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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책갈피

버리지 못하는 굴욕 사진이 있나요?

연수와 수련회의 계절이 왔어요. 연수(硏修)나 수련(修練)이나 비슷한 말이지요. 훈련한다는 뜻이지요. 연수나 수련에 참여한다는 것은 앞으로 할 일에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과 함께, 자신에게 부족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해요.

연수와 수련회 사진은 유독 굴욕 사진이 많지요. 연수 때는 강의에 빨려들어 넋 나간 표정이기 일쑤이고, 교회 수련회 사진은 거의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눈물 콧물 줄줄 흘리며 기도하는 모습인데, 이런 모습이 예쁘게 나오기 어렵지요. 사진의 구석에 짝사랑하던 오빠의 모습이 찍혀 있지 않았다면 옛날에 찢어 버렸을, 어릴 적 교회 수련회의 굴욕 사진들을 지금 들여다보면 흐뭇하고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어요.

온몸과 영혼에 부딪쳐 오는 말씀 앞에 깨어지며 눈물 콧물 흘렸던 그 굴욕의 모습이 없었다면, 제 인생은 얼마나 심각한 굴욕의 생애였을까요?

좋은교사운동의 연수를 받는 중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 담임으로 헌신하겠다는 서약을 했던 그날의 못난 얼굴이 없었다면, 저는 자신이 얼마나 괴물 같은 선생인 줄 알지 못하고 굴욕의 학급 운영과 굴욕의 수업을 해 왔겠지요.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 싶을 때에야 겨우 찾아오는 도도한 방학을 앞두고, 지칠 대로 지치신 선생님들은 또 갈등하시겠지요. '연수고 수련회고 다 그만두고 그냥 쉴까, 가족에게 학기 중에 못 다 준 사랑과 의무를 이행해 볼까?'

그러나, 다음 학기를 굴욕의 한 학기로 만들지 않으려면, 이번 방학에도 수련과 연수를 쉴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어요. 만족을 경험한 자는 또한 결핍을 알지요. 은혜의 바다에 푹 잠겨 보았기에 은혜 없는 삶이 어떨지 짐작할 수 있어요. 우리 앞에 대야를 두고 쪼그려 앉으신 예수님의 음성에 기꺼이 순종하시길…. "네 진흙 발 내놓아라. 내가 씻어 주마." 그 곁에 수건을 들고 섬길 태세를 하고 있는, 수련회와 연수 준비 팀들이 아름다워요.

[ 2009년 12월호 책갈피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