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연가 2
너희도 가려느냐?
박 종 태
오병이어 기적을 직접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벌어지자 예수님께서는 갑자기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씀들을 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살과 피를 먹어야 한다는 말씀이 큰 걸림돌이 되었는지 그 많던 무리가 썰물처럼 다 가 버리고 열두 제자만 남습니다. 그때 주님은 열두 제자에게 물어보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떠나가는 아이들
담임 맡은 학급에서 함께 성경 공부할 아이들을 선발한 후 첫 만남에서 저는 항상 이 말씀을 나눕니다. 발령 첫해부터 계속 디모데를 선발하고 양육하면서 여러 번 아이들이 떨어져 나가는 상황들을 접했습니다.
양육을 받는 동안 아이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어서 학급 임원이 되었는데, 그 우쭐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서 떨어져 나가는 아이들, 졸업한 이후에 더 이상 아이들을 양육 모임에 보내지 않겠다는 부모님들, 졸업 이후 이제 더 이상 담임이 아니기에 안 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강퍅한 아이들, 양육 동안 잠잠했던 문제 성향들을 중학교에 들어가서 다시 드러내는 아이들.
환경적인 이유로 중간에 그만두는 아이들도 있어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가장 기대했던 디모데들은 왜 그리 중간에 전학 가는 일들이 잦은지. 디모데 수련회를 갔다 온 날 부모님의 이혼 소식을 전해 주며 전학을 가게 되었다고 전화한 제자의 경우에는 한동안 전화기를 붙잡고 아무 말도 못했었습니다.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외치며 저에게 달려든 것이 바로 전날이었는데….
작년에는 제자들을 꽤 잘 양육했었습니다. 그러나 2학기 마지막부터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아이들이 졸업하고 얼마 후 디모데 학부모님들로부터 문자를 두 개 받았습니다. 내용은 공부 때문에 더 이상 아이를 디모데 모임에 보내지 않겠다고.
남겨진 자의 아픔
디모데들이 떨어져 나가는 일은 저에게 큰 아픔입니다. 저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공유하였고, 시간과 정성, 물질을 드렸고, 제가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아는 디모데들이기에 그들의 떠남은 저에게는 몸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 같았습니다. 스스로 떨어져 나가는 아이들에게선 배신감 비슷한 것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 배신감이 주는 상처 때문에 디모데를 선발할 때 그런 성향이 있는 아이들이 나올 경우에는 알아서 떨어져 나가게 일부러 마음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선한 방법이 아님을 알기에 회개하고 고쳤습니다.
올해도 아이들을 맡으면서 위기가 잠깐 있었습니다. 올해 아이들이 별로라는 말을 선생님들로부터 자주 들었는데, 한 달 정도 지난 후 디모데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영적 실체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쌓아 왔던 제 경험상 아이들이 몇 명이나 선발될지, 아니 제가 처음 말을 꺼낼 때 관심을 가질 아이들이 몇 명일지 예상하는데 그 예상은 여지없이 맞았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선생님과 무엇이든 함께할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했는데 열두 명 정도가 손을 들었습니다. 항상 반 아이들의 절반 이상, 심지어는 2/3 정도가 손을 들고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또한 항상 20명 내외에서 부모님 동의서를 받아 갔는데, 올해는 6명이 받아 가고 3명이 허락을 받아 왔습니다.
며칠 동안 스트레스가 밀려왔습니다. 또 얼마나 많은 수고를 드려야 아이들의 마음 밭이 바뀔까, 그런 마음 밭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접해야 할 학부모나 주변 교사들과의 갈등,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실망할 때마다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겪어야 할 제 내면의 갈등들. 참으로 섬김은 피곤하고 고통스럽기도 한 것 같습니다.
나를 향한 말씀
요한복음 6장 말씀은 디모데 아이들과 첫 모임을 가질 때 항상 나누는 말씀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접하고는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 꽤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랐던 것 같은데,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을 통하여서 그들을 떠나가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열두 제자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아이들과 이 말씀을 나누면서 아이들의 확고한 결심을 받아 내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계속해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시간이 지나면서 이 말씀은 저에게 적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에서 이야기한 그런 상황들이 계속 발생하더라도 계속해서 아이들 양육해 나갈 것인지, 어떤 상황에서도 제자의 길을 갈 것인지 디모데 선발을 즈음해서 오히려 저에게 말씀을 통하여 물어 오셨습니다.
어쩌면 “너희도 가려느냐” 하는 예수님의 질문은 떠나갈 것인가를 물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품고 계신 꿈을 제자들도 함께하고 있는지, 아니 앞으로 계속해서 함께할 것인지를 물으신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늘, 3명의 디모데들과 처음 모임을 가졌습니다. 항상 그래 왔듯 요한복음 6장 말씀을 나눴지만, 이번에는 아이들의 결심을 얻어 내는 것이 아닌 제 꿈을 이야기 했습니다.
“지금 내가 너희들과 디모데 모임을 하는 것처럼, 너희가 커 나가면서 계속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그 분의 말씀을 가르치고 제자들을 길러 내는 일을 했으면 한단다. 너희들이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는 것이 선생님의 꿈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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