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소중하고 좋은 것들을 자주 꺼내 보세요
인터뷰 한성준 김영석 촬영 조희국 이정우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화여대에서 사회복지학을 가르치고 있는 이지선입니다. 작년까지 한동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요. 선생님으로 산 지는 7년이 조금 안 되었는데, 여전히 초보 같은 마음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선아, 사랑해》, 《꽤 괜찮은 헤피엔딩》과 같은 책을 썼고, 얼마 전에는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하여 더 많은 분들의 관심과 격려를 받게 되었어요.
얼마 전에 ‘유퀴즈 온 더 블록’에도 출연하셨어요. 한 학기 바쁘게 지내셨을 것 같은데, 지난 한 학기는 어떠셨나요?
많은 분들이 제 소식을 듣고 반겨주셔서 감사했어요. 저도 개인적으로 모교에 오게 되어 기뻤고요. 그동안 한 번도 떠올려 본 적이 없는데, 다시 학교에 와 보니 학생 때 다녔던 샛길, 지름길이 아직 남아 있고 제가 그걸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바쁘고 정신없는 한 학기였지만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며 지냈습니다.
저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해하고 익숙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TV에 출연했는데, 2003년에 인간극장에 출연한 지 벌써 20년이 되었어요. 이번에 유퀴즈 나가고 아이들이 많이 알아봐 줘서 고맙더라고요. 좀 더 폭넓은 세대가 저를 알고 이해하게 된 거잖아요. 제가 재소자 자녀들을 만나는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는데, 해마다 학생들이 바뀌거든요. 그런데 유퀴즈에 출연한 이후로 저를 처음 만나는 학생들도 저를 매우 반가워하는 거예요. 학생들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는데 유퀴즈 덕이다 싶었어요.
교수님께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처음에는 배운다는 마음으로 굉장히 떨면서 학생들 앞에 섰어요. 가르칠 준비를 아무리 많이 해도 모자란 것만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었어요. 학생들이 질문해도 제가 모르니까 땀도 많이 흘렸고요. 어쩜 저의 허점을 그렇게 잘 발견하는지 똑똑한 학생들이 무서웠어요. 그러면 다음 날 밤새워 또 공부해야 했고요. (웃음)
그런 점에서 학생들이 저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는 길을 잘 안내해준 것 같아요. 여전히 제가 아는 것이 많지 않지만, 학생들 덕분에 더 공부하고 더 준비하며 점점 선생님의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어요. 한동대학교 학교 분위기 자체도 따뜻했지만, 좋은 학생들이 많이 있어서 힘이 되었어요.
제가 선생님들 앞에서 가르치는 게 무엇이라고 말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해요. 학문이라는 것이 아직 완전히 탐구되지 않은 것이고, 제가 아는 것도 얼마 되지 않아요. 그런 학문을 가르친다는 것이 여전히 제게는 어려운 일입니다.
사고를 ‘만났다’고 표현하셨어요. 사고를 만난다는 것, 어떤 의미일까요?
사고를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지만 만나지 말아야죠. 겪지 않으면 훨씬 좋은 일이지요. (웃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 누군가의 잘못된 선택이나 실수로, 또는 천재지변으로 일어납니다. 이런 일들을 신앙적으로 보려고 하면 더 어려워지고 해석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런 부분은 굉장히 단순한 사실을 바탕으로 해석을 해야 한다고 봐요. 제가 방금 만난 분도 중도에 시각장애를 갖게 된 분인데, 하나님을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아 시력을 잃기 시작한 거예요. 이게 전혀 인과관계가 없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꾸 이유를 찾아 해석하려고 하거든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나쁜 일이 그날 밤 저에게 일어난 거예요. 하나님이 저를 특별히 사랑하셔서 ‘나를 이렇게 사용하려고 하신 거야.’ 이렇게 해석하기 시작하면 더 혼란에 빠져요. 하나님이 무슨 가혹한 아버지도 아니고, 그런 아버지가 세상에 어디에 있겠어요. 하나님을 그렇게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흘러 나중에 제가 또 어떤 해석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사고를 만났을 때 그렇게 오래 고민할 필요 없이 먼저 사실 그대로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해요. 그래야 이후에 사고와 잘 헤어질 수도 있어요. 비가 오던 그날 밤, 그 자리에 누군가 겪을 수 있는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는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저도 제가 만난 사고와 헤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렇게 소화가 되더라고요. 많은 분들의 기도와 사랑이 있기도 했고요. 오래 걸리기도 했어요. 사실 다시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사실이잖아요. ‘무슨 일이 일어났나’ ‘지금 이 사건이 내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내가 잃은 것은 무엇이고, 얻은 것은 무엇인가’ 그 사건을 가까이서도 바라보고 멀리서도 바라보고, 이쪽저쪽에서 바라보았어요. 그러면서 그 사건이 이해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저도 그 일이 왜 하필 나에게 일어났을까 하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에요. 그런데 그 생각이 굉장히 이기적인 것이더라고요. 그 일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는 일어나도 괜찮은 일은 아니잖아요. 나는 얼마나 특별해서 그런 일을 당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저도 그렇게 이기적이고 교만한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또 혼자 곰곰이 생각하며 글을 쓰면서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사건이 이해되더라고요. 어느 날 짠 하고 깨닫게 된 것은 아니라 저에게도 이런 오랜 과정이 필요했어요.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중고등학생 만나는 자리에 가게 될 때면 제가 살아왔던 시기와는 확연히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그들을 보게 돼요. 저희 조카들도 중고등학생들인데,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나’ ‘얘들을 왜 이렇게 고생을 시키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학교생활만 하면 되었는데, 지금은 온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며 쏟아지는 정보 속에 살고 있잖아요. 이런 정보가 도움도 되겠지만 ‘질풍노도의 시기에 있는 그들에게 얼마나 혼란을 줄까’하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제일 힘들다고 느꼈던 절망 속에 있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루라는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살아내는 일이었어요.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정말 뭐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앞날에 대한 걱정은 아무 소용 없는 일이었어요.
매일 오늘이라는 시간이 이유없이 찾아오잖아요. 사실 우리가 왜 살고 있는지 당장은 알 수 없지만, 오늘이라는 어마어마한 선물은 분명 매일 주어지고 있어요. 매일 아침 ‘오늘’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감사하며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내일 일을 걱정하고 계획하는 게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죽음과 같은 상황이 예고 없이 찾아오기도 하고, 우리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일을 알 수 없잖아요. 그냥 ‘오늘을 살자’하고 매일을 사는 거예요. 그게 23년간 제가 해온 일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겠지요. 이외에 무슨 답이 있을까요? 조금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얘기해 주고 싶어요.
“오늘은 너무 소중한 시간이야.
오늘을 충실하게 사는 것, 그것으로 충분해.
미래에 대한 염려와 과거의 상처가 오늘을 오염시키지 않게 하고, 오늘 누릴 수 있는 것을 마음껏 누리며 살자.”
오늘을 충실하게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저도 아침에 일어나면 별생각 없어요. (웃음) 어쩌다 보니 비장하게 살아야 할 것 같은 인상을 주게 되었지만 그렇게 비장하게 살지 않고요, 편안하고 느긋하게 살고 싶어 하는 성격이에요. 앞서 얘기한 것처럼 ‘나는 오늘살이다’ ‘오늘을 충실하게 산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요.
하루 중에 아주 짧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화나고 스트레스 많이 받는 상황에 있더라도 하루 5분, 10분은 무슨 일이나 그 누구도 침범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 시간에 나를 좀 돌보고 대접하는 시간을 갖는 거예요. 아주 특별한 시간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뭔가 만들기도 하고, 요리를 하거나 좋아하는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 먹으며 수다 떠는 시간 말이에요. 전에는 그런 시간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언제든지 가질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일이야 말로 삶에서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 시간의 의미와 가치를 알면 하루하루를 더 기쁘고 충실하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학교 현장에서 애쓰고 계시는 좋은교사운동의 선생님들에게 응원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선생님들 이제 개학하셔서 바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시지요? 문제가 있을 때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해야 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역할을 하는 분들도 꼭 필요하고요. 그래도 일상 속에서는 선생님들이 하시고 있는 일의 의미와 가치를 늘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이해할 수 없는 민원을 받는 일도 많겠지만, 그런 일들을 계속 떠올리며 곱씹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일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와 의미를 기억하시면 좋겠어요. 사소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의 밝은 표정, 따뜻한 말 한마디, 고마움을 표현한 편지 한 장 등을 소중히 간직하고 자주 꺼내 보셔야 해요. 선생님들이 하시는 일이 의심할 여지 없이 소중하고 귀한 일이잖아요. 흔들리지 않고 오늘 하루 행복하게, 건강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월간 <좋은교사> 2023년 9월호 - 만나고 싶었습니다.
월간 <좋은교사> 구독신청
http://pf.kakao.com/_nxiQSxd/99537988
출처: https://goodtcher.tistory.com/entry/우간다-에피소드12-선교사-그리고-그-자녀들MK홍세기 [분필로 그리는 천국:티스토리]
'만나고 싶었습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동청소년멘토링 전문 NGO "러빙핸즈"_ 박현홍 대표 (0) | 2024.03.19 |
---|---|
개그우먼 김지선 - 외로운 아이들의 멘토가 되어 주세요 (8) | 2024.03.19 |
초록담쟁이 이수희 작가 - 그림으로 선생님들을 응원합니다 (0) | 2023.06.15 |
좋은교사 5월호) 만나고 싶었습니다 - 정영찬 목사님 (1) | 2023.05.27 |
좋은교사 4월호) 만나고 싶었습니다- 정혜경 선생님 (0) | 2023.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