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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 특집 글

덴마크 교육의 발견 3 : 덴마크 교육을 보며 우리 교육의 미래를 꿈꾸다

 

특집 3 ) 탐방 소감1

덴마크 교육을 보며 우리 교육의 미래를 꿈꾸다



김현섭
: 서울 구현고등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고 있다. 협동학습연구회를 창립해 10년 동안 이끌어오다 이번에 대표를 내려놓았으며, 현재는 좋은교사운동 학교 혁신 위원장과 서울시 교육청 혁신 학교 추진 자문단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duhope88@hanmail.net




공립 학교와 대안 학교와의 조화를 바라보며


덴마크에 가서 공립 학교도 살펴보았지만 자유 학교(대안 학교)가 더 인상 깊게 다가왔다. 덴마크의 공립 학교 교실 풍경을 살펴보니 학교 시설은 핀란드와 거의 차이가 없었는데 덴마크 학생들은 핀란드 학생들에 비해 밝고 적극적이었다. 핀란드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외부 인사의 수업 관찰 여부와 상관없이 수업에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덴마크 학생들은 외부 인사에 대한 호기심도 많았고 수업 시간에 떠들거나 인터넷을 통해 페이스 북이나 게임을 하는 학생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PISA 1위와 30위의 차이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덴마크는 PISA 테스트에서 30위권에 머물러 있다.)

덴마크 정부가 사립 학교인 자유 학교에도 재정을 지원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덴마크에서는 자유 학교에 경제적인 지원을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 학교 학생들에게 75% 정도의 학비를 지원해 준다. 공립 학교에 100%를 지원하는 것에 비해 다소 부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나머지 25%가 그리 크지 않은 금액이기 때문에 학부모나 학생들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자유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학비가 지원되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공립 학교가 아닌 자유 학교라 할지라도 학부모들이 국가에 세금을 내고 있는 이상 비슷한 수준의 학비 지원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덴마크 교육 정책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교육의 한계에 실망한 사회단체나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대안 학교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대안 학교에 대해 재정 지원을 하지 않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도 정부 차원에서 대안 학교들을 인정하고 어느 정도 대안 학교를 지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국가가 사립 학교 운영비를 직접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가가 학부모들에게 학비를 지원해 주고 학부모들이 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방식이 보다 합리적인 지원 정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해야 사립 학교나 대안 학교들이 학교 설립 취지에 맞게 교육 당국의 통제 없이 소신 있게 학교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학교를 잘못 운영한다면 학부모들이 해당 학교에 학생들을 보내지 않을 것이고 그 학교는 학생을 모집할 수 없게 되어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다. 국가가 직접 예산을 지원하고 지원하는 만큼 직접 학교를 통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국가가 학교를 간접 지원하고 학부모들이 학교를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신중하게 모색하면 좋을 것이다. 미국의 타터 스쿨(협약 학교)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숨 돌릴 시간을 주는 애프터 스쿨


애프터 스쿨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방과 후 학교겠지만 덴마크에서 말하는 애프터 스쿨은 우리나라 방과 후 학교와 개념이 달라서 그대로 애프터 스쿨이라는 이름으로 사용한다. 덴마크 애프터 스쿨은 고등학교 과정 수준의 청소년들이 일반 학제에서 잠시 벗어나서 1년 동안 숨 돌릴 시간을 갖는 학교이다. 여기에서는 공부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친구들과 어울려 자연스럽게 놀 수 있으며, 개인마다 진로를 모색하고 구체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으며, 연애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한마디로 사춘기를 보낼 수 있는 합법적인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인생의 목표나 자신의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공부에 눌려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고만 아이들을 만난다. 작년 고2 우리 반 아이들 중에서 세 명이 자퇴를 했다. 2학년 학급 중에서 가장 자퇴를 많이 해서 본의 아니게 자퇴 전문가(?)가 되고 말았다. 우리 학교는 7:1이라는 경쟁률이 높은 선호 학교이고 우리 학급은 다른 학급에 비해 착한(?)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조용한 반이었다. 그런데 자퇴한 학생들의 사유는 진로와 적성, 그리고 친구 문제 때문이었다. 고2가 되도록 자기 적성과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소위 좋은 학교에 무작정 들어왔는데 막상 공부가 치열해지다 보니까 견디기 힘들어진 것이다. 두 명의 친구들은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었는데 차라리 우리 학교(인문계 학교)가 아니라 예술 고등학교 실용 음악과를 갔으면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하였을 아이들이었다. 나머지 한 명은 대인 관계 능력에 어려움이 있어서 결국 자퇴하고 말았다. 만약 세 명의 친구들이 애프터 스쿨에 다녔더라면 구태여 자퇴라는 초강수를 쓰지 않아도 일반 학교에서 잘 적응했을 것이다. 최근에 교사들에게도 연구년이나 안식년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교사들에게도 재충전의 기회가 필요하듯이 질풍노도의 시기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잠시 재충전하거나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우리나라도 주었으면 좋겠다.



DREAM COME TRUE


덴마크 학교 탐방 마지막 날 교사 지원 센터를 방문했다. 사실 그리 기대가 되지 않는 곳이었다. 이미 핀란드에서 도서관을 방문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교사 지원 센터라는 것도 훌륭한 시설과 많은 장서들이 배치되어 있는 공간 정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교사 지원 센터에 가보니 예상했던 그런 곳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교사 지원 센터 공간이었다.

덴마크 정부에서 직접 주관하여 지역별로 7~8개 학교들을 묶어 교사 지원 센터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다. 교사 지원 센터는 교사들의 수업 연구와 관련된 책들과 수업 도구를 잘 갖추었을 뿐 아니라 교사들이 요구하면 센터에서 직접 학교로 학습 도구 등을 배송하여 8주간 대여해 주기도 한다. 소그룹이나 단위 학교 선생님들이 연수할 수 있도록 세미나실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센터 주관 각종 교사 연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론과 실천이 겸비된 능력 있는 박사 학위 급 수석 교사가 교사 지원 센터에서 근무하면서 교사 연수를 기획하거나 직접 강의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단위 학교나 개별 교사가 수업 컨설팅을 요구하면 수석 교사가 해당 학교 학급에 들어가 전문적인 수업 컨설팅도 실시하고 있었다. 즉, 교사들이 수업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물적, 인적 네트워크가 마련된 공간이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시도별로 교수 학습 센터가 있지만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지역 교육청이 교육 지원청으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실질적으로 크게 변한 것이 없는 상황과 비교되었다.

교사 지원 센터를 돌아보면서 우연히 케이건 협동 학습 관련 안내 포스터를 발견했다. 협동 학습 모형에 대한 단계 안내 자료가 게시판에 붙어 있었다. 수석 교사에게 이에 대해 물으니 최근 4~5년 전부터 덴마크에서도 협동 학습이 보급되면서 많은 교사들이 협동 학습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10년 전에는 다중 지능 이론이 교사들의 관심을 끌었고 최근에는 협동 학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협동 학습과 관련한 다양한 연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협동 학습 운동이 이미 15년 전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에 비하면 덴마크는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나름대로 착실하게 실천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한국과 덴마크의 차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노력하여 이룬 성과라면, 덴마크에서는 정부의 지원 하에 교사 지원 센터를 중심으로 차분하게 정착되고 있다는 것이다. 참 부러웠다.

10년 전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한 가지 꿈이 있었는데 그것은 케이건 센터와 같은 교수 학습 센터를 만드는 것이었다. 교사를 위한 자료들이 비치되고 각종 연수들이 진행되며 교사들이 편안하게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수업 컨설팅이나 학교 경영 컨설팅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런데 이미 현실화된 덴마크의 교사 지원 센터를 보니 나의 꿈이 꿈이 아니라 여기에서는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몹시 부러웠다. 게다가 개인이나 단체 차원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교사 지원 센터를 보면서 많은 도전을 받았다. 이번에 협동 학습 센터를 본격적으로 개소하기로 했는데, 교사 파견이나 예산 지원 등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덴마크 교사 지원 센터 같은 공간을 우리나라에서도 설립하여 운영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꾸는 꿈은 꿈으로 그치겠지만 함께 꾸는 꿈은 곧 현실이 될 것이다.  



PISA? PIZZA?


최근에 한국에서 핀란드 교육 열풍이 불게 된 가장 큰 요인은 PISA(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이다. PISA에서 핀란드가 1등을 했기에 교육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핀란드로 몰려가게 된 것이다. 우리 역시 핀란드에 가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도 핀란드의 PISA 1등 비결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함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핀란드나 덴마크의 학교들을 탐방할 때마다 PISA 관련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덴마크 교사들도 PISA 때문에 최근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정부에서 PISA 결과를 가지고 교사들에게 압박을 가하고 최근에는 일제 고사도 저학년부터 실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교사들끼리는 PISA를 PIZZA라고 부르며 시기어린 농담을 한다고 했다.

최근 PISA 시험 방식이 가지고 있는 한계에 대한 논란이 있다. 과연 PISA 시험 방식이 진정한 학업 성취도 평가 방식으로 적합한가에 대한 의문이다. 최근에 스웨덴 교육국 책임자와 인터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스웨덴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있다고 한다. 현재의 PISA 방식은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학생들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 비판적 사고 및 창의적 사고, 민주적인 생활 태도 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특정 능력을 부각한 PISA 성적을 가지고 각 정부마다 지금까지 잘하고 있는 학교나 교사들에게 성적에 대한 압박을 주는 현상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덴마크의 경우, 최근에는 학교 성적 순위를 1등부터 꼴찌까지 공개한다고 한다. 심지어 PISA 성적이 좋은 핀란드조차 뛰어난 교육 및 복지 환경에 관심 있는 이민자들이 많이 몰려와서 고민이라는 것이다.

덴마크에서도 우리가 지금까지 교육을 잘해 오고 있는데, PISA 때문에 왜 문제를 삼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그룬트비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PISA는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교육 정책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러한 논란을 접하면서 별 문제 의식 없이 생각했던 PISA 시험 방식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결국은 교사다 !


“선생님, PISA 시험 결과를 보면 이웃 나라인 핀란드가 덴마크에 비해 좋은 성적을 거두었는데 덴마크와 핀란드를 비교해서 평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덴마크 교사 지원 센터에서 덴마크 교육 현실에 대하여 설명하던 수석 교사에게 다소 예민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주변의 다른 선생님들이 너무 민감한 질문이 아니냐고 나에게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그 수석교사는 담담하게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덴마크에 비해서 핀란드의 학력 수준이나 교육력이 앞서 간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이유를 교사라고 봅니다. 핀란드는 덴마크에 비해 교사에 대한 권위가 높고 사회적, 경제적인 대우가 높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수한 자원들이 교사를 자원합니다. 교사 양성 과정도 이론과 실습을 조화 있게 구성하고 있고 예비 교사들을 잘 양성할 수 있도록 체제가 잘 구성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핀란드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자 교육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 주고 학교에 자원 봉사나 자원 교사 역할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답변에 탐방단 모두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 교육의 핵심은 예산이나 시설과 같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결국은 교사나 학부모라는 휴먼웨어라는 것이다. 즉, 핀란드와 덴마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시설이나 환경이 아니라 교사라는 것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흔히 이야기한다. 오래된 교육 관련 명제이지만 새삼스럽게 다시 그 명제의 중요성을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