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복음을
드러내는 삶
김형국 (나들목교회 대표 목사)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였고, ‘사회학과 기독학생모임(Fellowship of Christian Sociologists)’을 만들어 활동했다. 졸업 후 IVF(한국기독학생회)에서 5년간 간사로 활동하였고,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M.Div)와 신학 박사(Ph.D.) 과정을 마쳤다. 한국에 돌아와 ‘성경적이고 현대적인 도심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2001년 나들목교회를 개척하여 지금까지 섬기고 있고 최근에는 ‘하나님나라 복음 DNA네트워크’를 통해 교회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나, 이것만 아니면 교회 간다>, <이제, 나다운 인생을 걷는다>, <오늘, 나는 예수를 만난다>, <교회를 꿈꾼다>, <청년아 때가 찼다>, <교회 안의 거짓말>, <한국 교회가 잃어버린 주기도문>, <풍성한 삶으로의 초대>, <풍성한 삶의 첫걸음>, <풍성한 삶의 기초> 등이 있다.
인터뷰·임종화 / 사진·한병선, 김현경
8월에 열리는 “2016 기독교사대회”는 10회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와 함께 기독교사운동의 지난 20년 사역을 함께 ‘기억, 공유’하고, 앞으로 20년 동안 펼쳐질 미래를 ‘상상’하는 시간으로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사운동의 미래, 기독교사가 살아갈 미래가 장밋빛 만은 아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무너진 교육을 회복하는 것’을 소명으로 사는 우리는 운동의 뿌리이자 힘의 원천인 교회와 복음이 위기라고 이야기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대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 복음’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돌아보고 성찰하고 싶었다. 이에 김형국 목사님을 저녁 주강사로 모셨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목회를 하게 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합니다.
아버님이 건축가셨어요. 어릴 때는 아버지를 따라 건축가가 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였죠. 또 좋은 대학가는 것 만이 인생의 목적이었어요. 그러다가 고1 때 예수님을 만났어요. 회심 이후 대학을 잘 가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내 인생을 하나님이 어떻게 쓰실까 생각하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고3 올라가는 해 1월 1일, 각혈을 심하게 하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어요. 폐결핵이었죠. 1년 동안 학교를 쉬며, 집을 세우는 일보다는 사람 세우는 일을 하리라 결심했어요. 그때 폐결핵에 걸리지 않았다면 저는 건축학과에 갔을 거예요. 결심 이후 고3을 다시 다니며 집안의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과에서 문과로 바꿨어요. 당시에 철학, 사회학, 심리학 세 가지 분야에 관심을 가졌어요. 철학은 추상적이고, 심리학은 마이크로(micro) 하다는 생각에 사회학과를 선택하게 되었죠.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사회학과 기독학생모임(FCS, Fellowship of Christian Sociologists)’을 만들었어요. 모임을 하면서 복음의 적실성(的實性)을 발견했어요. 대학교 졸업할 때쯤에는 사람 세우는 일, 사람 세우는 공동체가 정말 가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경험했지요. 그때 대학 선교단체인 IVF에서 저를 IVF 간사로 초대해 주었어요. IVF 모임에는 가본 적이 없다고 했더니 “네가 하고 있는 것이 IVF 운동이야.”라는 대답을 들었죠. 시험을 보고 간사가 되어 5년 동안 간사 생활을 하고, 본격적인 신학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가서 공부했어요.
나들목교회는 교회 건물 없이 대광고등학교 대강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를 설명하는 ‘찾는이와 함께 하는 예배’, ‘가정교회’, ‘변혁사역’ 등의 단어가 인상적입니다. 나들목교회는 어떤 교회를 추구하는지요?
예수를 믿은 이후 저의 관심은 ‘기독교가 정말 진리인가’라는 거였어요. 고등학교 때는 예수님 믿고 체험적으로 회심했어요. 대학 시절은 지적으로 기독교가 진리인 것을 확신하는 과정이었고요. 기독교가 지적으로도 엄청나게 철학적인 체계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 거죠. 무엇보다 청년의 때에 젊은이들이 변하고, 젊은이들의 공동체가 변하는 것을 경험했어요. 미국에서 공부하면서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일을 겪었어요. 그러면서 고통 가운데서도 기독교가 여전히 진리인 것을 발견했죠. 인간이 겪는 고통의 문제를 하나님이 어떻게 다뤄가시는지 직접 보고 경험한 거예요. 실존적인 고통 속에서 복음의 능력을 경험한 것이 저에게 굉장히 중요했어요.
개인적 체험, 사회나 역사 속에 드러난 진리(지적인 부분), 실존의 경험까지 기독교가 탁월한 것은 알겠더라고요. 하지만 마지막 질문이 남아있었어요. 왜 교회에 있어서는 탁월하지 않느냐는 거였어요. 왜 제가 보는 교회에는 그 진리가 드러나지 않느냐는 거죠. 그래서 한국에 들어올 때, 신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칠 수도 있었지만, 성경에서 본 하나님이 세우시는 교회를 이 땅에 세우고 싶었어요. 한국 교회에 필요한 것은 교회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나들목교회를 시작했어요. 한국 교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안고 20년 동안 고민하고 공부했던 내용의 결과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 교회의 핵심 가치가 ‘찾는이 중심, 진실한 공동체, 균형 있는 성장, 안팎의 변혁, 종말론적 예배’예요. 다섯 가지 핵심적인 DNA에 따라 교회가 만들어진 거죠. 이 다섯 가지는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 복음’의 본질적 요소예요.
‘찾는이’와 함께한다는 것은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세상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의 인생, 세상과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질문을 던지며 답변을 찾는 사람, 이런 사람을 ‘찾는이’라고 불러요. 논크리스천(Non -Christian)이라는 말과 비슷하죠. 그 중에서도 적극적으로 찾고 있는 사람을 ‘찾는이’라고 해요. 예수님은 이 땅에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러 오셨잖아요.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찾고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역은 찾는이를 찾아내고 섬기는 일이죠. 이것이 우리 교회의 기본적인 정신과 철학이에요. 방법은 다양하게 있겠죠.
나들목교회 주일 예배에서는 진짜 삶의 문제를 다루어요. 믿음이 있는 사람도 물론 함께 예배하기에 적절하지만 특히 불신자, 찾는이, 믿음이 어린 사람들을 위한 예배로 드려요. 15년 동안 600명 가까운 사람이 세례를 받았어요. ‘정말 회심’한 사람들에게만 세례를 주기 때문에, 생각해보면 적은 숫자가 아니죠.
나들목교회는 안디옥 교회를 모델로 한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맥락인가요?
교회의 전형 중 초대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는 불완전한 교회였어요. 문제도 많이 있었죠. 교회 역사의 두 번째 장을 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수리아의 안디옥 교회는, <교회를 꿈꾼다>라는 책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대단한 교회예요. 교회의 본질적 요소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 교회죠. 나들목교회는 안디옥 교회를 벤치마킹했어요. 안디옥 교회는 교회가 시작될 때부터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해요. 복음이 유대와 사마리아를 떠나서 땅 끝을 향해 가기 시작한 것이죠. ‘찾는이 중심’적인 가치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요.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여행을 떠난 것 역시 진짜 찾는이 중심의 사역을 펼친 거예요. 그들이 떠났던 이유는 하나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안디옥 교회는 시작부터가 그렇게 시작되었어요. 그들이 발견한 메시아 예수를 하나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나눌 것인지가 그들 초미의 관심이었어요. 나들목교회 뿐 아니라 모든 교회의 관심도 안디옥 교회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많은 이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복음으로 사회를 변혁하는 것’과 ‘개인이 전도나 선교하는 것’이 분리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한쪽을 강조하면 다른 한쪽이 약해지는 것 같고…. 어떻게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요?
신학의 뿌리 자체가 통합되어 있지 않고 파편적이에요. 그래서 균형을 잃게 되었죠. 만약 신학 자체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제대로 소화한 상태라면 복음 전도와 사회·문화 속에 정의와 사랑을 드러내는 일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복음 전도’가 임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라면, ‘사회 정의’는 하나님 나라를 개인과 사회가 살아 내게 하는 것이거든요.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는 이 두 가지가 다른 차원에서의 적용일 뿐 같은 거죠.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라는 얘기를 많이 해요. 사실 자기가 생각하는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하나님 나라’라는 말을 가지고 와서 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수님이 전한 하나님 나라’로 통합되지 않은 거예요. 전도와 사회 참여는 영역이 다를 순 있지만 분리될 수 없는 문제예요.
교사 공동체 안에도 이런 고민이 있습니다. 교사 개인의 신앙과 전도가 중요하다는 쪽이 있는가 하면, 교육을 잘하는 것 혹은 회복시키는 것 자체가 우리의 소명이라고 생각하는 쪽이 있어요. 혹자는 우선순위의 문제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실제 삶에서 균형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 복음’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한국 교회에 필요한 메시지가 바로 ‘하나님 나라 복음’을 회복하는 거예요. 마가복음 1장 15절 말씀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아주 핵심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요. “때가 찼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 사상의 아주 중심이에요.
구약에 ‘하나님 나라’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아요. 하지만 구약의 핵심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라는 개념이죠.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세운 나라고, 그 나라는 언젠가 메시야가 오면 이루어질 거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 신약에서, 오신 메시야이신 예수님도 그 나라는 미래에 완성될 것이라 말씀하세요. 다만 예수님 사상의 핵심은 그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이에요. 예수 사건-성육신, 십자가,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거죠. 이미 하나님 나라가 당도했다는 거예요. 이건 굉장히 혁명적인 사상이에요. 하나님 나라는 죽고 난 다음에 가는 곳이 아니라 현세에서 살아내는 나라라는 거예요.
지금 한국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고, 또한 살아내지도 않죠. 하나님 나라를 아주 개념화시켰어요. 실제가 없어요. 하나님 나라가 임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선포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전도예요. 하나님 나라가 임했기 때문에 그 나라의 가치관대로 사는 것이고, 그러니까 사회 참여를 안 할 수 없는 것이고요. 이렇게 둘은 통합되는 것이에요. 이 둘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임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강조가 없는 거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핵심은 ‘현재성’이에요. 누구나가 말하는 ‘Already but Not yet’, 그러나 개념과 신학적인 틀만 있어요. 하나님 나라가 임하긴 임했는데, 그 모습이 교회에 안 나타나고 기독교인의 삶에도 안 나타나요. 초대 교회는 그것을 진짜 믿었더라고요. 예루살렘 교회도 그랬고, 안디옥 교회는 더 확실하게 믿었죠.
기독교사운동의 목표는 교육계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교회가 아닌 직업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룬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제가 볼 때 ‘하나님 나라를 우리가 임하게 한다’는 표현은 잘못되었어요.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임하게 할 수 없어요.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임하게 한다, 확장하게 한다, 이런 표현은 하나님 나라의 주체 세력이 우리인 것처럼 들리게 하죠.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임하게 하는 것은 예수님이세요. 우리는 그 나라를 살아내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그 나라를 보여주고 드러낼 뿐이죠. 사회 정의를 이루면 하나님 나라가 임할 것이라는 생각, 인간 중심의 교육을 실현하면 하나님 나라가 임할 것이라는 생각은 굉장히 인간적(humanistic)이에요.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예요.
최근 ‘하나님 나라 복음 DNA 네트워크’ 활동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진 모임인지, 그리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 복음을 살아 내는 사람들이에요.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인 사람들의 ‘이 땅의 공동체’예요.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고 다음 세대에 끊임없이 하나님 나라를 전수하는 사람들, 또 그 일을 하는 것이 교회거든요. 혁명적인 거죠. 그런 교회를 세우는 일이 정말 필요해요.
한국 교회는 불행하게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살아내는 공동체라기보다는 일요일에 모여서 예배드리는 종교 집단이에요. 사람들이 이것을 교회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를 너무 폄하하는, 말하자면 아주 낮은 수준의 교회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교회가 종교 조직이 된 거죠.
‘하나님 나라 복음 DNA 네트워크’를 말하기 위해 나들목교회 이야기를 조금 더 할 필요가 있겠네요. 우리 교회 다섯 가지 중심 가치 중 첫 번째인 ‘찾는이 중심’은 위에서 이야기 했고, 두 번째 가치는 ‘진실한 공동체’예요. 죽을 때까지 같이 가는, 엄밀히 말하면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도 같이 갈 수 있는 공동체를 추구해요. 진실한 공동체가 뭐냐고 물어보면, 저는 사람들과 자기의 수치감을 나눌 수 있는 곳이라고 이야기해요. 큐티 나누고 자기 상황 나누는 것을 넘어 아픔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곳이 진짜 교회라는 거죠.
세 번째는 ‘균형 있는 성장’이에요. 교회 안에서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 모든 영역에서 성장해 나가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죠. 사람은 내면이 성장하면 밖으로 변화가 나오게 되어있어요. 이렇게 네 번째 가치인 ‘안팎의 변화, 총체적 변혁’을 말할 수 있죠.
마지막 ‘종말론적 예배’는 세속적(현세적) 예배와 대비되는 개념이에요. 세속적 예배는 예배 잘 드려서 이 세상에서 축복받고 살려는 거예요. 종말론적 예배는 이 땅의 고통과 슬픔을 끌어안고, 이 땅에서 내가 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 새롭게 하면서 주님 다시 오실 날을 간절히 기다리는 예배죠.
이런 가치들이 실제로 교회에 어떻게 나타날 수 있을까, 우리 기독교인의 삶에 정말로 나타날 수 있을까, 나들목교회가 15년 동안 고민해 온 거예요. 우리가 답을 다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성경에서 가르치는 바이니 그걸 살아내려고 애써 보는 거죠.
성경이 말하는 교회 세우는 것을 나들목교회에서 임상적으로 실험했다면, 그 결과를 공유하는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 복음 DNA 네트워크’ 활동을 시작하신 것이군요.
나들목교회 개척 초기에 ‘이런 가치로 교회가 진짜 되나? 어떤 것은 왜 실현되지 않지?’ 10년 동안 실험해봤어요. 만약 이런 교회가 정말로 세워진다면 이것을 한국 교회와 나눌 것이라고 우리 성도들에게 말했어요. 한국 교회를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대로 꼭 섬기겠는 부르심 때문에 나이 마흔에 나들목교회를 세웠어요. 그러나 실패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당시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교회를 보면 우리가 추구하는 중심 가치와 다 반대잖아요. 찾는이 중심이 아니라 교인 중심, 진실한 공동체가 아니라 개인주의적 신앙생활, 균형 있는 영성이 아니라 이원론적 영성, 안팎의 변혁이 아니라 기복주의, 종말론적 예배가 아니라 현세적 예배. 이 반대쪽을 잘 엮으면 ‘교회 성장론’이에요. 이것이 한국 교회의 대세이고 이것을 다 뒤집자고 하는 것이니 실패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실패하는 것이 우리 몫이면 실패해도 좋다고 생각했죠.
7~8년 지나면서 하나님이 이런 교회를 세우시는구나, 부족하지만 기뻐하시는구나, 경험했어요. 10년이 지나면서 2~3년 동안 우리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개별성·특수성이 한국 교회의 보편적 필요를 채워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2012년 9월에 처음으로 ‘하나님 나라 복음 DNA 네트워크’를 시작한 거죠. 함께 하는 교회에게 “나들목교회를 흉내 내지 마세요. 나들목교회를 가능하게 했던 하나님 나라 DNA를 가져가서 각자의 상황에 맞는 교회를 세우세요.” 라고 말씀드려요.
4년째 이 사역을 하고 있어요. 아직은 씨를 뿌리는 단계인데, 제 인생이 끝날 때까지 열매가 많이 안 나올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싹은 나겠죠. 이미 나기 시작했고…. 지금은 특히 나들목교회가 다음 단계를 어떻게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어요. 이런 고민을 하면서, 주님이 제게 허락하신 시간 동안 한국 교회를 섬기고 싶어요.
하나님 나라 DNA는 하나님 나라의 신학을 아주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표현한 거라고 봐요. 교회에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졌죠. 이번 기독교사대회에서도 “이 다섯 가지 DNA를 개인의 삶에서 살아내십시오. 학교에서 살아내십시오.” 이야기 하게 될 것 같아요.
이제 기독교사대회에서 선생님들에게 해주실 얘기를 듣고 싶은데요. 최근에 선생님들이 교회의 위기, 학교의 위기 속에서 지치고 힘들어하고 있어요. 좋은교사운동의 모토는 ‘복음의 능력으로 회복되는 교육’이에요. 처음 목표를 정할 때는 ‘회복되는 교육’에 방점이 있었는데 최근 ‘복음의 능력 회복’이 더 시급하고 중요해졌습니다.
당장의 교회를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우리 개인이나 모임이 바뀌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교사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천착해야 해요. 예수님의 가르침은 가볍지 않아요. 교사들이 어렵다고 말하는 것 이해 돼요. 하지만 교사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이 다 어려워요. 예수님의 가르침은 지금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서 전파되었어요. 기독교는 한 번도 상황이 좋아서 부흥한 적 없어요. 열악한 상황에서 역사가 일어났죠. 왜 그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 역사가 일어나는지 궁금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한국 교회는 끊임없이 상황을 얘기해요. 상황 때문에 안 된다고. 하지만 상황은 원래 어려웠어요. 기독교의 복음, 예수의 가르침이 상황에 의존적이었는지 묻고 싶어요. 상황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능력을 발휘하는 것, 아니 오히려 상황이 더 어려울 때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 아니던가요? ‘그럼 우리가 뭘 놓쳤느냐’ 이게 핵심인거죠. 저는 그 ‘놓친 것’을 기독교사대회에 모인 교사들과 나누고 싶어요.
힘들다구요? 많은 사람이 ‘세상과 상황을 버티면서 열매를 맺는 거야’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잘 될 것 같은데, 좀 쉽게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생각하니까 더 힘들어지는 거죠. 결국 쉽게 가는 비결은 못 찾거든요. 거칠게 표현했지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교사들의 삶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16 기독교사대회 주강사로 오십니다. 참석하는 선생님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7월호 잡지에서 이 내용을 보실 텐데, 그렇다면 8월 초 대회에 참석할 때까지 자기 성찰을 많이 하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믿고 있는 기독교의 진리가 뭐지? 그 진리가 나에게 작동해? 우리 교회에 작동해? 내가 교사로 사는데 작동해?’ 이런 질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오셨으면 좋겠어요. 진리가 내 삶에 완벽하게 드러나지 않더라도,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내 인생이/우리 교회가/교사로서 내 모습이 다르네. 그래서 내가/교회가/교사로 살면서 힘을 얻네.’ 이런 것이 있어야 해요. 만약 이런 고백이 없다면 내가 뭘 놓쳤는지 질문해 봐야 합니다.
무언가 멋있는 말은 하는데 실제 작동하지 않는다면 둘 중 한 가지 경우죠. 기독교의 진리가 허구거나 아니면 우리가 뭘 잘못 믿고 있는 거죠. 저는 이런 문제의식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봐요.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을수록 메시지가 선명하게 들릴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지난 2천 년 동안 세상을 변화시켰는데, 왜 나는 변화되지 않을까? 나는 선생으로서 학생들을 왜 변화시키지 못할까?’ 이런 갈증이 있는 분들이 기독교사대회에 오셔야 되겠죠. 더불어 ‘기독교사모임은 무엇인가? 기독교사대회는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을 품을 분들이 함께 진정성 있게 고민하는 장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좋은교사운동 선생님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세상의 모든 직업이 성직이 될 수도 있고 속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목사가 성직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기독교를 잘못 이해한 사람이에요. 이것은 완전한 세상적 이원론이에요. 자기의 명예와 유익을 구하는 목사라면, 그건 속직이에요. 그러나 목사를 하면서 정말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살기로 한다면 그건 성직이죠.
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모든 직업이 그래요. (물론 어떤 직업은 결코 성직이 될 수 없기도 하죠.) 그런데 모든 직업들 중에서도 특별히 사람을 직접 만나고 돕는 직업은 성직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예를 들면 교사, 의사, 간호사, 변호사, 목사 같은 직업이 있죠. 이런 직업은 잘하면 엄청난 성직이지만 잘못하면 차라리 그 직업을 안 하는 것보다 못해요.
교사는 이런 측면에서 엄청난 거죠. 아이들이 한 인격으로 형성되는 과정 속에 참여하는 사람이잖아요. ‘교사’라는 직업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수행하게만 되면 세상의 어떤 직업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성직이 될 수 있지만, 이걸 밥벌이를 위해서 하게 되면 아이들을 망가뜨리는 일을 방조할 것이기 때문에 끔찍한 속직이 되는 거죠.
교사로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하는 것,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깨닫는 것, 그렇기 때문에 적지 않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셨으면 좋겠어요. 이 놀라운 것을 발견한 분들은 그렇게 사는 거죠. 교사로서 어려운 일을 많이 겪겠지만, 선한 목적을 위해 겪는 어려움이라면 가치 있죠.
한국 사회가 바닥부터 무너져 있어요. 가장 큰 원인이 교육에 있어요. 물론 종교에도 있죠. 우리 교사와 목사는 한국 사회에 기초를 놓을 수도 있고 흔들 수도 있는 존재예요. 우리가 하루아침에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지는 못하겠지만, 저는 변화를 위한 기초를 함께 놓는 동역자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기독교사대회를 준비하고 있어요.
목사님과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 부끄러움과 함께 소망과 기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능력을 신뢰하기보다 상황을 탓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웠습니다. 반기독교적인 문화 때문에, 교회가 위기이기 때문에 기독교사운동도 어려워진다고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상황이 어려울 때 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는 말씀을 들으니, 또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 나라 복음대로 살기 위해 애쓰는 목사님과 교회 이야기를 들으니 소망이 생깁니다.
8월 2~5일 나흘 동안 기독교사대회를 통해 선포될 ‘하나님 나라 복음’에 대한 말씀이 기대됩니다.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교육의 회복을 위해 애쓰는 전국의 동역자를 만날 것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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