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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종료/정병오 칼럼

신앙에는 본질적으로 세대차가 없다(2012.11)

좋은교사 2014. 6. 3. 14:55

정병오 칼럼

신앙에는 본질적으로 세대차가 없다


 


교회에 대한 큰 꿈을 가지고 새로운 교회 개척에 참여한 지 6년이 지났다. 장년 출석 교인 350명 정도(아이 포함 500명 정도)의 본 교회가 20가정(아이 포함 80 여 명)의 성도들을 개척 멤버로 자원을 받고, 본 교회로서는 무리가 될 정도의 많은 개척 지원금과 목회자를 파송해서 시작한 교회였다. 그래서 약간의 빚을 떠안긴 했지만 서울 외곽에 자체 예배당 공간과 사택을 소유한 자립 교회로 시작했으니 한국 교회 가운데 상당히 모범이 될 만한 분립개척 모델이었다. 거기다가 여기에 참여한 교인들은 교회의 성경적 본질 회복에 대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그렇지만 교회는 처음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우선 목회자와 교인들 간의 교회에 대한 그림이 많이 달랐다. 교인들이 기대하는 목회자의 역량과 역할에 비해 목회자가 실제 가진 역량이 한참 모자랐고, 목회자가 보기에 교인들은 너무 까다롭고 말만 많을 뿐 실제로 잘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큰 그림에서 비슷하고 생각했던 성도들 간에도 세밀한 부분에서는 많이 달랐다. 새로운 성도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을 때 기존 교인들과 새로운 교인들이 조화롭게 하나가 되는 부분에서도 어려움이 오기 시작했다.

결국 목회자의 사임 문제, 직분자를 세우는 과정에서 오는 분란, 기존 교인과 새로운 교인들 간의 갈등, 어떤 교회를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것을 놓고 의견의 불일치, 교회 재산과 관련 문제 등으로 하루도 편할 날 없이 6년간의 시간을 보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일반적인 한국교회가 겪는 모든 문제들의 축소판 형태를 겪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정치가의 말대로 새 시대의 맏이가 되고 싶었는데, 구시대의 막내가 되어버린 것이다그래서 이제는 기존 한국 교회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교회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기존 한국 교회가 가진 모든 문제들을 겪되 이를 좀 더 성경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에 우리 교회의 사명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모든 세대가 함께 드리는 예배

하지만 교회가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겼었지만 이 가운데서 의미 있는 시도들과 열매도 몇 가지가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인 전 교인이 함께 함께 드리는 세대 통합 예배였다. 주일학교 예배를 별도로 드리지 않고 1살 아기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함께 드리고, 주일학교는 예배 후 성경공부와 교제, 찬양 등으로 별도 활동만 같이 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다. 목회자는 설교의 초점을 어디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며 어려워했고, 아이를 다 키운 장년층의 경우 어린아이들의 울고 떠드는 소리 때문에 예배에 집중하기 어렵다며 힘들어했다. 처음 어른 예배 시간에 참석한 어린 아이들이 긴 예배 시간을 견디지 못해 몸을 뒤틀며 힘들어했고, 중고등 학생들은 예배 시간 내내 졸거나 잠자기 일쑤였다. 그리고 어린이는 어린이 나이에 맞는 설교를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분도 많았고, ‘세대 통합 예배에서 힘들어 몸을 뒤틀고 있는 어린아이들에게서 참된 예배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러한 비판은 새로운 교인이 들어오면 여지없이 반복되는 비판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달라졌어요

그런데 2~3년 시간이 지나면서 예배의 분위기는 현저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선 부모들이 아이들 예배드리는 태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가정에서 예배의 의미와 태도에 대해 아이들을 교육하기 시작했고, 토요일 밤에 늦게 자지 않도록 지도를 했다. 아이들도 자신들 바로 옆에서 예배드리는 부모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부모들과 주일학교 교사들이 아이들이 설교를 메모하도록 지도했다. 그리고 주일 저녁 가정예배나 대회에서 자연스럽게 설교 말씀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문화를 만들어갔다.

물론 영아들의 경우 아주 큰 울음이나 소리를 내 부모가 데리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고, 유치부 또래 아이들은 예배 시간에 그림을 그리는 등 다른 활동을 통해 시간을 버티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가운데서 아이들은 예배 시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부모를 통해 끊임없이 교육을 받기고 하고 또 부모나 언니, 오빠, 형들이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지를 보고 배운다. 그리고 초등학생부터는 개인 발달 차나 가정 분위기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예배에 잘 집중하는 편이다. 그리고 중고등학생들이 예배 시간에 잠을 자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교회의 세대 통합 예배가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보완할 부분도 많다. 그렇지만 부모와 아이들이 한 하나님 앞에서 같은 찬양을 부르며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고 한 가지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하는 이 원리가 원론적으로 뿐 아니라 실제 효과 면에서 옳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결론이다. 최소한 우리 교회 아이들을 볼 때 그 많은 교회의 어려움 가운데서도 영적인 면에서나 자기 삶을 가꾸어가는 면에서 곧게 잘 자라는 것이 이 함께 드리는 예배와 이를 근간으로 가정에서 자녀의 신앙을 지도한 덕분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신앙교육, 선교지 모델에서 전통적 모델로

오늘날 한국 교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신앙 전승의 실패교회 교육의 실패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그 처방이 가정과 부모가 신앙교육의 주체이며, 이들이 함께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신앙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신앙의 본질에 근거하지 않고, 교회 교육 기관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투입하는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성경이 말하는 신앙 교육의 원리는 단순하다. 그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한 장막에 거하는 것이다.(히브리서 119) 175세의 아브라함이 100살의 이삭과 20살의 야곱과 한 장막에 거하면서 자신이 만났던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함께 하나님께 제사하고, 여전히 이방 땅에서 나그네 된 삶의 고단함과 외로움, 그렇지만 그 삶의 의미를 나누는 그곳에서 믿음의 족장들의 계보가 이어져간 것이다.

이러한 신앙교육의 원리는 구약 시대 뿐 아니라 서구 교회의 역사에서도 꾸준히 이어져 내려온다. 그래서 지금도 서구 교회를 보면 부모와 자녀가 함께 온전히 예배를 드리거나 아니면 부모와 함께 예배를 드리다가 어린이를 위한 간단한 메시지를 들은 후 퇴장해서 자신들만의 프로그램을 갖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와 같은 세대 분리형 주일학교 형태는 선교지에서 믿지 않는 가정의 자녀들을 전도하기 위한 매우 유용한 모델이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 교회의 상황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세대 통합형 예배를 중심으로 가정이 신앙교육의 중심을 잡는 형태를 주요 모델로 하고, 전도를 중심에 둔 주일학교 모델은 공부방이나 지역아동센터’ ‘토요학교등의 모델로 발전시켜가야 할 것이다.

 

삶이 묻어나는 예배, 예배가 묻어나는 삶

급격한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온 세계가 세대차의 몸살을 앓고 있고, 한국은 그 몸살과 부작용을 더 많이 앓고 있다. 그런데 신앙은 본질적으로 세대차가 없는 것이고, 세대차는 신앙교육의 가장 큰 적이기도 하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이러한 세대차를 없애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오히려 이 세대차를 늘리는 방식으로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신앙교육의 관점이나 예배의 본질 관점에서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흔히 삶이 묻어나는 예배, 예배가 묻어나는 삶이란 말을 쓴다. 기독교의 예배는 삶과 단절한 특별한 거룩한 의식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의 중심이 되는 것이고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다. 그래서 예배는 온 가족이 둘러앉은 대가족간의 대화의 장과 같은 것이어야 하고, 삶은 이 대화가 곱씹어지고 실제화되는 것이어야 한다. 신앙교육에 있어서 예배의 중심성과 삶과의 연속성이라는 오래된 지혜가 회복되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