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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좋은교사》 공식 블로그

연재 종료/정병오 칼럼

더 큰 일은 없다(2014.11)

좋은교사 2014. 12. 9. 10:15

정병오 칼럼

더 큰 일은 없다

 

선생님, 내년에도 계속 학교에 근무하는 건가요?”

, 학교에 있어야죠. 제가 7년의 공백을 끝내고 이제 겨우 학교에 적응하고 있는데 학교를 떠나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지난 6월 지방선거 직후 서울시 교육감 당선자 인수위원회 인수위원으로 한 달 반 정도 파견 근무를 한 후 2학기에 다시 학교에 복직하자 주변의 많은 분들이 이제 내가 조만간 어떤 형태든 교육청의 일을 맡기 위해 학교를 떠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물론 내가 서울시 교육청 소속 교육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에 교육청의 명령이 있으면 언제 어떤 일이든 기여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의 기본 생각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학교의 교사로 충실하게 내 직무를 다하고 그 외 남는 시간을 통해 교육청이든 다른 교육계에 봉사를 하고 싶을 뿐이다. 지난 6월 서울시 교육감 당선자 인수위원으로 활동했던 것도 내 의지가 작용한 것이 아니라 교육감 당선자의 거부하기 힘든 강력한 요청에 의한 것이었을 뿐이었다.

 

평교사로 평회원으로

좋은교사운동 대표직을 포함해 좋은교사운동을 풀타임으로 섬기기 위한 지난 7년간의 휴직 기간을 마치며 다시 학교로 복직을 해야겠다고 결정했을 때 나는 할 수 있다면 가장 평범하지만 동시에 가장 모범적인 평회원 기독교사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교 업무 분장을 신청할 때도 자신은 없었지만 담임 신청을 했고 행정업무는 학교의 필요를 따라 어떤 업무라도 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리고 좋은교사운동에서 실시하고 있는 모든 실천과 운동을 가장 그 의도에 맞게 빠짐없이 학교에서 실천하는 것을 나의 가장 중요한 책무로 붙들고 노력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좋은교사운동의 사역과 관련해 한 사람의 정책위원으로서 정책위원회에 참석하는 것 외에 14년 전 내가 개척해서 섬겼던 지역모임에 정기적으로 출석하기 시작했고, 내가 속한 회원단체의 1년 과정의 리더십 양성 과정의 한 부분을 맡아 섬기고 있다.

물론 이렇게 몸부림을 쳤지만 결과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학급운영과 관련해 회복적 생활교육의 원리들을 많이 적용했지만 아이들이나 내가 다 미숙해 결과적으로 무질서한 학급의 모습으로 나타나 마음이 많이 불편하다. 수업은 할 수 있다면 모든 아이들이 수업 활동에 참여하고 각자 그 나름의 배움의 경험을 하도록 최선을 다했지만 장기적 기획 없이 해당 수업이 임박해서야 겨우겨우 다음 수업을 준비하는 단기적인 대응으로 인한 아쉬움을 많이 느끼고 있다. 이 외 좋은교사운동의 실천 운동들을 학교 일정 내에 소화하고 정책위원회, 지역모임, 리더십 훈련 모임 등을 다 소화해내는 것은 기쁨으로 감당하고 있지만 체력적으로 벅차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하지만 이 모든 연약함과 아쉬움으로 인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평교사로, 좋은교사운동의 평회원으로 살아가는 삶은 내 몸에 맞고, 하나님의 부르심의 한 가운데 있다는 안정감이 있다. 그래서 매 순간 나의 연약함을 주께 고백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간구할 수밖에 없는 생활이지만 그 긴장감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그분이 나를 통해서 당신의 일을 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다.

 

오직 부르심을 따라서

나는 기독교사들이 평교사로만 있어야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기독교사가 학교를 벗어나고 아이들을 떠나는 것을 하나의 목표로 영광으로 생각하면서 소위 말하는 승진에 매달려서는 안 되지만 승진 자체를 금기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사는 일차적으로 교사로서 가르치는 일과 아이들과 함께 뒹구는 이 일을 나이에 무관하게 가장 소중히 여기고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 관리자나 장학직에 대한 내적 외적 부르심이 있을 경우 이 부르심에도 순종을 해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과 학교가 너무 좋지만 장학직이나 관리직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할 수 없어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아이들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소한 나를 생각할 때 나에게는 관리직이나 장학직에 대한 내적 부르심이 강하지 않다. 물론 외적 부르심이라는 면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약간의 은사와 경험이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이것이 나의 내적 부르심을 자극하거나 일깨우지는 못하고 있다. 그리고 좋은교사운동이나 하나님 나라 차원에서 생각하더라도 내가 평교사로 존재하고 평회원으로 자기 역할을 다 하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선택의 기로에서 붙들어야 할 말씀

나는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거나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 다른 말씀에 우선해서 다음 두 가지 말씀을 붙들고 묵상하고 그 말씀 위에서 판단하기를 힘쓴다. 하나는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많은 것을 맡긴다.”(마태복음 25:21)는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고린도전서 4:7)는 말씀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기준에서는 큰 일과 작은 일이 존재한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큰 일이고 또 무엇이 작은 일이겠는가? 그러므로 내 앞에 세상의 관점에서 큰 일과 작은 일이 있다면 특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는 한 무조건 작은 일을 선택하는 것이 안전하다. 이렇게 작은 일에 충성할 때 하나님은 그 작은 일을 통해 큰 일을 행하시기도 하고, 또 작은 일에 충성하고 있는 나를 강권하사 큰 일로 이끄시기도 한다. 이때는 하나님이 큰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도 주시기에 큰 일도 잘 감당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은 일에 계속 머문다 할지라도 그 일을 통해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복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세상의 관점을 따라 큰 일을 선택할 경우에는 욕심에 이끌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가 없고, 결국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일이 아닌 내 욕심에 이끌리는 곤고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때로 내게 어떠한 큰 일을 잘 감당할 만한 외적 부르심과 은사와 재능이 발견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때 마치 이 재능과 은사가 내가 노력해서 만든 나의 것인 양 착각해서는 안 된다. 내게 있는 지극히 작은 은사와 재능일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맡기신 지극히 작은 일과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라고 주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러한 목적으로 은사와 재능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그 은사와 재능이 내게 짐과 재앙이 될 수가 있고, 하나님이 언제든 거두어 가실 수도 있다. 그러기에 내게 있는 은사와 재능으로 인해 내가 큰 일을 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당연히 그러한 은사와 재능이 없는 사람을 무시하거나 자고해서도 안 된다. 내게 은사와 재능이 발견될수록 더 낮은 자리에 서기를 힘쓰고 더 많은 섬김의 자리에 서야 한다.

 

작은 일, 작은 자, 낮은 자리

내가 교직의 정년을 다 채운다면 13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다. 그 어떤 사람도 자신의 삶에서 무엇은 되고 무엇은 안 된다고 단정할 수 없듯이 나도 내 남은 교직생활에 대해 단정할 수는 없다. 오직 주의 부르심과 인도하심을 따라 움직일 뿐이다. 다만 나로서는 세상이 정한 나이에 따른 위치나 지위 개념에 얽매이고 싶지는 않다. 어떤 자리에서 특별한 일을 해야 교육에 더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세상의 관념에도 구속되지 않을 것이다. 오직 말씀의 원리를 따라 할 수 있는 대로 더 작은 일에 충성하고 더 작은 자에게 집중하고 더 낮은 자리에 처하길 힘쓰고 싶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은사와 재능이 크든 작든 오직 주께서 은혜로 주신 것임을 알고 더 겸손히 섬기는데 나아가도록 나를 채찍질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