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쌤의 계속되는 교사도전기 16
방학을 보내고 있는 선생님께
담임 교사들의 레퍼토리는요
“작년 애들이랑 달라. 작년 애들은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어.”
몇 번을 불러다 이야기해도 달라지지 않는 아이. 오늘도 누군가 실랑이에 지쳐 푸념하듯 말을 던지지요. 우리의 레퍼토리는 늘 이런 식으로 시작돼요.
“그러니까 말이야. 내 말이 그거라니까. 작년 애들은 최소한 말귀는 알아들었잖아. 공부 못하는 놈들도 도망가거나 뻗대지는 않았잖아.”
“나름 귀엽기도 했지. 덩치는 산 같은 것들이 순진한 구석은 많아가지고.”
“올해 아이들은 왜 이리 철이 없는지, 초딩도 아니고 사고 수준이 유딩이라니까.”
때마다 비슷비슷한 레퍼토리지만 처음 당하는 일처럼 한풀이가 줄을 잇는 법이지요.
사실 3년째 3학년 담임을 하다 보니 매해 다른 아이들의 색깔을 구분하기는 어렵지 않아요. 이젠 서서히 정을 뗄 만도 한데 자꾸 생각하는 지난해 녀석들이 때때로 그리워지는 건 또 무슨 심정인지. 특히 올해 녀석들이 기대를 무너뜨리는 사건이라도 터뜨리는 날에는 더욱 그런 마음이 들어요.
그러나 사실 우린 잘 알고 있어요. 이렇게 맞장구를 치며, 떠난 아이들을 그리워하지만, 지난해에도 우린 이런 이야기를 같이 주워섬기며 풀리지 않는 한을 때때로 풀어냈다는 것을요. 이미 떠난 아이들이니 마음껏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요. 이번 녀석들이라고 더 못하거나 철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요. 그런데도 기대와 다른 아이들의 반응을 볼 때마다 한숨과 걱정이 범벅되는 것은 어쩌면 교사의 본능 아닐까요.
녀석들과 보낸 1학기는요
3월 2일. 1년 동안 정들었던 교실(비누 거품으로 닦아 낸 바닥, 껌 떼며 뿌듯해했던 교탁 아래, 몇 번이나 바꾸어야 했던 문고리, 오래된 껌 딱지까지 떼어 내고 닦아 냈던 창틀, 서툰 솜씨로 꿰맨 커튼 등 다양한 인연으로 익숙해진 교실의 분위기와 익숙함 등)을 떠나 낯선 곳에 들어선 첫날. 눈에 들어오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생각했었지요.
‘이 아이들하고 정이 들 수 있을까? 아, 이럴 때는 지난 녀석들이 그립기도 하네. 더 잘해 줄 걸 그랬나?’
뜻하지 않은 낯섦에 울컥 비집고 올라오는 감정을 삼켰던 기억이 나요. 1년간 5층으로 다녔다고 4층까지만 올라가는 것도 어색하고, ‘사람 사랑 12반’에 익숙하다 보니 ‘2반’은 남의 반처럼 입에 달라붙지도 않았어요. ‘우리 반’이라는 말은 왜 그리 낯간지러운지 말하는 나도, 듣는 녀석도 짓는 미소마저 옹색할 지경이라니까요.
그런데 그 녀석들과 지내면서 어느새 정이 들었는지 신기하기만 해요. 등굣길에 뒤통수만 봐도 누군지 알아보겠고, 멀리서 녀석들과 비슷한 이름만 나와도 귀가 쫑긋 세워진다니까요. 4개월이 그리 긴 세월도 아닌데 말이에요. 그러고 보면 저나 녀석들이나 적응력은 정말 놀라울 정도인 듯해요.
4개월 15일 동안 환경 미화, 소풍, 스승의 날, 체육 대회, 두 번의 시험, 공개 수업 등 굵직한 행사와 생일 축하, 가정 방문, 상담, 청소, 졸업 앨범 촬영, 상벌점 등의 공적인 관계 외에도 지각하지 마라, 교과 선생님들께 긍정적으로 반응해라, 서로 친밀하되 상황을 분별해라, 예의를 지켜라, 공부해라, 수행 평가 성실하게 제출해라, 방과 후 수업 열심히 들어라, 일찍 자라, 게임 줄여라, 말할 때와 들을 때를 구별해라 등 수많은 잔소리로 관계를 맺어 왔지요. 그러면서 생각하곤 했어요. ‘자식은 부모 맘대로 안 된다고 하더니, 41명의 담임으로 녀석들을 만나면서 진심을 전하기란 어쩌면 기적일지도 모르겠다는.
특히 기말고사를 코앞에 둔 이때쯤이면 이 녀석들의 실상은 거의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기지요. 시험인데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오산이세요. 시험이 지나면 곧 방학이라는 뜻이고 그것은 학교에 안 나와도 된다는 뜻이거든요. 쉬는 시간마다 삼삼오오 모여 수학여행이나 온 듯 손바닥을 쳐대는 녀석들의 천진함 앞에 시험은 아주 사소한 문제죠. ‘왜 나만 미워하냐’는 녀석들의 레퍼토리도 ‘그걸 이제 알았냐’는 교사의 맞대응도 이때쯤이면 때맞춰 뜨거워진 날씨 속에 하품처럼 늘어져 가요.
방학 때 저는요
이제 방학이에요. 늘어지게 자고 게임과 드라마를 엄마의 잔소리와 곁들어 참 잘도 소화시키고 있을 녀석들 속에 몇몇은 아침부터 방과 후 학교나 학원의 스케줄 따라가느라 학기 중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을 거예요.
녀석들에게 방학은 최고의 시간이고 교사들에게도 방학 이상의 즐거움은 없을 듯해요. 잠시 숨을 고르고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이고, 녀석들에 대한 사랑을 다시 구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에요. 얼마 전 책을 읽다가 이런 글을 보았어요.
이야기의 대가인 이솝이 아테네를 떠나다가 마침 아르고스에서 오는 한 사람을 만났다. 아르고스에서 온 사람이 이솝에게 물었다.
“아테네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솝에 그에게 물었다.
“아르고스 사람들이 어떤지 먼저 말해 주시겠소.” 그 사람이 말했다.
“아주 거칠고 폭력적이고 싸움만 합니다. 한마디로 넌덜머리가 납니다.”
그의 표정에서도 그러한 느낌이 역력했다.
이솝이 말했다. “안된 일이지만, 당신은 아테네에서도 똑같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오.”
조금 가다가 이솝은 아르고스에서 오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 역시 똑같은 것을 물었다.
이솝의 물음에 그 사람은 향수 어린 표정이 되어 말했다.
“그들은 대단히 유쾌하고 다정하고 친절한 이웃들입니다.”
이솝이 무엇이라고 말했을까요? 예상하는 답이 있으시지요?
“나 역시 이렇게 말하게 돼서 기쁘오. 당신은 아테네에서도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오.”
이 이야기를 통해 라즈니쉬는 말하지요. 어는 곳을 가든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요. 모든 인간관계는 거울이라고요. 한 학기 동안 어떤 자신을 만났나 생각해 보아야겠어요. 아시겠지만 다정하고 친절한 녀석들만 만났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때때로 평안을 빼앗기곤 했으니까요. 녀석들 때문이 아니라 바로 저 때문에 말이에요.
부활 후 처음 만난 여인들에게 주님은 ‘평안하냐?’고 물으시잖아요. 그것은 폭풍 가운데 버려진 듯 녀석들과 생활하던 제게 물으시는 주님의 음성이세요. 새 학기에는, 그분께 ‘평안합니다’로 경배하고 싶어요. 이것이 저만의 소망은 아닐 듯해요.
선생님도 평안을 빼앗기지 않는 방학, 2학기 보내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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