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오 칼럼
내 삶의 과제는 어디에서 왔을까?
내 전공은 국민윤리교육학과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할 즈음까지만 해도 진로에 대한 뚜렷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학력고사를 치르고 입학 상담을 할 때 담임 선생님이 내 점수를 고려해서 한 과를 추천해주셨고 나도 별 이유 없이 그 과가 괜찮은 느낌이 들어 그 과를 당연히 나의 길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원서를 쓰는 날 담임 선생님이 입학상담 때 추천해주셨던 그 과를 1지망으로 기록을 하고, 그 다음에 2지망을 써야 한다며 비교적 안전한 합격선에 들어있던 한 과를 이야기하셨다. 난생 처음 들어보던 과였지만 1지망에서 당연히 합격할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2지망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 담임 선생님의 뜻에 맡겼다. 그런데 막상 입학 결과가 나왔을 때는 1지망에서 떨어지고 2지망에 붙은 것이다. 처음에는 재수를 하려고 했지만 일단 다녀보고 결정하라는 담임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2지망으로 붙은 그 과에 다니게 되었다. 그 과가 내가 대학 4년 동안 전공을 했던 국민윤리교육학과였다.(지금은 윤리교육학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렇게 그냥 한번 다녀보고 여차하면 대학을 그만두고 재수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했으니 전공 학과에 대한 애착이 있을 수 없었다. 거기다가 국민윤리교육학은 대학에 설치된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학과라 여러 인접 학문들을 결합한 형태였고 학문적인 깊이나 정교함이 부족해 학문을 하는 기쁨과 지적 자극을 느끼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국민윤리교육학은 당시 군부독재 상황에서 과도하게 이념편향적이고 정권옹호적인 성격이 강해 당시 정권비판적이고 민주화를 지향하던 대학 문화와도 맞지 않아 마음을 쏟아 공부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이렇게 전공 학과에 제대로 마음을 두지 못하고 겉도는 상황에서 선교단체를 만나 거기에 마음의 닻을 내릴 수 있어 무사히 대학을 졸업할 수는 있었지만 전반적인 대학생활은 불편함과 불만족, 불균형의 연속이었다.
그때 내가 대학을 그만두고 재수를 선택했다면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불만족 투성이의 대학생활이 대학 졸업 이후 30년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나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교사로 발령을 받아 도덕 교사로 일하고 있다. 만약 내가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학을 그만두고 재수를 선택했다면 이후 교사가 아닌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공 학과에 마음의 닻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그 반작용으로 기독 동아리 활동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았고 그 기독 동아리에서 배운 말씀과 했던 헌신이 있었기에 교직이 주는 안정성에 안주하거나 혹 교직을 기반으로 또 다른 길을 모색하지 않고 기독교사로서 또 기독교사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이러한 내 삶의 여정이 진로탐색의 과정이나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과정의 보편적인 사례나 하나의 법칙으로 제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삶의 과정에서 내 계획이나 선택과 무관하게 주어지는 삶의 상황들을 직면할 때 무조건 거부부터 하거나 불평으로 일관하거나 피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상황 가운데 숨겨진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자세한 필요할 것이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고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 하에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먼저 무릎 꿇고 그 상황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겸손이 필요할 것이다.
내 마음의 부대낌을 해소하기 위해
이와 더불어 최근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은 내가 선택하지 않았고 자부심을 가진 적이 없으며 할 수 있으면 벗어버리고 싶었던 나의 전공학과가 내 직업과 중심적인 부르심 외에도 많은 부수적인 과제를 함께 주고 있다는 것이다. 즉 살아가다 보니 이상하게 내 삶의 중간중간에 불쑥 등장해서 내 양심을 자극하고 어쩔 수 없이 내가 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몰고가는 일들이 있는데, 그 과제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대학 전공이나 그와 관련된 대학생활의 경험과 연관이 있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북한’과 ‘통일’ 관련 영역이다. 대학시절에는 도덕교육과 무관한 ‘북한’ ‘통일’ 부분이 국민윤리교육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 자체가 싫었고, 거기다가 그 내용마저도 이념 편향적인 경향이 강해서 마음에 부대낌이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내 마음의 부대낌은 나로 하여금 북한에 대한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고 통일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과 실천을 찾고자 하는 동력이 되었다. 그래서 좋은교사운동 상근을 위한 휴직의 필요와 맞물려 대학원을 휴직을 하게 되었을 때 지체 없이 북한대학원에 입학해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나름의 안목을 갖게 되고 실천과제를 붙들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북한이나 통일과 관련된 글을 쓰기도 하고 강의를 하거나 작은 실천에 참여하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갖고 있다.
내 삶을 떠나지 않는 과제들
다음으로 내 삶을 떠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부담으로 다가오는 영역은 ‘기독교 윤리’의 영역이다. 이 영역은 내가 매일의 삶에서 감당하고 있는 학교 도덕 교과의 영역과는 조금 다른 차원이다. 이 부분은 한국 기독교인들이 기독교가 가르치는 윤리적 삶을 살아내는데 실패함으로 인해 한국 사회 가운데 비난을 받고 버려지고 밟히고 있는 부분에 대한 아픔과 관련된 영역이다. 어떻게 하면 한국기독교가 성경이 말하는 윤리적 삶의 능력을 회복하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한국 사회 전체가 앓고 있는 물질주의와 양극화 비인간화 문제에 대해 기독교윤리가 소금의 역할과 빛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관심은 내가 처음 시작부터 여러 모양으로 관련을 맺어오던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눈을 뜨고 이 운동을 변화하는 시대 상황에 맞게 새롭게 디자인하고 활성화시키는데 대해 내 나름의 기여를 모색하도록 하고 있다.
또 하나 내 삶에 늘 떠나지 않는 과제는 내가 훈련을 받았던 선교단체 졸업생 사역과 교회 갱신의 영역이다. 대학시절 선교단체는 전공 학과에 대한 불만족으로 힘들어하던 나에게 도피처로 출발했지만 거기서 머물지 않고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주권에 대해 눈을 뜨고 헌신하게 해 준 훈련의 장이었다. 그러므로 이 선교단체의 졸업생들이 실제로 자신의 삶의 영역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며 그 영역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도록 돕는 사역은 여러 가지 분주한 일상 가운데서도 내가 놓치지 않고 붙들고 온 주제였다. 그리고 선교단체를 거치면서 교회의 중요성에 대해 눈을 떴고 이후 건강한 교회를 세워나가며 성경적이지 못한 교회의 여러 모습을 개혁해나가는 일 역시 내 삶의 중요한 과제로 자리를 잡고 있다.
신비하고 놀랍다
지금 돌아봐도 나의 대학시절은 그렇게 밝고 희망찬 시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고민과 불만족, 불안,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혼돈이 더 많았던 시기였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힘든 상황의 핵심에는 나의 전공 학과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돌아보니 이러한 불만족 중의 불만족이었던 전공 학과 가운데서 고민했던 내용들이, 그리고 그 불만족을 해소하기 찾았던 도피처가 오히려 지금까지 내 삶을 지배하는 중요한 과제들이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리고 인간의 지혜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가 신비하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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