미 많은 초등 선생님들에게 ‘벼락 스타’가 되었다. 그의 변신을 통해 많은 선생님들이 힘을 얻었고, ‘통제’하는 수업이 아니라 적절한 ‘경계’와 ‘존중’으로 학생들과 호흡하기로 많은 분들이 결단하고 있다. 박소형 선생님이 내뱉은 한마디 “가치 있는 것을 잃어버렸구나!”는 온 교사의 가슴속에서 울림을 주고 있어서, 본의 아니게 그는 교육의 공인으로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좋은교사 정책 토론회에서는 발제자로 서기고 하고, 다가오는 1월 겨울 자율 연수에는, ‘우리 선생님이 달라졌어요’를 강의하기도 한다. 그의 특별한 체험이 많은 선생님들에게 도전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그녀의 앞으로의 포부가 궁금해졌다.

“솔직히 방송 나가고 나서 참 많이 부끄러워요. 방송 후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럽지만 이 기회로 제 자신을 더 다져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교사들에게 무엇인가 긍정적인 신호를 주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요. 그래서 내가 있는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지금은 행복한수업만들기 대구 초등 모임을 섬기고 있는데, 여러 동료 선생님들과 행복한 수업, 행복한 관계를 고민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동안 분절적으로 들어 왔던 여러 강의들, 협동 학습, 미술 치료, 5차원 학습, 대단원 재구성 등 이런 모든 것들을 잘 종합해서, 현장에 있는 교사들에게 도움을 주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아이들이 변화되기를 바라지만 사실 교사가 먼저 변화될 필요가 있었어요. 스스로 성찰의 시간을 가지는 분들도 많으시지만 자신을 깨고 나오는 데 힘든 선생님들, 특히 저와 비슷한 선생님들 속에 있는 고민을 같이 나누고 자신이 처한 부분에서부터 세워 나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해요.”

 

박소형 선생님의 인터뷰를 마치면서 변화라는 것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우리는 흔히들 개혁, 혁신, 도약 이런 것은 아주 큰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는데, 박 선생님의 삶을 보니 절대 그렇지 않았다. 변화라는 것은 내가 처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조그만 발걸음을 내딛는 것에서부터 시작됨을 다시금 깨닫는다. 수업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거창하게 시작할 것이 아니라 조용히 내 수업 속에서 나의 모습을 보고, 학생들의 반응을 보는 것, 아주 작은 지점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을 알게 된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이 한 일은 단 한 가지, 조용히 뒤로 가서 예수의 옷자락에 손을 댄 것이었다.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눅 8:43~44)

그렇다면 정병오 대표와의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내가 내딛어야 할 작은 발걸음은 무엇일까? 그를 위해 소박한 중보 기도를 시작해야만 하는 것인가? 오늘도 정병오 대표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아, 질긴 악연이여! 아직도 그와 함께할 시간이 1년이나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