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필로 그리는 천국

월간 《좋은교사》 공식 블로그

연재 종료/교단 일기

시대를 알 수 없는 교사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3. 29. 11:24
 

권미진의 알사탕 5

시대를 알 수 없는 교사

권미진


어느 화창한 가을, 교사인 친구와 나는 버스를 타고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가고 있었다. 길에는 낙엽이 지고 있었고 한 무리의 여자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무조건 반사였을까, 우리는 그녀들을 쳐다보며 외쳤다.

“교사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백화점에서 갓 뽑아낸 신선한 패션이랄지, FW 시즌에 맞추어 거리를 누비는 패션리더들이랄지. 딱 여교사로 보이는 패션이었다. 그런데 둘이서 그렇게 외치고 나서 한 말이 있다.

“하~ 정말 싫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들은 딱 20대 여교사. 표정으로 봐서는 대화의 내용이 학교 업무나 민원이나 아이들의 무례함에 관련된 이야기일 듯한 상황이었다. 패션은 계절에 맞추었는지는 몰라도 그들이 겪는 상황은 진부했을 터.

오늘의 이야기는 ‘시대를 뒤서 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를 알 수 없는 교사’에 관한 이야기, 패션마저도 진부한 우리들 이야기다.



선생님의 교복


아이들이 선생님을 놀릴 때 가장 많이 써먹는 것이 외모, 그 중에서도 패션일 것이다.

“선생님은 교복 입는 것 같아요.”

“왜?”

“월요일에는 정장, 화요일에는 청바지.”


내가 신규 때 들은 이야기다. 월요일에는 직원회의가 있으니까 나름대로 단정하게 하고 간 것이었고 화요일부터야 내 마음대로 입고 다녔는데 아이들은 용케도 알았다.

“그 카디건도 교복이잖아요.”

학교에는 ‘작업복’이라는 게 있다. 우리도 아름답게 하고 다니고 싶지만 문서고와 소각장은 아름다운 곳이 아니다. 교무실은 히터가 아닌 컴퓨터의 작업 열기로 사시사철 뜨뜻하지만 복도는 뚜렷하게 두 계절(혹한기, 혹서기)로 나뉘어져있다. 이러한 작업 환경에 맞게 교무실에 늘 걸어 두고 가는 카디건을 아이들은 교복에 추가하였다.

“그 선생님은 예뻐요.”

“왜?”

“옷을 진짜 예쁘게 입으세요.”

“뭘 모르는가 본데, 그 선생님은 예쁜 옷과 부장 선생님이 시키시는 일을 예쁘게 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거야” 라고 말하고 싶지만 참았다.



시대를 알 수 없는 패션


예전 고등학교 시절, 수업 때 개량 한복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당황시키신 한 선생님이 계셨다. 아니, 몇 분 계셨다. 취지는 좋았다.

“우리가 왜 양복을 입고 살아야 하는가? 조선 땅에 태어나서 조선의 옷을 입고….”

하지만 사계절 그 한복을 입고 오셔서 조선 땅을 이야기하실 때에는 조선에도 분명 사계절이 있었을 텐데, 생각을 했다.

모 선생님은 이런 고백을 하셨다. 지하철역에서 부장 선생님을 보았는데 인사하기를 주저했단다. 부장 선생님께서 워낙에 시대를 알 수 없는 패션으로 나타나셔서 순간 당황을 하셨다고 하던데….

그럴 법도 한 것이, 여자 부장 선생님들의 패션은 사실 알쏭달쏭하다. 착용한 머플러와 재킷과 블라우스와 스커트와 가방과 스타킹과 구두는 각각이 최상이고 한 때는 최고의 유행이었는데, 한 데 모으니까 공간적 배경 및 시간적 배경이 모호해진다.



시대를 알 수 없는 경험담


이런 ‘시대를 알 수 없는’ 교사의 모습은 수업 중에도 나타난다. 시대를 알 수 없는 경험담. 어떤 본문은 시대적 배경지식을 요구할 때, 교사는 자연스럽게 본인이 살았던 이야기를 부연 설명으로 내어놓는다.

“그때는 말이야, 예전에는 이러이러해서 저러저러했어. 내가 그때 이러저러해서 그러저러했지.”

“그 때가 언젠데요?”

“1988년.” 

(‘88 올림픽, 국력 향상, 노태우 대통령 등등의 추억들을 너희가 알겠냐?’)

“와~ .”

(‘안드로메다 478번째 궤도에 있는 행성의 연대인가?’)

“참 오래된 이야기지?”

(‘그래도 알아먹다니, 착한 학생들이군.’)

“네~.”

(‘거긴 사람 나이를 어떻게 계산하나? 강아지보다 나이를 빨리 먹나?’)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을 하며 ‘개고생’한 이야기라든가, 첫사랑의 이야기, 연애담 등 선생님들이 주로 쓰시는 이야기를 잘 들여다보면 갸우뚱해질 때가 있다.

본인이 이야기의 주인공이고 뭔가 대단한 일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신화인데, 뚜렷한 공적은 없어도 장소나 물건은 남아 있으니 전설이라 해야 할 지. 그런데 흥미성과 교훈성으로 보아서는 민담에 가까운 것 같고. 역시나 시대는 알 수 없으니 뭐라고 하면 좋을까.



교사 교복의 결정판


임용 고사 면접에서 여학생들은 어떤 복장을 하고 가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한다. 고민의 결정판은 아마 ‘망’이 아닐까 싶다. 다리가 아니라 머리에 하는 망. 그런 걸 설마 면접 때 하겠냐고 많이들 웃었지만 면접 철이 되면 실제로 하고 온 사람이 있었다는 둥,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들린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교직 사회는 참 보수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보수성에 대한 호불호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그 보수적인 분위기가 어떻게 형성이 되어 왔는가, 또 우리가 추구하는 유행이라는 것이 삶과 맞아 들어가고 있는가 생각을 하게 될 뿐이다.



시대를 초월한 사랑


업무에 치이고, 급변하는 시대에 맞추어 하나씩 늘어 가는 신조어들을 접하며 한 해 한 해를 보내다 보면 ‘나도 새삼 나이가 드는 것일까’ 화들짝 놀라게 된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그 진부해 보이고 시대를 알 수 없는 패션을 하고 계셨던 그 선생님들, 그 분들은 그때 어떤 고민으로 교직에 몸을 담고 계셨을까? 시대를 알 수 없는 무용담으로 잠을 깨우시던 그 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을까?

우리는 다 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보다 겉을 더 가치 있게 해주는 속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시대를 알 수 없는 것보다 시대를 초월한 사랑을 하는 교사의 모습이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때로 유행에 뒤쳐져 보이고, 세상의 조류에 너무 타협하지 않아 보여도 진정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그러하기에 오늘도 나는 내 자리에 당당하게 카디건을 걸치고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열심히 일한다.

 



'연재 종료 > 교단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단시 : 삼계탕  (0) 2011.05.02
열일곱 밤 자고 만나요  (0) 2011.03.29
만남, 그 관계의 흔적  (0) 2011.03.29
경축! 여진 탄신일  (0) 2011.03.29
나의 가룟유다들 #2  (0) 2011.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