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육정책 특집 글

특집 4 기고 3 혁신 학교에서 교육 철학을 고민한다


특집 4 기고 3

 혁신 학교에서 교육 철학을 고민한다

 

 

 

송칠섭

작년 한 해 정치판에서 큰 이슈 중의 하나가 ‘나는 꼼수다’ 열풍이었다. 열풍의 원인을 돌아보면 결국 정치에 대한 ‘철학’의 부재에 따른 반향이 아닐까 한다. 철학이 사라지면 꼼수만 남는다. 이 꼼수를 다르게 표현하면 유용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용성은 나의 이익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진다. 교실에 철학이 없으면 교사를 위한 교실로 변질되며 학교에 철학이 없으면 교장을 위한 학교로 변질된다. 국가에 철학이 없을 때 기득권을 위한 정치만 남듯이 말이다.

교육 철학을 공부하면서 먼저 내 자신의 교육 철학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교육은 무엇인가? 교육은 백년지대계인가? 일 년의 생활인가? 평생의 삶인가? 학생들을 인적 자원으로 보는 정부와 경제 관료를 교육부총리로 세우는 이 땅, 교육을 모르는 행정 관료들에게 정책 결정권을 내맡겨 놓은 정부는 제대로 된 교육 정책을 세울 능력이 없다. 100년을 내다보는 정책이 아니라 10년도 못 내다보는 근시안을 넘어서 발등의 돌을 옮기는 일조차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교원 평가’, ‘학력 신장’, ‘사교육비 경감’, ‘방과 후 학교’, ‘좋은 학교 만들기’, ‘학교 서비스 헌장’, ‘교육 시장 개방’, ‘교육 격차 해소’, ‘학교 혁신 과제’ 등의 정책을 쏟아 낸다. 교사는 넘쳐 나는 공문에 찌들고 학생들은 국가와 학교가 만들어 낸 경쟁의 세계 속에 다람쥐 쳇바퀴를 경험하고 만남을 통한 성숙은 흔적조차 없는 현실.

대학 졸업장은 인간 자격증이요, 명문대 졸업장은 품질 보증서인(그마저도 빛이 바래 가는) 학력 만능주의와 학벌주의, 단 1회의 평가로 학생을 줄 세우려 하는 대학 입시 제도, 고시원에서 보낸 시간이 인생 역전의 희망을 담보하는 골동품 인재 선발 제도, 가방끈 길이에 따른 극심한 임금 격차, 넘쳐 나는 비정규직 노동자, 극단적으로 벌어지는 빈부 격차와 사회적 양극화, 학교 교육에 대한 불만을 부추기며 사교육 수요를 끊임없이 창출해야 생존할 수 있는 교육 시장. 이 모든 구조적인 문제들이 상승 작용하면서 빚어내는 교육 문제들은 이미 한두 가지의 획기적인 정책이나 처방으로는 풀 수 없는 지경에 놓여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바로 세울 방법은 없는가? 교사들의 교육에 대한 고민과 열정,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끌어내어 학교가 살아 있게 할 대안은 없을까?

좋은교사운동의 북유럽 학교 탐방이 교육의 교육다움을 고민하던 내게 작은 희망을 보게 했다면, 그 희망을 실천해 볼 수 있는 자리는 혁신 학교였다. 혁신 학교를 지원하면서 학교를 공동체적인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는 희망을 가질 수 있어 기대가 되었다. 우리 학교에서의 일 년을 돌아보면 크게 발도르프와 프레네의 색깔이 나타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저학년 중심의 주기 집중 수업(에포크 수업)과 고학년 중심의 프로젝트 학습과 학생 자치 활동 및 동아리 활동을 통해 학교가 일 년을 보내게 되었다. 지면 관계상 프레네 교육학의 핵심적인 교수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지 못하여 아쉽지만, 이 땅의 더 많은 교사들이 프레네 교육을 포함한 교육의 본질에 가까운 실천적인 교육을 꿈꾸기를 기대하면서 모든 선생님들이 삶을 가르치는 교육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보다 적절한 교육 철학과 교수법, 교육 운동으로 정립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몇 가지 의견을 적어 본다.

프랑스는 1881~1882년의 법령에 의해 쥘페리의 교육 개혁(국가의 교육을 종교로부터 중립된 교육, 무상 교육, 의무 교육을 실현)을 하게 되지만, 당시 아동의 노동이 기업의 이윤이나 가족의 생존과 직결된 것이었기 때문에 기업과 일부 가족들의 반대에 직면했다. 이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정부는 시민 교육과 공화국의 이미지 강화 국가주의와 애국심을 일으키는 교육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학교의 기능에 대해 진보적 성향을 가진 교육자들은 저항하고 다시 국가는 공권력을 동원해 비판자들을 관리 감독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 하에 프레네가 등장한다. 프레네는 학교에 ‘학습 인쇄 기술’(Learning Printing Technique)이라는 수업 기술을 도입한다. 학습 인쇄란 학생들이 자기가 학급 안팎에서 겪은 모험이나 사건에 대해서 자유롭게 글을 써서 학급원들 앞에서 발표를 하면 학급원들 전체가 함께 읽으면서 토론하고 수정하고 다듬어 최종적으로 공동 작업으로 인쇄까지 하는 방식이다. 프레네는 이것을 ‘자유로운 글쓰기’라고 명명하였는데, 이런 글들은 후에 학급 문집이나 학교 신문을 만드는 작업들과 결합되어 활용되게 된다. ‘자유로운 글쓰기’는 이오덕 선생님의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떠올릴 정도로 친숙한 활동이다. 이처럼 프레네는 당시 교사 중심의 수업이 아닌 아동의 활동이 중심이 되는 학습 기술과 도구 및 방법을 구안하였다.

프레네가 고안했던 활동 중심의 다양한 활동들이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여 우리 학교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물론 프레네의 전 활동이 시도되었던 것은 아니다. 실제 학교에서 적용된 내용을 보면 자유로운 글쓰기, 학교 신문, 학급 회의(우리 학교는 미리 정해진 학급 임원이 없다. 회의를 시작할 때 사회자를 뽑는 과정을 거친다.) 그 외에도 학년 교육 과정을 교사의 협의 하에 ‘현장 활동-학습’과 연계한 수업 등 대부분의 학교에서 시도하지 못했던 교육 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우리 학교에서는 학교를 움직이는 기본 철학을 모든 선생님들이 함께 모여 의논하고 결정한다. 그리고 그 결정에 따라 학년 선생님들이 협력해서 학년의 기본 안을 세우고 학년 기본 안에 따라 각 교실에서 선생님들의 교육관에 따라 수업을 진행해 갔다. 학교 차원에서 같이 공유해야 할 것은 학교 전체 교사의 회의를 통해서, 학년에서 공유해야 할 내용은 학년 선생님들의 협의를 통해서, 교실에서 중요하게 이루어져야 할 내용은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제안하고 결정해 왔다. 이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느낀 것은 학생들의 무한한 잠재력을 경험할 수 있었고, 집단 지성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일이 가능하게 된 몇 가지 원인은 먼저 교장 선생님의 내려놓음에 대한 철학이 있었다. 당신이 배우고 자란 수십 년의 가치를 내려놓지 않았다면 우리 학교에서의 교육 혁신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어서 선생님들의 자발성이 있었다. 학년을 배정하고 업무를 배정하는 데 있어서 선생님들의 자발적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많은 다른 학교 선생님들이 동경하는 학교 구조가 정착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끝으로 선생님들의 교육에 대한 자기 이상이 없었다면 혁신 학교라는 공간에 함께 모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프레네 교육 운동과 오늘날 혁신 학교를 보면서 사회 변혁을 꿈꾸기 위해서는 교육적인 큰 안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레네 교사들이 ‘프레네 운동은 교수 방법적인 운동’이라고 이야기했듯이 혁신 학교 역시 교실에서의 실천을 중요시하는 교육 운동이다. 교실에서의 혁신이든 학교에서의 혁신이든 교육 혁신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교육 철학의 큰 뿌리 위에 미시적인 교육학적 실천의 가지와 하루하루 교실에서의 삶의 잎사귀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가능하다.

우리 교육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에 지금의 교육 체제 안에서 교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프레네 교육 운동처럼 학교와 학급의 민주주의를 중요시하고 체험으로 배울 수 있게 하는 일, 공동체적이고 협력적인 교수-학습 방법을 도입하여 학교 교육 자체를 공동체적이고 협력적인 작업으로 변화시키는 일, 새로운 학교와 교육을 만들기 위해서 교사 간에 학교 간에 나아가 국제적으로 교류하고 협력하는 일 등은 교육계 안에서 교사들이 교실에서 일상적으로 실천할 수 있고 해야 할 일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끝으로 교육은 삶이어야 한다. 내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피 흘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