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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종료/정병오 칼럼

교회 안에서 배우는 믿음(2014.9)

좋은교사 2014. 10. 8. 12:16

정병오 칼럼

교회 안에서 배우는 믿음

 

아들과 함께 금요기도회에

몇 달 전부터 중3 막내아들과 매주 교회 금요 기도회에 참석하고 있다. 고등학교에 가면 자율학습 등으로 인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금요기도회에 꾸준히 참석해서 목사님의 사도신경 강해를 통해 교리적인 기초도 다지고 뜨겁게 부르짖는 어른들의 기도 분위기 가운데서 자신의 문제를 내놓고 기도하는 법을 몸으로 체득해가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막내 시온이는 8년 전 개척 교회를 시작할 때 초등학교 저학년 단계였기 때문에, 교회 개척과 함께 새롭게 시작한 온 가족 예배를 특별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며 자라왔다. 물론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교 저학년 사이에는 예배에 마음을 담지 않거나 싫증을 내는 모습을 보여 부모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 시기를 비교적 잘 극복하고 요즘은 꽤 능동적으로 예배에 참여를 한다. 그리고 얼마 전 스스로 신앙고백을 하고 입교 의식을 통해 책임 있는 교회의 한 일원으로 성찬에 참여를 하고 있다.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하나님께 또 시온이에게 감사를 하지만, 부모로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시온이가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 분이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고 입술로 고백하되, 그 믿는 바의 의미를 더 깊게 깨달아 갔으면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해 갔으면 하는 것이다. 날 구원하신 하나님을 너무 사랑해서 그 분을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그 마음을 갖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그 재미를 마음껏 느끼고 그 맛을 누려 갔으면 하는 것이다.

 

그 시절 그 기도 그 찬양

어릴 적 나의 삶을 돌아보면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부지런히 교회 문턱을 드나들었던 것 같다. 갓난 애기 시절 유난히 병약해 밤새 어머니 잠을 못 자게 칭얼거리다가 어머니 등에 업혀 새벽기도회에 갔던 일들은 내 기억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머니와 주변 사람들의 입술을 통해 들은 이야기다. 하지만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초등부 시절만 해도 금요 철야 기도회 때 어머니를 따라가 놀다가 뒹굴다가 잠들었지만 그 때 집사님, 권사님들이 교회당 바닥에 엎드려 내 아버지의 품이 이렇게 따뜻하고 좋습니다라고 되뇌던 말들이 지금껏 내게 남아, 나도 기도의 자리에 나갈 때 하나님 아버지의 그 무한하시고 따뜻한 품을 느끼며 고백하게 된다. 그리고 그 때 그 어른들이 가장 즐겨 많이 불렀던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찬송가는 인생의 쓴 맛을 모르던 내 가슴 속에도 남아 지금도 그 찬송가를 부를 때마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힘들었던 시기를 온 몸으로 안고 살아가던 믿음의 어머니들을 기억하게 된다.

중고등부 시절부터는 중고등부 예배 외에도 오전 예배는 물론 저녁 예배까지 어른 예배에도 함께 참여를 했다. 그리고 중학생 시절까지는 수요 예배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참석을 했었다. 특별히 저녁 예배나 수요 예배 때는 대표 기도나 설교가 너무 졸려 졸음을 참느라 고생했던 기억도 나지만 그 때 들었던 설교 말씀들은 어릴 적 내 신앙의 자양분이 되었다. 그리고 설교 뿐 아니라 장로님들이나 집사님들의 대표기도 가운데도 의례적인 기도가 아닌 신앙의 중심과 뜨거움이 묻어나는 기도를 들으면서 가슴이 뭉클하면서 기도는 저렇게 해야 되는구나라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또 예배 시간 찬양을 드리고 기도를 하며 말씀을 듣는 태도부터가 남다른 집사님들이 있었는데 그 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은혜를 느꼈고,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내가 중학생 때였던 것 같은데, 다른 지역 공업고등학교 3학년 학생 한 명이 창원 공단에 실습을 나와 6개월 정도 우리 교회에 출석을 한 적이 있었다. 그 형이 실습을 다 마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면서 저녁 예배 때 마지막 인사를 했는데, “사랑 많은 교회에 와서 사랑을 많이 받기만 하고, 할 일 많은 교회에 와서 제대로 섬기지 못해 죄송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이 교회에서 받은 사랑으로 교회를 섬기며 살겠습니다.”라는 취지로 했던 말이 그렇게 감동스럽게 다가왔다. 그래서 나도 다른 교회에 출석할 상황이 생기면 짧은 기간이라도 저런 자세를 가져야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어렴풋하나마 우리 교회를 넘어 전체 하나님의 교회를 생각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어찌 이뿐이겠는가? 예수 믿는다고 집에 감금을 당한 교회 선배가 몰래 창문을 넘어 맨발로 교회까지 도망을 오자 아버지가 화가 나서 도끼를 들고 쫓아오던 그 모습을 보면서 성도가 환란과 핍박 속에서 어떻게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배움이 짧아 다른 섬김은 하지 못하지만 교회 푸세식 화장실 변을 치우는 일을 도맡아 묵묵히 하시던 어떤 집사님을 통해서 섬김이 무엇이고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또 군대를 갔다 온 후 직장 준비를 하는 가운데서도 주일학교를 맡아 그렇게 재미있고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던 청년부 소속의 선생님을 통해서도 믿음과 헌신의 삶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그 작고 빈약했던 교회의 성도 한 분 한 분의 삶과 이야기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교회 성도들이라고 해서 어찌 약점과 허물이 없었겠는가? 교회 내 분쟁도 있었고 다툼도 있어 마음 아파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런 성도들의 연약함과 교회의 아픈 추억들마저도 인간의 연약함과 지상 교회가 갖는 한계를 껴안고 견딜 수 있는 내적 힘을 길러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녀와 함께 하는 온전한 교회 생활

부모의 손이 많이 가야 하는 유년기를 보내고, 이제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해서 나아가야 하는 청소년기 청년기 자녀를 보면서, 가장 안타깝고 두려운 일은 나의 자녀가 내가 누렸던 이 신앙의 풍성함, 하나님 사랑 안에 거하는 이 든든함을 누리지 못하며 살면 어떻게 하지?’라는 것이다. 이들이 살아가고 헤쳐 나가야 하는 이 거센 인생의 파도 속에서 하나님과 역동적으로 교제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그 힘으로 이 파고를 이겨내는 이 짜릿함을 누리지 못하고 자기 힘으로 죽을 힘을 다해 견디며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세상이 아무리 불확실하고 경쟁이 치열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안식과 쉼이 있고, 또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 가운데서 참된 섬김을 통한 성취와 그 가운데서 맛보는 영광의 풍성함을 맛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물론 정답은 가정과 교회 가운데 있다. 가정 안에서 부모가 일상의 크고 작은 모든 일들 가운데서도 감정의 기복과 기쁨과 아픔 가운데서도 오직 믿음을 붙들고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매일의 말씀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 분의 음성을 들으며 그 분께 기도로 아뢰는 삶을 체질화시켜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 더하여 아이들이 교회를 체험하며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 그것은 교회에 가서 멋진 설교를 듣고 좋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어떻게 서로의 연약함을 보완해가며 은사를 따라 어떻게 몸 된 교회를 이루어 가는지를 보고 느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 내 다양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며 섬기는지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부모가 먼저 바른 교회 생활을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그 교회 생활 가운데 자녀를 온전히 참여시켜야 한다. 이는 결코 공부에 밀리는 시간 낭비가 아니다. 자녀가 결국 믿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면, 이 믿음은 결국 믿음으로 살아내는 공동체 가운데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느끼며 배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