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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 특집 글

특집 5 대담 우리의 교육 철학을 묻는다

특집 5 대담

  우리의 교육 철학을 묻는다

 

 

사회쟁점교육위원회

좋은교사운동에서 2011년 북유럽 교육을 탐방한 후 한 학기 동안 교육 철학을 공부하였다. 교육 철학을 공부하고 토론한 후, 이 시대에 우리의 교육 철학을 묻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정병오, 김진우, 임종화 선생님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임 : 작년 한 해 북유럽 교육 탐방과 함께 서울과 부산에서 동시에 교육 철학에 대한 공부 열기가 뜨거웠다. 최근에 교육 철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정 : 우리들은 대학 다닐 때도 교육 철학을 배웠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우리의 삶과 무관한 사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년 북유럽 교육을 탐방해 보니 어떤 면에서는 우리와 큰 차이가 없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깊이를 경험했다. 돌아와서 북유럽과 우리나라의 차이가 무엇일까 비교해 보니 결국 교육 철학의 문제였다. 그 국가들은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교육 철학이 있고, 그 철학이 실제로 수업과 학교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학생, 학부모, 교사에게 일관성 있게 적용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나라도 교육 철학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홍익인간’ 등의 교육 철학은 우리에게 공허한 구호일 뿐 현장은 따로 노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적으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철학은 ‘물질주의’, ‘출세주의’가 아닌가 한다. ‘잘 먹고 잘살자’가 우리 삶에 실제로 영향을 주고 있다. 이 시점에서 새롭게 교육 철학을 정립하지 않으면 어떤 교육 정책이나 제도 변화도 큰 의미가 없고, 교육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김 : 제가 교육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먼저 최근 여러 지역에서 혁신 학교가 확대되고 있는데, 혁신 학교 안에서도 다양한 교육 철학과 이론이 충돌하여 갈등을 일으키는 것을 봤다. 그리고 혁신 학교가 일반 학교랑 뭐가 다른가, 혁신 학교 운동이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개인적으로도 교사로서 1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아이들과 관계를 잘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되었고 교육 철학의 빈곤을 느꼈다.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을 어떻게 깊은 이해와 사랑으로 대할까 고민한 결과 이것은 단지 기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교육 철학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뿌리 깊은 나무처럼 외부의 요인에 흔들리지 않고 교육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임 : 동의한다. 최근 시대의 변화와 학교 외부의 압력으로 인해 교사들이 정체성의 위기를 느끼고 있다. 곧,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에서 국가 주도로 짜진 교육 과정과 교과서, 심지어 EBS 교재를 그대로 전달해야 하는 역할을 요구받으면서도 한편에서는 학생 인권, 창의적인 교육이 함께 강조되면서 교사로서의 전문성이 위협받고, 자존감이 떨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위기감이 교육의 근본을 다시 묻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김 : 결국 교사의 정체성은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연결된다. 예를 들어 덴마크 교육 탐방을 안내했던 에기디우스 교수는 시험을 아이가 음식을 먹자마다 토해 내게 하는 것에 비유하면서, 시험은 교육이 아니라고 단정한다. 이 말이 나에게 신선한 도전으로 다가왔다. 시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한 것은 교육이 아니란 말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정 : 그래서 먼저, 국민들이 공유하는 교육 철학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현재 구성원이 공유하는 사회 철학이 없다. ‘돈 많이 벌어서 편하게 살자’라는 철학이 한계에 부딪친 상황에서 우리 사회 전체가 철학의 빈곤을 느끼고 있다. 핀란드는 ‘평등’과 ‘집중력’, 덴마크의 경우 애프터스쿨처럼 청소년기에 방황을 허용하는 것과 ‘자유’ 등 국민적 합의 하에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곧, 사회 전반적으로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을 공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교사 차원에서는 전문성으로서의 교육 철학, 곧 아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배움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과 함께 교사 자신만의 답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임 : 한 학기 동안 교육 철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인상에 남는 교육 사상가가 있다면?

김 : 코메니우스가 떠오른다. 코메니우스는 ‘배움은 즐거움이다’라는 기본적인 명제를 다시 일깨워 주었다. 우리 현실은 아이들이 놀기를 좋아한다는 전제로 시험과 출세를 미끼로 공부를 시켜 학생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지만, 코메니우스는 타고난 존재 자체가 배움을 즐기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그리고 모두가 완전한 배움에 이를 수 있다는 사상도 낙오와 학습 부진아의 존재를 당연시하는 우리 현실에서 많은 도전이 되었다. 곧 모두가 완전한 배움에 이를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그것을 위한 학습 방법을 고민하여 제시하고 있다. 우리도 공교육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난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가르쳐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임 : 이번 교육 철학 공부의 가장 큰 성과는 야누슈 코르착의 발견이 아닐까 한다. 코르착은 삶 자체가 감동이다. 가난하고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인내심, 문제가 발생했을 때 ‘화를 내기보다는 슬퍼하라’, ‘아이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라’는 말과 학급 법정 운영에서 알 수 있듯이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고 집단적으로 문제를 공유하는 방법, 의사의 임상 기록처럼 아이들의 삶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한 점, 아이들을 집단이 아니라 하나의 개별적인 인격체로 이해했다는 점 등은 우리 교육에서도 회복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정 : 루터가 떠오른다.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은 공교육을 세속주의, 국가주의로만 보는 경향이 있는데, 루터는 다른 흐름에 서 있다. 루터도 부모가 교육의 주체인 것을 인정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부모가 교육의 주체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가난하고 버려진 아이들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그 책임을 국가가 져야 한다고 생각하여 공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루터는 교회 자체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바라보며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그렸고, 특히 교육과 복지 영역에서 국가와 교회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것이 시대가 지나면서 세속주의와 맞물려 약화된 면이 있지만, 그래도 이 원형을 잘 지켜 나간 곳으로 북유럽 국가들을 들 수 있다.

 

임 : 그렇다면 교육 철학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김 : 인간관과 연결하여 아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아이의 변화는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잘못한 행동에는 벌을 받아야 하고, 벌을 통해 아이들은 바로 잡힌다는 전제로 시행된 생활 지도의 패러다임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코메니우스는 배움에 있어서는 처벌이 필요 없다고 말했고, 코르착의 경우도 처벌을 배제한 상태에서 아이들의 자발적이고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실천으로 입증했다. 이러한 사상은 최근 좋은교사운동에서 생활 지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비폭력 대화와 회복적 생활 교육의 정신과 통한다.

임 : 동의한다. 인간관이 교육 철학에서 중요하다. 곧 하나님의 형상과 죄인이라는 이중적 요소가 학생에게는 함께 있는데, 지금까지 우리 교육은 학생을 죄인이라는 입장에서만 이해하고 교육한 측면이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잘 발현하도록 하는 교육과 죄인의 속성으로 인한 관계 파괴 행동에 대해 진정한 변화와 관계 회복을 추구하는 교육을 함께하기 위한 균형 잡힌 인간관 정립이 필요하다.

정 : 우리나라 교육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불안감,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열등감이라는 나쁜 영이 지배하고 있다. 이것은 현실에 물질주의, 경쟁이라는 질서가 존재하고 있고 그것을 부모와 교사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아니면 증폭하여 전달하여 생기는 현상이다. 이제는 아이들로 하여금 시대를 거스를 수 있는 힘, 자신감, 당당함을 심어 줄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준 은사와 몫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모든 아이들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전제가 강조되어야 한다.

임 : 그런 의미에서 교육에서 영성 교육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김 : 맞다. 코메니우스도 영성 교육을 강조한다. 교육에서 영성 교육이 거세되면 교육은 출세의 도구로서의 기능만 남는다. 도덕성의 근원으로서 영성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공교육에서 넓은 의미로 종교성을 가르쳐야 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이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영성 교육은 필요하다

정 : ‘눈에 보이는 것 곧 이 땅의 삶이 전부인가’라는 질문이 영성의 기초가 되고 이것은 공공성과도 연결된다. 공교육 내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을 가르쳐야 하고, 물질을 숭배하는 삶을 비판해야 하는데 이 영역이 기독교 교육 철학이 기여할 부분이다. 교육 영역에서도 삶에 대한 총체적 의미를 회복해야 한다.

 

임 :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교육 철학을 정립하고 실천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김 : 지금까지는 교사들이 교육 방법론을 가지고 논쟁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교육 철학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다 보면 공유의 지점이 생기고 사소한 방법론의 차이는 극복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문제를 가지고 교육의 본질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를 위해 고전 읽기 차원에서 코메니우스의 『대교수학』을 함께 읽을 것을 제안한다. 책 자체가 재미도 있고, 하나의 신앙 고백이며 교육 철학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그리고 학기 초에 수업과 학급 운영을 준비하기 전 자신의 교육 철학을 적어보고 함께 나누는 것도 의미 있는 활동이 될 것이다.

임 : 교육 철학을 공부하며 교사 스스로 배움의 즐거움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길 소망한다. 교육 철학 공부는 내 자신과 우리나라 교육이 본질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이번 기회에 교육 철학에 관한 고전을 읽으며 저자의 숨결을 직접 느끼고 그들의 고민을 통해 우리의 교육을 고민하는 경험을 가졌으면 한다.

정 : 우리 사회는 가치와 상상력을 잃어버린 시대다. 그리고 삶의 근본을 질문할 힘을 잃어버렸다. 이 상황에서 우리의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을 위해서 교육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현실 가운데서 개인 차원, 학교 차원에서 교육 철학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 교육을 바꾸는 힘이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