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 학교가 직면한 현실은? ③
기고 3. 교사 불신과 고교학점제의 실패
김진훈 (숭의여자고등학교)
출결 대란
고교학점제에서는 학생의 출결이 학점 이수의 조건이기에 매시간 정확한 출결 관리가 필요하다. 기존에는 교실에 비치된 출석부를 활용해 출결을 체크하고, 담임 교사가 나이스에서 일일 및 월간 출결을 마감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담임 교사의 일일 출결 마감 외에도, 교과 수업을 맡은 교사가 매시간 교시별 출결을 직접 체크하고 마감해야 한다. 교과 교사의 출결 체크에 문제가 생기면 담임 교사의 일일 출결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반대로 담임 교사가 출결 사유를 늦게 파악하면 교과 출결에도 오류가 발생한다. 창의적 체험활동 진로 수업의 경우, 담임 교사의 일일 출결 마감이 끝나면 진로 수업을 담당하는 교사가 출결 체크를 수정조차 할 수 없다. 그 결과 담임과 교과 교사 간에 출결 관련 업무 메시지가 하루 수십 건씩 오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교과 교사의 출결 책임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원칙적으로 타당하지만, 교과 교사는 학생의 결석 사유를 실시간으로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고, 출석 인정 결석인지 질병 결석인지 구분이 어려운 경우가 잦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교과 교사도 담임의 일일 출결 사유를 나이스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수정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등교 시점에 출석 인정 여부가 즉시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학교 행사 준비로 분주한 학생회 담당 교사가 담임에게 사전에 출석 인정 사유를 알리지 못하면, 이후 담임과 교과 교사 모두 나이스에 들어가 수정해야 한다.
나이스에 접속하려면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하며, 수업 후에 다시 접속하려고 하면 보안 문제로 접속 시간이 초과하여 다시 인증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교사는 10분 남짓한 쉬는 시간 동안 학생 질문 응답, 다음 수업 준비, 행정 업무 처리 등으로 바쁘기 때문에 출결을 놓치기 쉽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이스 플러스라는 앱이 개발되어 교사의 스마트폰으로 출결 확인이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참고용일 뿐 실제 나이스 시스템에는 출결이 자동 반영되지 않는다. 이 무슨 옥상옥, 이중 작업이란 말인가?
최성보 민란
최소 성취 수준 보장 지도에 대한 학교 현장의 반감이 커지고 있다. ‘최성보 민란’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다. 본래 취지는 성취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을 발굴하여 지도하자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미도달 학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를 위해 평가 수준을 조정하고, 가능한 많은 기본 점수를 부여하여 미도달 학생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과목이 성취 평가와 함께 상대평가 등급을 산출해야 하는 데 있다. 기본 점수가 높아질수록 남은 배점이 줄어들고, 소수의 문항 차이로 등급이 크게 갈리는 현상이 생긴다. 변별력을 확보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교육청에서는 기본 점수나 수행 평가의 상한선을 지정하는 방식으로 평가 왜곡을 막고 있다.
그렇다면 왜 교사들은 미도달 학생 지도를 꺼리는가? 그 학생을 관찰하고, 예방 지도 및 보충 지도를 하는 데 들어가는 교사의 노력에 보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학생과 교사 모두 나머지 공부, 일종의 ‘벌’처럼 느끼게 된다.
교육부에서는 보충 지도에 대해 시간 외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초과근무 수당은 1시간을 제하고 계산되며, 그 금액도 시간당 최저임금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보충 지도는 교사 입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과목 선택, 그런데 상대평가 어쩌나?
고교학점제의 핵심은 학생이 자신의 진로에 맞춰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진로보다는 성적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대학 입시에서 교과 성적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과목, 즉 높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과목을 선택하려 한다.
문제는 상대평가 방식이다. 내가 아무리 진로에 도움이 되는 과목을 선택하더라도, 함께 수강하는 학생들의 학업 수준이 높다면 성적을 받기 어렵다. 예를 들어, 미적분 II 같은 과목은 진로에 중요하지만, 수능 과목이 아닌 데다가 상위권 학생들이 모이는 경향이 있어 성적을 받기 더 어렵다. 이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애초에 그런 과목을 선택하지 않으려 한다. 그나마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진로 선택과목이 절대평가였기 때문에 평가 부담이 줄었다. 물리 II와 같은 과목도 학생들이 도전적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22 교육과정에서는 진로 선택과목, 융합 선택과목(사탐·과탐 제외)도 상대평가로 바뀌었다. 진로를 위해 소인수 과목에 도전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더 치열한 경쟁과 낮은 등급을 각오해야 하는 ‘죽을 맛’이 됐다.
선택과목을 절대평가로 해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되었지만, 학교 현장의 교사들은 성적 부풀리기 우려를 이유로 상대평가를 고수했다. 이러한 결정은 학생의 진로 선택권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그런데 정시 40%는 왜 아직도 그대로인가?
고교학점제에 따라 학생이 진로 중심으로 과목을 선택하고, 학교 활동에 열심히 참여한다고 해보자. 이 학생은 대입에서 학생부 종합 전형을 통해 성과를 내야 한다. 하지만 학생부 종합 전형의 비율은 약 30%에 불과하다. 일부 학생부 교과 전형이나 정시 수능 전형에서도 과목 이수와 학생부 내용이 반영되지만, 그 비율은 극히 낮다. 학생 입장에서는 학생부 종합 전형이 ‘가성비 낮은 전형’으로 여겨진다. 노력에 비해 결과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요 15개 대학은 정시 비율이 40% 이상이다. 2018년 국가교육위원회가 공론화 과정을 통해 정시 비율을 30% 이상으로 제안하고, 문재인 정부는 조국 사태 이후 정시를 40% 이상으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수능 중심의 대입이 다시 강화되었고, 수능 강좌, 일타 강사, 대형 학원, 독학 재수 학원, 기숙 학원이 공교육의 자리를 빠르게 잠식했다. 매년 N수생 수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으며, 사회적 비효율의 중심에 정시 전형이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교학점제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더욱이 주요 대학 정시 40% 이상 선발은 ‘고교교육 정상화 사업’이라는 명목 아래 정부 예산을 지원받는 평가 지표로 작동하고 있다. 고교학점제를 무력화시키고, 고교교육을 황폐화하는 정책이 오히려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추진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고교학점제를 충실히 이수한 학생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정시 최소 비율은 폐지하고,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전형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은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성과가 가장 높다고 말한다. 고등학교, 대학, 취업을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 입시 구조의 전환이 필요하다.
출결 대란, 최성보 민란, 내신 상대평가, 수능 정시 40% 비율. 이 모든 요소는 고교학점제의 앞을 가로막는 크고 작은 장벽이다. 그 기저에는 교사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교사의 출결 처리, 성취도 평가, 학생부 기록을 신뢰하지 못한 결과, 별도의 시스템이 중첩되며 학교 현장은 점점 더 비효율적으로 왜곡되고 있다. 그 결과 고교학점제는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보여주기식 정책으로 전락하고, 학교는 여전히 경쟁과 서열, 문제 풀이만 남은 공간으로 남았다.
고교학점제는 교육 혁신의 간절한 바람과 달리, 시작부터 침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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